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말씀 해설] “…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시 16:11)
맛있는 말씀 해설
“…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시 16:11)
기독교는 기쁨의 종교다. 복음은 기쁨의 소식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기쁨으로 충만하다. 이 기쁨은 흉내나 억지가 아니다. 위선적 기쁨의 효과는 미미하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기쁨에 위력이 있다. <시편> 16편 11절은 기독교인이라면 누리는 진정한 기쁨의 본질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라는 앞부분의 표현을 보면, 마치 하나님이 미래에 나아갈 길을 알려주신다는 뉘앙스로 느껴진다. 표준새번역으로 보면 이 구절의 의미가 더 분명해진다. ‘주께서 몸소 생명의 길을 나에게 보여주시니’라고 되어 있다. 하나님이 어떠한 길을 지칭하시면서 우리에게 그 길로 가라고 하신다는 뜻이라기보다 ‘주님이 걸으셨던 그 길이 곧 생명의 길’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예수님이 ‘내가 곧 길’(요 14:6)이라고 말씀하신 맥락과 같다.
일반적으로 신앙생활의 방향이 ‘무엇’을 알기 위한 쪽으로 흐르는 경향이 높다. 하지만 신앙생활의 본질은 ‘누구’를 제대로 아는 과정이다. 즉, 예수님이 걸으셨던 길을 본받으면서 그분을 닮는 삶이 인생의 목적이다. 예수님을 통해서 무언가 얻거나 무엇을 알기 위한 움직임이 아니다. 미래에 어떠한 일이 펼쳐질지, 결과에 지나치게 관심을 보인다면 신앙생활의 방향이 비뚤어질 가능성이 크다. 순간마다 예수님을 닮으려는 데 집중한다면 그것이 온전한 신앙의 모습이다. 이러한 사람은 늘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마 7:11)을 신뢰하기 때문에 결과의 구체적인 내용은 모를지라도 당연히 좋은 방향으로 흐르리라 확신하기에 미래를 지나치게 궁금해하지 않는다. 따라서 점쟁이에게 점괘 받는 식의 종교활동을 하지 않고, 신앙이 퇴색되지 않는다.
본문 중반부에 나오는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를 표준새번역에서의 표현인 ‘주님을 모시고 사는 삶에 기쁨이 넘칩니다’로 읽으면 의미가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순간마다, 과정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으려는 자세로 산다면, 하나님이 우리 마음의 중심에 거하신다면, 우리에게는 결과를 초월한 기쁨이 가득해진다. 하나님이 우리 곁에 계시는 ‘임마누엘’ 자체가 샘솟는 기쁨이기 때문이다.
훗날 베드로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성도의 수가 3천 명이나 더하게 된 그때 인용한 구절 중 하나가 오늘 본문이다(행 2:28). 베드로는 이 본문의 ‘주님’이 바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설명한다. 의미를 더 분명하게 파악하기 위해 <사도행전> 2장 28절을 공동번역으로 보면, ‘당신은 나에게 생명의 길을 보여주셨으니 나는 당신을 모시고 언제나 기쁨에 넘칠 것입니다’라고 나온다.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길 자체기에 그분이 걸으셨던 길을 따라가고, 그분을 믿으면서 언제나 예수님을 마음에 모신다면 우리 삶에는 진정한 기쁨이 충만할 거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표준새번역으로 본문의 후반부를 보면,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즐거움은 ‘영원토록 이어질 것입니다’라고 되어 있다. 우리의 목자가 되어 주사 풀과 물이 끊이지 않게 공급해 주시는 주님(시 23:1~2), 시냇가의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언제나 풍성히 맺으며 잎사귀가 마르지 않도록 형통하게 하시는 주님(시 1:1), 우리를 항상 선한 길로 인도하사 환경은 열악하더라도 그곳에서 영혼의 만족을 주시며 뼈마디에 힘을 주사 견고하게 하시고 물 댄 동산같이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처럼 돌보시는 주님(사 58:11)이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언약의 말씀이다.
혹시 최근에 기쁨이 소멸하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이 말씀에 비춰 점검해보라. 나는 과연 결과에 연연해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알기 위해서만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주어진 상황에서 주님과 함께 과정에 충실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마음이 주님으로 채워져 있는지를 말이다. 결과에 초연하고, 주님과 함께하는 과정에 충실한 삶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이고, 충만한 기쁨으로 가득 채워지는 비결이다.
/ 이강현 목사(양재A공동체)
일반적으로 신앙생활의 방향이 ‘무엇’을 알기 위한 쪽으로 흐르는 경향이 높다. 하지만 신앙생활의 본질은 ‘누구’를 제대로 아는 과정이다. 즉, 예수님이 걸으셨던 길을 본받으면서 그분을 닮는 삶이 인생의 목적이다. 예수님을 통해서 무언가 얻거나 무엇을 알기 위한 움직임이 아니다. 미래에 어떠한 일이 펼쳐질지, 결과에 지나치게 관심을 보인다면 신앙생활의 방향이 비뚤어질 가능성이 크다. 순간마다 예수님을 닮으려는 데 집중한다면 그것이 온전한 신앙의 모습이다. 이러한 사람은 늘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마 7:11)을 신뢰하기 때문에 결과의 구체적인 내용은 모를지라도 당연히 좋은 방향으로 흐르리라 확신하기에 미래를 지나치게 궁금해하지 않는다. 따라서 점쟁이에게 점괘 받는 식의 종교활동을 하지 않고, 신앙이 퇴색되지 않는다.
본문 중반부에 나오는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를 표준새번역에서의 표현인 ‘주님을 모시고 사는 삶에 기쁨이 넘칩니다’로 읽으면 의미가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순간마다, 과정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으려는 자세로 산다면, 하나님이 우리 마음의 중심에 거하신다면, 우리에게는 결과를 초월한 기쁨이 가득해진다. 하나님이 우리 곁에 계시는 ‘임마누엘’ 자체가 샘솟는 기쁨이기 때문이다.
훗날 베드로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성도의 수가 3천 명이나 더하게 된 그때 인용한 구절 중 하나가 오늘 본문이다(행 2:28). 베드로는 이 본문의 ‘주님’이 바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설명한다. 의미를 더 분명하게 파악하기 위해 <사도행전> 2장 28절을 공동번역으로 보면, ‘당신은 나에게 생명의 길을 보여주셨으니 나는 당신을 모시고 언제나 기쁨에 넘칠 것입니다’라고 나온다.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길 자체기에 그분이 걸으셨던 길을 따라가고, 그분을 믿으면서 언제나 예수님을 마음에 모신다면 우리 삶에는 진정한 기쁨이 충만할 거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표준새번역으로 본문의 후반부를 보면,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즐거움은 ‘영원토록 이어질 것입니다’라고 되어 있다. 우리의 목자가 되어 주사 풀과 물이 끊이지 않게 공급해 주시는 주님(시 23:1~2), 시냇가의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언제나 풍성히 맺으며 잎사귀가 마르지 않도록 형통하게 하시는 주님(시 1:1), 우리를 항상 선한 길로 인도하사 환경은 열악하더라도 그곳에서 영혼의 만족을 주시며 뼈마디에 힘을 주사 견고하게 하시고 물 댄 동산같이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처럼 돌보시는 주님(사 58:11)이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언약의 말씀이다.
혹시 최근에 기쁨이 소멸하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이 말씀에 비춰 점검해보라. 나는 과연 결과에 연연해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알기 위해서만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주어진 상황에서 주님과 함께 과정에 충실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마음이 주님으로 채워져 있는지를 말이다. 결과에 초연하고, 주님과 함께하는 과정에 충실한 삶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이고, 충만한 기쁨으로 가득 채워지는 비결이다.
/ 이강현 목사(양재A공동체)
작성자 김다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