2026년 10월 24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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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2020년 선교헌금 작정을 앞두고
선교지에서 경험한 놀라운 하나님

추방,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이정로, 장순애 선교사 부부의 고백

10년 동안 사역은 탄탄대로였다. 하지만 남아시아 H국에서 기독교를 배척하면서 2018년 6월 남편 이정로 선교사가 추방을 당했다. 졸지에 아내 장순애 선교사와 자식 같은 현지 아이들을 선교지에 남겨둔 기러기 아빠가 신세가 됐다. 선교지에서 섬기던 아이들이 조금 더 클 때까지만 사역을 이어가기로 하고 장순애 선교사는 그곳에 남고, 이정로 선교사는 인접국에서 아내를 도왔다. 그런데 놀라운 하나님의 개입이 있었다. 추방,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이정로, 장순애 선교사와 아웃리치를 왔던 한 성도가 함께 더 큰 하나님의 비전을 이뤄가게 되었다.
/ 김영선 기자 k4458@onnuri.org

이정로 선교사는 온누리교회 맞춤전도집회 ‘비상구’에 참석했다가 예수를 구주로 영접했다. 부천 온누리교회에 출석하면서 선교에 대한 비전을 키워갔다. 남아시아 H국과의 인연은 2005년 시작되었다. 아웃리치에서 “다시 이 땅에 오겠다”는 약속이 밀알이 되었다.
“젊었을 때 고시공부를 오래 해서 심적으로 많이 위축된 상태였어요. 예수 믿고 세례를 받으면서부터 내 안에서 온전한 회복이 시작된 것 같아요. 선교를 나가야겠는데 혼자서는 어려움이 있으니까 짝을 찾기 위해 기도하고 있었는데 운명적으로 아내 장순애 선교사를 만났어요.”
장순애 선교사는 예수전도단에서 훈련 받고 남아시아 H국에서 십여 년 동안 사역을 하고 잠시 쉬고 있었다. 부천 온누리교회 한 성도의 소개로 만나 결혼에 골인했다. 그 달콤한 신혼시절을 선교지에서 보냈다.
“신혼 때 같이 훈련받고 남아시아 H국으로 파송 받았어요, 남편과 함께 그 나라 문화를 더 깊이 배우고 언어공부도 했어요. 예수전도단에 있을 때 공동숙소를 쓰다가 결혼해서 둘만의 가정을 꾸리니까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꿈같은 시간들이었던 것 같아요.”

 

I종족과의 만남 그리고 토요 성경교실

 

2009년 남아시아 H국으로 파송 받아 2년 동안 언어와 문화 훈련을 끝내고 현지 리서치를 하다가 I종족을 만났다. I종족은 남아시아 H국의 토착 원주민으로 주로 차 밭 일을 한다. 카스트로 보면 가장 하층민인 수드라 계급에 속한다. H국 북부 지역에 4~5천만 명이 살아가고 있다. 이정로, 장순애 선교사 부부는 남아시아 H국 I종족이 거주하는 한 마을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배우지도 못하고 정말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에요. 이 마을을 복음화 시켜서 잘살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그곳의 아이들을 교육시키면 변화가 가능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매주 토요일 성경교실을 열고 아이들을 교육시켰어요.”
주민 대다수가 힌두교도였다. 그런데 주민들이 자녀들을 토요 성경교실에 보냈다. 처음에는 아이들 한두 명 씩 모였는데 날이 갈수록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나중에는 이백 명이 넘는 아이들이 출석할 정도로 토요 성경교실 규모가 커졌다. 
“토요 성경교실에 오면 일단 찬양을 하고 말씀을 들려주고 신나게 뛰어 놀게 했어요. 그리고 아이들에게 간식을 줬어요. 아무리 힌두교인 부모들이라도 아이들이 즐거워하고, 간식도 잘 먹으니까 아이들을 토요 성경교실에 보내더라고요.”
가정이 무너진 아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가정이 무너진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기 위해서 기숙센터를 세웠다. 알코올중독자의 자녀, 고아, 조부모와 사는 부모의 따듯한 손길이 꼭 필요한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하나둘 모여 함께 살았는데 나중에는 15명이나 됐다. 코 흘리게 시절에 왔던 아이들이 성장해서 지금은 대학교까지 진학했다.

 

고향 같은 선교지였는데…

 

“그 마을에는 8학년 이상의 학교가 없었어요. 저희 아이들이 대학에 간 게 그 마을에서 첫 번째 대학진학이었으니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아시겠지요? 부모들이 자녀들을 교육 시키겠다는 의지도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그 마을에 대학생이 생겼다는 것은 엄청난 변화입니다.”
‘라주’가 그 마을에서 나온 첫 번째 대학생이다. 알코올중독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와 라주를 어릴 때 버리고 떠나버린 어머니 대신 할머니 할아버지 품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토요 성경교실에 오면서 이정로, 장순애 선교사 부부가 돌보기 시작했다. 라주는 지금 전도자의 꿈을 품고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 한국에서 신학석사 과정을 공부하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 마을에는 라주처럼 가능성이 많은 아이들이 많습니다. 그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고 싶어서 선교센터를 건축할 예정이었어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일종의 선교베이스가 되기를 꿈꾸고 있었어요. 선교센터 설립하는 일이 꽤 많이 진척된 상태였는데 건강이 안 좋아져서 한국에 치료차 나오는 길에 H국 공항에서 비자가 취소되었어요”
이정로 선교사는 사업비자를 가지고 있었는데 당국에서 긴 시간 추적 끝에 그가 선교사임을 눈치 채고 추방을 한 것이다. 비자발급을 다시 한번 요청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져 너무 당황하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너무 힘들었어요. 저한테는 그곳이 고향이나 다름 없는데 다시는 고향에 못 가게 됐잖아요. 가족들도 거기 있는데 다시는 못 본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저희 부부가 앞으로 은퇴까지 10년 정도 남았어요. 그 정도 시간이면 그곳의 아이들을 다 키우고, 그 아이들이 자리까지 잡겠다면서 그때까지만 고생하자고 했는데 이제는 그 꿈을 꿀 수 없게 되었어요.”
불행 중 다행이라고 아내 장순애 선교사의 비자에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장순애 선교사에게도 생길지 모르는 위험을 고려해서 철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종종, ‘그렇게 위험하면 철수하면 되잖아요’라고 걱정해주시고 위로해주시는 분들이 계신데 진짜 속을 몰라서 하는 소리에요. 그 아이들을 두고 어떻게 떠나요? 그래서 남편은 남아시아 H국 국경을 접한 인접국에서 저를 돕고, 단기선교사의 도움을 받아서 3~4년 정도 사역을 더 한 다음 철수하는 쪽으로 정리가 되고 있었어요. 그런데 추방이 끝이 아니더라고요. 하나님께서 더 큰 계획을 가지고 계시더라고요.”

 

막히면 또 다른 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생각지도 못했던 동역자를 보내주셨다, 여름 아웃리치를 왔던 A성도였다, 그 성도와 함께 새로운 선교가 시작되었다. A성도는 남아시아 H국 아웃리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한국의 가나안농군학교 같은 크리스천공동체와 크리스천 기업을 세우겠다는 비전을 받았다.
지금은 A성도가 동티모르에서 했던 식음료사업을 남아시아 H국에 적용해 보고 있다. 이정로 선교사는 인접국에서 사무를 보고, 장순애 선교사와 기숙센터에서 키우는 아이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
“비자가 막혀서 이곳에서의 선교는 끝난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하나님은 길이 막히면 반드시 또 다른 길을 열어주시더라고요. 저는 남아시아 H국에 가지 못해도 아이들은 제가 있는 이곳에 올 수 있어요. 그렇게 아이들과 교제를 이어가고 있었는데 남아시아 H국에 선교사업체가 세워지면서 저에게도 할 일이 생겼어요. A성도님이 영업은 기가 막히게 하시는데 회계 관리가 조금 부족하다고 하시더라고요. 마침 제가 그쪽 분야 공부를 했고 일해 본 경험이 있어서 남아시아 H국 인접국에서 선교사업체 회계 관리를 하고 있어요. 정말 놀랍지 않으세요? 많은 선교사들이 추방을 당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하나님께서 A성도님을 보내셔서 선교사업체를 세우시고, 남아시아 H국 청년들을 고용해서 일 하게 하시고, 크리스천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계시잖아요.”
이정로, 장순애 선교사 부부는 온누리교회 성도들의 중보기도 덕분에 그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선교사와 선교지를 위해서 기도 많이 해주십시오. 성도님들의 중보기도가 없으면 선교사들은 버틸 힘이 없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포기할까 싶다가도 온누리교회 성도님들의 중보기도 덕분에 다시 힘을 낼 수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작성자  김영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