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함께 하신다면…”
만나고 싶었습니다
연약함에도 굴하지 않는 김태훈 선교사
서울대 의대 졸업,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전문의. 한국에서 의사로서 이보다 좋은 이력이 또 있을까? 김태훈 선교사(에티오피아)의 약력이 그렇다. 그는 한국에서 탄탄대로의 인생을 내던지고 아프리카로 떠났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믿음 좋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엄청난 시련이 닥쳤다. 원인도 모르고, 뚜렷한 치료법도 없는 ‘파킨슨병’에 걸렸다. 그 무서운 질병 앞에 선교에 대한 의지가 꺾일 법도 한데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아니 더 뜨겁게 타올랐다. 김태훈 선교사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에티오피아에서 의료인 교육과 보건증진사역에 매진하고 있다. 지난 4일, 의연하고 태연하게 “예수님과 함께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고 고백하는 그를 만났다.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나무토막 같았다. 걸음걸이도, 말하는 것도 어딘가 모르게 불편해 보였다. 그가 앓고 있는 파킨슨병 때문이다. 파킨슨병은 신경퇴행성 질환인데 치매, 뇌졸중과 더불어 3대 노인성 질환으로 꼽힌다. 손 떨림, 몸의 경직, 평형감각 상실뿐만 아니라 얼굴 표정이 굳어지고, 음식을 삼키거나 말하기가 어려워진다. 자세가 구부정해지고, 걸을 때 발을 질질 끄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마비와 치매 증세로 이어져 결국에는 사망하게 되는 원인도, 뚜렷한 치료법도 없는 아주 무서운 질병이다. 그 무서운 병이 아직 너무 젊은 김태훈 선교사에게 왜 발병한 것일까? 원망스러웠다, 아픈 선교사와 무리하게 인터뷰를 하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됐다. 미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는 아무렇지 않다고 했다. “괜찮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는 진짜 평안함과 담대함이 녹아있었다.
잘 나가던 대학병원 의사
아프리카 선교사가 되다
아프리카 선교사가 되다
김태훈 선교사는 외과의사다. 우리나라 최고 명문학교인 서울대학교 의대를 졸업했고, 유명 종합병원에서 전문의로 근무했다. 아마 그대로 한국에 남았다면 의사로서 명성과 부를 충분히 누리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누구나 꿈꾸는 안정적인 길을 마다하고 2013년 3월 훌쩍 아프리카로 떠났다.
김태훈 선교사는 형(김태완 목사, 아부다비 온누리교회 담당목사)의 소개로 고등학교 3학년 겨울 온누리교회에 왔다. 온누리교회 대학청년부에서 활동하면서 선교에 대한 열정과 소명을 가슴에 새겼다.
“대학생 때 제주도 아웃리치를 간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겠느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어요. ‘예수님께서 함께하신다면 어디든 가겠습니다’라고 다짐하고 그 약속을 늘 마음에 품고 있었어요.”
방글라데시에서 의료봉사를 한 경험도 그가 선교사로서 뜻을 품고 행하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됐다.
“군복무 대체로 코이카 봉사단원이 되어서 방글라데시에서 의료봉사를 한 적이 있었어요. 당시 현지인 교회를 다녔는데 무슬림이었다가 회심하고 목사가 되신 분이 목회하고 계셨어요. 그분을 보면서 한 사람의 회심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력을 끼치는지를 깨닫게 되었어요.”
선교라는 사명을 한시도 잊지 않고 있던 김태훈 선교사가 드디어 실행에 나섰다. 잘 나가던 대학병원을 그만두고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 남수단 사업에 지원했다. 그런데 잘 나가던 대형병원 의사가 하루아침에 그만두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을까?
“우리나라에는 저 말고도 의사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에는 의사 한 명이 얼마나 귀한지 몰라요. 의사가 더 필요한 곳에 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김태훈 선교사는 형(김태완 목사, 아부다비 온누리교회 담당목사)의 소개로 고등학교 3학년 겨울 온누리교회에 왔다. 온누리교회 대학청년부에서 활동하면서 선교에 대한 열정과 소명을 가슴에 새겼다.
“대학생 때 제주도 아웃리치를 간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겠느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어요. ‘예수님께서 함께하신다면 어디든 가겠습니다’라고 다짐하고 그 약속을 늘 마음에 품고 있었어요.”
방글라데시에서 의료봉사를 한 경험도 그가 선교사로서 뜻을 품고 행하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됐다.
“군복무 대체로 코이카 봉사단원이 되어서 방글라데시에서 의료봉사를 한 적이 있었어요. 당시 현지인 교회를 다녔는데 무슬림이었다가 회심하고 목사가 되신 분이 목회하고 계셨어요. 그분을 보면서 한 사람의 회심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력을 끼치는지를 깨닫게 되었어요.”
선교라는 사명을 한시도 잊지 않고 있던 김태훈 선교사가 드디어 실행에 나섰다. 잘 나가던 대학병원을 그만두고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 남수단 사업에 지원했다. 그런데 잘 나가던 대형병원 의사가 하루아침에 그만두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을까?
“우리나라에는 저 말고도 의사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에는 의사 한 명이 얼마나 귀한지 몰라요. 의사가 더 필요한 곳에 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비가 쏟아져도 돌아가지 않아도 돼”
2013년 3월 남수단에 도착했다. 그곳에 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말라리아에 걸렸다.
“정말 심하게 앓았어요. 말라리아에 걸리고 회복되는데 2개월이 넘게 걸렸을 정도였어요. 너무 더디게 회복되더라고요. 몸이 완전히 낫는 것 같지도 않았고요.”
그날 이후 발이 아팠다. 단순히 말라리아 후유증이라고 생각했다. 몸이 좋지 않았지만 참아가며 사역했다. 그러다 남수단 내전이 발발하는 바람에 에티오피아로 넘어왔다. 2014년 9월, 한국에 들른 김에 그동안 아팠던 발을 치료하러 병원에 갔다가 청천벽력 같은 소릴 듣고 말았다. 파킨슨병이었다.
“정말 큰 충격이었어요. 처음에는 기도도 못할 정도로 두려웠어요. 부모님은 선교활동을 접고 한국으로 들어오라고 하셨고, 저도 갈피를 잡지 못했어요. 선교하러 간지 1년밖에 안 됐는데 큰 병에 걸리니까 허망하더라고요.”
굳어가는 몸과 절망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어찌할 바 모르는 그에게 하나님이 직접 찾아오셨다.
“어느 날 아침 산책을 하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더라고요. 나무 밑에서 비를 피했다가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비가 쏟아져도 집에 돌아가지 않아도 돼’라는 음성이 들리더라고요. 하나님께서 저에게 병 때문에 선교활동을 중단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신 거예요.”
하나님은 그의 아내 김희연 선교사에게도 찾아오셨다.
“아내가 기도하다 환상을 봤는데 자기가 예수님 품에 천진난만한 아기처럼 안겨 있더래요. 그런데 밑을 보니까 예수님 발에서 피가 흐르고 있더래요. 그때 선교는 예수님이 가시는 길이고, 우리는 그분 품에 안겨있는 축복을 누리는 거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어요.”
하나님의 확고한 음성에 힘입어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에티오피아로 복귀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뚜렷한 치료법도 없고, 건강상태가 언제 얼마나 나빠질지도 모르는 병을 안고 선교하는 것이 두렵지는 않을까? 하나님을 원망하고, 선교사로 헌신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을까?
“병(약함)은 축복이고, 하나님이 역사하시기 때문에 좋은 그릇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불편하긴 하죠. 그러나 하나님은 강하시고, 우리의 약함 가운데 크게 역사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슬퍼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어요.”
김태훈 선교사는 지난 11일 약을 한보따리 받아들고 다시 에티오피아로 갔다. 그의 가족과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의 뿔에 해당되는 나라에요. 에티오피아는 지금 급속하게 무슬림화가 진행되고 있어요. 미전도종족도 20개나 되고요. 주변국가(남수단, 수단, 소말리아, 에리트레아 등)들은 모두 무슬림 국가들이라 선교활동에 제약이 많아요. 그런데 에티오피아에서는 선교가 자유로워요. 에티오피아 사람들을 전도하면 주변 나라들도 복음화 될 거라고 확신해요. 그래서 저는 그곳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어요.”
그의 몸은 점점 더 굳어갈 것이고, 그래서 더 불편해지겠지만 하나님과 선교를 향한 그의 열정을 가로막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김태훈 선교사를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는 것이다.
“정말 심하게 앓았어요. 말라리아에 걸리고 회복되는데 2개월이 넘게 걸렸을 정도였어요. 너무 더디게 회복되더라고요. 몸이 완전히 낫는 것 같지도 않았고요.”
그날 이후 발이 아팠다. 단순히 말라리아 후유증이라고 생각했다. 몸이 좋지 않았지만 참아가며 사역했다. 그러다 남수단 내전이 발발하는 바람에 에티오피아로 넘어왔다. 2014년 9월, 한국에 들른 김에 그동안 아팠던 발을 치료하러 병원에 갔다가 청천벽력 같은 소릴 듣고 말았다. 파킨슨병이었다.
“정말 큰 충격이었어요. 처음에는 기도도 못할 정도로 두려웠어요. 부모님은 선교활동을 접고 한국으로 들어오라고 하셨고, 저도 갈피를 잡지 못했어요. 선교하러 간지 1년밖에 안 됐는데 큰 병에 걸리니까 허망하더라고요.”
굳어가는 몸과 절망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어찌할 바 모르는 그에게 하나님이 직접 찾아오셨다.
“어느 날 아침 산책을 하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더라고요. 나무 밑에서 비를 피했다가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비가 쏟아져도 집에 돌아가지 않아도 돼’라는 음성이 들리더라고요. 하나님께서 저에게 병 때문에 선교활동을 중단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신 거예요.”
하나님은 그의 아내 김희연 선교사에게도 찾아오셨다.
“아내가 기도하다 환상을 봤는데 자기가 예수님 품에 천진난만한 아기처럼 안겨 있더래요. 그런데 밑을 보니까 예수님 발에서 피가 흐르고 있더래요. 그때 선교는 예수님이 가시는 길이고, 우리는 그분 품에 안겨있는 축복을 누리는 거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어요.”
하나님의 확고한 음성에 힘입어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에티오피아로 복귀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뚜렷한 치료법도 없고, 건강상태가 언제 얼마나 나빠질지도 모르는 병을 안고 선교하는 것이 두렵지는 않을까? 하나님을 원망하고, 선교사로 헌신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을까?
“병(약함)은 축복이고, 하나님이 역사하시기 때문에 좋은 그릇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불편하긴 하죠. 그러나 하나님은 강하시고, 우리의 약함 가운데 크게 역사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슬퍼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어요.”
김태훈 선교사는 지난 11일 약을 한보따리 받아들고 다시 에티오피아로 갔다. 그의 가족과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의 뿔에 해당되는 나라에요. 에티오피아는 지금 급속하게 무슬림화가 진행되고 있어요. 미전도종족도 20개나 되고요. 주변국가(남수단, 수단, 소말리아, 에리트레아 등)들은 모두 무슬림 국가들이라 선교활동에 제약이 많아요. 그런데 에티오피아에서는 선교가 자유로워요. 에티오피아 사람들을 전도하면 주변 나라들도 복음화 될 거라고 확신해요. 그래서 저는 그곳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어요.”
그의 몸은 점점 더 굳어갈 것이고, 그래서 더 불편해지겠지만 하나님과 선교를 향한 그의 열정을 가로막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김태훈 선교사를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는 것이다.
기도편지: pierced@naver.com
문의: 2000선교 02-3215-3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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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