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네팔- ‘땅끝까지 이르러’②
아무리 높은 산일지라도 “가라! 전하라!”해발 2000m가 넘는 고산마을에서도 울려퍼지는 찬양네팔 통해 티베트와 중국 인도까지 … 주님의 증인으로
살아있는 신까지 만들어 모시는 나라 뿌자 의식이 거행되는 피바다의 계곡이 있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남쪽으로 17km 쯤 떨어진 깊은 산 속에 있는 덧친깔리 사원의 계곡이다. 이 계곡은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 오전에는 피를 좋아하는 시바의 처요, 암흑의 신인 칼리 여신에게 보호받기 원하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석가모니의 고향인 룸비니가 있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는 네팔 최대의 불탑인 보드나트가 있다. 하얀 돔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보드나트는 티베트 불교의 주요 순례지로 일 년 열두 달 전 세계에서 모여든 순례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순례자들은 스투파를 중심으로 시계 방향으로 계속해서 돌면서 끊임없이 ‘옴마니반메홈(온 우주에 충만하여 있는 지혜와 자비가 지상의 모든 존재에게 그대로 실현될지어다)’ 불경을 읊조린다. 네팔 사람들은 스투파를 돌면서 원통형의 마니차를 돌린다. 이 마니차를 한 번 돌리면 경전을 한 번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을 쌓기 때문이다. 보드나트 사방에는 불경을 적어 넣은 오색 깃발 ‘룽다’가 만국기처럼 걸려 있다. 보드나트 주위에 모여 사는 티베트 촌에는 집집마다 불경을 새겨 넣은 오색기를 만국기처럼 이어 단 타르초가 달려 있다. 국교를 힌두교로 정한 네팔은 신이 많기로 유명하지만, 무엇보다 전통적으로 살아있는 신을 모시는 나라로 유명하다. 이름하여 쿠마리, 처녀 신이다. 쿠마리는 힌두교 신중에서 선한 사람들을 항상 보호해주는 신인 두르가 신이 변신해 내려온 존재라고 네팔인들은 믿는다. 온누리미션 출신 라이 목사가 개척한 ‘헤브론교회’ 네팔의 거리에는 하는 일 없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로, 네팔 최대의 관광지 두바르 광장에는 걸인들로 넘쳐난다. 가난한 나라에 사는 네팔 사람들에게 올림픽과 월드컵의 나라, 한국은 희망의 나라다. 넉넉한 일자리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부의 꿈’을 키우며 네팔을 떠나 한국을 찾았다. 하지만 낯선 문화, 언어, 외로움, 차별 대우는 이들을 너무나 힘들게 했다. 한국은 희망의 나라기도 했지만 광야와 같은 곳이었다. 돈을 벌수 있다는 기쁨도 잠시, 하루하루 삶의 의미를 잃어가는 이들을 하나님께서 부르셨다. 온누리교회가 이들을 품기 시작했다. 외국인 근로자 공동체인 ‘온누리미션’에 ‘네팔예배’가 시작되었다. ‘삶 자체가 신앙’인 네팔 사람들의 심성은 ‘순전한 아이’와 같다. 순백의 화선지에 먹물이 스미듯 마음만 열리면 복음을 순수하게 받아들인다. 구원의 메시지를 전해들은 이들 가운데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가 배출되었다. 온누리미션이 배출한 목회자 라이(Rai). 라이 목사는 네팔 남동 지역인 울라바리라는 시골에서 헤브론교회를 개척했다. 지난 해 7월, 울라바리를 찾았다. 3백 여 성도가 아름답게 예배하는 헤브론교회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부흥하고 있었다. 예배 공간이 비좁아 6백 여 성도가 한꺼번에 예배할 수 있는 처소를 건축하기 위한 부지를 마련해 놓고 있었다. 헤브론교회 성도들이 마당에 모여 주님을 찬양하며 이 땅에 하나님의 성전이 아름답게 세워지길 위해 기도했다. 헤브론 성도들은 새롭게 세워질 하나님의 성전에서 네팔 동부 전 지역을 복음화 하는 하나님의 꿈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었다. 랑케 가는 길에서 만난 ‘산적들의 행적’ 헤브론교회의 비전을 좇아 라이 목사는 네팔 남동부 지역에 딸 교회를 개척하며 교회 지도자를 양성하고 있었다. 헤브론교회에서 서너 시간이면 닿을 수 있다는 랑케(Ranke) 뉴우 라이프 가스펠 교회를 찾아 나섰다. 잘 닦인 도로가 끝나고 히말라야 산맥 쪽 도로로 접어들자 길은 소나무와 잣나무가 듬성한 바위산으로 이어진다. 길 좌우에 늘어선 돌집과 집들을 둘러싼 키 낮은 돌담이 아름답다. 이미 해는 저물기 시작했다. 네팔 남동쪽 벌판지역인 이곳의 저녁시간은 고즈넉했다. 고요한 대기에 가라앉은 연기로 어스름 풍경이 꿈처럼 부드럽게 풀려나갔다. 우리가 넘어야 할 능선은 황혼 빛으로 물든 구름이 걸려 있었다. 사위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자 갑자기 차가 멈췄다.“기다렸다가 차들이 모이면 같이 고개를 넘어가기로 합시다.”앞차 기사가 황급히 말한다. 건너편 차선의 차가 산적을 만났단다. 네팔혁명주의 반군인 마오이스트가 기승을 부리는 지역인지라 덜컥 겁이 났다. 차를 돌리려고 하는데 경찰차가 왔다. 경찰차를 앞세우고 5분을 오르지 못해 또 차가 멈췄다. 건너편 차선에 버스, 트럭, 지프, 승용차 10여 대가 줄을 지어 서있었다. 차 앞 유리가 깨지고 어느 운전사는 이마가 깨져 피를 흘리고 있었다. 산적들이 길 가운데 돌을 쌓아 놓고 일렬로 서서 차를 세워서는 승객들의 소지품을 약탈해 간 것이었다.서, 너 시간 길이 아니었다. 밤이 깊었다. 하늘 아래 첫 동네 같은 마을에 들어섰다. 젊은이들의 요란한 괴성이 깊은 밤 적막을 깨웠다. 길 한 복판에서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전통복장으로 이쁘게 치장한 선남선녀들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었다. 열정이 넘쳤다.‘이들에게 복음이 전해진다면…’바로 이 자리에서 경배와 찬양집회가 열리기를 소망하며 땅을 밟았다. 네팔 산동네의 짙푸른 밤하늘에는 치렁치렁 별자리가 널려 있었다. 땅 끝까지… ‘하나님의 마음’ 산 속의 아침은 빨랐다. 아이들이 새벽 어스름을 뚫고 땔나무를 날랐다. 과일가게가 문을 열고 조그만 식당은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둠이 걷히자 손에 잡힐 듯 가까운 산봉우리들이 우리가 얼마나 높은 곳에 올라 왔는지를 짐작하게 했다. 하얀 석회 칠을 한 집들과 길게 늘어선 돌담, 좁은 골목과 채색을 한 창틀은 그 자체로 그림이었다. 벌써 골목에서는 아이들이 고무줄을 하며 뛰놀았다. 우리가 머문 숙소 앞은 온통 차밭이었다. 잠시 이른 새벽 정겨운 마을의 풍경에 취했다.다시 길을 떠났다. 차는 하늘을 찌르는 대나무 밭을 가로질러 비탈길을 가파르게 올랐다. 오랜만에 죽향에 취했다. 해발 2000m는 족히 될 산기슭이다. 구비를 돌 때마다 이제는 전혀 나타날 것 같지 않던 마을이 사라졌다가는 이내 다시 나타난다. 비탈사이로 늘어선 작은 집들, 샹그리라로 향하는 길인 듯 오솔길은 히말라야로 이어진다. “오래된 길과 각양각색의 탑과 사원들이 가득한 신들의 천국인 네팔에는 해발 3~ 4000m까지 크고 작은 마을들이 있습니다.”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면 어디라도 교회를 세워 복음을 전한다는 온누리 협력 선교사 김흥국 목사의 설명이다. 드디어 랑카. 마을 초입에 있는 낡은 건물의 지하실로 들어섰다. 스산하고 음침한 차가운 기운이 매섭게 느껴졌다. 그러나 3평 남짓 크기의 예배 공간에는 성령의 뜨거운 바람이 차고 넘쳤다. 10년째 이곳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사트라 합 댄 준 목사를 만났다. 14년 전 성경공부하면서 예수님을 만난 사트라 목사는 생업을 위해 일을 갖고 있었다. “60명이 모입니다.” ‘이 지역이 기독교에 대하여 우호적이라지만 해발 2000m가 넘는 이런 고산 마을에 60여 성도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니…’충격이었다. 문득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내 마음을 알겠니? 아무리 높은 산일지라도, 그곳에 사람이 산다면, 가라! 전하라!”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군요. 땅 끝까지… 이제야 하나님의 마음을 알겠습니다.’ 네할족의 꿈… ‘이삭줍기 장학회’ 네팔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국립공원 치트완에서 사파리 여행하기를 좋아한다. 거기에는 희귀한 아시아 코뿔소를 포함한 많은 다양한 야생동물들이 서식한다. 그곳에 타할족이 살고 있다. 여러 민족 가운데서도 가장 가난한 삶을 사는 타할족은 ‘코끼리 관광’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이들에게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는 평생의 소망이다. 카트만두에 가면 마음껏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김흥국 선교사 사모가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았다. KBS 등 국내 공영방송에서 네팔 관련 특집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사모에게 가이드를 부탁한 것이다. 몇 년째 그 일을 하다 보니 가족들이 함께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올 수 있을만한 경비가 모였다. 마침 아이들이 학교에서 유럽사를 공부하고 있었다. 국내 사이트에서 유로패스까지 예약하였다.“네할족의 아이들을 위해 할 일이 있지 않니?”어느 날 큐티 중에 사모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몇 번을 부인했지만 분명한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아이들과 상의했다. “이 돈으로 불쌍한 네할족의 아이들을 위한 장학재단을 만들면 어떻겠니?”‘이삭줍기 장학회’ 사업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기에 아름답게 지으신 네팔을 통하여 티베트와 중국과 인도에 복음이 전해지는 것’,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꿈이요, 하나님이 온누리에 주신 Acts29 비전이다. 이 꿈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온누리미션이 낳은 라이 목사와 온누리 협력 선교사 김흥국 목사, 그리고 그들 가족들은 순교의 피를 뿌리면서 또 하나의 땅 끝, 히말라야 4000m 고지까지 복음을 전하고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 만왕의 왕이요, 영광중에 다시 오실 예수님의 증인이 되고 있다. 할렐루야!“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아멘. / 장선철 편집국장
▲ 하늘 아래 첫 동네 같은 마을 길 한 복판에서 깊은 밤 한마당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 랑케(Ranke) 뉴우 라이프 가스펠 교회, 3평 남짓 크기의 예배 공간에는 성령의 뜨거운 바람이 차고 넘쳤다.
▲ 헌당예배에 앞서 테이프 커팅을 했다.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 앞에 모두들 상기된 얼굴이다.
▲ 가난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교육이다. 네할족도 교육에 높은 관심을 보인다.
▲ 눈물과 감동 열정과 사랑이 넘치는 헌당예배가 끝나자 천국잔치가 열렸다.
▲ 비록 가난하지만 네할족 어린이들의 표정은 밝다.
▲ 산적들이 길 가운데 돌을 쌓아 놓고 일렬로 서서 차를 세워서는 승객들의 소지품을 약탈해갔다.
살아있는 신까지 만들어 모시는 나라 뿌자 의식이 거행되는 피바다의 계곡이 있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남쪽으로 17km 쯤 떨어진 깊은 산 속에 있는 덧친깔리 사원의 계곡이다. 이 계곡은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 오전에는 피를 좋아하는 시바의 처요, 암흑의 신인 칼리 여신에게 보호받기 원하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석가모니의 고향인 룸비니가 있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는 네팔 최대의 불탑인 보드나트가 있다. 하얀 돔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보드나트는 티베트 불교의 주요 순례지로 일 년 열두 달 전 세계에서 모여든 순례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순례자들은 스투파를 중심으로 시계 방향으로 계속해서 돌면서 끊임없이 ‘옴마니반메홈(온 우주에 충만하여 있는 지혜와 자비가 지상의 모든 존재에게 그대로 실현될지어다)’ 불경을 읊조린다. 네팔 사람들은 스투파를 돌면서 원통형의 마니차를 돌린다. 이 마니차를 한 번 돌리면 경전을 한 번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을 쌓기 때문이다. 보드나트 사방에는 불경을 적어 넣은 오색 깃발 ‘룽다’가 만국기처럼 걸려 있다. 보드나트 주위에 모여 사는 티베트 촌에는 집집마다 불경을 새겨 넣은 오색기를 만국기처럼 이어 단 타르초가 달려 있다. 국교를 힌두교로 정한 네팔은 신이 많기로 유명하지만, 무엇보다 전통적으로 살아있는 신을 모시는 나라로 유명하다. 이름하여 쿠마리, 처녀 신이다. 쿠마리는 힌두교 신중에서 선한 사람들을 항상 보호해주는 신인 두르가 신이 변신해 내려온 존재라고 네팔인들은 믿는다. 온누리미션 출신 라이 목사가 개척한 ‘헤브론교회’ 네팔의 거리에는 하는 일 없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로, 네팔 최대의 관광지 두바르 광장에는 걸인들로 넘쳐난다. 가난한 나라에 사는 네팔 사람들에게 올림픽과 월드컵의 나라, 한국은 희망의 나라다. 넉넉한 일자리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부의 꿈’을 키우며 네팔을 떠나 한국을 찾았다. 하지만 낯선 문화, 언어, 외로움, 차별 대우는 이들을 너무나 힘들게 했다. 한국은 희망의 나라기도 했지만 광야와 같은 곳이었다. 돈을 벌수 있다는 기쁨도 잠시, 하루하루 삶의 의미를 잃어가는 이들을 하나님께서 부르셨다. 온누리교회가 이들을 품기 시작했다. 외국인 근로자 공동체인 ‘온누리미션’에 ‘네팔예배’가 시작되었다. ‘삶 자체가 신앙’인 네팔 사람들의 심성은 ‘순전한 아이’와 같다. 순백의 화선지에 먹물이 스미듯 마음만 열리면 복음을 순수하게 받아들인다. 구원의 메시지를 전해들은 이들 가운데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가 배출되었다. 온누리미션이 배출한 목회자 라이(Rai). 라이 목사는 네팔 남동 지역인 울라바리라는 시골에서 헤브론교회를 개척했다. 지난 해 7월, 울라바리를 찾았다. 3백 여 성도가 아름답게 예배하는 헤브론교회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부흥하고 있었다. 예배 공간이 비좁아 6백 여 성도가 한꺼번에 예배할 수 있는 처소를 건축하기 위한 부지를 마련해 놓고 있었다. 헤브론교회 성도들이 마당에 모여 주님을 찬양하며 이 땅에 하나님의 성전이 아름답게 세워지길 위해 기도했다. 헤브론 성도들은 새롭게 세워질 하나님의 성전에서 네팔 동부 전 지역을 복음화 하는 하나님의 꿈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었다. 랑케 가는 길에서 만난 ‘산적들의 행적’ 헤브론교회의 비전을 좇아 라이 목사는 네팔 남동부 지역에 딸 교회를 개척하며 교회 지도자를 양성하고 있었다. 헤브론교회에서 서너 시간이면 닿을 수 있다는 랑케(Ranke) 뉴우 라이프 가스펠 교회를 찾아 나섰다. 잘 닦인 도로가 끝나고 히말라야 산맥 쪽 도로로 접어들자 길은 소나무와 잣나무가 듬성한 바위산으로 이어진다. 길 좌우에 늘어선 돌집과 집들을 둘러싼 키 낮은 돌담이 아름답다. 이미 해는 저물기 시작했다. 네팔 남동쪽 벌판지역인 이곳의 저녁시간은 고즈넉했다. 고요한 대기에 가라앉은 연기로 어스름 풍경이 꿈처럼 부드럽게 풀려나갔다. 우리가 넘어야 할 능선은 황혼 빛으로 물든 구름이 걸려 있었다. 사위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자 갑자기 차가 멈췄다.“기다렸다가 차들이 모이면 같이 고개를 넘어가기로 합시다.”앞차 기사가 황급히 말한다. 건너편 차선의 차가 산적을 만났단다. 네팔혁명주의 반군인 마오이스트가 기승을 부리는 지역인지라 덜컥 겁이 났다. 차를 돌리려고 하는데 경찰차가 왔다. 경찰차를 앞세우고 5분을 오르지 못해 또 차가 멈췄다. 건너편 차선에 버스, 트럭, 지프, 승용차 10여 대가 줄을 지어 서있었다. 차 앞 유리가 깨지고 어느 운전사는 이마가 깨져 피를 흘리고 있었다. 산적들이 길 가운데 돌을 쌓아 놓고 일렬로 서서 차를 세워서는 승객들의 소지품을 약탈해 간 것이었다.서, 너 시간 길이 아니었다. 밤이 깊었다. 하늘 아래 첫 동네 같은 마을에 들어섰다. 젊은이들의 요란한 괴성이 깊은 밤 적막을 깨웠다. 길 한 복판에서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전통복장으로 이쁘게 치장한 선남선녀들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었다. 열정이 넘쳤다.‘이들에게 복음이 전해진다면…’바로 이 자리에서 경배와 찬양집회가 열리기를 소망하며 땅을 밟았다. 네팔 산동네의 짙푸른 밤하늘에는 치렁치렁 별자리가 널려 있었다. 땅 끝까지… ‘하나님의 마음’ 산 속의 아침은 빨랐다. 아이들이 새벽 어스름을 뚫고 땔나무를 날랐다. 과일가게가 문을 열고 조그만 식당은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둠이 걷히자 손에 잡힐 듯 가까운 산봉우리들이 우리가 얼마나 높은 곳에 올라 왔는지를 짐작하게 했다. 하얀 석회 칠을 한 집들과 길게 늘어선 돌담, 좁은 골목과 채색을 한 창틀은 그 자체로 그림이었다. 벌써 골목에서는 아이들이 고무줄을 하며 뛰놀았다. 우리가 머문 숙소 앞은 온통 차밭이었다. 잠시 이른 새벽 정겨운 마을의 풍경에 취했다.다시 길을 떠났다. 차는 하늘을 찌르는 대나무 밭을 가로질러 비탈길을 가파르게 올랐다. 오랜만에 죽향에 취했다. 해발 2000m는 족히 될 산기슭이다. 구비를 돌 때마다 이제는 전혀 나타날 것 같지 않던 마을이 사라졌다가는 이내 다시 나타난다. 비탈사이로 늘어선 작은 집들, 샹그리라로 향하는 길인 듯 오솔길은 히말라야로 이어진다. “오래된 길과 각양각색의 탑과 사원들이 가득한 신들의 천국인 네팔에는 해발 3~ 4000m까지 크고 작은 마을들이 있습니다.”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면 어디라도 교회를 세워 복음을 전한다는 온누리 협력 선교사 김흥국 목사의 설명이다. 드디어 랑카. 마을 초입에 있는 낡은 건물의 지하실로 들어섰다. 스산하고 음침한 차가운 기운이 매섭게 느껴졌다. 그러나 3평 남짓 크기의 예배 공간에는 성령의 뜨거운 바람이 차고 넘쳤다. 10년째 이곳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사트라 합 댄 준 목사를 만났다. 14년 전 성경공부하면서 예수님을 만난 사트라 목사는 생업을 위해 일을 갖고 있었다. “60명이 모입니다.” ‘이 지역이 기독교에 대하여 우호적이라지만 해발 2000m가 넘는 이런 고산 마을에 60여 성도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니…’충격이었다. 문득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내 마음을 알겠니? 아무리 높은 산일지라도, 그곳에 사람이 산다면, 가라! 전하라!”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군요. 땅 끝까지… 이제야 하나님의 마음을 알겠습니다.’ 네할족의 꿈… ‘이삭줍기 장학회’ 네팔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국립공원 치트완에서 사파리 여행하기를 좋아한다. 거기에는 희귀한 아시아 코뿔소를 포함한 많은 다양한 야생동물들이 서식한다. 그곳에 타할족이 살고 있다. 여러 민족 가운데서도 가장 가난한 삶을 사는 타할족은 ‘코끼리 관광’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이들에게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는 평생의 소망이다. 카트만두에 가면 마음껏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김흥국 선교사 사모가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았다. KBS 등 국내 공영방송에서 네팔 관련 특집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사모에게 가이드를 부탁한 것이다. 몇 년째 그 일을 하다 보니 가족들이 함께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올 수 있을만한 경비가 모였다. 마침 아이들이 학교에서 유럽사를 공부하고 있었다. 국내 사이트에서 유로패스까지 예약하였다.“네할족의 아이들을 위해 할 일이 있지 않니?”어느 날 큐티 중에 사모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몇 번을 부인했지만 분명한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아이들과 상의했다. “이 돈으로 불쌍한 네할족의 아이들을 위한 장학재단을 만들면 어떻겠니?”‘이삭줍기 장학회’ 사업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기에 아름답게 지으신 네팔을 통하여 티베트와 중국과 인도에 복음이 전해지는 것’,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꿈이요, 하나님이 온누리에 주신 Acts29 비전이다. 이 꿈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온누리미션이 낳은 라이 목사와 온누리 협력 선교사 김흥국 목사, 그리고 그들 가족들은 순교의 피를 뿌리면서 또 하나의 땅 끝, 히말라야 4000m 고지까지 복음을 전하고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 만왕의 왕이요, 영광중에 다시 오실 예수님의 증인이 되고 있다. 할렐루야!“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아멘. / 장선철 편집국장
▲ 하늘 아래 첫 동네 같은 마을 길 한 복판에서 깊은 밤 한마당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 랑케(Ranke) 뉴우 라이프 가스펠 교회, 3평 남짓 크기의 예배 공간에는 성령의 뜨거운 바람이 차고 넘쳤다.
▲ 헌당예배에 앞서 테이프 커팅을 했다.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 앞에 모두들 상기된 얼굴이다.
▲ 가난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교육이다. 네할족도 교육에 높은 관심을 보인다.
▲ 눈물과 감동 열정과 사랑이 넘치는 헌당예배가 끝나자 천국잔치가 열렸다.
▲ 비록 가난하지만 네할족 어린이들의 표정은 밝다.
▲ 산적들이 길 가운데 돌을 쌓아 놓고 일렬로 서서 차를 세워서는 승객들의 소지품을 약탈해갔다.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