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말씀해설] “… 돈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 55:1)
맛있는 말씀해설
“… 돈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 55:1)
<이사야>에 나오는 “돈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 문자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면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신다는 뜻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이 본문을 분석해 보면 우리가 구하는 것에 대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는 ‘은혜 수여 방식’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사야> 54장에서 하나님은 죄에 빠진 이스라엘이 다시 회복될 거라는 희망의 약속을 주고 계신다. 55장에서는 그 이스라엘이 하나님 나라에 초대받는 구조가 나타나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거룩한 프로포즈를 받았음에도 여전히 고집과 불순종으로 돌아오지 않으려고 한다. 사실 이 모습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 된 우리의 불성실한 모습과 같다. 그러나 변함없이 신실하신 하나님은 먼저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회복의 은혜를 베풀고 계신다. 즉, 영적으로 실패한 누구라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려있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그 대상이 바로 ‘목마른 자들’이고, ‘돈 없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는 은유적 표현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영적 무가치한 자를 의미한다(마 5:6). 이들은 지치고, 체념하고, 자포자기한 자신을 의지할 수 없는 자들이다. 이러한 자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수용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다윗에게 허락한 은혜처럼,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들처럼 말이다(3절).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거룩한 초대는 행위가 아닌 오직 은혜로만 가능한 것임을 말하고 있다. 놀라운 은혜를 설명하기 위해 <이사야>는 감탄사와 역설적 표현을 연속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스스로 할 수 없는 자에게 오라고 말한다든가, 돈 없는 자에게 무엇을 사라고 하는 표현이 그러하다. 이것은 역설적 표현이다. 그들은 너무 가난해서 아무것도 살 수 없는 자들이고, 목마른 자들은 자신의 힘으로 살다가 지쳐 쓰러져 스스로 무엇을 감당하기가 어려운 자들이다. 한마디로 영적인 부도 또는 파산한 사람들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런데도 왜 이사야 선지자는 이러한 표현으로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누군가 대신 값을 지불했음을 암시하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너희가 원하는 방식으로 실패했으니 이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순종하면 다시는 실패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다 준비해 놓았으니 마음 문을 열어서 그분을 주인으로 모시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값없다’는 말을 공짜로 보면 안 된다. 그것은 ‘값싼’(cheap) 의미가 아니라 ‘도저히 값을 매길 수 없는’(priceless) 은혜가 주어졌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사야 선지자가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구원이요,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할 하나님 나라임을 보여주고 있다.
‘포도주와 젖’, ‘잣나무와 화석류(13절)’는 하나님이 통치하실 때 임하는 샬롬의 기쁨과 풍요와 수확과 승리를 의미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해 주셨으니 이제 우리가 초대에 와야만 하는 이유가 너무 분명하다. 이스라엘의 생각보다 하나님의 뜻이 높기 때문이고(사 55:8~9),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되기 때문이며(사 55:10~11), 확실히 초대에 순종하면 그들이 받게 될 복이 엄청나기 때문이다(사 55:12~13).
이 내용에 비춰보면 우리가 앞서 논의한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는 말씀은 결코 개인의 간구와 기도가 이뤄지는 데 있지 않다. 죄에 빠진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살 수 있다는 사랑의 권면과 돌이키면 살아날 수 있다는 회복의 말씀으로 해석될 수 있다.
/ 김상수 목사(대전온누리교회)
<이사야> 54장에서 하나님은 죄에 빠진 이스라엘이 다시 회복될 거라는 희망의 약속을 주고 계신다. 55장에서는 그 이스라엘이 하나님 나라에 초대받는 구조가 나타나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거룩한 프로포즈를 받았음에도 여전히 고집과 불순종으로 돌아오지 않으려고 한다. 사실 이 모습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 된 우리의 불성실한 모습과 같다. 그러나 변함없이 신실하신 하나님은 먼저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회복의 은혜를 베풀고 계신다. 즉, 영적으로 실패한 누구라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려있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그 대상이 바로 ‘목마른 자들’이고, ‘돈 없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는 은유적 표현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영적 무가치한 자를 의미한다(마 5:6). 이들은 지치고, 체념하고, 자포자기한 자신을 의지할 수 없는 자들이다. 이러한 자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수용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다윗에게 허락한 은혜처럼,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들처럼 말이다(3절).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거룩한 초대는 행위가 아닌 오직 은혜로만 가능한 것임을 말하고 있다. 놀라운 은혜를 설명하기 위해 <이사야>는 감탄사와 역설적 표현을 연속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스스로 할 수 없는 자에게 오라고 말한다든가, 돈 없는 자에게 무엇을 사라고 하는 표현이 그러하다. 이것은 역설적 표현이다. 그들은 너무 가난해서 아무것도 살 수 없는 자들이고, 목마른 자들은 자신의 힘으로 살다가 지쳐 쓰러져 스스로 무엇을 감당하기가 어려운 자들이다. 한마디로 영적인 부도 또는 파산한 사람들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런데도 왜 이사야 선지자는 이러한 표현으로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누군가 대신 값을 지불했음을 암시하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너희가 원하는 방식으로 실패했으니 이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순종하면 다시는 실패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다 준비해 놓았으니 마음 문을 열어서 그분을 주인으로 모시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값없다’는 말을 공짜로 보면 안 된다. 그것은 ‘값싼’(cheap) 의미가 아니라 ‘도저히 값을 매길 수 없는’(priceless) 은혜가 주어졌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사야 선지자가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구원이요,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할 하나님 나라임을 보여주고 있다.
‘포도주와 젖’, ‘잣나무와 화석류(13절)’는 하나님이 통치하실 때 임하는 샬롬의 기쁨과 풍요와 수확과 승리를 의미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해 주셨으니 이제 우리가 초대에 와야만 하는 이유가 너무 분명하다. 이스라엘의 생각보다 하나님의 뜻이 높기 때문이고(사 55:8~9),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되기 때문이며(사 55:10~11), 확실히 초대에 순종하면 그들이 받게 될 복이 엄청나기 때문이다(사 55:12~13).
이 내용에 비춰보면 우리가 앞서 논의한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는 말씀은 결코 개인의 간구와 기도가 이뤄지는 데 있지 않다. 죄에 빠진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살 수 있다는 사랑의 권면과 돌이키면 살아날 수 있다는 회복의 말씀으로 해석될 수 있다.
/ 김상수 목사(대전온누리교회)
작성자 김다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