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5일 일
사역

남편 故조성록 선교사를 말하다

기획: 故조성록 선교사를 기리며

 

① 주님께 드린 헌신의 삶

② 남편 故조성록 선교사를 말하다

남편 故조성록 선교사를 말하다

 

한 평생 하나님만을 전한 복음전도사

 

“그는 이 땅을 떠났지만 그가 뿌린 복음의 씨앗은 일본인들의 가슴에 값진 꽃으로 피어나고 있다”

지난 25일(금) 종로의 한 카페. 지난 1월 혈액암과 폐렴으로 소천한 조성록 선교사의 아내 유은필 권사를 만났다.

 

오직! 전도, 기대와 기도로 복음 전해

 

“처음 일본에 갔을 때는 일본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무작정 노방전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쉽게 받아주지 않았죠.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학교 주변에서 학생들에게 전도지를 나눠주었어요. 전도지를 받은 학생들은 우리가 보는 앞에서 찢어버렸습니다.”

유 권사는 당시를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나 매번 거절당하면서도 조 선교사 부부의 전도 열정은 식지 않았다.

“그 당시 저와 남편의 머릿속에 전도 외에 다른 생각은 없었어요. 저는 일본인을 집으로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면서 관계를 쌓기 시작했지요. 한 청년은 오로지 음식을 먹기 위해 교회에 왔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그도 시간이 흐른 뒤 신앙이 생겼습니다.”

조 선교사 부부는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일본인들을 초대해 잔치상을 차렸다.

“일본인들이 제가 만든 음식을 먹고 예수님만 영접한다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겠습니까. 항상 이런 마음가짐으로 음식을 준비하다보니 초대받은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고 기대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유 권사는 일본인들이 한국 음식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 이들을 전도하기 위해 요리강습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30명이나 요리 강습을 받으러 왔지만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는 쉽지 않았다.

“어느 날, 집 주변에 방송국이 생겼습니다. 방송국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며 저희 집에 찾아와서 제가 한국 요리를 만드는 것을 녹화했습니다. 김치, 불고기, 비빔밥을 했는데 그 과정을 일주일 내내 방영했습니다. 그것을 통해 교회가 알려졌습니다.”

전도를 향한 연구는 그뿐이 아니었다. 특히 조 선교사는 일본어와 한국어가 능통하기 때문에 일본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또한 교회 성도들에게는 일본어 성경공부와 큐티를 가르치며 복음을 전했다.

 

‘사랑’과 ‘긍휼’로 가득한 마음

 

“선교사님은 인정이 많아서 주변에 불쌍한 사람을 보면 항상 도왔습니다. 젊었을 때도 고아 한 명을 데리고 있었습니다. 그 자매가 지금은 결혼해서 미국에 살고 있는데 그동안 연락을 못하고 지내다가 얼마 전에 전화로 선교사님의 소천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그 자매가 많이 슬퍼하며 울었습니다.” 조 선교사 이야기를 꺼내는 유권사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조 선교사는 국방부에 재직하고 있을 당시 두 명의 고아 자매를 취직시키기도 했다.

그는 어려운 이들에게 항상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고 따뜻한 사랑으로 품었다.

 

눈물로 일궈낸 복음의 열매

 

조 선교사는 일본 사역 이후 캐나다에 있는 일본인 교회의 협동목사로 세워졌다. 7년 동안 그 교회를 섬겼다. 캐나다에 더 있고 싶었지만 건강에 문제가 생겨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남편의 건강문제로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을 때, 일본에서 좋은 인연을 맺었던 분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남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심어놓은 복음의 씨앗들이 자라 열매로 맺어졌습니다.”

어느 날 조 선교사의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병원에 갔더니 혈액암 판정을 받았다. 항암 치료를 받는 도중 폐렴까지 왔다. 그리고 한 달 만에 주님 품에 안겼다.

“더 큰 고통을 당하지 않고 돌아가신 것이 감사합니다. 남편의 빈자리가 크지만 남편의 선교에 대한 열정을 이어받아 마음을 굳게 먹고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현재 야치요 온누리교회에는 조 선교사가 목회할 때부터 출석했던 성도들이 많이 남아있다. 처음에는 신앙생활보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교회에 왔던 성도들이지만 이제는 믿음이 생겨 교회를 굳건히 섬기고 있다.

조 선교사 내외가 뿌린 사랑의 씨앗이 지금도 일본 땅에서 아름답게 꽃을 피우고 있다.

/ 오은지 기자 oej@onnuri.org

 

 

■ 천국으로 보내는 편지

 

 

사랑하는 남편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당신의 죽음 앞에 이 큰 슬픔을 어떻게 표현할지…

병원에서 혈액암 판정을 받고 바로 항암치료의 힘든 과정에서도 잘 견디는 당신을 보며 ‘치료가 끝나면 곧 퇴원하겠지’ 하는 기대감에 희망을 잃지 않고 지냈는데 …

갑자기 폐렴이 찾아올 줄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반드시 회복될 것을 믿었기에 조금도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병세가 점점 악화되어 열이 40도까지 오르고 결국 목에 인공호흡기를 끼고 의식불명의 상태까지 이르러 중환자실로 옮겨졌습니다. 당신과 한마디 대화도 나누지 못한 채 저는 “선생님! 우리 남편이 언제 인공호흡기를 빼고 저와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까?”고 물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호흡기가 단순히 숨만 쉬게 할 뿐 근본적인 치료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렇게 한마디 대화도 나누지 못하고 그냥 가시다니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점점 숨이 가빠지는 남편의 손을 꼭 붙들고 “여보, 사랑해요. 예수님 손을 꼭 붙드세요. 놓치면 안 됩니다.” 이렇게 외쳤습니다. 20여 년 동안의 선교생활을 마치고 귀국해서 여행도 하고 둘만의 시간을 갖자고 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가시다니 …

새벽이 되면 어김 없이 함께 묵상하며 하루를 시작했던 당신의 빈자리가 너무나 크고 그립습니다. 아직도 ‘여보’하고 부르며 방을 나서는 당신의 목소리가 쟁쟁하게 제 귓가에 맴돕니다. 저는 이 큰 슬픔을 이기기 위해 매일 아침, “‘산들이 옮겨지고 언덕이 흔들려도 내 사랑은 네게서 옮겨지지 않고 내 평화의 언약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너를 가엾게 여기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사 54:10) 말씀을 묵상하며 위로와 격려를 받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다시 만날 그날을 고대하며 당신이 못다 이룬 일본 선교의 꿈을 위해 봉사하겠습니다.   / 당신의 아내가

 

■ 故조성록 선교사 간증

 

 

일본 선교를 앞두고…

 

 

‘우리 민족이 가장 사랑할 수 없는 대상이 누구일까’하고 생각해 봤을 때, 그 대상은 일본인이었습니다.

제가 머지않아 생을 마치는 날을 생각하면서 일본인을 미워하는 마음과 그들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는 결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일본인을 사랑하지는 못할지라도 미워하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본인을 미워하지 않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다가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하고 일본으로 떠났습니다. 3년 동안 일본에서 공부한 결과,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게 되었고, 그동안 아무 이유없이 일본을 미워했던 마음들이 사라졌습니다.

타국 문화에 대한 참된 이해 없이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성립될 수 없다고 봅니다. 진정한 사랑으로부터 긍휼의 마음이 생겨나고, 긍휼이 여기는 마음에서 비로소 이웃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마음과 행동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저는 일본인을 향한 사랑과 긍휼의 마음을 품고 일본에서 선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나님은 제게 일본어에 대한 은사를 주셨습니다.

제게 주신 은사를 통해 일본인 크리스천과 현지 교회 성도들의 권유로 일본인을 위한 교회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최후의 사명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양국 국민이 서로 미워하거나 싫어하지 않고 서로 간의 진정한 평화를 갖게 하는 것이 상대방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임을 알았기에 복음전도사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기로 결단을 내렸습니다. 야치요 온누리교회는 아직 시작에 불과하지만 이 작은 복음의 겨자씨가 언젠가는 큰 나무가 되어 가지와 잎이 우거지고 풍성한 열매가 맺혀질 것을 믿습니다. 이 교회를 통해 많은 일본인들이 주님 안에 거하며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게 될 날이 오기를 소망합니다. 

/ 1994년 3월 30일, 일본 야치오에서 조성록 선교사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