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아리문츠 선교사를 기리며 …
지난 5일(화) 온누리교회 파송 외국인선교사 1호 아리문츠 선교사가 소천했다.
네덜란드 노트르담에서 출생한 아리문츠 선교사는 1993년, 홍콩으로 파송되었다. 중국, 홍콩, 마카오에서 사역하다 2009년 뇌종양 판정을 받고, 지난해 뇌종양 수술 후 한국에서 요양하다 하나님 품에 안겼다.
하나님께서 제게 연약함을 주신 이유를 완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저를 통해 아름다운 일들을 행하실 것을 믿습니다
삶을 인도하신 에벤에셀 하나님
아리문츠 선교사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물질적인 어려움 없이 지냈다. 그러나 어린 시절 아버지가 사업으로 바빠 얼굴조차 볼 수 없었다. 그는 아버지의 사랑에 목말라 있었다. 또한 성장하면서 인간관계를 통해 깊은 사랑을 얻으려 했지만 진정한 사랑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1976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크리스천 친구를 만나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하고 주님을 구주로 영접했다.
그는 7년 동안 국제복음선교(M.V.Logos)에서 선교 훈련을 받는 중 아내 박영희 선교사를 만났다. 6년의 기도 끝에 1985년 5월 7일, 두 사람은 마침내 부부가 되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그는 3년 동안 한국에서 생활하며 언어훈련과 문화적응훈련 등을 했다. 그러던 중 하나님은 그를 두란노서원으로 보내셨다. 에벤에셀 하나님을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1988년, 그는 두란노해외선교회(TIM)로 발촉돼 3년 동안 London Bible College에서 장기선교사 훈련을 받았다. 이후 하와이 Kona 열방대학의 Crossroad DTS 과정을 거치며 하나님과의 교제, 관계회복, 영적치유 등을 깊이 배우며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했다.
길고 긴 투병 … 하나님께 드리는 ‘눈물의 고백’ 그는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고 1993년, 홍콩으로 파송됐다. 다양한 훈련과정을 통해 영적훈련을 탄탄하게 받은 그는 홍콩 주변의 중국, 마카오 등지를 다니면서 교회 방문, 문서 전도 등 다양한 사역을 펼쳤다. 1998년에는 High Rock Center 커피숍을 운영해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이후 선교 상담, YWAM, DTS 강의를 하며 선교사 양성에 집중했다. 홍콩에서 사역하는 동안 그는 오직 하나님 바라보며 열방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질주했다. 그러나 2009년 10월, 뇌종양으로 인해 하반신 마비 상태로 한국에 입국했다. 요양하던 중 상태는 더욱 악화되어 지난해 5월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그는 “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는 것에 대해 자유함을 느낀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연약함을 주신 이유를 완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반드시 아름다운 일들을 행하실 것을 믿는다. 이것이 지난 3년의 투병기간 동안 깨달은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분은 우리를 어떤 어려움과 환난 속에서도 안전하게 보호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뇌종양 수술 후 한국에서 금식기도원을 다니며 요양생활을 했다. 얼마 남지 않은 생애를 선교에 헌신한 그의 모습 속에는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이 묻어 있었다.
그는 “기도로 섬겨주신 온누리교회 성도들, 지금까지 오랫동안 함께 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시길 원하는 큰 비전을 기대한다”고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지난 5일(화) 하나님 나라를 위한 헌신과 복음을 향한 열정을 간직한 채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 오은지 기자 oej@onnuri.org

故아리문츠 선교사는…
1977년 6월~1984년 9월 O.M 선교회 로고스 둘로스 승선선교 이론과 실제 7년 동안 35개국 방문
1985년 4월 ~1988년 6월 한국외항선교회 선교간사로 섬김, 선원전도, 타문화권 훈련 및
언어 훈련 담당
1988년 7월~1991년 6월 London Bible Collage 졸업
1991년 9월~1992년 7월 하와이 Kona 열방대학 Crossroad DTS Biblical Foundations in Education Course
1993년 7월~2008년 High Rock Christian Center에서 섬김
2009년 ~현재
2010년 뇌종양 수술 후 한국 요양
■ 천국으로 보내는 편지

아리문츠씨 … 이렇게 부족한 나와 여생을 함께 해줘서 고마워요. 당신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간절한 마음으로 일생을 살았지요. 특별히 가난한 자와 억눌린 자, 특권을 누리지 못한 자들을 위해서 어디든지 달려갔었죠. 그런 것을 보면 당신의 마음은 이 세상이 말하는 어떤 부귀영화보다 더 큰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었습니다. 많은 것을 이루지 못했더라도 저는 그것이 다 전해졌으리라 믿습니다.
저는 당신이 임종하기 전까지도 교회를 사랑하며 하나님의 뜻을 품고 힘쓰는 것을 깊이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떠나니 그 마음이 내게 너무나 진하게 다가옵니다. 당신은 내게 훌륭한 남편이기 이전에 하나님 앞에서 훌륭한 아들이었지요.
우리는 이 땅에서 같이 살기를 원했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늘나라의 영생 문을 열어 당신을 올리셨습니다. 그곳에 가기까지 투병 중에서도 금식과 기도를 통해 당신 자신을 내려놓고 변화된 삶을 살려고 애쓰는 것을 보며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았지요. 그동안 저는 당신을 살린다는 것에만 너무 집중했었나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분이시며 그 뜻 가운데 당신을 하늘나라로 부르셨지요. 그곳에 가는 것이 더 편한가봅니다.
죽음과 삶 가운데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싸우다 결국 승리로 세마포를 입고 천국에 입문한 당신의 믿음을 저도 본받겠습니다. 좋은 본을 보여줘서 너무 고마워요. 그동안 내 기준에서 당신을 판단했던 것이 너무나 미안하고 가슴이 아픕니다. 당신을 기억하며 저도 계속해서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당신을 너무도 사랑합니다. 이제 주님의 일에 대한 당신의 뜨거운 열정을 본받아 우리 아들 다니엘과 함께 일곱 배나 더 열심히 살겠습니다. 이제 당신, 편히 쉬세요.
/ 당신의 아내 박영희 선교사

1968년, 제가 공과대학에 입학했을 당시 유럽이 큰 시련을 겪던 해였습니다. 중동전쟁, 러시아가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하는 등 장기간의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저는 ‘나는 과연 누구인가?’, ‘존재의 목적은 무엇인가?’를 질문했습니다. 8년 동안 이 질문을 가지고 싸우면서 ‘인간의 모든 활동이 무의미하다는 것’과 ‘모든 물질이 우리에게 평안을 주지 못한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또한 저는 인간관계를 통해 사랑을 얻으려 했지만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유럽을 떠나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갔지만 상황은 더 악화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크리스천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때 인간이 하나님과 분리되었기 때문에 죄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76년 9월 16일, 주님을 제 인생의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국제 복음선교선(M.V.Logos)에 승선할 수 있는 문을 열어주셔서 7년 동안 선교훈련을 받으며 다양한 사역을 펼쳤습니다. Logos 사역을 하는 동안 중동, 아시아 태평양 지역, 유럽 등 타 문화권 선교를 이해하며 효과적인 선교활동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1978년, 아내 박영희 선교사를 만났습니다. 결혼 후 3년 동안 한국에서 지냈습니다. 첫 해에는 언어훈련 및 문화적응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서양인으로서 아시아 문화권을 이해하고 배우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아시아인들의 신에 대한 개념, 문화 그리고 제가 그동안 선교지에서 실패했던 원인들을 발견함으로써 미래의 사역을 준비하기 위한 디딤돌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신학과정을 마친 후 하와이 YWAM 산하에 있는 Crossroad Discipleship Training 과정을 밟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소명감에 대한 확신, 헌신의 삶을 드리게 되었을 뿐 아니라 여러 가지 영적 치유를 통해 풍성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체험했습니다. 이제 저와 제 아내가 가야할 가나안 땅을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보여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며 날마다 우리의 삶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 홍콩 파송을 앞둔 1993년 6월 1일, 서울에서
아리문츠 선교사(Arie J. Ph. MUNTZ)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