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마라, 내가 너의 여호와니라
터키 지진 피해 현장을 가다
적막한 도시에 온기 불어넣고 있는 ‘NGO 더 멋진 세상’
동양과 서양, 중세와 근세가 어우러진 터키 이스탄불에서 1,3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도시 반(Van).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청명한 하늘색과 산악 지대에 내려앉은 설경이 장관이었다. 동양인의 방문이 신기한 듯 여기저기서 힐끗거리며 웃어대고 꼬마 녀석들은 뒤를 졸졸 따랐다.
지난 10월 23일과 11월 6일 이곳에 지진이 났다. 지금도 하루에 수차례씩 리히터 규모 4~6 정도의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도심을 가로지르자 건물 외벽에 선명하게 줄이 그어져있었고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도 뜸했다. 싸늘함이 도시를 에워싸고 있었는데 이러한 분위기는 날이 저물수록 더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나 버린 도시는 암흑천지였다. 가재도구는 챙기지도 못하고 급히 몸만 피신한 상태이기 때문에 밤이면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조직한 방범대가 총을 쏴 댔다. 지진 이후 터키 반 지역에는 적막함이 흐르고 있었다.
터전 잃고 울부짖는 사람들
“온누리교회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진으로 집을 잃은 사람들과 지진이 또 날까 봐 겁이 나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재정과 기도로 후원을 해 줘서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NGO 더 멋진 세상은 터키개신교협의회(TEK)가 주축이 되어 진행하고 있는 구호사업에 미국 남침례교단, 현지인, 반 시청 파견 근로자들과 함께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한국인, 터키인, 미국인, 캐나다인, 이란인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구호팀은 지진 피해 지역에서 이재민들을 위한 막사를 설치하고 식료품, 히터 등을 전달하고 있다.
오후 4시인데 한밤중이었다. 햇빛이 비칠 때에는 포근하던 기온이 영하 15도 이하로 급격히 떨어졌다. 추위를 피해 구호팀원들이 머무는 막사에 몸을 뉘었다.
“저희가 설치하고 있는 이재민 막사는 일반 천막보다 내구성이 좋아 튼튼하고 외풍도 잘 막아 줍니다.”
반 지역 사람들은 계속되는 여진과 건물이 언제 붕괴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이기지 못해 대부분 도시를 떠났다. 문제는 이 지역을 떠나고 싶어도 여력이 되지 않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천막에서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랭한 습기를 참아가며 엄동설한을 보내고 있었다. 그 천막마저도 구하지 못해 울부짖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픈 가슴을 또 한 번 후벼 팠다.
그나마 이재민 막사는 하우스를 지을 때 쓰는 보루라는 철재 뼈대에 스티로폼을 단열재로 대고 그 위에 함석을 덧대서 만든다. 천장에 사람이 올라가 작업을 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튼튼하다. 콘크리트나 벽돌로 지은 집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천막에 비해 외풍이 덜하다. 현지 사람들은 구호팀이 지어 준 이재민 막사에 벽돌을 쌓고 나무문을 달아 새집으로 단장했다. 지푸라기도 잡고 싶은 애통함

이재민 막사 설치현장. 현지인들이 한달음에 달려 나와 서로 막사를 지어 달라고 아우성이다. 이곳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생활의 팍팍함을 웅변하듯 눈물 섞인 고성도 오갔다.
“반 시(Van City)의 허가를 받고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먼저 막사를 설치해 주고 있는데 가는 곳마다 사연이….”
누더기 천을 덧대고 찌그러진 문짝을 달아 기묘한 모양으로 만든 천막에서 아이들이 줄지어 뛰어나왔다.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니 2~3평 정도 되는 공간에 사람들로 북적였다. 얼핏 봐도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는데 두 가정이 함께 생활하고 있는 공간이란다. 그 좁은 공간에서 추위를 이겨 보겠다고 태운 석탄난로에서 새어 나오는 가스냄새가 금세 기침을 토해 내게 했다. 큰 눈망울을 깜빡이는 아이들의 표정이 순진했다. 반갑다고, 또 고맙다고 품에 안기는 아이들, 천사가 따로 없다. 지진 이야기를 꺼내자 아이들이 생기를 잃었다. 요즘 이곳의 아이들은 건물이 붕괴된 현장을 서성이며 철근을 줍거나 길거리에서 가짜 담배를 파는 것이 일상이다. 휴교령은 언제 풀릴지 가늠할 수 없다.뉘엿뉘엿 해가 저물 즈음 식료품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라마단 기간에 사용하고 남은 빵, 파스타, 차이(Tea), 쌀 등이 담긴 식료품 상자가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요긴하게 쓰이고 있었다. 식료품을 들고 집집마다 찾아가 식료품을 전달했다. 식료품을 받은 현지인들의 표정에서 행복이 묻어났다. 90세 할머니와 어린 손녀가 사는 가정을 찾았다. 구호팀이 소녀에게 식료품을 내밀자 그 큰 눈에서 금방이라도 이슬방울이 떨어질 것 같았다.
또 붕괴될까 두려운 나날 1차 지진 피해 지역 에르츠 시(Ercis City)를 향해 달리는 차 안. 세계에서 가장 큰 호수로 손꼽힌다는 반 호수의 절경이 눈앞에서 부서졌다.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호수와 넓게 펼쳐진 초원을 보고 있자니 저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길가에서 만난 양을 치는 소년들의 익살스런 표정과 양을 부르는 소리를 듣는 재미도 제법이었다. 산과 들, 호수, 고즈넉한 시골 풍경은 이곳이 낙원임을 실감하게 했다. 한 시간 반 정도 흘렀을까, 아름다운 광경을 만끽하던 시야가 잔뜩 찌푸려졌다. 리히터 규모 7.2의 강진이 덮친 에르츠 시에 도착한 것이다. 이럴 수가….지진 피해로 인해 적막한 도시로 변해 버린 반의 모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피해 규모가 컸다. 도시 안으로 들어가자 건물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공터가 곳곳에 널려 있었다. 지진이 난 지 두 달 정도 지난 뒤라 정돈을 한 것으로 보였지만 도시는 지진의 공포와 여진의 불안을 떨쳐 내지 못하고 있었다.현지에서 만난 주민들이 차이를 대접하며 지진이 난 날의 표정과 현재 주민들의 심정을 이야기해 줬다.“아비규환이었지요. 무서워서 꼼짝도 할 수 없었어요. 문제는 아이들입니다. 지진으로 인한 공포 때문에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아요. 도시에 사람들이 많아 활기차 보이지만 사실 어디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지진에 대한 공포는 아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어른들도 또다시 큰 지진이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이곳 사람들이 지진을 겪고 난 이후 호소하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는 매우 심각했다. 현지인이 가장 처참한 현장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현지인들이 이구동성으로 꼭 가서 봐야 한다고 말하는 곳으로. 대체 무슨 사연이기에…. “이곳은 이 지역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앗아간 곳입니다.”그곳은 이 지역에서 근무하던 교사 63명의 목숨을 한꺼번에 앗아간 곳이었다. 교사들이 모여 있던 건물이 붕괴되면서 이 지역의 교사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다. 생존한 교사들도 부상정도가 매우 심각하다고 했다. 현지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실이냐고 몇 번이고 되물었다. 얼마 전에는 아이들이 사고 현장에 모여 교사들을 추모했다고 한다. 이 지역은 경제적으로 빈곤해 교육열이 낮아 교사들이 근무하기를 꺼려하는 곳이라고 한다. 이런 곳에서 선생님들을 하루아침에 잃은 아이들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답을 찾지 못했다.
추위와 배고픔, 겨울이 무서운 사람들
현지인들이 밀집해 있는 천막촌. 한국에서 온 기자라고 소개하자 덥석 손부터 잡고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한국 사람들에게 도와 달라고 전해 주세요. 추위가 가장 큰 문제예요. 먹을 음식도 부족한데 어떻게 이 긴 겨울을 보낼지….”터키 정부가 식료품을 제공하기 위해 보낸 트럭 앞에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고, 시청 앞에는 겨울을 보낼 수 있게 천막을 달라고 호소하는 이들로 시끌벅적하다. 터키의 겨울 추위는 4월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그렇기에 가장 시급한 것은 이재민들이 겨울을 무사히 보내도록 돕는 것.구호팀은 12월 14일 기준으로 34개의 막사를 설치했으며, 1월까지 100개의 막사를 더 지을 예정이다. 이와 함께 이틀에 한 번씩 식료품과 옷가지들을 나눠 주고 있는데 1월 말이면 동이 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가 지진 피해 이재민들을 돕는 방법은 구호팀원 파견보다 재정과 구호물자를 보내는 것이다. 그들이 따뜻하게 겨울을 보낼 수 있도록 이재민 막사를 지을 재료, 현지인 인부, 식료품, 겨울옷 등이 필요하다. 장기적으로 현지에서 헌신할 수 있는 의사나 간호사가 구호팀원으로 지원하면 좋다. 복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현지 아이들을 위한 차세대 사역을 펼칠 성도들의 헌신도 필요하다. 이곳에서의 선교전략은 1999년 이스탄불 대지진 때에 기독교인들이 현지인들을 전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해 구호활동과 함께 복음을 전하다 현지인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힌 사례를 상기시켜 최우선으로 구호에 집중하고 현지인들과 친구가 된 이후에 복음을 전한다는 계획이다. 지금은 하나님의 마음이 필요한 때

터키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나라지만 이슬람 문화가 짙다. 하루에 다섯 번씩 터키 전역에서 울려 퍼지는 아잔소리가 이를 웅변한다. 선교하기도 녹록치 않은 곳이다. 2007년 벌어진 말라티아 순교사건이 이를 반영한다. 당시 선교사 한 명과 현지인 두 명이 순교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 사건의 파장은 한인 선교사들에게도 미쳤다. 교회 문 앞에 ‘다음은 당신들 차례’라는 위협문구가 붙기도 했었다. 온갖 핍박과 협박에도 불구하고 선교사 수와 기독교인의 수가 같던 터키의 크리스천들이 서서히 증가하고 있다. 이렇게 은은하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퍼뜨리고 있는 선교의 중심에 반교회가 있었다.반교회의 하루는 오전 7시30분 열리는 기도모임으로 시작했다. 모임은 특별히 정해진 순서 없이 누구든지 기도를 인도하고 함께 손을 잡고 찬양을 했다. 터키어, 이란어, 영어, 한국어 등 열방에서 모인 사람들의 언어는 달랐지만 한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이 감격스러웠다. 살아 있는 예배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바로 그 예배는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반교회에서는 이란과 터키 사람들이 각각 자신들의 언어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 반교회가 위치한 터키 동부지역은 이란, 이라크, 아제르바이잔, 시리아 등의 국경과 맞닿아 있어 난민이 많다. 그곳에서 반교회는 정치적인 이유나 종교적인 이유로 난민이 된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쉼터 같은 곳이었다.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는 은혜의 장(場)이었다. 한국, 터키, 미국, 캐나다, 이란, 아프가니스탄 등 다양한 국가에서 사람들이 모인 만큼 사람들의 사연도 다양했다.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지 못해 권총을 샀었지요. 그런데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Christ)’를 보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 후 저의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코란에서 주장하는 내용이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 후 기독교로 개종을 했는데 그 일로 아내와 이혼을 고민할 정도로 힘들었지만 예수님이 좋아요.”“한국인들은 혼자 전 세계 어디를 가나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 부럽더라고요. 세계 어디를 가든지 교회만 가면 한국인이 있으니까요.”반교회에서 만난 사람들의 간증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무슬림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정체성을 뒤흔드는 엄청난 사건이다. 그들이 복음을 듣고 변화되어 자신의 고향에 돌아가 예수님을 전하겠다고 결단하는 모습에서는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한 형제는 태극기를 오려 자신의 지갑에 넣은 것을 보여 주며 한국을 가슴으로 품고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스탄불에서 고향인 반으로 파송되어 반교회를 섬기고 있는 터키인 목사는 고향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는 한국 성도들에게 “터키에 발생한 지진은 엄청난 비극이지만 이번 지진을 통해 이곳 사람들이 예수님을 바라보도록 기도해 달라”고 호소했다.터키인들이 흘리고 있는 눈물은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만 닦을 수 있다. 지금 우리는 터키를 향해 애통해하고 있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뭉쳐야 할 때다. “너를 도와줄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아, 내가 선택한 여수룬아, 두려워 말라”(사 44:2). 아멘.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