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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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크리스천 문화 3. 장례사역 - 세상과 다른 크리스천의 장례문화

세상을 바꾸는 크리스천 문화 3.
장례문화
 
세상과 다른 크리스천의 장례문화 
 
위로와 축복이 있고, 죽음이 새 생명으로 
 
향내가 나고, 슬픔과 엄숙함, 어색함이 잔뜩 묻어있는 공간, 그리고 빠르게 차려지는 밥과 반찬들. 장례식장 분위기는 대체로 비슷하다. 상주를 포함한 고인의 가족들은 손님을 맞이하느라 슬픔을 느낄 틈도 없이 바쁘다. 빠르게 오가는 손님들은 자리에 앉아 고인과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한다. 떠나간 이에 대한 애도와 슬픔만이 가득하다. 그런데 크리스천의 장례문화는 세상의 장례문화와 조금 다르다. 고인에 대한 애도와 슬픔, 새로운 희망과 기대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슬픔보다는 위로와 축복이 가득하고, 죽음이 새 생명으로 이어지는 역사가 일어나는 크리스천들의 장례문화를 소개한다.
/ 홍하영 hha0@onnu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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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의 장례문화와 세상의 장례문화가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기독교인들은 죽음이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 말고 세상의 장례문화와 크리스천의 장례문화가 다른 점이 또 하나 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불러주지 않아도, 보상을 결코 바라지 않고 찾아가 섬기는 헌신이다. 장례사역팀이나 가깝게 지내던 교인들이 찾아와 정성껏 장례식을 섬기는 것을 보고 안 믿던 유가족들이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죽음이 새 생명으로 이어지는 역사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지난 5월 따뜻한 어느 봄날, 사랑하는 외할머니가 천국으로 떠나셨다. 처음 겪어보는 가족의 장례에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눈물을 흘리며 슬픔에 잠겨있던 내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 이들이 아직도 생각난다. 그 위로와 사랑, 축복 덕분에 외할머니를 보낸 3일을 슬픔보다 따뜻함으로 기억하게 됐다.
외할머니 장례식장에는 조문객들이 가득 했다. 저마다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외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뵈러 온 분들이었다. 그 많은 조문객 중에서 기억에 남는 분들이 있다. 자신의 일처럼 엄마(외할머니)를 잃은 엄마의 손을 붙잡고 함께 울어주는 분들이었다. 단순한 위로를 넘어서 하나님의 위로를 구하며 남겨진 유가족을 위해 기도해주시는 분들도 있었다. 그 손과 마음들이 참 따뜻하고 감사했다.
권사님이셨던 외할머니의 장례식은 예배로 시작해서 예배로 끝이 났다. 갑작스런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예배에 외할머니가 다니시던 교회 성도님들이 참석해주셨다. “권사님 천국에서 봐요”하며 외할머니의 영정사진 앞에서 담담하게 웃어 보이시던 한 권사님의 인사가 기억에 남는다. 이 땅에서의 이별이 영원한 이별이 아님을,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확신하는 인사였다. 그 담담한 인사를 들으면서 나는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사랑하는 외할머니를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안심이 됐기 때문이다. 그 권사님이 울고 있는 내 손을 잡아주시면서 “울지마 아가, 할머니가 천국에서 보고 계신대. 아프지 말고 건강해라”라고 말씀해주셨다. 그 순간 몸이 아픈 나를 볼 때마다 “아프지 말고 건강해라”고 말씀하시던 외할머니가 떠올랐다. 그 권사님의 인사가 나에게는 할머니와의 마지막 인사 같아서 정말 감사했다.
 
황은아 성도 아버지의 
‘감사의 밥상’
 
크리스천의 장례문화에는 애도와 추모가 있다. 하지만 절망적인 슬픔은 없다. 이 땅에서의 죽음이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잠시 슬픔에 잠겨 있다가도 천국에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위로를 얻는다. 때로는 죽음을 앞두고 지난날의 은혜를 감사하고, 영원한 안식을 기뻐하며, 감사의 축제를 열기도 한다. 
황은아 성도(강남D공동체)의 아버지는 올해 여름 천국으로 떠나셨다. 목사님이었던 황은아 성도의 아버지는 죽음을 앞두고 삶의 마지막 잔치 ‘감사의 밥상’을 열었다. 말기 췌장암을 앓고 있던 황은아 성도의 아버지는 천국으로 떠나기 5일 전 가족들과 함께 가까이 지내던 지인들을 초대해서 마지막 식탁교제를 나눴다. 무대 한 쪽에 젊은 시절 연애사진과 가족사진 등을 걸고, 지나온 세월이 묻어있는 흔적들을 전시했다. 삶의 마지막 잔치였던 감사의 밥상은 그 이름만큼 슬픔보다 감사가 넘쳐났다. 지나온 삶에 대한 감사와 영원한 안식에 대한 기대, 남겨질 가족들을 위한 위로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찬송으로 감사를 표현하고, 함께 모인 모든 사람들이 기쁨으로 교제하며 식탁을 나누었다. 잔치가 끝날 무렵에는 다 함께 축복하는 시간도 가졌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그 자리 모인 이들이 다 함께 찬양을 부르면서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황은아 성도의 아버지를 축복했다. 또 남겨질 가족들과 지인들의 삶을 축복했다. 황은아 성도 아버지의 얼굴에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의 아름다운 미소가 만개했다. 그곳에 모인 가족들과 지인들의 얼굴에도 안도와 감사가 가득했다. 슬픔보다 감사와 기대가 가득한 잔치를 열 수 있었던 것은 천국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황은아 성도는 아버지와 함께 나눈 마지막 식탁을 회상하면서 아버지가 보여주신 믿음의 길을 따라 걷겠다고 다짐했다.
“천국을 사모하며 죽음과 몸의 고통까지도 겁내지 않고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아빠의 모습을 보며 정말 놀랐어요.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으로 떠나는 행복한 여행임을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깨달았어요. 우리는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이 세상에서 그저 나그네로 살아가는 것이고, 그 사명이 모두 끝나면 주님 품에 안겨 영생을 누린다는 것을 목격하는 시간이었어요. 감사의 밥상은 아빠와의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고, 아빠와 진정으로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는 귀한 시간이기도 했어요. 먼 훗날 아빠를 천국에서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며 아빠가 보여주신 믿음의 길을 따라 걷고 싶어요.”
 
영원한 안식의 기쁨을 전해야한다
 
크리스천의 장례식은 죽음과 생명이 공존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우선 고인은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안식과 생명을 얻게 된다. 이 땅에서의 죽음이 천국에서의 영생이 되는 것이다. 
장례식을 치르면서 예수를 믿지 않던 유가족들이 구원을 받고 새 생명을 얻기도 한다. 장례식장에서 보여주는 성도들의 헌신적인 섬김을 보고 유가족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구원을 얻게 되는 경우다.
온누리교회에는 공동체별 장례사역팀이 있다. 공동체에서 장례가 발생하면 거기가 어디든 버선발로 뛰어나간다. 위로예배는 물론이고, 입관예배와 발인예배까지 모두 참석해서 슬픔에 빠진 유가족들을 위로한다. 장례식을 치를 일손이 부족하면 두 팔을 걷어붙이고 봉사를 하기도 한다. 내 가족의 일처럼 여기고, 모든 장례식 순서에 참석하는 장례사역팀을 보고 큰 감동을 받고 자신도 예수 믿겠다고 고백한 유가족들이 정말 많다.
김종민 목사(장례사역)는 크리스천들이 장례식장에서 가져야 할 마음과 보여야 할 태도에 대해 이렇게 조언했다.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는 함께 우십시오. 가족 중 누군가의 죽음은 남은 가족들에게 가장 힘들고 큰 슬픔의 시간입니다. 또한 구원의 확신, 천국의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믿음의 가정이라 할지라도 동일합니다. 그때 가장 중요한 것은 힘들고 슬픔 가운데 있는 유가족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함께 장례예배를 드리며 주님께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유가족들을 위로해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유가족들과 함께 슬퍼하고 함께 예배할 때 주님께서 슬픔보다 더 큰 위로와 평안과 소망의 은혜를 주십니다.”
크리스천에게 죽음은 세상에서의 죽음과 다르게 해석되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분명 천국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영원한 안식과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천국으로의 여행길을 축복하고, 축복 받으며 떠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영원한 안식의 기쁨을 우리만 알고 있어서는 안 된다. 슬퍼하는 자와 함께 울며 그들에게도 이 기쁨의 비밀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유가족들과 함께 자리를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를 전할 수 있다. 소중한 사람을 먼저 떠나보낸 남겨진 사람들과 함께 울고, 위로하며,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 아닐까?

작성자  홍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