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진짜 이유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진짜 이유
교회, 지도자에 대한 실망, 관계, 공동체로부터 받은 상처
봉사 강요 말고, 체계적 신앙교육과 지속적 관심 보여줘야
교회, 지도자에 대한 실망, 관계, 공동체로부터 받은 상처
봉사 강요 말고, 체계적 신앙교육과 지속적 관심 보여줘야
“더 이상 교회에서 상처받고 싶지 않아요! 앞으로는 절대 교회에 가지 않을 거예요!”
교회를 떠난 한 청년의 상처가 얼마나 컸는지가 가슴 절절하게 느껴졌다. 교회를 떠난 청년들은 저마다 그 이유와 아픔을 가지고 있다. 모르긴 몰라도 그 상처와 아픔이 청년들을 교회를 떠나게 만들었다는 것은 자명하다. 도대체 그 무엇이 청년들을 아프게 했고, 결국 교회를 떠나게 했는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실제로 교회를 떠난 청년들을 만나 가슴 속 깊이 묻어둔 이야기를 들어봤다. 교회 내 관계의 아픔, 무조건적인 헌신 강요, 교역자의 권위적인 태도 등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무척 다양했다. 어떻게 하면 교회를 떠난 청년들을 다시 교회로 인도할 수 있을까? 그 방법을 찾아봤다.
/ 권찬송 기자 kcs123@onnuri.org
교회를 떠난 한 청년의 상처가 얼마나 컸는지가 가슴 절절하게 느껴졌다. 교회를 떠난 청년들은 저마다 그 이유와 아픔을 가지고 있다. 모르긴 몰라도 그 상처와 아픔이 청년들을 교회를 떠나게 만들었다는 것은 자명하다. 도대체 그 무엇이 청년들을 아프게 했고, 결국 교회를 떠나게 했는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실제로 교회를 떠난 청년들을 만나 가슴 속 깊이 묻어둔 이야기를 들어봤다. 교회 내 관계의 아픔, 무조건적인 헌신 강요, 교역자의 권위적인 태도 등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무척 다양했다. 어떻게 하면 교회를 떠난 청년들을 다시 교회로 인도할 수 있을까? 그 방법을 찾아봤다.
/ 권찬송 기자 kcs123@onnuri.org
청년들이 빠른 속도로 교회를 떠나고 있다. 아마도 2005년부터 그 현상이 두드러진 것으로 예상된다. 2005년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주택총조사’를 살펴보면 1995년 당시 10살에서 24살이었던 기독교인들이 2005년에는 20살에서 34살이 되었는데 이 연령층의 이탈이 가장 심각했다. 10년 새 60만 명이나 교회를 떠났다. 이러한 현상은 다른 통계자료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2015년 한국갤럽이 실시한 ‘한국인의 종교’에서 20대 기독교 인구가 2004년도에 비해 무려 5%, 30대 기독교 인구는 3% 감소했다. 청년들이 지속적으로 교회를 떠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2016년 이만식 교수(장신대)가 크리스천 청년 2,200명 대상으로 ‘친구들이 교회를 떠난 이유’에 대해 조사했다. 이 설문조사에 따르면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크게 ‘교회, 지도자에 대한 실망’과 ‘관계, 공동체로부터 받은 상처’였다.
교회, 지도자 부분에서는 ‘교회 운영에 대한 실망’이 27.3%로 가장 높았고, 그 다음은 ‘교역자에 대한 실망’(20.3%), ‘과다한 헌신 요구’(19.6%) 순이었다. 관계, 공동체 부분에서는 ‘교회의 배타적 분위기’(25.8%), ‘교인에게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24.7%), ‘친한 사람이 없어서’(19.1%)라는 응답이 나왔다.
물론 이러한 안타까운 현상이 모든 교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교회와 무관하다고 해서 외면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상처받은 청년들을 도와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청년들을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한 근본적인 원인을 찾으려는 적극적인 자세 또한 요구된다. 전라남도 광주 A교회를 섬기고 있는 전도사 B씨는 “한국 교회에서 청년들은 중고등부 교사, 싱어, 반주 등 여러 곳에서 봉사해야 하는 슈퍼맨이지만 교회와 교역자들은 그들이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뼈아프게 지적했다.
교회, 지도자 부분에서는 ‘교회 운영에 대한 실망’이 27.3%로 가장 높았고, 그 다음은 ‘교역자에 대한 실망’(20.3%), ‘과다한 헌신 요구’(19.6%) 순이었다. 관계, 공동체 부분에서는 ‘교회의 배타적 분위기’(25.8%), ‘교인에게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24.7%), ‘친한 사람이 없어서’(19.1%)라는 응답이 나왔다.
물론 이러한 안타까운 현상이 모든 교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교회와 무관하다고 해서 외면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상처받은 청년들을 도와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청년들을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한 근본적인 원인을 찾으려는 적극적인 자세 또한 요구된다. 전라남도 광주 A교회를 섬기고 있는 전도사 B씨는 “한국 교회에서 청년들은 중고등부 교사, 싱어, 반주 등 여러 곳에서 봉사해야 하는 슈퍼맨이지만 교회와 교역자들은 그들이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뼈아프게 지적했다.
청년들이 가슴 속에 묻어둔 이야기
그렇다면 교회를 떠난 청년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실제로 교회를 떠났던 청년들을 만나 솔직한 속내를 들어봤다. 그들이 말하는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서로 의지하고 사랑해야 할 교인에게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열심히 활동했던 C자매(25세, 취업준비생)는 2년 전 교회를 떠났다. 그녀는 “같은 교회 청년들로부터 큰 상처를 받고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됐다”고 털어놨다. 싱어, 유치부 교사 등을 도맡아 섬길 정도로 열심히 봉사했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이 평소 열심히 봉사하는 저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나 봐요. 어느 날 우연히 교회 친구들이 저를 두고 “너무 나댄다”, “꼴 보기 싫다” 등의 이야기하는 것을 듣게 됐어요. 그저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한 것뿐인데 그런 말을 들으니까 기분이 너무 언짢고 상처가 되더라고요. 이 문제에 대해 목사님께 상담도 해봤지만 목사님은 제 문제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더라고요.”
D자매(23세, 대학생) 또한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녀는 “교회에서 끼리끼리 어울리는 문화가 너무 많다”며 “그 무리에 끼지 못하는 사람은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둘째, 교회가 청년들에게 무조건적인 헌신만 강요하기 때문이다. 갑작스런 생활고로 대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던 E씨(28세, 직장인)는 “교회봉사만 강요하는 목사님 때문에 교회를 떠나게 됐다”고 고백했다.
“대학을 다니면서 갑작스럽게 가정형편이 어려워졌어요. 그래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다고 주일예배를 빠진 것은 아니에요. 주차위원, 미화, 순장 등 하던 봉사를 잠시 내려놓은 것뿐이에요. 그런데 목사님은 ‘왜 봉사를 하지 않냐? 힘들 때일수록 더 열심히 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거예요. 제 문제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헌신만 강요하셨어요.”
셋째, 교역자의 권위적인 태도 때문이다. 신학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F씨(32세, 학생)는 한때 목회자의 권위적인 태도에 강한 반감을 갖고 교회를 떠난 적이 있었다.
“그 목사님은 항상 자기 말에 무조건 순종해야한다고 강요했어요. 목사님이 부르면 만사를 제쳐두고 가야 했어요. 또 질문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시더라고요. 어떤 문제에 대해서 건의하거나 제 의견을 피력하면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그 시간에 말씀 읽고 기도나 더 하라고 핀잔을 주더라고요.”
첫째, 서로 의지하고 사랑해야 할 교인에게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열심히 활동했던 C자매(25세, 취업준비생)는 2년 전 교회를 떠났다. 그녀는 “같은 교회 청년들로부터 큰 상처를 받고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됐다”고 털어놨다. 싱어, 유치부 교사 등을 도맡아 섬길 정도로 열심히 봉사했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이 평소 열심히 봉사하는 저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나 봐요. 어느 날 우연히 교회 친구들이 저를 두고 “너무 나댄다”, “꼴 보기 싫다” 등의 이야기하는 것을 듣게 됐어요. 그저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한 것뿐인데 그런 말을 들으니까 기분이 너무 언짢고 상처가 되더라고요. 이 문제에 대해 목사님께 상담도 해봤지만 목사님은 제 문제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더라고요.”
D자매(23세, 대학생) 또한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녀는 “교회에서 끼리끼리 어울리는 문화가 너무 많다”며 “그 무리에 끼지 못하는 사람은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둘째, 교회가 청년들에게 무조건적인 헌신만 강요하기 때문이다. 갑작스런 생활고로 대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던 E씨(28세, 직장인)는 “교회봉사만 강요하는 목사님 때문에 교회를 떠나게 됐다”고 고백했다.
“대학을 다니면서 갑작스럽게 가정형편이 어려워졌어요. 그래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다고 주일예배를 빠진 것은 아니에요. 주차위원, 미화, 순장 등 하던 봉사를 잠시 내려놓은 것뿐이에요. 그런데 목사님은 ‘왜 봉사를 하지 않냐? 힘들 때일수록 더 열심히 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거예요. 제 문제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헌신만 강요하셨어요.”
셋째, 교역자의 권위적인 태도 때문이다. 신학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F씨(32세, 학생)는 한때 목회자의 권위적인 태도에 강한 반감을 갖고 교회를 떠난 적이 있었다.
“그 목사님은 항상 자기 말에 무조건 순종해야한다고 강요했어요. 목사님이 부르면 만사를 제쳐두고 가야 했어요. 또 질문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시더라고요. 어떤 문제에 대해서 건의하거나 제 의견을 피력하면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그 시간에 말씀 읽고 기도나 더 하라고 핀잔을 주더라고요.”
청년들의 말 속에 해답이 있다
교역자와 지체들의 잘못된 태도와 행동에 상처받고, 교회로부터 헌신만 강요당해서 지쳐있는 청년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들을 품기 위해서 교회는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까? 청년들의 말 속에 해답이 있다.
첫째, 기성세대들은 청년들에게 “힘들 때일수록 더 헌신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수많은 청년들이 직업을 구하지 못해 힘들어하고, 직장에서 전쟁과 같은 일상을 견디고 있다. 그런 청년들에게 봉사나 사역을 무작정 강요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걱정하는 문제를 충분히 공감해주고 격려해줘야 한다. 그것이 우선이다.
둘째, 교회는 청년들에 대한 체계적인 신앙교육을 해야 한다. 청년들에게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 그들이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받고 실족하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알려줘야 한다. 또한 목회자의 방이 청년들을 위해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 그들이 목회자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주일밖에 없다. 하지만 주일마저도 담당목사를 만나는 게 쉽지 않다. 청년들이 목회자를 찾아가 고민을 스스럼없이 털어놓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다. 교회의 문턱이 높아지면 마음의 턱도 높아지는 법이다.
셋째, 또래 청년들이 교회를 떠난 친구들에게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교회를 이미 떠났다고 방치하는 것은 곤란하다. 교회를 떠난 청년들을 가장 잘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대상은 결국 청년들이다. 청년들의 작은 섬김이 교회를 떠난 청년들을 품는 가장 크고 따뜻한 품이 될 수 있다. 지금 당장 교회에 나오지 않고 있는 친구, 순원,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보자. “어떻게 지내니?”, “요즘 고민이 무엇이니?”라고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다. 직접 만나서 함께 식사하고, 그들의 속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좋다. 마음을 담은 편지와 선물을 전달하는 방법도 있다. 자신을 잊지 않고 기도해주는 든든한 동역자가 있다는 것을 되새겨줘야 한다. 실제로 I자매(33세, 취업준비생)는 “교회 리더십의 권위적인 태도 때문에 교회를 떠난 적이 있었는데 순원들의 지속적인 사랑과 관심으로 다시 교회에 나올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J씨(26세, 학생)가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진짜 속내를 내비쳤다. 이 청년의 고백이 교회를 떠난 모든 청년들의 속마음일지도 모른다.
“다시 교회에 가고 싶어요.”
“양 100마리를 가진 사람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고 하면 그가 99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그 양을 찾아다니지 않겠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만약 그 양을 찾게 되면 그는 길 잃지 않은 99마리 양보다 오히려 그 한 마리 양 때문에 더욱 기뻐할 것이다”(마 18:12~14).
첫째, 기성세대들은 청년들에게 “힘들 때일수록 더 헌신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수많은 청년들이 직업을 구하지 못해 힘들어하고, 직장에서 전쟁과 같은 일상을 견디고 있다. 그런 청년들에게 봉사나 사역을 무작정 강요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걱정하는 문제를 충분히 공감해주고 격려해줘야 한다. 그것이 우선이다.
둘째, 교회는 청년들에 대한 체계적인 신앙교육을 해야 한다. 청년들에게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 그들이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받고 실족하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알려줘야 한다. 또한 목회자의 방이 청년들을 위해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 그들이 목회자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주일밖에 없다. 하지만 주일마저도 담당목사를 만나는 게 쉽지 않다. 청년들이 목회자를 찾아가 고민을 스스럼없이 털어놓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다. 교회의 문턱이 높아지면 마음의 턱도 높아지는 법이다.
셋째, 또래 청년들이 교회를 떠난 친구들에게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교회를 이미 떠났다고 방치하는 것은 곤란하다. 교회를 떠난 청년들을 가장 잘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대상은 결국 청년들이다. 청년들의 작은 섬김이 교회를 떠난 청년들을 품는 가장 크고 따뜻한 품이 될 수 있다. 지금 당장 교회에 나오지 않고 있는 친구, 순원,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보자. “어떻게 지내니?”, “요즘 고민이 무엇이니?”라고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다. 직접 만나서 함께 식사하고, 그들의 속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좋다. 마음을 담은 편지와 선물을 전달하는 방법도 있다. 자신을 잊지 않고 기도해주는 든든한 동역자가 있다는 것을 되새겨줘야 한다. 실제로 I자매(33세, 취업준비생)는 “교회 리더십의 권위적인 태도 때문에 교회를 떠난 적이 있었는데 순원들의 지속적인 사랑과 관심으로 다시 교회에 나올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J씨(26세, 학생)가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진짜 속내를 내비쳤다. 이 청년의 고백이 교회를 떠난 모든 청년들의 속마음일지도 모른다.
“다시 교회에 가고 싶어요.”
“양 100마리를 가진 사람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고 하면 그가 99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그 양을 찾아다니지 않겠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만약 그 양을 찾게 되면 그는 길 잃지 않은 99마리 양보다 오히려 그 한 마리 양 때문에 더욱 기뻐할 것이다”(마 18:12~14).
기고
청년들이 다시 돌아오는 교회
예배의 회복, 공동체성 회복, 소통의 회복
예배의 회복, 공동체성 회복, 소통의 회복
청년들은 교회의 미래이며 민족의 미래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시대 한국 교회의 현실은 미래에 대한 전망을 어둡게 만든다. 통계에 의하면 최근 10여 년 사이에 20~30대 청년들이 교회를 급격하게 떠나고 있다. 많은 한국 교회에서 이미 청년부가 사라지고 있고, 청년부가 존재하는 교회도 그 숫자가 급격히 줄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아직까지 온누리교회에는 하나님께서 많은 청년들을 보내주고 계시지만 한국 교회 전체가 겪고 있는 어려움에 온누리교회만 예외로 남아 있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은 교회를 떠나는 청년들에 대한 대안을 준비해야 할 때이다.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지 않게 할 뿐 아니라 떠난 청년들이 다시 돌아오는 공동체가 될 수 방법을 나누고자 한다.
잃어버린 청년들을 다시 찾는 방법
첫째, 하나님과의 진정한 만남이 있는 예배가 회복되어야 한다. 많은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게 되는 일차적인 이유는 청년들의 눈에 세상이 교회보다 화려하고 매력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더 본질적인 이유는 이전에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더 크다. 어릴 때에는 부모님을 따라 습관적으로라도 신앙생활을 했지만 청년이 된 후에는 진정한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는 상태에서 형식적인 신앙을 지속하기 어렵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청년들은 더 이상 전통적 권위에 무조건 따라가지 않는다. 자신이 직접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쉽게 따라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소망이 있는 것은 이 시대 물질문명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내면의 영적인 갈망도 동시에 커지기 때문이다. 청년들을 위한 가장 본질적인 대안은 하나님과의 진정한 만남이 있는 예배를 회복하는 것이다. 방황하던 청년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중요한 자리는 주일예배이다. 온누리교회 주일예배에 이른바 ‘안개성도’가 되어서 이리저리 방황하는 많은 청년들이 많이 찾아온다. 그러한 청년들이 예배 가운데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인생의 참된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면 다시 공동체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실제로 깊은 영적 방황 속에 있었던 청년들이 다시 공동체로 돌아오게 된 가장 중요한 계기가 오래간만에 드렸던 예배였다는 고백들이 많다.
우리가 잃어버린 청년들을 다시 찾기 위해 가장 총력을 기울여야 할 곳은 예배의 자리이다.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예배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 매주 예배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예배, 성령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예배가 되도록 온 마음을 다해 기도로 준비해야 한다. 교회가 형식적인 종교의식만 남은 곳이 아니라 진짜 하나님이 임하셨다는 소식이 들릴 때 떠났던 청년들이 돌아오기 시작할 것이다.
둘째,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는 공동체성을 회복해야 한다.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중요한 또 한 가지의 이유는 공동체에서 겪은 관계의 문제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아직 소망이 있는 것은 이 시대 청년들에게 있는 공동체를 향한 갈망이다. 물질문명이 발달하고 개인주의가 커져갈수록 청년들의 마음에는 어디엔가 소속되고자 하는 갈망이 커져간다. 의례적이고 형식적으로 세워지는 조직에 대해서는 반감을 가지지만, 진정으로 마음을 나누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공동체에 소속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이다. 우리가 만약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공동체성을 회복할 수만 있다면 청년들은 공동체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 영혼을 향한 사랑의 회복이다. 이러한 공동체가 이루어지는 가장 중요한 단위는 ‘순’이다. 청년들이 실제로 만나는 공동체는 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순 하나 하나가 단순한 관리조직이 아니라 살아있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곳에서 말씀 중심의 양육과 삶의 나눔을 통해 풍성한 하나님을 만나고, 서로가 서로를 붙잡아 주는 사랑의 관계가 회복될 때 청년들은 교회를 떠날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대학에 들어오면서 교회를 떠났던 한 청년이 공동체에 돌아올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공동체에서 만난 지체들의 사랑과 관심이었다는 고백을 들었던 적이 있다. 다른 한 청년은 삶이 힘들어지고 신앙에 대한 회의를 느끼면서 교회를 몇 달 동안 떠났었는데 공동체 순원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 덕분에 공동체에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고 했다. 또 어떤 청년은 오랫동안 교회를 떠나 있었는데 교회 친구가 자신을 잊지 않고 수련회로 초대해주었고 그 수련회에서 하나님을 만나 이제는 공동체 순장으로 섬길 만큼 성장하기도 했다. 그냥 내버려 두었다면 아무도 모르게 사라졌을 청년들을 놓치지 않고 사랑해 주었던 순원들을 통해 주님의 몸 된 교회 공동체에 잘 정착하게 된 것이다.
성인공동체와 청년 사이의 세대 간 연결도 매우 중요하다. 청년의 때는 믿음의 모델, 삶의 멘토가 필요한 시기이다. 교회를 떠나고자 하는 마음이 들어도 공동체에 모델이 되는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의 사랑과 격려를 받는다면 떠나지 않게 될 것이다. 실제로 한 청년은 교회에서 연결된 권사님과의 만남을 통해 너무나 큰 은혜를 받았고, 그 만남으로 인해 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성장을 경험했다고 이야기했다. 성인세대와 청년세대가 일대일제자양육으로 연결되고, 믿음이 계승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다시 말해 성인세대가 청년들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품어주는 것이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지 않게 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청년들은 더 이상 전통적 권위에 무조건 따라가지 않는다. 자신이 직접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쉽게 따라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소망이 있는 것은 이 시대 물질문명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내면의 영적인 갈망도 동시에 커지기 때문이다. 청년들을 위한 가장 본질적인 대안은 하나님과의 진정한 만남이 있는 예배를 회복하는 것이다. 방황하던 청년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중요한 자리는 주일예배이다. 온누리교회 주일예배에 이른바 ‘안개성도’가 되어서 이리저리 방황하는 많은 청년들이 많이 찾아온다. 그러한 청년들이 예배 가운데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인생의 참된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면 다시 공동체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실제로 깊은 영적 방황 속에 있었던 청년들이 다시 공동체로 돌아오게 된 가장 중요한 계기가 오래간만에 드렸던 예배였다는 고백들이 많다.
우리가 잃어버린 청년들을 다시 찾기 위해 가장 총력을 기울여야 할 곳은 예배의 자리이다.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예배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 매주 예배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예배, 성령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예배가 되도록 온 마음을 다해 기도로 준비해야 한다. 교회가 형식적인 종교의식만 남은 곳이 아니라 진짜 하나님이 임하셨다는 소식이 들릴 때 떠났던 청년들이 돌아오기 시작할 것이다.
둘째,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는 공동체성을 회복해야 한다.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중요한 또 한 가지의 이유는 공동체에서 겪은 관계의 문제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아직 소망이 있는 것은 이 시대 청년들에게 있는 공동체를 향한 갈망이다. 물질문명이 발달하고 개인주의가 커져갈수록 청년들의 마음에는 어디엔가 소속되고자 하는 갈망이 커져간다. 의례적이고 형식적으로 세워지는 조직에 대해서는 반감을 가지지만, 진정으로 마음을 나누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공동체에 소속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이다. 우리가 만약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공동체성을 회복할 수만 있다면 청년들은 공동체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 영혼을 향한 사랑의 회복이다. 이러한 공동체가 이루어지는 가장 중요한 단위는 ‘순’이다. 청년들이 실제로 만나는 공동체는 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순 하나 하나가 단순한 관리조직이 아니라 살아있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곳에서 말씀 중심의 양육과 삶의 나눔을 통해 풍성한 하나님을 만나고, 서로가 서로를 붙잡아 주는 사랑의 관계가 회복될 때 청년들은 교회를 떠날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대학에 들어오면서 교회를 떠났던 한 청년이 공동체에 돌아올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공동체에서 만난 지체들의 사랑과 관심이었다는 고백을 들었던 적이 있다. 다른 한 청년은 삶이 힘들어지고 신앙에 대한 회의를 느끼면서 교회를 몇 달 동안 떠났었는데 공동체 순원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 덕분에 공동체에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고 했다. 또 어떤 청년은 오랫동안 교회를 떠나 있었는데 교회 친구가 자신을 잊지 않고 수련회로 초대해주었고 그 수련회에서 하나님을 만나 이제는 공동체 순장으로 섬길 만큼 성장하기도 했다. 그냥 내버려 두었다면 아무도 모르게 사라졌을 청년들을 놓치지 않고 사랑해 주었던 순원들을 통해 주님의 몸 된 교회 공동체에 잘 정착하게 된 것이다.
성인공동체와 청년 사이의 세대 간 연결도 매우 중요하다. 청년의 때는 믿음의 모델, 삶의 멘토가 필요한 시기이다. 교회를 떠나고자 하는 마음이 들어도 공동체에 모델이 되는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의 사랑과 격려를 받는다면 떠나지 않게 될 것이다. 실제로 한 청년은 교회에서 연결된 권사님과의 만남을 통해 너무나 큰 은혜를 받았고, 그 만남으로 인해 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성장을 경험했다고 이야기했다. 성인세대와 청년세대가 일대일제자양육으로 연결되고, 믿음이 계승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다시 말해 성인세대가 청년들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품어주는 것이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지 않게 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탕자의 아버지처럼
셋째, 청년세대와 소통을 회복해야 한다.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게 되는 또 한 가지 중요한 문제는 진리를 청년들에게 전하는 방식의 문제이다. 지금 청년들은 다원주의, 상대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 시대는 각자의 생각과 느낌을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이다. 이 시대 청년들에게 이전 세대와 같은 일방적인 소통 방식은 통하기 어렵다.
청년들을 교회에서 담아내기 위해서는 먼저 다양한 의견과 질문을 받아줄 수 있는 공동체 문화의 변화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질문할 수 있고,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열린 공동체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실제로 공동체 안에는 다양한 신앙적 질문과 의견을 가지고 있는 청년들이 있다. 교회는 그 청년들에게 일방적으로 교훈만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질문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는 과정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리를 전하되 공감과 경청, 대화를 통한 설득의 과정이 중요하다.
소통에 있어서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청년들의 구체적인 삶의 문제에 대하여 반응하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소통이란 상대의 어려움을 공감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진로와 취업의 문제, 갈수록 어려워지는 결혼문제 등 청년들이 부딪히고 있는 실제의 삶은 너무나 힘들다. 이러한 청년들의 어려움을 먼저 공감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그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올바른 성경적인 관점을 알려 주어야 한다. 그 길을 먼저 걸어갔던 성인세대가 멘토가 되어서 격려하고 축복해 준다면 청년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탕자의 비유에서 탕자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곳에 기다리는 아버지와 먹을 양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회를 떠난 청년들의 영혼 깊은 곳에는 진리를 향한 갈망이 있고, 진정으로 나를 받아주고 사랑해줄 공동체로 돌아가기 원하는 갈망이 있다. 이러한 청년들을 위해 교회에 필요한 것은 탕자의 아버지처럼 그들을 끝까지 기다려주고, 그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품어줄 수 있는 사랑이다. 또한 깊은 영적 굶주림 가운데 있는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진리의 양식이 필요하다. 교회를 떠나간 청년들이 주님께 돌아와 다음 시대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사람들로 세워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우리 공동체가 바로 그 역할을 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 김승수 목사(대학청년본부장)
청년들을 교회에서 담아내기 위해서는 먼저 다양한 의견과 질문을 받아줄 수 있는 공동체 문화의 변화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질문할 수 있고,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열린 공동체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실제로 공동체 안에는 다양한 신앙적 질문과 의견을 가지고 있는 청년들이 있다. 교회는 그 청년들에게 일방적으로 교훈만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질문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는 과정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리를 전하되 공감과 경청, 대화를 통한 설득의 과정이 중요하다.
소통에 있어서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청년들의 구체적인 삶의 문제에 대하여 반응하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소통이란 상대의 어려움을 공감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진로와 취업의 문제, 갈수록 어려워지는 결혼문제 등 청년들이 부딪히고 있는 실제의 삶은 너무나 힘들다. 이러한 청년들의 어려움을 먼저 공감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그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올바른 성경적인 관점을 알려 주어야 한다. 그 길을 먼저 걸어갔던 성인세대가 멘토가 되어서 격려하고 축복해 준다면 청년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탕자의 비유에서 탕자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곳에 기다리는 아버지와 먹을 양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회를 떠난 청년들의 영혼 깊은 곳에는 진리를 향한 갈망이 있고, 진정으로 나를 받아주고 사랑해줄 공동체로 돌아가기 원하는 갈망이 있다. 이러한 청년들을 위해 교회에 필요한 것은 탕자의 아버지처럼 그들을 끝까지 기다려주고, 그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품어줄 수 있는 사랑이다. 또한 깊은 영적 굶주림 가운데 있는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진리의 양식이 필요하다. 교회를 떠나간 청년들이 주님께 돌아와 다음 시대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사람들로 세워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우리 공동체가 바로 그 역할을 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 김승수 목사(대학청년본부장)
작성자 권찬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