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인물

[당신이 온누리입니다]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순장!

당신이 온누리입니다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순장!
최고령 순장 김희수 권사의 아름다운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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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순원들과 함께하는 순장이고 싶다”는 김희수 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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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순장과 순원들. 

 
“1년만 대신 우리 순을 맡아달라”는 전임 순장의 부탁이 무려 30년이나 이어졌다. 김희수 권사(83세, 이촌공동체)가 30년 동안 순장으로 섬긴 계기가 바로 그것이다. 
김희수 권사는 지난 3월 1일 열린 순장영성수련회에서 김영배 순장(86세, 성동광진공동체)과 함께 최고령 순장상을 받았다. “엉터리 신자였던 내가 온누리교회에 와서 순장으로 섬기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며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순원들과 함께 울고 웃는 순장이 되고 싶다”고 고백하는 김희수 순장을 만났다.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김희수 순장에게 ‘최고령 순장상’이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요즘 김희수 순장이 남편 김현철 장로(86세) 병간호로 정말 바쁘고 힘들기 때문이다. 김현철 장로가 지난 1월 뇌출혈로 쓰러져 현재 거동이 힘든 상황인데도 순장으로 섬김을 이어가고 있기에 더욱 뜻깊었다.  
“저는 남편 병간호를 괴로움으로 느끼는 자격 없는 아내이자 순장입니다. 그런 제게 ‘최고령 순장상’이라니요? 하나님의 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희수 순장은 드러내기 싫고, 가리고 싶은 자신의 약함까지 솔직하게 인정했다. 오히려 그런 면이 지난 30년 동안, 나이 83세가 되어서도 최고령 순장으로 섬기는 비결 아닐까?
 
함께 울고 웃은 순장 30년
 
최고령 순장으로 섬기는 김희수 순장의 신앙 이력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김희수 순장이 의외의 고백을 했다. 
“저는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났는데도 항상 불평하고,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저에게 늘 ‘하나님을 가까이함이 네게는 복이다’라고 하셨는데, 저는 그 말씀을 잔소리로 치부했습니다. 학교 채플 수업도 늘 불평하며 들었습니다. 그 황금 같은 시절을 그렇게 흘려보냈습니다. 참으로 교만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김희수 순장의 신앙이 180도 바뀌게 된 사건이 있었다. 온누리교회에 오면서부터 신앙이 성장하고 성숙했다. 
“딸이 피아노를 전공했는데, 고모 소개로 온누리교회에서 반주자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딸이 온누리교회에 다녀오더니 ‘이렇게 기도 많이 하는 교회가 없다’면서 우리 가족을 온누리교회로 초대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저는 여러 교회를 쇼핑하듯 다녔습니다. 그런 제가 온누리교회에 오면서 믿음을 온전히 고백하고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남편과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 온누리교회 성도가 된 것입니다.”
온누리교회 온 지 1년 정도 되었을 무렵 그녀에게 어이없는 부탁이 들어왔다. 순장 의뢰였다. 
“당시 최봉자 권사님이 미국에 가시면서 1년만 순을 맡아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체계적인 순장 교육이 없었습니다. 얼떨결에 최봉자 권사님 대신 순장이 됐는데, 1년이 지나도 최 권사님이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30년이 지났습니다(웃음).”
김희수 권사의 30년 순장 역사가 그렇게 시작됐다. 첫 순원은 세 명이었다. 
“지금도 기억합니다. 첫 순원이 세 명이었는데, 그분들 얼굴도 모르고 순장으로 섬김을 시작했습니다. 체계적인 순장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고, 갑자기 순장을 맡은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기도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순원들을 위해 밤새도록 기도했습니다.”
30년 베테랑 순장으로서 순을 이끄는 노하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희수 순장은 망설임 없이 이렇게 말했다. 
“순장이 순원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순원들의 사정을 듣고, 그들을 위한 기도와 사랑으로 섬기는 게 핵심입니다. 기도제목으로 내놓을 수도 없고,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할 사연을 가진 순원들을 위해 순장이 할 수 있는 일은 눈물 어린 기도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겨주신 것처럼, 순원들의 발을 씻겨주는 순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순원들이 어려울 때, 울고 있을 때 기도하는 순장이 가장 좋은 순장이라고 생각합니다.”
30년 동안 순장으로 섬기면서 정말 다양한 순원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과의 아름다운 추억이 가슴에 새겨졌다.  
“기억에 남는 순원들이 정말 많습니다. 한번은 처음 교회에 나온 순원이었는데 그분 가정을 위해서 기도를 정말 많이 했습니다. 그 순원이 나중에 퇴직금을 교회에 헌금하시면서 ‘순장님 덕분에 예수님과 교회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됐다’고 고백하셨습니다. 그 가정이 저보다 더 열심히, 더 잘 믿는 성도가 된 것을 보고 감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또 여기저기서 모시려고 했을 정도로 사회적으로 저명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하던 일이 잘 안 됐습니다. 그랬더니 아무도 그분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때 제가 그분께 전화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순으로 오세요! 내가 당신의 아픔을 나눠갖고 싶어요’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저는 바로 그것이 순원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한번은 노환으로 집에서 요양중이던 권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날따라 기도하면서 그 권사님을 꼭 만나야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순원들과 목사님께 함께 그 권사님을 만나러 가자고 연락했습니다. 지금 그분과 함께 예배드리지 않으면 살아서 못 볼 것 같다고 했더니 다 같이 모여주셨습니다. 그리고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다음 날 그 권사님이 소천하셨습니다. 우리가 함께 드린 예배가 그 권사님께서 이생에서 드린 마지막 예배였습니다. 마지막 예배드리면서 그 권사님이 우시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30년 동안 총 여덟 분이나 먼저 천국으로 보내드렸습니다. 그분들이 아직도 그립고, 그분들과 보낸 모든 시간이 정말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감사도, 회개도 하나님의 은혜
 
김희수 순장이 지난 30년을 회고하면서 감회에 젖었다. 온누리교회 모든 순장들에게 전하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감사도, 회개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못합니다. 지난 30년 순장으로 섬기면서 정말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매일 교회 뜰을 밟으면 새 소망과 기쁨이 넘쳐났습니다. 부활절에는 삶은 달걀에 예쁜 그림을 그려서 거리에서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진정한 구원자가 되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카드를 전할 때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교회가 정말 좋아서 교회 오는 지하도도 열심히 청소했습니다. 교회를 아름답게 가꾸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헌금도 정성을 담아 정갈한 마음으로 준비해서 드렸습니다. 그렇게 열심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제가 능력이 있고, 가진 게 많아서가 아닙니다. 온누리교회에서 받은 은혜가 크고 많아서입니다.
저는 참으로 부족한 사람인데 순장으로 세워주시고, 순원들이 저를 좋아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큐티가 뭔지도 모르고, 순장이 뭔지도 몰랐는데 하나님께서 인도하셔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순에 76세부터 94세 권사님 15명이 함께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더 많은 순원들과 함께하고 싶은데 여러 사정으로 그렇게 하지 못해서 죄송할 뿐입니다. 
온누리교회 모든 순장님들이 훌륭하십니다. 그러나 꼭 하나 당부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순원을 사랑으로 섬겨달라는 당부입니다. 순원들의 발을 닦아주는 순장, 기도와 사랑으로 섬기는 순장이 되십시오. 저도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하나님의 딸들과 함께 울고 함께 웃는 순장이 되고 싶습니다.” 
 

작성자  정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