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사역

성령의 리더십을 사모하라

공동체 리더십 목양대회

 

성령의 리더십을 사모하라

하용조 목사

누가복음 2장 16~19절

"여러분에게 성령이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사회적인 경험과 신분으로 영혼이 변하지 않습니다. 성령님이 임하셔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의 리더십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리더십을 가져야만 세상이 변하고 성령의 리더십이 있어야만 영적 열매가 맺힙니다. "

오늘 저녁에는 성령의 리더십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온누리교회에 앞으로 올 위기는 문화가 풍성하나 복음이 약해지는 상황입니다. 조직과 행사는 많지만 영성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일인 것입니다. 이번 어노인팅 집회를 위한 가장 확실한 준비는 금식입니다. 금식이 없는 예배는 하나의 이벤트에 불과할 수 있으며 회개가 없는 예배는 하나의 치장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자기 성찰과 회개, 금식이 있어야 합니다. 이번 어노인팅의 진짜 예배는 그런 의미에서 봉사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흥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삶 속에서 끊임없이 예배를 실천해 나가며 가난한 자, 병든 자를 돕는 그 마음, 잃어버린 영원에 대한 뜨거운 마음과 부르짖음이 바로 예배입니다. 깊은 영성이 있는 예배에 들어가는 일은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번 어노인팅 집회에서 우리 모두가 3일 중 하루라도 금식을 했으면 합니다. 육체에 먹을 것을 공급하지 않고 배고프고 고통스럽게 만들 때 우리에게 하나님에게 집중하는 능력이 생깁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그런 예배는 기적과 치유, 자기를 변화시키는 능력을 만들어 갑니다. 예배는 누리거나 보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순장님들이 이번 어노인팅에서 정말 예배를 드려보는, 하나님 앞에 자기를 헌신하는 영적 경험을 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 오직 믿음으로

우리들은 자주 믿음을 착각합니다. 믿음의 세계에 깊이 들어가면, 욕심인지 믿음인지를 혼동하게 됩니다. 거의 대부분은 자기 욕심을 믿음으로 착각하곤 합니다. 또한 우리가 믿음으로 하는 일은 알고 보면 이성의 동의하에 벌인 일입니다. 일상적이고 피상적인 일에는 그런 갈등이 없습니다. 중요한 문제에 있어선 여러분의 믿음은 이성이 동의한 후에야 아멘이라 대답합니다. 믿음은 항상 이성 아래에 위치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에서 겪은 경험이 동의해야 따라가지 합당하지 않으면 헌신하지 않고 봉사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런 믿음에는 아무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가 믿음으로 나갔다가 실패하면 어떡하나 불안이 있습니다. 그래서 똑똑한 사람들은 안 갑니다. 모험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자기 이성과 경험의 동의를 얻어야만 행동합니다. 자신의 숨겨진 욕심이 동의를 해야만 결단합니다. 하나님 이름을 앞세워 놓았지만 그 뒤에서 기의 상처와 욕심, 주장에의 합당함 여부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우리 믿음의 정체입니다. 예수님이 말했기 때문에, 성경이 말하고 있기 때문에, 성령님이 말했기 때문에 낭떠러지에서 몸을 내 던지는 위기감을 지닌 채 이것을 뚫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습니다’라고 말할 때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위기감이 있으십니까? 죽을 지도 모르지만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을 믿고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리더십입니다.

교회에 얼마나 많은 성도가 있느냐, 교회가 얼마냐 크냐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아무 것도 없다 해도 믿음으로 갈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은 믿음뿐입니다. 경험이나 지식으로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믿고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고 나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지만 그 모든 위험부담을 안고 뛰어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CGN TV, Acts 29 비전을 두고도 부정적인 이야기를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불가능하다는 말을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것이 하나님이 주셨고 그 믿음이 내게 있기 때문에 모든 불가능의 벽을 뚫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면 대로가 열리고 기적이 일어나며 영광스러운 사건이 막 생깁니다. 이런 것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다음 모험에 도전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순을 끌어가는 일도 상식과 이성, 인생 경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이것은 영적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세상에서 가진 리더십으로 교회를 끌어갈 수 없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능력으로 하는 일이며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것과 같은 믿음의 도전과 기도가 있어야 사람이 변하는 것입니다. 그런 리더십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누가복음 4장에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6절부터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어떤 때는 예수님이 성경을 읽기도 하셨습니다. 20절에 보면 다 읽고 나서 책을 덮는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나는 온누리교회 성도들이 성경책을 꼭 들고 다니시기를 축원합니다. 휴스톤에 있는 흑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 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주일 예배에 성경책을 들고 왔습니다. 내 옆자리에 앉은 성도가 나에게 자기 성경책을 보여주는데 성경 구절마다 줄이 빽빽이 그어져 있었습니다.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흑인들이 주일아침 예배에 오는 모습이 그렇게 당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예쁘게 단장해 예배에 임하는 모습은 경건하고 진지했습니다. 우리 교인들이 성경책을 제대로 들고 다니나 반성을 했습니다.

기적을 이루는 성령의 리더십

예수님께서도 언제나 말씀에 우선순위를 드셨습니다. 이사야 61장 말씀을 인용해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오늘 예수님은 온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포로된 자, 가난한 자, 눈먼 자에게 해방과 자유를 줄 능력은 내게 없기 때문에 성령을 받으셔야 합니다. 성령의 가르침을 하시길, 성령의 기도를 하시길, 성령의 능력으로 옷 입게 되길 바랍니다.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지식도 정보도 양육도 훈련도 아닙니다. 성령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주변에는 항상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이 항상 있었습니다. 나는 우리 교회도 그런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성령이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이 교회 리더십으로 있을 때 예수님의 이 말씀이 여러분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사회적인 경험과 신분으로 영혼이 변하지 않습니다. 성령님이 임하셔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의 리더십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리더십을 가져야만 세상이 변하고 성령의 리더십이 있어야만 영적 열매가 맺힙니다. 새 학기 시작과 함께 여러분의 순에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는 기적이 여러분에게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이 시작하고 행동하는 수준의 믿음에서는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에서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것 같은 절박함이 있을 때 하나님이 여러분 앞에 하나님 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믿음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학교에서 배워온 것, 세상에서 경험한 것으로 교회가 움직인다면 성령의 리더십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나는 우리 모든 순장님들이 성령의 리더십, 믿음의 리더십으로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과 말씀에서 나오는 능력, 성령의 기적과 능력으로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는 온누리교회가 되기를 바라고 여러분 되기를 축원합니다.

/정리=최문경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