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세계관으로 살아가기-교육] 동행하는 교육
기독교 세계관으로 살아가기-교육
동행하는 교육
“선생님, 식사 한번 해요!”
1987년 교사로 처음 부임했을 때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제자의 전화였다.
“그래 오랜만이구나! 언제 호주에서 귀국한 거야?”
간간이 소식을 들어왔던 차에 근황을 물었다.
“네, 서울에서 교회를 개척했어요!”
호주에서 한인 교회 목회를 성공적으로 하다가 귀국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런데 지난주 설교 중에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내 얘기를 했다고 한다. 설교를 들었던 대학생 딸이 “아빠는 그 선생님을 자주 찾아뵙고 있어요?”라고 물어봤다고 한다. 그 질문에 머뭇거리던 아빠에게 딸이 “나쁜 제자네!”라고 야단을 맞았다는 것이다. 그 제자는 서울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는 여주로 내려와서 다니던 중에 초임 교사인 나를 만났다. 그 제자의 아버지는 한국은행에서 근무하셨다. 그분은 월급을 집에 가져오지 않고 농촌에 도서를 보급하는 일을 하시고, 나중에 목회자가 되어 서울역 노숙자의 대부로 살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분이었다. 그 학생은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에 가정을 돌보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반감으로 본드를 흡입하고, 음주와 흡연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어느 날 방과 후에 있었던 일이다. 술에 취한 듯한 얼굴로 학교 야외 수영장에서 옷을 입은 채 수영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야단을 치려고 다가갔다. 그는 오히려 내게 “선생님은 나쁜 짓 한 번도 안 하고 사셨어요?”라며 대들었다. 돌발적인 상황이 당혹스러웠다. 물론 나쁜 짓을 전혀 안 하고 살지는 않았지만, 너무 당황해서 내일 아침에 조용히 만나자고 하고 상황을 마무리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그 학생은 학교폭력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켰고, 학교에서는 퇴학이나 권고 전학 등 징계 절차를 논의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나는 상담을 통해 그 학생의 상처에 공감해 주었다. 그가 회복되는 것을 느꼈기에 교감선생님에게 내가 책임을 질 테니 맡겨달라고 했다. 퇴학당하게 하지 않는 조건으로 온누리교회 주일예배에 네 번을 함께 참석하자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조금은 무모한 제안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천하보다 한 영혼을 소중하게 여기시기에 그 뜻을 잘 아는 한 교사의 순수한 동기를 외면하지 않으셨다.
윌머 R.위트는 “제자는 스승을 모방한다”고 말했다. 교사로서 제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방법은 삶으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예수님이 열두 제자들과 삶을 나누고,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세워나가는 사역을 하신 것처럼 말이다. 바울도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롬 15:14)라고 권면했다. 그 학생이 나중에 고백하기를 세 번째 예배에 참석할 때까지는 아무 감동이 없었는데, 선생님과 약속한 네 번째 주일예배에 참석했을 때 하용조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성령님이 강하게 마음을 터치해 주셨다고 했다. 그 학생은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자가 되어 KOSTA 강사도 했고, 지금은 대학교에서 강의도 하고 있다.
회칠한 무덤처럼 왜곡되고 뒤틀린 가식이 진실을 덮고 있는 세상 속에서 온누리교회 차세대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눈물의 기도를 멈추지 않는 교회학교 교사들의 섬김이 그래서 더 소중하고 아름답다. 다음 세대에게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비전으로 살아가게 하는 일은 멈출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1953년 전쟁의 폐허 속에서 인문계 중·고등학교를 설립하신 선친의 뒤를 이어 교사를 거쳐 교장으로 정년퇴직하고, 이사장으로 섬길 수 있는 은혜에 감사하고 있다. 그래서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설립된 미션스쿨로 왕따 없는 학교, 다니고 싶은 학교, 행복한 학교를 지향하며 투명한 경영을 위해 노력해왔다.
교육 현장에서 말로 가르치는 지식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많이 체험해 왔다. 우리 옆에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이 있다. 그 청소년들의 파도치는 삶에는 동반자가 필요하다. 동반자의 조건은 동경이나 동정이 아니라 동행이다. 제자들과 동행하며 삶으로 가르치신 예수님의 행적을 깊이 묵상해본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사 42:3).
/ 임희창 장로(동대문중랑공동체)
1987년 교사로 처음 부임했을 때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제자의 전화였다.
“그래 오랜만이구나! 언제 호주에서 귀국한 거야?”
간간이 소식을 들어왔던 차에 근황을 물었다.
“네, 서울에서 교회를 개척했어요!”
호주에서 한인 교회 목회를 성공적으로 하다가 귀국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런데 지난주 설교 중에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내 얘기를 했다고 한다. 설교를 들었던 대학생 딸이 “아빠는 그 선생님을 자주 찾아뵙고 있어요?”라고 물어봤다고 한다. 그 질문에 머뭇거리던 아빠에게 딸이 “나쁜 제자네!”라고 야단을 맞았다는 것이다. 그 제자는 서울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는 여주로 내려와서 다니던 중에 초임 교사인 나를 만났다. 그 제자의 아버지는 한국은행에서 근무하셨다. 그분은 월급을 집에 가져오지 않고 농촌에 도서를 보급하는 일을 하시고, 나중에 목회자가 되어 서울역 노숙자의 대부로 살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분이었다. 그 학생은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에 가정을 돌보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반감으로 본드를 흡입하고, 음주와 흡연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어느 날 방과 후에 있었던 일이다. 술에 취한 듯한 얼굴로 학교 야외 수영장에서 옷을 입은 채 수영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야단을 치려고 다가갔다. 그는 오히려 내게 “선생님은 나쁜 짓 한 번도 안 하고 사셨어요?”라며 대들었다. 돌발적인 상황이 당혹스러웠다. 물론 나쁜 짓을 전혀 안 하고 살지는 않았지만, 너무 당황해서 내일 아침에 조용히 만나자고 하고 상황을 마무리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그 학생은 학교폭력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켰고, 학교에서는 퇴학이나 권고 전학 등 징계 절차를 논의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나는 상담을 통해 그 학생의 상처에 공감해 주었다. 그가 회복되는 것을 느꼈기에 교감선생님에게 내가 책임을 질 테니 맡겨달라고 했다. 퇴학당하게 하지 않는 조건으로 온누리교회 주일예배에 네 번을 함께 참석하자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조금은 무모한 제안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천하보다 한 영혼을 소중하게 여기시기에 그 뜻을 잘 아는 한 교사의 순수한 동기를 외면하지 않으셨다.
윌머 R.위트는 “제자는 스승을 모방한다”고 말했다. 교사로서 제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방법은 삶으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예수님이 열두 제자들과 삶을 나누고,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세워나가는 사역을 하신 것처럼 말이다. 바울도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롬 15:14)라고 권면했다. 그 학생이 나중에 고백하기를 세 번째 예배에 참석할 때까지는 아무 감동이 없었는데, 선생님과 약속한 네 번째 주일예배에 참석했을 때 하용조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성령님이 강하게 마음을 터치해 주셨다고 했다. 그 학생은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자가 되어 KOSTA 강사도 했고, 지금은 대학교에서 강의도 하고 있다.
회칠한 무덤처럼 왜곡되고 뒤틀린 가식이 진실을 덮고 있는 세상 속에서 온누리교회 차세대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눈물의 기도를 멈추지 않는 교회학교 교사들의 섬김이 그래서 더 소중하고 아름답다. 다음 세대에게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비전으로 살아가게 하는 일은 멈출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1953년 전쟁의 폐허 속에서 인문계 중·고등학교를 설립하신 선친의 뒤를 이어 교사를 거쳐 교장으로 정년퇴직하고, 이사장으로 섬길 수 있는 은혜에 감사하고 있다. 그래서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설립된 미션스쿨로 왕따 없는 학교, 다니고 싶은 학교, 행복한 학교를 지향하며 투명한 경영을 위해 노력해왔다.
교육 현장에서 말로 가르치는 지식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많이 체험해 왔다. 우리 옆에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이 있다. 그 청소년들의 파도치는 삶에는 동반자가 필요하다. 동반자의 조건은 동경이나 동정이 아니라 동행이다. 제자들과 동행하며 삶으로 가르치신 예수님의 행적을 깊이 묵상해본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사 42:3).
/ 임희창 장로(동대문중랑공동체)
작성자 김다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