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주일강단 -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있습니다 
 
눅 17:20~21 
 
/이재훈 목사 
 
교회 역사에서 가장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지만 느끼지 못하고, 때로는 도리어 자랑스럽게 여기는 왜곡된 모습이 있습니다. 바로 교회가 수백 개의 종파로 나누어지고 분열된 모습입니다. 교회 역사를 얼룩지게 만든 이 수많은 분열의 뿌리가 무엇입니까? 겉으로 볼 때는 교리적인 차이, 역사적 시각의 차이 등 많은 이유가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목표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지 않으면  지도자들에 의해 사유화되기도 하고, 과거의 인습과 전통에 매여 변화하지 못하기도 하고, 복음을 온 세상을 전해야 하는 사명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브라질 선교사 출신이자 탁월한 교회 학자인 하워드 스나이더 박사는 저서 <참으로 해방된 교회>(Liberating the church)에서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교회가 하나남 나라를 세우는 대신 교회 자체를 세우는 존재로 자신을 규정지을 때 교회는 언제나 문제가 생긴다.”
교회 안에 생기는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 관심을 두기보다 교회 자체에 관심을 기울일 때 문제가 생깁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사람들이 모여서 어떤 제도와 헌장과 서약을 통해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오직 십자가에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음으로 의롭게 된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이 본질에서 벗어나면 교회는 언제나 세상에 휩쓸리게 되고, 다툼과 분열로 얼룩지게 되고, 맛을 잃어버린 소금이 되어 세상에 밟히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 이름으로 불리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진정 예수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였는지가 중요합니다. 과연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았는지가 가장 중요하고, 유일한 평가기준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교회
 
교회의 제일 사명은 교회다워지는 것입니다. 무엇이 교회다워지는 것입니까?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앞서 인용한 하워드 스나이더 박사의 또 다른 지적을 주목하고 싶습니다. 
“교회는 세상을 해방시키기 이전에 교회 자체가 성경에서 말하는 대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해방되어야 한다.”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하기 전에 교회에게 있어야 할 변화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공동체로 끊임없이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입니다. 어떤 일을 하려고 하기 전에, 세상을 향해 외치기 전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공동체로 변화되고 자유롭게 되는 것이 교회의 제1순위 사명입니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감리교 선교사라고 불리는 스탠리 존스(Eli Stanley Jones)는 교회와 하나님 나라의 관계에 대해서 중요한 문장을 남겼습니다. 
“나는 교회가 하나님 나라에 충성하는 정도까지만 충성할 작정이다. 나의 최고의 충성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이다. 만일 교회에 대한 충성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충성이 서로 갈등한다면 나는 결국 하나님 나라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교회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를 대신하도록 만드는 교회에 대한 잘못된 충성은 무엇이든지 교회에 해로운 것이다.” 
한국 교회 역사에서 잘못된 결정들은 모두 하나님 나라에 대한 충성과 상관없고, 때로는 결어 되어 있는 교회 자체에 대한 충성이었습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교회에 대한 충성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충성이 되어야 합니다. 스탠리 존슨은 지도자들의 잘못된 판단, 성도들의 잘못된 생각으로 차이가 있으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충성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교회의 모든 결정이 하나님 나라의 결정에 합한 것이 아니라면 순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교회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공동체로 나아가고 있는지, 교회의 결정이 하나님 나라의 충성된 결정인지를 날마다 기도하고, 분별하고, 고민하며 되새겨 보아야 합니다. 
창립기념주일은 교회의 목적과 정체성, 우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되돌아보는 주일입니다. 온누리교회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없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가 언제 올 것인지 물어보자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한 ‘보라. 여기에 있다’, ‘보라. 저기에 있다’ 하고 말할 수도 없다.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기 때문이다”(20~21절).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는 말씀 앞에 우리는 이렇게 응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네, 주님 맞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우리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온누리교회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온누리교회 모든 공동체와 사역, 성도들의 가정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언제 올지에 대한 질문은 유대인들의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왜냐하면 구약 성경을 편견 없이 읽어보기만 해도 메시아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곧 올 것이라는 예언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잘못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그림을 가지고 질문했습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지적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문제를 이미 아시고, 질문하지 않은 것까지도 설명해 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형태로 오지 않는다.” 
유대인들은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로마 왕국을 뒤집어엎고, 유대 왕국이 로마 제국을 뛰어넘는 정치적 왕국이 되는 꿈입니다. 유대인들이 온 세상의 지배자가 되고, 그들이 온 세상에서 영광을 받는 정치적 하나님 나라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들이 기대하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은 오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는 그렇게 눈으로 볼 수 있는 외형적인 것이 아니다. 국가적, 정치적인 모습이 아니다. 세상의 힘과 권력을 가지고 보여주는 나라가 아니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것을 교회에 적용하면 하나님 나라는 어떤 교회의 건물, 조직,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이는지 등 외형적인 요소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다”라고 하시면서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바리새인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의미를 확대해서 설명하면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을 통해 이미 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이 세상에 온전히 드러나기 시작했고, 예수님이 다시 옴으로써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여러 영어성경 번역 중에 <amplified Bible>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확장된 번역입니다. 여러 말씀의 의미를 보다 풍성한 단어로 번역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은 성경입니다. 이 번역에서는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의 안에 있다(나의 임재로). For the kingdom of God is among you(because of My presence)” ‘나의 임재 때문에, 임재로 인하여’ 하나님 나라가 너희 안에 이미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고, 임할 것이고, 그 나라가 완성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게 되는 유일한 길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임재를 통해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임했으므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 그분과 연합된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유일한 길입니다. 어떤 이념적인 제도, 이슈, 세상적인 질서를 만드는 것은 가지일 뿐입니다. 가장 근본적인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공동체는 교회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에 연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그들 안에 있고, 그들의 생명이 예수님 안에 있는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이 전이, 이식, 전달되는 것입니다. 제가 왜 ‘실제로’라고 강조를 했을까요? 이것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제라는 것입니다. 어떤 이념이나 단순한 염원이 아닙니다. 듣기 좋으라고 하는 종교적 언어가 아니라 실제입니다. 마치 우리 육신의 생명이 실제인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움직이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사랑하고, 먹고 마시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 생명의 실제를 어떻게 규명하겠습니까? 우리 몸을 해부하면 이것이 생명이라고 집어낼 수 있습니까? 우리가 호흡하고 판단하고 느끼는데 우리 인격의 중심인 생명을 우리 몸 어딘 가에서 끄집어낼 수 있습니까?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그냥 몸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 안에 생명이 들어 있는 실제가 있습니다. 관념이 아닙니다. 이념이 아닙니다. 희망사항이 아닙니다. 이것은 살아있는 인격체입니다. 그 육체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 또한 육체의 생명과 비교할 수 없는 영적 실제로서 우리 안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에 연합된 자들이 함께 지체를 이루는 것이 진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공동체입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이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고, 백성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외형적인 교회의 조직, 등록을 하고, 예배에 참여하고, 피상적인 교회의 모습에 결코 만족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어느 교회에 출석한다는 것으로 끝나는 인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교회에 다니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교회에 다니지 말고 교회가 되십시오. 우리는 교회에 다녀서는 안 됩니다. 교회에 다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체가 교회입니다. 나는 온누리교회에 다닌다가 아니라 내가 온누리교회인 것입니다. 교회의 이름도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곧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이라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것은 생명입니다. 생명은 움직입니다. 생명은 자라납니다. 생명은 영향을 미칩니다. 생명은 생명을 낳고, 생명을 전염시키고, 생명을 변화를 일으킵니다. 
 
씨앗 안에 있는 생명의 역사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설명해 주시기 위해서 마태복음 13장에서 많은 비유를 드셨는데 대표적인 한 가지만 말씀드린다면 ‘씨앗과 누룩의 비유’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밭에 뿌려져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씨앗으로 시작하지만, 그 씨앗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 변화된 생명이 자라나 많은 새들이 깃드는 큰 나무가 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단단한 작은 씨앗 안에 생명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씨앗은 반드시 죽음으로써 열매를 맺는 식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때 베들레헴 구유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은 작은 씨앗처럼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부활의 생명으로 변화되어 생명이 자라나고, 또 다른 생명을 낳고, 큰 나무가 되어 많은 새들이 깃드는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바로 그것이 교회 역사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믿고, 함께 예배하며, 어느 곳에 있든지 교회 지체가 되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까? 누군가 어떤 종교를 만들어보자고 해서 된 것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명이 사도들에게 전해지고, 그 사도들에게 임한 그리스도의 생명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되고 전파되어서 생명이 생명을 낳는 역사로 이렇게 큰 나무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책 한 권 쓰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가장 많은 책이 예수님에 관해서 쓰여 졌습니다. 예수님은 그림 한 점 그리지 않으셨지만 가장 많은 그림의 주제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노래 한 곡 짓지 않으셨지만 서양 음악의 모든 것이 살아계신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서 음악체계가 만들어졌습니다. 이 놀라운 영향력이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바로 씨앗 안에 있는 생명의 역사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부활의 생명이 생명력 있게 움직이고 역동할 것 것입니다.    
 
세상 속 교회의 사명
 
또 누룩의 비유를 듭니다. 누룩은 작지만 많은 양의 밀가루를 변화시킵니다. 부풀게 합니다. 자연법칙은 많은 것이 적은 것을 삼켜버리고, 많은 것이 적은 것을 변화시킵니다. 더러운 물이 많은 곳에 깨끗한 물을 적게 부으면 그 물마저 더러워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자연 질서가 있습니다. 많은 물에 적은 소금을 탄다고 할지라도 그 물은 소금물이 되는 것입니다. 지구상에 있는 바다에 3%의 염분이 있지만, 온 바다를 소금물로 바꾸는 것입니다. 아무리 짙은 어둠이 있다 할지라도 작은 빛이 있으면 어둠이 빛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작은 것이 많은 것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적은 누룩이라도 많은 밀가루에 섞으면 전체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적은 것이 많은 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바로 생명력에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생명력은 소금과 같고, 빛과 같고, 누룩과 같아서 주변을 변화시키고 영향을 미칩니다. 그 영향력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부활의 생명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키려 하기 전에 교회 안에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력이 있다면 어두울수록 빛이 나고, 부패할수록 소금의 짠맛이 나고, 부패를 방지하고, 살기 힘든 이 세상을 살맛나는 인생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 속에 있는 교회의 사명입니다. 성도들의 삶 가운데 그리스도의 부활과 생명의 능력, 복음의 능력이 있으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영역에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우리가 건설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건설하시되 그리스도 부활의 생명력을 가진 자들에 의하여 하나님 나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가장 큰 적은 불신자들이 아닙니다. 교회를 오해하는 정부도 아니고, 타종교도 아닙니다. 교회를 공격하는 어떤 세력들도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장 큰 적은 바로 그리스도 부활의 생명력을 잃어버린 종교화된 교회, 제도화된 교회, 화석화된 교회입니다. 박물관처럼 되어버린 교회, 교회 안에 갇혀서 하나님 나라를 구하지 않는 교회, 교회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교회,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린 교회입니다. 교회가 우리를 위한 모임에만 만족하고, 나를 위한 예배, 나를 위한 말씀, 나를 위한 기도, 나 자신만을 위하면서 하나님 나라에는 관심이 없으면 그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가장 큰 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고, 예배 형식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모이지만, 하나님 나라와는 동떨어져 가는 교회들이 역사 속에 잊혀 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영향을 주기보다 세상의 염려를 받는 교회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온누리교회가 해를 거듭할수록, 역사가 오래될수록,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력과 영향력이 다음 세대에, 또 다른 이웃에게, 다른 민족에게 계속 확산되기를 축원합니다. 온누리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존재하는 교회가 되고, 이 미디어 전쟁 시대에 복음을 담아서 온 세상에 전파하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는 일에 
쓰임 받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교회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온누리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존재하고.
미디어 전쟁 시대에 복음을 담아서 온 세상에 
전파하는 교회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작성자  홍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