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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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말씀해설]“특히 예언하기를 간절히 구하십시오”(고전 14:1)

맛있는 말씀해설
                                                         
“특히 예언하기를 간절히 구하십시오”(고전 14:1)
 
“사랑을 추구하십시오. 신령한 것들을 열심히 구하되 특히 예언하기를 간절히 구하십시오”(고전 14:1). 
고린도교회는 AD 50년과 51년 바울이 2차 선교여행 중에 고린도 지역에 1년 6개월 머물면서 세운 교회다. 초기 고린도교회는 매우 빠르게 성장했고, 은사가 매우 강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일부 성도들이 잘못된 은사 이해를 하면서 건강한 교회를 어렵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그들은 성령의 선물인 은사를 가지고 우열의식을 가지고 싸우거나 그리스도의 몸인 형제자매들을 사랑하지 못하고, 특정 은사가 없는 사람을 조롱하고 업신여기기까지 했다. 오로지 자신이 가진 은사만이 최고이고, 다른 사람의 은사는 하찮은 것처럼 취급하기도 했다. 그 논쟁 가운데 ‘방언’과 ‘예언’에 대한 오해가 가장 컸던 것 같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안타까운 문제를 보면서 신학적인 답변을 제시해야만 했다. 은사로써 방언과 예언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 예언이란 앞날을 미리 아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린도전서의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린도교회는 많은 은사자들이 나타났지만, 영적으로 하나 되지 못하고 있었다. 다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공중예배가 무질서해지고, 교회의 영적 권위가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사도 바울은 은사의 올바른 목적과 다양성을 소개하고 있다. 
먼저 12장에서 교회 안에 다양한 은사를 소개하면서 방언은 다양한 은사 중 하나로써 신앙생활에 유익한 것이고, “질서 있게 하라”고 권면한다(고전 14:26~40). 중요한 것은 “하지 말라”가 아니라 “질서 있게 하라”는데 있다. 모든 은사는 사랑에 기초를 둬야 하고, 반드시 교회에 덕을 세우는 데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랑장’이라고 불리는 고린도전서 13장을 언급하며 12장과 14장을 잇는 중요한 가교를 제시하고 있다. 그가 사랑장에서 “사랑 없이 은사를 사용하는 것은 무익하고, 무의미하다”고까지 말하는 것으로 보아 사랑이야말로 가장 큰 은사임을 강조하고 있다. 사랑의 중요성을 언급한 뒤 바울은 14장 1절에서 방언과 예언을 서로 비교 대조하려고 한다. 14장 1절은 사랑의 중요성을 언급한 뒤에 “더 큰 은사들을 간절히 구하십시오”(고전 12:31)의 논의를 이어주며 본격적으로 방언과 예언의 차이를 설명한다. 더 큰 은사인 예언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다.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의 목적은 모두 한 성령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것은 나의 유익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으로, 공동체 안에서 우열이 없을 뿐 아니라 어떤 은사라도 사랑으로 행했는지의 기준이 가장 중요할 뿐이다(고전 12:3). 이 내용에 따르면 방언의 은사는 개인에게만 유익한 것이다. 통역을 필요로 하고, 자기만 알아듣는 언어로 기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예언(지식과 계시)은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하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공중예배 때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고,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전 14:6). 분명히 방언과 예언은 둘 다 신령하고 꼭 필요한 은사이다. 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방언으로 기도하고, 공중예배 때에는 자제하라는 것이 바울의 권면이다. 이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초대교회 모습은 오늘날 예배형식과 크게 달라서 카리스마적인 은사자들이 예배를 주도했던 것으로 보인다(고전 14:1~25). <1세기 교회예배이야기>라는 책을 보면 예배 도중에 예언자가 일어나서 순서대로 회중을 향해 예언하기도 한 것 같다. 고린도교회에서 보이듯이, 정경(Canon)이 없던 시기 성령의 은사는 사도적 교회와 기초를 세우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그러나 예언은 구약시대로부터 단순히 ‘미리 본다(foresee)’는 의미를 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신탁받은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가감없이 전하고, 알아들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한 책무에 해당됐다. 미래의 일을 말하는 것(豫; 미리 예)도 있지만, 하나님께 맡은 말씀을 옳게 전하는 것(預; 맡을 예)이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고린도전서 14장 1절의 ‘예언’은 신구약의 정경이 최종 완성된 오늘날 설교자의 설교에 해당한다. 오늘날 말씀의 은사를 맡은 설교자는 예언자적인 가슴으로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고, 성도들이 말씀을 쉽게 이해하고 일상생활에 적용할 수 있도록 전해야 할 책임이 있다.
/ 김상수 목사(대전온누리교회)  


 

 

작성자  정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