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최베드로 선교사의 사랑으로!
[만나고 싶었습니다]
최베드로 선교사의 사랑으로!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 난민’들과 함께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 난민’들과 함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발발한 지 어느덧 4년이 다 되어간다. 전쟁의 피해는 고스란히 민간인에게 집중되고 있다. 오직 살기 위해서 수많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폴란드로 향했다. 난민이 된 그들은 말로할 수 없는 외로움과 슬픔, 소중한 이들을 잃는 엄청난 아픔을 겪었다. 바로 그들,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위로하고 섬기는 하나님의 사람이 있다. 최베드로 선교사다. 그는 폴란드에서 오직 예수의 사랑으로 우크라이나 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아픔을 품고, 복음의 능력을 증거하고 있다.
/ 박지혜 기자 wisd0m7@onnuri.org
/ 박지혜 기자 wisd0m7@onnuri.org
“저는 제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만큼 우크라이나 난민을 섬기는 사역에 불러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 나는 가장 행복한 사람’ 이라고 고백하는 최베드로 선교사의 말에서는 예수님과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향한 진심 어린 사랑이 자연스레 전해졌다. 그의 행복한 선교의 뿌리가 궁금했다. 처음부터 선교사의 꿈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 나는 가장 행복한 사람’ 이라고 고백하는 최베드로 선교사의 말에서는 예수님과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향한 진심 어린 사랑이 자연스레 전해졌다. 그의 행복한 선교의 뿌리가 궁금했다. 처음부터 선교사의 꿈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저는 1992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이 러시아에서 개척교회를 운영하고 계셨는데, 500명이 넘는 큰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사역의 큰 열매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제가 아홉 살 때 이혼하셨습니다. 그때 제 마음에 분명히 자리 잡은 결심은 ‘ 나는 절대로 목사가 되지 말아야지’ 였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지휘자를 꿈꿨다. 그 꿈을 이루려고 차이콥스키 음악원에서 공부했다. 어머니의 사역을 돕거나, 교회 찬양팀에서 봉사할 때면 주변에서 “신학교 갈 생각은 없냐”는 질문을 듣곤 했지만, 그때마다 ‘나보고 사역자가 되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여겼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한 선교사님이 제게 ‘베드로야, 하나님이 너를 통해 이루시는 구원의 기쁨을 아니?’라고 물으셨습니다. ‘전도를 말씀하시는 건가?’라는 생각에 잠겨있던 제게 그 선교사님이 ‘정말 알고 있다면 곧바로 그렇다고 대답했을 것’이라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기도해 보라고 권면하셨습니다.”
그 선교사님과 대화 이후 최베드로 선교사의 기도제목은 단 하나였다. “하나님, 제가 사역자로 살기 원하신다면 분명한 답을 주십시오.” 하나님은 뜻밖에도 친할머니를 통해 그 기도에 응답하셨다.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친할머니셨습니다. 아버지 집안은 불교였기에 저는 어릴 때부터 친할머니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내일 허리 수술을 받는데, 혹시 잘못되면 제 종교 방식으로 장례를 치러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무사히 수술을 마치면 바로 교회에 가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일본에서 자라서 한국어가 서툴고, 제 전화번호도 몰랐던 분이셨는데, 정말 어렵게 전화를 하셨습니다.”
할머니는 88세에 세례를 받고, 93세에 평안히 하나님 품에 안겼다. 최베드로 선교사는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달았다. 다음 기도는 어머니가 자신의 결정을 받아 주기를 구하는 것이었다.
“어머니 생신날 함께 식사하면서 신학대학원에 진학하겠다는 말씀을 어떻게 드릴지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먼저 신학대학원 진학을 제안하셨습니다. 알고 봤더니 저를 위해 기도하던 중에 제가 지휘자 가운을 벗고 목사 가운으로 갈아입더니 단상에서 설교하는 환상을 두 번이나 보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2014년 한국에 들어와 군 복무를 마치고 신학대학원에 입학했습니다. 언젠가 러시아로 돌아가 선교할 꿈을 품고 기도하며 준비했는데, 하나님은 저를 우크라이나 피난민을 섬기는 일에 사용하셨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지휘자를 꿈꿨다. 그 꿈을 이루려고 차이콥스키 음악원에서 공부했다. 어머니의 사역을 돕거나, 교회 찬양팀에서 봉사할 때면 주변에서 “신학교 갈 생각은 없냐”는 질문을 듣곤 했지만, 그때마다 ‘나보고 사역자가 되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여겼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한 선교사님이 제게 ‘베드로야, 하나님이 너를 통해 이루시는 구원의 기쁨을 아니?’라고 물으셨습니다. ‘전도를 말씀하시는 건가?’라는 생각에 잠겨있던 제게 그 선교사님이 ‘정말 알고 있다면 곧바로 그렇다고 대답했을 것’이라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기도해 보라고 권면하셨습니다.”
그 선교사님과 대화 이후 최베드로 선교사의 기도제목은 단 하나였다. “하나님, 제가 사역자로 살기 원하신다면 분명한 답을 주십시오.” 하나님은 뜻밖에도 친할머니를 통해 그 기도에 응답하셨다.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친할머니셨습니다. 아버지 집안은 불교였기에 저는 어릴 때부터 친할머니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내일 허리 수술을 받는데, 혹시 잘못되면 제 종교 방식으로 장례를 치러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무사히 수술을 마치면 바로 교회에 가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일본에서 자라서 한국어가 서툴고, 제 전화번호도 몰랐던 분이셨는데, 정말 어렵게 전화를 하셨습니다.”
할머니는 88세에 세례를 받고, 93세에 평안히 하나님 품에 안겼다. 최베드로 선교사는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달았다. 다음 기도는 어머니가 자신의 결정을 받아 주기를 구하는 것이었다.
“어머니 생신날 함께 식사하면서 신학대학원에 진학하겠다는 말씀을 어떻게 드릴지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먼저 신학대학원 진학을 제안하셨습니다. 알고 봤더니 저를 위해 기도하던 중에 제가 지휘자 가운을 벗고 목사 가운으로 갈아입더니 단상에서 설교하는 환상을 두 번이나 보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2014년 한국에 들어와 군 복무를 마치고 신학대학원에 입학했습니다. 언젠가 러시아로 돌아가 선교할 꿈을 품고 기도하며 준비했는데, 하나님은 저를 우크라이나 피난민을 섬기는 일에 사용하셨습니다.”
6개월에서 9개월 연장
그리고 완전한 정착
그리고 완전한 정착
“누가 저에게 왜 이곳에 정착했냐고 묻는다면, 어떠한 계획이나 전략이 아니라 이곳에 계신 성도님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최베드로 선교사는 2021년 목사 안수를 받고, 경기도 안산에 있는 온누리M미션에서 이주민 사역을 시작했다. 러시아 MK(선교사의 자녀)로 자란 그는 자연스럽게 러시아어 예배공동체와 미디어팀을 섬겼다. 그러다 OSOM(장기선교사 훈련) 32기로 Acts29비전빌리지에 들어갔다. 그런데선교 훈련이 시작된 지 며칠 되지 않은 2022년 2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발발했다.
그 전쟁으로 인해 폴란드로 백만 명이 넘는 우크라이나 피난민이 유입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당시 온누리M센터 센터장 노규석 목사가 급하게 폴란드로 향했다. 같은 해 4월, 현지에서 노 목사가 최 베드로 선교사에게 ‘우크라이나 피난민 사역’을 제안했다.
“상황이 급박해서 파송식이나 파송장도 없이 OSOM 32기 수료하고 19일 만에 아내와 함께 위탁 캐리어 두 개와 기내용 캐리어 두 개만 챙겨서 폴란드로 향했습니다. 화요일에 도착했고, 그 주 토요일부터 난민수용소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난민수용소에서 머물던 이들과 함께 2022년 7월 17일, 첫 예배를 드렸다. 당시에는 이름도 없던 작은 예배공동체였는데, 그 공동체가 최베드로 선교사 가정이 폴란드에 정착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
“처음에는 6개월 단기선교를 계획했는데, 그 기간이 지나도록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온누리M미션의 권유로 9개월을 추가했는데도 상황은 그대로였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우리 가정 스스로 이 땅에 남기를 원했습니다. 본부에서도 우리 가정을 TIM(두란노국제선교회) 소속으로 전환하고, 폴란드에 정착해서 사역을 이어가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향한 사랑이 최베드로 선교사가 이곳에서 사역을 이어가는 원동력이다. 최베드로 선교사가 폴란드에 정착한 지도 어느덧 3년 5개월이 지났다. 그사이 온누리교회 아웃리치팀이 13번 방문했고, 고아원 아이들 10명, 유아 2명, 성인 11명이 세례를 받았다. 일대일제자양육 수료자도 12명이나 된다. 일대일제자양육 교재를 우크라이나어로 번역해서 출판을 앞두고 있다. 바르샤바 보쥐미르교회, 우쯔 보쥐미르 고아원 교회도 세웠다.
최베드로 선교사는 2021년 목사 안수를 받고, 경기도 안산에 있는 온누리M미션에서 이주민 사역을 시작했다. 러시아 MK(선교사의 자녀)로 자란 그는 자연스럽게 러시아어 예배공동체와 미디어팀을 섬겼다. 그러다 OSOM(장기선교사 훈련) 32기로 Acts29비전빌리지에 들어갔다. 그런데선교 훈련이 시작된 지 며칠 되지 않은 2022년 2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발발했다.
그 전쟁으로 인해 폴란드로 백만 명이 넘는 우크라이나 피난민이 유입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당시 온누리M센터 센터장 노규석 목사가 급하게 폴란드로 향했다. 같은 해 4월, 현지에서 노 목사가 최 베드로 선교사에게 ‘우크라이나 피난민 사역’을 제안했다.
“상황이 급박해서 파송식이나 파송장도 없이 OSOM 32기 수료하고 19일 만에 아내와 함께 위탁 캐리어 두 개와 기내용 캐리어 두 개만 챙겨서 폴란드로 향했습니다. 화요일에 도착했고, 그 주 토요일부터 난민수용소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난민수용소에서 머물던 이들과 함께 2022년 7월 17일, 첫 예배를 드렸다. 당시에는 이름도 없던 작은 예배공동체였는데, 그 공동체가 최베드로 선교사 가정이 폴란드에 정착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
“처음에는 6개월 단기선교를 계획했는데, 그 기간이 지나도록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온누리M미션의 권유로 9개월을 추가했는데도 상황은 그대로였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우리 가정 스스로 이 땅에 남기를 원했습니다. 본부에서도 우리 가정을 TIM(두란노국제선교회) 소속으로 전환하고, 폴란드에 정착해서 사역을 이어가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향한 사랑이 최베드로 선교사가 이곳에서 사역을 이어가는 원동력이다. 최베드로 선교사가 폴란드에 정착한 지도 어느덧 3년 5개월이 지났다. 그사이 온누리교회 아웃리치팀이 13번 방문했고, 고아원 아이들 10명, 유아 2명, 성인 11명이 세례를 받았다. 일대일제자양육 수료자도 12명이나 된다. 일대일제자양육 교재를 우크라이나어로 번역해서 출판을 앞두고 있다. 바르샤바 보쥐미르교회, 우쯔 보쥐미르 고아원 교회도 세웠다.
복음 말고는 능력이 없음을…
최베드로 선교사는 전쟁으로 인해 아픔과 슬픔이 가득한 이들의 손을 잡고, 함께 춤추며 하나님을 예배한다. 이 상황에도 교회가 부흥하는 것을 보며 그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임을 확신한다.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만날 때면 말로 할 수 없는 아픔을 느낍니다. 그분들이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요청하고, ‘선하신 주’를 찬양하는 모습을 보면, 복음 말고는 그들을 위로하고, 치유하고, 회복할 능력이 없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동역해주시는 온누리교회 성도님들 덕분에 여러 어려움을 해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쥐미르교회가 감당하는 사역이 많아서 함께 일할 직원이 절실합니다. 사역에 열정이 있는 귀한 청년들은 많지만, 폴란드인들보다 훨씬 적은 임금으로 생활하기에 사역자를 세우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교회 간사님을 채용할 수 있는 물질적 지원이 꼭 필요합니다.
더불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하루빨리 끝나고,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고아원 아이들이 하나님의 양자 됨의 기쁨을 누리고, 모든 중독에서 자유를 얻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가정에 18개월 된 딸이 있습니다. 사역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면 다양한 바이러스에 노출될 위험이 있습니다. 딸 소예의 면역력과 저희 부부가 지치지 않고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채워주심 안에서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후원계좌: 하나은행 573-8100079-9305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만날 때면 말로 할 수 없는 아픔을 느낍니다. 그분들이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요청하고, ‘선하신 주’를 찬양하는 모습을 보면, 복음 말고는 그들을 위로하고, 치유하고, 회복할 능력이 없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동역해주시는 온누리교회 성도님들 덕분에 여러 어려움을 해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쥐미르교회가 감당하는 사역이 많아서 함께 일할 직원이 절실합니다. 사역에 열정이 있는 귀한 청년들은 많지만, 폴란드인들보다 훨씬 적은 임금으로 생활하기에 사역자를 세우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교회 간사님을 채용할 수 있는 물질적 지원이 꼭 필요합니다.
더불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하루빨리 끝나고,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고아원 아이들이 하나님의 양자 됨의 기쁨을 누리고, 모든 중독에서 자유를 얻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가정에 18개월 된 딸이 있습니다. 사역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면 다양한 바이러스에 노출될 위험이 있습니다. 딸 소예의 면역력과 저희 부부가 지치지 않고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채워주심 안에서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후원계좌: 하나은행 573-8100079-9305
작성자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