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신년특집-온누리교회와 중동
온누리교회 선교열전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이스라엘 등지에서도 이어졌다. 지금은 시라아 난민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 사진은 2005년 예루살렘 평화행진.
Acts29 비전 꽃피우는 밑거름
온누리교회 선교역사에서 중동 선교를 빼놓을 수 없다. 순교자를 배출한 이라크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아프가니스탄 등 이슬람국가에서 선교 열전을 썼다. 지금은 시리아 난민을 대상으로 중동선교를 이어가고 있다.
순교자 배출한 이라크 선교
2004년 2월 21일 온누리교회는 슬픔에 잠겼다. 이라크에서 사역하던 김사무엘 선교사가 순교했기 때문이다. 김사무엘 선교사는 2003년 9월 18일 전쟁의 상처로 아파하던 이라크에 들어가 이라크에서 살고 있는 한인들과 현지인들을 돌보던 중 허리에 통증을 느껴 그해 12월 한국으로 돌아와 검사를 받았는데, 혈액암이었다.
미국에서 급히 수술하고 깨었을 때 “이곳이 바그다드냐?”고 몇 번씩이나 확인할 만큼 그의 머릿속은 이라크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결국 김사무엘 선교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이후에도 이라크 선교를 위해 애썼지만 위기감은 계속됐다. 사역자 9명이 요르단 암만으로 피신하면서 모든 사역이 중단됐다. 사역팀과 국내기도 모임은 이라크를 위한 중보기도를 계속했지만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충격적인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이라크한인연합교회에서 같이 예배를 드리던 무역회사 직원 김선일 형제가 2004년 6월 22일 피랍돼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 때문에 교계에서는 무리한 선교 활동이라며 온누리교회로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도 했다. 이후 모든 사역팀이 이라크에서 철수, 현재 이라크 선교는 일시 중단되었다. 하지만 현지 교회와 지속적인 교류와 협력뿐 아니라 무릎선교로 그 땅을 섬기고 있다.
이스라엘 회복을 위한 서사시
이스라엘 선교는 이스라엘 중보기도모임이 형성된 1990년에 시작되었다. 1994년에는 이스라엘 회복 운동을 전문적으로 펼칠 KIBI(한ㆍ이 성경연구소)를 창설해 숨 가쁘게 달리기 시작했다. 메시야가 나셨던 땅,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기도는 2005 예루살렘 평화행진으로 이어졌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평화정착을 위한 ‘2005 예루살렘 평화행진’이 2005년 8월 10일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까지 이어진 6km 구간에서 열렸다. 행진에는 온누리교회, 지구촌교회, 할렐루야교회, KIBI, 인터콥 등 교회와 선교단체 기독교인 2,500여 명이 참가했다.
이 행진에 대해 이스라엘인들은 대체로 미온적이었던데 반해 팔레스타인들의 호응은 대단했다. 거리엔 “우리의 친구인 한국을 환영한다”는 플래카드들이 걸려있었고, 대부분의 주민들이 진심어린 환영의 손을 들어주었다. 특히 엘리아스라는 이름의 팔레스타인은 3명의 자녀와 함께“축복합니다. 주님의 사랑으로”라는 한글이 적힌 태극기를 휘날리며 열렬히 환영했다. 국내 언론에 반해 AFP통신, 로이터TV, 이스라엘TV, 팔레스타인TV 등 외신기자들이 몰려 이 행진에 대한 외신들의 뜨거운 관심을 실감케 했다.
아프간 선교
아프가니스탄 사역은 2001년 9.11 테러 사건 이후 미국과 아프간을 위해 기도하던 한 성도에 의해 시작되었다. 당시 이남식 집사가 아프간 난민을 위해 써달라며 2천만 원을 파키스탄 대사였던 윤지준 대사에게 전달한 것이 신호탄이 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영어예배, 성인예배에서 모금한 500만 원이 아프간 난민의 텐트를 짓는 데 보내졌다.
2002년 5월부터는 기도 모임이 시작되었고 아프간 현지 상황을 알아보기 위한 정탐팀이 구성되었다. 1차 정탐을 위해 김창옥 전도사(2000선교본부)와 장선철 장로(온누리신문)가 2002년 5월 7일 출발했고, 곧이어 5월 31일 하용조 목사 외 5명이 2차 정탐을 떠났다. 하 목사는 현지에서 아프간 정부 각료들과 만난 뒤 단기, 중기, 장기적인 계획을 논의했고, KOICA 초청으로 한국에 들어온 각료들과도 논의를 지속했다. 이후 장기 지원 계획에 따라 학교와 보건소 건립, 마을 환경 개선 등에 필요한 ‘동서문화개발교류회(ECC)’를 7월 30일 설립했다.
2006년 7월, 온누리 대학청년부는 여름 아웃리치를 아프간에 집중했다. 힘겨운 환경과 불안정한 정세에도 불구하고 200여 명의 젊은이들이 아프간 재건을 위한 길을 닦았다.
하지만 다음해인 2007년, 샘물교회 봉사단 피랍 사건 직후 현지 상황이 악화되었다. 이후 외교통상부가 해외여행금지지역으로 지정하면서 아프간에 파견된 모든 장단기 사역자들이 모두 철수했다. ECC도 그해 8월에 한국으로 철수하면서 현재 아프간 관련 사역은 일시 중단되었다. 하지만 아프간의 문이 열리기를 기대하며 기도하는 모임이 이어지고 있다.
시리아 선교
2010년 2월부터 중동과 북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 전례가 없는 반정부 시위 물결로 중동선교는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복음이 도저히 들어갈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지역에 하나님이 문을 여신 것이다. 특히 시리아에서는 온누리교회 파송 선교사, 미주 비전교회 성도들이 내전을 피해 국경을 넘은 난민들에게 마실 물과 생명수(복음)를 주고 있다.
2004년 순교한 김사무엘 선교사.
작성자 김남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