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호국보훈의 달--그곳에도 믿음의 선배들이 있었다
그곳에도 믿음의 선배들이 있었다
영주 성내교회, 예천 상락교회, 의성 엄주선 강도사 순교지
영주 성내교회, 예천 상락교회, 의성 엄주선 강도사 순교지
6월, 호국보훈의 달이다. 본지에서는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나라를 깊이 사랑했던 믿음의 조상들을 만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순례코스를 소개하고 있다. 그 마지막 코스는 경상북도 기독교 순례지다. 경상북도는 예로부터 불교와 유교가 강하게 뿌리 내린 지역이다. 그만큼 복음이 전파되기 힘들 것 같은 그곳에도 지역 복음화에 헌신하고,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했던 믿음의 선배들이 있었다. 그 중심에 영주시 성내교회, 예천군 상락교회, 의성군 엄주선 강도사 순교지가 있다.
/ 권찬송 기자 kcs123@onnuri.org
/ 권찬송 기자 kcs123@onnuri.org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은 불교문화가 융성한 지역이다. 영풍 비로사 석아미타 및 석비로자나불좌상(보물 996호), 비로사 진공대사보법탑비(경북유형문화재 4호), 영주 삼가동 석조당간지주(경북유형문화재 7호), 희방사 동종(경북유형문화재 226호), 영주 영전사 석조여래입상(경북유형문화재 324호), 백룡사 석조여래좌상(경북문화재자료 282호) 등 다수의 불교문화재가 있다. 그만큼 복음이 전파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선교 역사가 꽤 깊다.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며
아낌없이 채워주는 ‘성내교회’
아낌없이 채워주는 ‘성내교회’
뜨거운 햇볕이 기승을 부린 지난 22일, 고속도로를 한참 달려 도착한 곳은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이다. 그곳에 식지 않는 신앙 열정을 품고 있는 교회가 있다. 성내교회다. 성내교회는 무려 112년 동안 이 지역을 섬기고 있다.
1907년 미국 북장로회에서 파송 받은 선교사들과 부산진교회를 섬겼던 심취명 장로 등이 이 지역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 그때 복음을 받아들인 김기풍, 김창립, 이시동, 장사문, 이상호가 가정예배를 드리기 시작했고, 그 예배모임이 성내교회의 모태가 되었다. 1909년 3월 예배모임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초가를 구입해서 예배당을 지었다. 그때부터 이 예배모임을 풍기교회(성내교회의 초창기 이름)라고 불렀다.
풍기교회는 교육 사업에 큰 공헌을 했다. 1916년 영신학교, 1920년 기독교여자야학회 등을 설립했다. 태평교회(현 대응교회), 서사교회 등을 세워 지역복음화에도 헌신했다. 해방 이후 예배당을 이전하면서 교회 이름을 성내교회로 바꿨다.
112년이 지난 지금도 성내교회는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며 주민들의 필요를 아낌없이 채워주고 있다. 2004년에는 사회봉사관을 세워 독거노인과 결손가정을 위한 식사봉사를 하고 있다. 탁구, 전통 민화, 오카리나, 프랑스자수 등 문화교실도 개설해서 지역주민들이 다양한 취미생활 즐길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성내교회에는 큰 자랑거리가 있다. 역사박물관이다. 112년 전통을 자랑하는 성내교회의 자부심과 역사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연도별 교회사진, 역대 담임목사와 장로 사진, 주보, 헌금 주머니, 당회록, 성도들 성경필사, 1970년대에 사용하던 강대상, 오르간 등이 전시되어 있다. 성경책, 결혼증서 등 성도들이 사용하던 물건도 교회의 중요한 역사로 여기고 보관하고 있다.
경상북도 지역 복음화와 교육에 힘썼던 성내교회를 둘러보기 위해서는 예약이 필수다. 최갑도 원로목사의 생생한 설명도 들을 수 있다.
1907년 미국 북장로회에서 파송 받은 선교사들과 부산진교회를 섬겼던 심취명 장로 등이 이 지역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 그때 복음을 받아들인 김기풍, 김창립, 이시동, 장사문, 이상호가 가정예배를 드리기 시작했고, 그 예배모임이 성내교회의 모태가 되었다. 1909년 3월 예배모임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초가를 구입해서 예배당을 지었다. 그때부터 이 예배모임을 풍기교회(성내교회의 초창기 이름)라고 불렀다.
풍기교회는 교육 사업에 큰 공헌을 했다. 1916년 영신학교, 1920년 기독교여자야학회 등을 설립했다. 태평교회(현 대응교회), 서사교회 등을 세워 지역복음화에도 헌신했다. 해방 이후 예배당을 이전하면서 교회 이름을 성내교회로 바꿨다.
112년이 지난 지금도 성내교회는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며 주민들의 필요를 아낌없이 채워주고 있다. 2004년에는 사회봉사관을 세워 독거노인과 결손가정을 위한 식사봉사를 하고 있다. 탁구, 전통 민화, 오카리나, 프랑스자수 등 문화교실도 개설해서 지역주민들이 다양한 취미생활 즐길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성내교회에는 큰 자랑거리가 있다. 역사박물관이다. 112년 전통을 자랑하는 성내교회의 자부심과 역사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연도별 교회사진, 역대 담임목사와 장로 사진, 주보, 헌금 주머니, 당회록, 성도들 성경필사, 1970년대에 사용하던 강대상, 오르간 등이 전시되어 있다. 성경책, 결혼증서 등 성도들이 사용하던 물건도 교회의 중요한 역사로 여기고 보관하고 있다.
경상북도 지역 복음화와 교육에 힘썼던 성내교회를 둘러보기 위해서는 예약이 필수다. 최갑도 원로목사의 생생한 설명도 들을 수 있다.
113동안 그 자리를 지키며
신앙 유산 물려 준 ‘상락교회’
신앙 유산 물려 준 ‘상락교회’
성내교회에서 자동차로 40분 정도 달리면 예천 상락교회가 나온다. 상락교회는 경상북도 예천군 지보면 지보리 상락마을에 위치해 있는 작은 시골교회다. 상락교회가 있는 상락마을은 뿌리 깊은 불교문화는 물론이고, 유교문화의 본거지 중 하나다. 상락마을은 고려시대 ‘부리기’라고 불렸는데 부리기는 ‘부처터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불교에서는 상락이라는 지명이 옥토와 정토라는 단어를 뜻한다. 조선시대에는 유교가 융성했던 고장이었다. 보물 제 457호 ‘예천권씨 초간종택 별당’이 있는데 조선 중기의 문신 초간 권문해 선생의 할아버지 권오상이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경상북도유형문화재 210호로 지정된 ‘용궁 향교’도 있다. 이처럼 불교 문화와 유교 문화가 뿌리 깊이 내린 곳에서 상락교회는 무려 113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상락교회의 자랑 ‘100주년 기념관’을 둘러봤다. 상락교회 113년 역사를 현장감 있게 보여주는 사진과 각종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백승룡 목사는 113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킨 상락교회의 역할을 이렇게 설명했다.
“상락교회는 다음세대에 훌륭한 신앙의 유산을 물려 준 교회입니다.”
상락교회는 1906년 예천군 지보면 상락마을에 살던 양조환이 전병원, 김낙진과 함께 자신의 사랑방에서 예배드리면서 시작됐다. 그들의 전도로 마을 전체가 예수 믿고 교인이 되었다. 당시 상락마을은 예수 믿지 않는 집이 없을 정도로 크게 부흥했다. ‘낙동강 뱃사공만 빼놓고는 모두 예수 믿는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
복음에 눈을 뜬 상락마을 주민들은 자식들에게 가난과 무지를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주민들과 교회가 앞장서서 사립경세학교를 설립했다. 사립경세학교에서 상락교회 목사와 장로는 물론이고 대학총장 등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양성했다. 박사학위 소지자 70여 명, 목회자 40여 명, 장로 50여 명, 순교 및 순국자 3명을 배출했다. 신풍교회, 어신교회, 갈동교회 우망교회, 봉장교회, 죽동교회, 풍앙교회, 지보교회 등 총 8개 교회를 개척하기도 했다.
상락교회 100주년 기념관 옆에는 신사참배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옥고를 치르고, 6.25 한국전쟁에서 순교한 양재연 장로, 독립운동을 하다 일본 순사에게 죽임을 당한 양혜석 선생, 공산군 앞에서 예수를 부인하지 않아 순교한 엄주선 강도사의 순교비가 있다. 그 순교비 앞에서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고, 신앙 선배들의 고귀한 순교정신을 묵념해보는 것도 좋다.
“상락교회는 다음세대에 훌륭한 신앙의 유산을 물려 준 교회입니다.”
상락교회는 1906년 예천군 지보면 상락마을에 살던 양조환이 전병원, 김낙진과 함께 자신의 사랑방에서 예배드리면서 시작됐다. 그들의 전도로 마을 전체가 예수 믿고 교인이 되었다. 당시 상락마을은 예수 믿지 않는 집이 없을 정도로 크게 부흥했다. ‘낙동강 뱃사공만 빼놓고는 모두 예수 믿는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
복음에 눈을 뜬 상락마을 주민들은 자식들에게 가난과 무지를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주민들과 교회가 앞장서서 사립경세학교를 설립했다. 사립경세학교에서 상락교회 목사와 장로는 물론이고 대학총장 등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양성했다. 박사학위 소지자 70여 명, 목회자 40여 명, 장로 50여 명, 순교 및 순국자 3명을 배출했다. 신풍교회, 어신교회, 갈동교회 우망교회, 봉장교회, 죽동교회, 풍앙교회, 지보교회 등 총 8개 교회를 개척하기도 했다.
상락교회 100주년 기념관 옆에는 신사참배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옥고를 치르고, 6.25 한국전쟁에서 순교한 양재연 장로, 독립운동을 하다 일본 순사에게 죽임을 당한 양혜석 선생, 공산군 앞에서 예수를 부인하지 않아 순교한 엄주선 강도사의 순교비가 있다. 그 순교비 앞에서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고, 신앙 선배들의 고귀한 순교정신을 묵념해보는 것도 좋다.
경상북도 유일의 순교지
그 주인공 ‘엄주선 강도사’
그 주인공 ‘엄주선 강도사’
경상북고 기독교 유적지 마지막 목적지는 엄주선 강도사 순교지다. 엄 강도사 순교지는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옥정리 1028번지에 위치해 있다. 경상북도에 있는 유일한 순교지다. 2013년 한국기독교사적 제 10호로 지정될 정도로 그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는 기독교 유적지다. 엄주선 강도사 순교지에는 엄주선 강도사 동상과 기념비가 있다.
엄주선 강도사는 1919년 5월 23일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출생했다. 1935년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이후 부친과 함께 예천 상락교회에 출석했다. 1949년 12월 장로회신학교(현 장로회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1950년 5월 경상북도 청송군 화목교회에 부임했다. 1951년 2월 17일 홀로 기도하던 엄주선 강도사는 갑자기 들이닥친 공산군들에게 납치를 당했다. 당시 인민군은 “예수를 안 믿겠다고 약속하면 죽이지 않고 집으로 돌려보내 주겠다”고 회유했지만 그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결국 엄주선 강도사는 죽창으로 19군데나 찔려 순교를 당하고 만다. 엄주선 강도사 순교지에는 죽음 앞에서도 의연하게 믿음을 지켰던 강직한 신앙과 얼이 여전히 남아 있다.
문의: 성내교회 054-636-2344
상락교회 054-653-0491
엄주선 강도사는 1919년 5월 23일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출생했다. 1935년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이후 부친과 함께 예천 상락교회에 출석했다. 1949년 12월 장로회신학교(현 장로회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1950년 5월 경상북도 청송군 화목교회에 부임했다. 1951년 2월 17일 홀로 기도하던 엄주선 강도사는 갑자기 들이닥친 공산군들에게 납치를 당했다. 당시 인민군은 “예수를 안 믿겠다고 약속하면 죽이지 않고 집으로 돌려보내 주겠다”고 회유했지만 그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결국 엄주선 강도사는 죽창으로 19군데나 찔려 순교를 당하고 만다. 엄주선 강도사 순교지에는 죽음 앞에서도 의연하게 믿음을 지켰던 강직한 신앙과 얼이 여전히 남아 있다.
문의: 성내교회 054-636-2344
상락교회 054-653-0491
작성자 권찬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