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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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말씀해설]“네 아내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창 17:15)

맛있는 말씀해설
 
“네 아내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창 17:15)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여러 민족의 아버지’라는 뜻의 ‘아브라함’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주셨고, 하나님의 훈련을 거쳐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에게도 ‘사라’라는 새로운 이름을 주시고, 남편과 대등하게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된다는 축복을 하셨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새로운 이름을 준 것은 성경 기록에서 손꼽을 정도로 드물다. 더욱이 여성에게 이름을 새로 주신 경우는 사라가 유일할 것이다. 그만큼 사래가 ‘사라’라는 새로운 이름을 하나님께 받은 것은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사라가 다시 젊어지는 놀라운 기적도 행하셨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사라’라는 새 이름들을 주셨을 때 아브라함은 이미 99세였고, 사라도 생리가 끊어져 자식을 낳을 소망을 잃어버린 때였다. 그래서 하나님이 “내년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사라가 속으로 웃은 것이다. 처음에는 믿지 못했던 사라는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다. <히브리서>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비록 그 자신이 너무 늙고 사라도 단산됐지만 임신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습니다. 이는 그가 약속하신 분을 신실한 분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히 11:11)라고 기록하고 있다. 임신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는 것은 사라가 다시 젊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야 아이를 잉태하고, 출산해서 젖을 먹이면서 양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라가 젊어졌다는 것은 그랄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부인으로 삼기 위해 데려간 사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창 20:2). 사라가 젊어지지 않았다면 경수가 끊어진 늙은 여인을 아비멜렉이 후손을 얻기 위해 데려갈 이유가 전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라가 젊었을 때의 미모를 되찾은 것이다. 사라가 젊었을 때 애굽 사람들이 보고 바로에게 알려 바로의 궁으로 가게 될 정도의 미모였다(창 12:14~15). 
사라가 다시 젊어지고, 미모를 되찾은 것은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 것과 같은 엄청난 기적이다. 세상의 어떤 누구도 늙어버린 몸을 회춘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라의 몸에 있는 노화된 세포들을 다시 젊은 세포로 되돌리는 놀라운 기적을 행하셨다. 창조의 능력이 있는 하나님이 늙은 몸을 젊게 하시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만, 사라에게 일어난 일은 전무후무(前無後無)한 기적이다. 하나님이 특별한 기적을 베푸신 이유는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서 인류 가운데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셨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실 때는 하나님의 초월적 개입이 항상 강력하게 있다. 창조와 부활은 물론이고, 교회가 탄생할 때도 그랬다. 사라가 다시 젊어져 이삭을 낳는 특별한 역사는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모든 인류의 조상으로 하신 것처럼, 아브라함과 사라를 모든 민족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기 위함이다. 
‘하와’라는 이름은 아담이 지은 것이지만, ‘사라’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지어주셨다. 아담의 범죄 이후 남편은 아내를 다스리는 위치가 되었지만, 믿음의 조상으로 아브라함과 사라를 세우실 때는 범죄 이전처럼 동등하게 대우해주신 것이다. 이것은 아브라함과 사라로부터 시작하는 한 가정의 역사는 바벨탑 반역 사건 이후 소망을 잃어버린 인류에게 새로운 믿음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는 믿음과 순종의 사람들에게 일어난다. 사라는 뛰어난 미모의 여성이었지만 아브라함을 “주”라 부르며 순종했다. 바로에게 끌려간 사건에서도 불평과 원망이 없다. 아비멜렉왕에게 끌려간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흔들리지 않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었던 사라처럼, 우리도 조용하고 견고한 믿음을 갖고 어두워져 가는 시대에 하나님께서 쓰시는 충성된 일꾼이 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통로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 이은일 장로(성북공동체,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작성자  정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