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국내캠퍼스

[혐오사회 사랑심기 / 자기혐오] "나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귀한 사람

크리스천의 또 하나의 사명
‘혐오사회에 사랑심기’
 
“나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귀한 사람”
 
있는 그대로 나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사랑하기!
갈등과 다툼, 분열이 만연하다. 그래서 오늘날을 가리켜 ‘혐오의 시대’라 하는 것 같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차별하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시대다.
혐오(嫌惡)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시작한다. 다른 세대와 성별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다른 모습의 이웃을 품지 못하고, 다른 의견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 ‘나’를 잣대로 세우고 내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은 경계 대상이 된다. 그 잣대에 만족하지 못하면 자기 자신도 혐오 대상이다.
혐오 시대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교회와 크리스천은 이 삭막한 사회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심어야 한다. 이 지면에서는 ‘장애인혐오’, ‘아동·청소년혐오’, ‘노인혐오’, ‘젠더혐오’, ‘자기혐오’를 주제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치유하는 방법을 살펴본다. 크리스천들은 혐오가 일상이 된 사회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고, 그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하는지도 알아본다. 마지막 주제는 ‘자기혐오’다.
/ 홍하영 기자 hha0@onnuri.org
 
“I don’t wanna be you(나는 네가 되고 싶지 않아).”
미국 가수 빌리 아일리시의 노래 ‘I don’t wanna be you anymore‘의 가사 일부다. 이 노래에서 말하는 ‘너’는 ‘자기 자신’이다. 이 노래 뮤직비디오를 보면 빌리 아일리시가 거울에 비친 자신에게 손가락질하면서 “I don’t wanna be you anymore”라고 말한다. 절대 되고 싶지 않은 존재가 ‘나’라는 말만큼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말이 또 있을까? 자기 부정은 ‘자기혐오’의 한 방식이다.
자기혐오(自己嫌惡, self-loathing)란 자기 자신을 부정하거나 증오하고, 자신에 대한 분노감 내지는 선입견에 빠져 있는 상태를 말한다. 심리학에서는 자기혐오를 자존감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고 보고, 자기혐오에 빠진 사람을 ‘자존감이 저하된 상태’라고 진단한다.
자존감(자아존중감, 自我尊重感, self-esteem)은 자신의 능력과 가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와 태도를 의미한다. 자존감 척도에 따라 자기 자신을 얼마나 존중하고, 사랑하는지를 알아볼 수 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일수록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수록 자신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자기혐오,
자책과 비교에서 시작된다
 
있는 그대로 나의 모습을 존중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을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고, 결국 자신을 부정하고 미워하는 자기혐오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면 왜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할 수 없을까? 왜 자꾸 자신을 부정하고 미워하는 것일까? 자기혐오는 대부분 자책과 비교에서 시작된다. 
A자매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서도 늘 불안하다. 성경 말씀에 자신을 비춰볼 때마다 죄를 짓는 것 같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제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다. 친구들과 약속으로 주일예배에 참석하지 못하거나 헌금을 드리면서 아까운 마음이 들 때, 직장 동료를 험담할 때 등 말씀과 거리가 먼 행동을 할 때마다 죄를 짓는 것 같아서 마음이 정말 불편합니다.”
죄를 지었을 때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은 분명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다. 양심의 가책은 죄를 회개하고, 죄를 멀리하고, 다시 죄를 짓지 않도록 도와준다. 그러나 문제는 ‘죄를 짓는 자신’에 너무 몰두해서 자책을 시작하면 더 큰 어려움이 생긴다. A자매도 시간이 지날수록 자책이 심해졌다. 급기야 구원의 확신마저 흔들렸다.
“아무리 기도하고 노력해도 계속 죄를 짓는 저를 보면 정말 답답합니다. 왜 이렇게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지 실망스럽습니다. 날이 갈수록 신앙이 성숙해지는 다른 지체들을 보면 제가 너무 초라해집니다. 하나님께서도 더는 저를 사랑하지 않으실 것 같고요. 주일성수도 잘하고, 사역도 열심히 하고, 이웃들을 돌보는 일에도 앞장서는 지체들을 사랑하시지 왜 저를 사랑하시겠어요? 이제는 제가 정말 천국에 갈 수 있을지, 정말 구원받은 사람이 맞는지 겁이 납니다.”
자기혐오는 내면의 문제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외적인 콤플렉스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외적인 부분이야말로 남들과 비교하기 좋은 재료이기 때문이다. 몸무게가 부쩍 늘어 고민인 B자매는 거울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남들은 성공하는 다이어트를 매번 실패하는 자신이 한심하다.
“대학생 때보다 몸무게가 30kg이나 쪘어요. 살이 조금씩 찔 때마다 다이어트를 다짐했는데 매번 실패해요. 주위 사람들이나 인터넷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다들 다이어트에 성공하는데 저만 못하는 거 같더라고요. 아무래도 제 의지가 부족한 탓이겠죠? 몇 년째 말만 하고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제가 너무 한심해요.”
B자매는 일상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 나서는 게 겁이 나서 피하기 일쑤다. 
“살이 찌면서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거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 가는 게 무서워요. 제가 너무 뚱뚱해서 사람들이 모두 제 욕을 할 것만 같거든요. 사람들이 제게 그리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남들에게 보이는 자리에 나서고 싶지가 않아요. 아무리 누가 제게 좋은 말을 해줘도 거짓말처럼 느껴져요.”
 
자기혐오의 늪에서
벗어나는 방법
 
누구에게나 자기 자신이 밉고 싫어질 때가 있다. 뜻하지 않은 실수를 한 날, 자신의 신념에 맞지 않는 일을 했을 때, 외모에 문제가 생겼을 때 등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날이 있을 수 있다. 하루 이틀 그러다 나아지면 괜찮지만, 그 상태가 몇 주, 몇 달, 몇 년 지속하기도 한다. 그 기간에는 누가 아무리 좋은 말을 해줘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고, 자신의 단점에만 몰두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하찮은 존재로만 느껴진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경험이 많아지면 결국 자기혐오가 될 수 있다. 자신을 자꾸 평가 대상이자 비교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평가할수록 자기혐오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 자기혐오의 늪에서 벗어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나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귀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 확신이 서지 않을 때 묵상하면 좋은 말씀이 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창 1:27a).
이 말씀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귀한 존재다. 사정이 있어서 주일성수를 하지 못했다고 해서, 십일조를 드리지 못했다고 해서, 살이 쪘다고 해서, 키가 작다고 해서, 공부를 못한다고 해서, 가난하다고 해서 하찮은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세상에 둘도 없는 존귀한 존재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형상대로 만드셨고,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신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목숨을 걸 만큼 내 존재가 존귀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존귀하게 창조하시고, 예수님이 목숨을 걸 만큼 사랑하시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 

작성자  홍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