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특집-동북아시아 A국
동북아시아 A국
섬김으로 새 땅 일궈
이방향한 싹 틔우다
주님의 음성을 따라 93년 동북아시아 A국 H시로 파송 받은 P선교사는 부인인 K선교사와 피아노 학원을 열었다. 학원에는 젊은이들이 몰려들었고 복음을 접한 젊은이들이 거듭난 모습으로 살아가기 시작했으며 다음 해 문을 연 유치원과 커피숍에도 사람들을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동북아시아에 빛을 비춰 줄 말씀을 전하는 데에 남은 생애를 바치기로 헌신한 이들 선교사 부부에게 주님께서는 98년, 큰 선물을 주셨다. 한 외국어 대학에 A국 최초의 한국문화원을 열어 주신 것이다.문화원에서는 음악회, 컴퓨터 강좌, 도서관,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문화사역이 시작되었고 제과점에서는 동포들의 자립을 도울 수도 있었다.
문화원에서 분주히 일하던 P선교사는 2000년 새해 첫 아침, N시로 가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다. 그의 갑작스런 죽음은 온누리의 모든 성도와 A국 동역자들에게 슬픔을 안겨 주었지만 그가 흘린 순교의 피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은혜로 A국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긍휼사역에서 소수민족 전도까지
96년 H시에 온 L선교사는 그해 10월 한인교회인 R교회를 개척했다.A국민에게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에 자신의 직업을 외국어학원 원장이라고 속이고 사역하던 L 선교사는 성도가 6명에서 3백여 명으로 늘어난 5년 동안 식당, 호텔, 소극장 등으로 공안을 피해가며 예배를 인도했다. 2002년에는 정부가 지정해 주는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을 허가해 예배 장소를 이동하며 모여야 했던 성도들이 한 곳에서 모일 수 있게 되었다. 현재는 성도 400명이 세계무역센터16층에서 예배드리고 있으며 L선교사의 사역을 B선교사가 이어가고 있다.
한국인을 위한 외국인 교회인 R교회는 주중에는 예배를 드리고 주중에는순모임을 하며 말씀을 나누고 있다. 무엇보다도R교회는 타국 생활에 지친 서로를 위로하는 가족 같은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B선교사는 “비교적 쾌적하고 편리한 장소였던 세계무역센터 예배처소가 팔리게 되어 몇 주 안에 자리를 내 줘야 하는 상황”이라며요즘 가장 큰 기도제목인 교회처소 문제를 내놓았다.정부의 허락을 받지 않은 장소에서 모이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에 400명이라는 인원이 들어갈 수 있는 장소를 찾고,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절차가 순조롭도록 B선교사는 성도들의 기도를 요청했다.
R교회는 긍휼사역으로 현지인들의 마음 문을 조심스레 열고 있다. 우선 가난한 아이들 30명에게 매년 부활절, 성탄절 마다 장학금을 지원해 주고 있다. 또한 매년 5월이면 Y고아원을 찾아 노동으로 봉사하며 A국을 일으킬 신학생들을 지원하는데도 힘쓰고 있다. 더불어 H시에서 함께 사역하는 선교사들과 자녀들을 돕기도 한다.
“복음화율 8%를 넘어선 A국은 이제 ‘선교지’에서 벗어나 ‘선교하는 나라’로 서야 한다. 80~90년대의 사역 관점은 이제 변해야 하고 A국 복음화는 이곳 가정에게 돌려줘야 할 때다.” B선교사는 이제 한인교회들이 미전도 종족과 동포사역으로 초점을 이동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한국인을 양육하고, 현지인 선교사를 훈련해 동북아시아에 ACTS 29비전을 전하기 위한 기지로서의 건물이 세워지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제는 그들의 교회를 세우라’
98년도에 A국 N시를 찾은 K선교사는 현지 동포와 타 종교권 청년들을제자훈련으로 양육하며 사역을 시작했다. A국 최대 국경지대인 N시는 인접한 3개 국가 정보원들의 감시지역인 만큼 지리적으로 중요한위치에 있다. 가정예배를 드리던 성도들은 강변에 위치한 음식점을 빌려 예배를 드리다99년 4월 4일 N교회를 시작했다.
5가정이 모여서 기도하던 N교회는 나날이 성도가 늘어났고 그해 여름에는 의료선교팀이 아웃리치를 왔다.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참가하게 되어 정부의 허가가 필요했으나 다행히도 순조롭게 허가가 나왔다. 뿐만 아니라 아웃리치팀의 치료를 받은 환자들과 지켜보던 현지인들이 감동을 받아 정부측에서는 아웃리치가 계속되길 원했고 그 후 3년 동안 의료선교 아웃리치가 진행되었다. 의료선교로 N교회는 정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으며 교회와 모임을 알게 된 정부에서 허가를 도와줘 2002년 12월 외국인 교회로 정식 인가를 받았다.
당시 인가의 조건은 성도와 목사가 이단이 아니어야 하고, 건물 소유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한국인들만 모이는 것이었다.
예기치 않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인가를 받은 N교회에는 현재 성인 150여명, 어린이 90여명이 출석하고 있으며 그들 중 80%이상이 N교회에서 예수님을 만났다. K선교사는 이들을 상대로 1:1 제자양육과 TEE 교육을 실시하여 리더로 세우고 있다.
“지금까지는 자립에 되지 않아 서울에서 도움만 받았습니다. 이제는 ‘너희의 교회가 세워졌으니 나가서 다른 교회를 세우라’는 하나님은 음성을 듣습니다. 현재 교회에서 80km정도 떨어진 지역에서 현지인 70명을 양육하고 있습니다.” K선교사는 그 지역에 교회를 짓기 위해 준비 중이며 한 한국성도의 헌금이 사용될것이라 말했다.
“아직 교회가 없는 곳,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곳에 앞으로도 일 년에 한 두개의 교회를 세울 계획입니다.” N교회의 이런 비전에 따라 지난 7월에는 성도 150명이 소수민족이 사는 국경근처 G지역으로 아웃리치를 다녀왔다. 한국인이 150명이나 찾아온다는 말에 현지의 모든 기관이 긴장했었지만 섬김을 실천한의료선교팀은 그들의 마음에 들어갈 수 있었다.그 곳 초등학생과 중학생 중 20명을 추천받아 1년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아웃리치팀의 섬김에 감동한 현지인들은 내년에도 와 달라고 요청했고 K선교사 역시 그 지역에 교회를 세우는 날 까지 찾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장학금 수혜학생들을 이번 겨울에 N시로 초청해서 일대일로 양육시켜 G지역을 인도할 차세대 리더로 키우는 일도 시작할 예정이다.
N교회 역시 올해 4월부터 교회처소를 위해 기도하다 지난 9월 20일에 계약이 성사되어 진행 중이다. 임대계약 만료와 공간확장의 필요로 현재 쓰던 건물의 1~2층에 3층까지 매입하기로 계약이 진행 중이지만 문제는 매매가격이다. N시는 한창 개발이 진행 중이라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 바람에 내년 2월까지 지급해야 하는 계약금이 만만치가 않다. K선교사는 어렵게 성사된 계약인 만큼 교회처소로 쓰일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달라고 당부했다.
또 다른 민족위한 종자 씨로
위성이 설치된 N교회와 아직 설치하지 못한 R교회 모두 CGN 방송에 기대를 표시했다. 한국인들에게는 한국 소식을 접하고 각종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창구로, 현지인들에게는 말씀의 갈급함을 채워줄 통로로 이용될 수 있을 거라는 전망이다. K선교사는 “위성의 가격과 단속 등의 요인이 잘 해결된다면 사역자가 물리적으로 갈 수 없는 곳에서도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귀한 도구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2천 선교의 김창옥 전도사는동북아시아의 사역은 각 비전교회가 ACTS 29비전을 공유한 후 선교의 기지가 되어 현지인 및 소수민족과 비전교회 내부 사역으로 집중될 것이라 한다.중요한 변화는비전교회별로 진행 중인 개별 사역들도 ACTS 29비전의 부합여부를 묻는 검증을 거친 후 연합해 이루어 간다는 것. 이에 따라 동북아시아의 비전교회 사역자들은 동역자라는 의식으로 각자가 맡은 소수민족 복음화를 위해 힘쓸 예정이다. 그리고 이들이 연합해 나아가는데 CGN TV가 비전공유와 복음전파의 매개체가 될 것이다.
밀알로 썩어진 P선교사와 그 뒤를 이어 동북아시아를 품고 있는 수많은 믿음의 일꾼들. 그들이 지금까지 일구어온 ACTS 29 비전의 밭에서는 희망의 열매가단단하게 영글어 이제 또 다른 소수민족을 자라게 할 종자 씨를 받아내고 있다.
감시에 따른 불안과 고난 속에서도 땀 흘려 일한 그들은 제2의 도약을 향한 출발선에서 있다. 언제나 그들을 보살피신 주님께서 ACTS 29비전을 쌓아 가는 그들과 함께 하실 줄 믿는다.
/최문경 pink1969@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