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주일강단-여자의 후손, 그리스도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 
창 3장 15절
이재훈 목사 
 
 
매년 12월 크리스마스트리를 준비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왜 오셨고, 어떻게 오셨는지를 마음 깊이 깨닫는 것입니다. 이번 대강절에는 성경의 처음 다섯 권의 책인 <모세오경>에 예수님께서 어떻게 오실 것을 미리 말씀하셨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세상에서는 후손이 조상을 기념하고 그 의미를 설명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반대입니다. 조상들이 후손으로 오실 예수님을 예언하고, 기념하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훌륭한 생애를 사셨기 때문에 메시아가 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메시아로 오실 것이 예언되었고, 그 예언대로 오셨고, 예언대로 모든 일을 이루셨습니다. 수천 년 역사 중에 예언을 따라 온 사람이 누가 있으며, 또 예언된 일을 온전히 이룬 이가 누가 있습니까? 예수님은 200개가 넘는 직간접적인 예언을 통해 오셨고, 그 예언이 예수님의 삶을 통해 온전히 이루어졌습니다. 그런 분이 단순한 인간일 수만은 없습니다. 그분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셔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랑이신 그분께서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셔서 이루실 일들에 대한 예언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신비하고 자연적인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결과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입니다.
 
 
놀라운 구원의 약속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네 자손과 여자의 자손 사이에 증오심을 두리니 여자의 자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하고 너는 그의 발뒤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창 3:15).
창세기 3장 15절 말씀이 첫 번째 예언입니다. 인간이 뱀의 유혹에 넘어간 것은 주권을 포기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 스스로 포기한 권리를 회복하시고, 인간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타락 시킨 사탄과 사탄의 종이 된 뱀에게 가장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뱀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 가운데 놀라운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이 바로 창세기 3장 15절입니다. 이 말씀은 장차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계획을 이루실 분이 오신다는 약속입니다. 구원자를 보내신다는 약속을 아담과 하와에게 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담과 하와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뱀에게 그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생각해 보면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뱀에게 “지금 너희가 인간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무너뜨리는 일을 하고 있지만 너는 결코 승리자가 될 수 없다. 나는 너희들의 활동을 결코 묵과할 수 없다. 너는 지금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을 유혹해서 타락시켜서 네가 역사의 승리자가 되고, 너의 나라를 만드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너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 나는 너는 패배할 것이다. 너는 멸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공의가 실행될 때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구원자는 공의를 온전히 실행하시는 분입니다. 인류를 유혹하여 넘어뜨린 사탄은 장차 오실 구원자를 통해 완전히 멸망합니다. 이 땅에 오시는 분은 구원자인 동시에 악한 자에 대한 심판자입니다. 그 구원자를 통해 사탄의 모든 간계는 수포가 되고, 그의 모든 권세가 무너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공의를 저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온전히 실행될 때 은혜가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에 따라 사탄을 완전히 정복하고, 처벌하므로 인간을 사탄의 통치로부터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가 실행되는 동시에 은혜가 실행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뱀에 대한 저주의 말씀 속에 놀라운 구원의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사탄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라 모두 인류에게 주신 구원의 약속입니다. 
 
 
두 후손의 갈등과 충돌
 
 
여러분, 최초의 복음을 ‘원복음’이라고도 말합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창세기 3장 15절을 근거로 다음과 같이 설교를 하셨습니다.  
“이것이 이 지구상에서 전해진 가장 첫 복음적 설교이다. 여호와 자신이 설교자이시고 인류 전체와 어둠의 권세자를 청중으로 하는 참으로 기념비적인 설교였다. 그것은 틀림없이 우리가 심혈을 기울여 들을 가치가 있다. 이처럼 위대한 복음의 약속이 이렇게도 죄를 범하는 즉시 전해졌다는 것이 놀랄만한 일이 아닌가.”  
최초의 설교, 하나님이 하신 복음의 설교입니다. 인간이 타락한 직후 주어진 모든 인류와 인간을 타락하도록 만든 어둠의 권세자 사탄에게 전하신 하나님의 설교입니다. 놀라운 설교입니다. 
히브리어는 대부분 동사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나 창세기 3장 15절은 명사부터 시작합니다.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구절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단어는 ‘증오심’입니다. 증오심을 하나님께서 직접 두신다고 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증오심을 둔다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악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없다면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증오심을 통해 사탄의 권세 아래 있는 인간들을 사탄으로부터 떼어내고, 사탄을 공의로 정복하시는 역사를 이루십니다. 하나님께서 증오심을 일으켜 일하시는 것입니다. 증오심과 적대감은 갈등이나 전쟁을 일으킵니다. 이 짧은 구절 안에 세 단계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뱀과 여자가 서로 적개심을 가지고 원수가 되어 싸우는 단계입니다. 두 번째단계는 뱀의 후손들과 여자의 후손들이 싸우는 단계입니다. 세 번째는 여자의 후손과 뱀이 다시 싸우는 단계입니다. 세 단계 모두 갈등과 전쟁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이 갈등과 전쟁을 일으키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사탄이 인간을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했고, 자신의 권세 아래 두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그 둘 사이에 적대감과 증오심을 일으켜서 선한 일을 하십니다. 여러분, 선이란 무엇입니까? 착한 일을 하는 것입니까? 선에 대한 가장 정확한 정의는 ‘악을 증오하는 것’입니다. 악에 대한 적개심이 없으면 선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악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심이 바로 선입니다. 하나님이 선하시기 때문에 악에 대한 심판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악에 대한 증오심을 일으키시는 것은 선한 전쟁을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악과 싸우고 있지 않으면 사탄의 지배 아래 있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악을 미워하지 않으면 악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에 속하기 위해서는 내 안에 있는 악을 끊임없이 미워해야 합니다. 자신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악을 미워해야 합니다.
첫 번째 단계에서 하나님은 뱀과 여자가 서로 원수가 되게 하셨습니다. 사탄이 여자에게 접근한 것은 좋아해서가 아닙니다. 도와주려는 것도 아닙니다. 질투심 때문입니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창조한 인간을 질투했습니다. 하나님을 질투했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을 질투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떼어 놓으려고 한 것입니다. 하와는 뱀 뒤에 있는 사탄을 보지 못했고, 그의 말에 속아서 그 속에 있는 질투를 보지 못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떠나는 일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하와와 사탄이 친구가 되지 못하도록 증오심을 넣어주셨습니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사탄의 후손들과 여자의 후손들의 전쟁입니다. 사탄의 자손이 누구일까요? 사실 사탄에게는 후손이 없습니다. 사탄이 자식을 낳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담과 하와의 자손 중에서 사탄의 편에 서 있는 후손들이 나타나 경건한 후손들과 갈등과 전쟁을 일으킨다는 의미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후손 중에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경건하게 살지만,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불순종하고 사탄의 자손에 속한 자로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둘 사이에 갈등이 일어납니다. 창세기 4장과 5장에 나오는 족보는 두 후손을 대비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4장에서 가인이 아벨을 미워해서 살인하는 사건이 나옵니다. 가인과 아벨은 싸우는 후손을 대표합니다. 안타깝게도 가인은 사탄의 후손으로 나타납니다. 가인은 죄가 자신을 다스리도록 내버려 둔 첫 번째 사람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인 후손의 죄는 더욱 심해졌습니다.  
“라멕이 자기 아내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다여, 씰라여, 내 말을 들어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에 귀를 기울여라. 내게 상처를 입힌 남자를 내가 죽였다. 나를 상하게 한 젊은이를 내가 죽였다’”(창 4:23). 
복수를 했다는 것인데 그것을 아내들에게 자랑하듯 말합니다. 살인을 자랑하는 후손이 된 것입니다. 반면 창세기 5장에는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과 노아 같은 경건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이미 인류 안에 두 후손들이 대비되고 있습니다. 역사에서 두 후손의 충돌이 계속됩니다. 역사 속에서 끊이지 않는 충돌과 갈등이 불가피합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생명이 진화되었다고 믿고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합니다. 창조를 진화로 설명하려는 사람들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아벨, 노아, 에녹과 같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경건한 하나님의 후손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갈등이 불가피합니다. 갈등을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역사 속에서 두 후손들의 충돌은 계속 될 것입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역전
세 번째 단계에서는 일대일 전쟁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사탄과 여자의 후손의 부딪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을 진멸하시는 방법으로 여자의 후손을 사용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는 대가가 요구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에는 대가가 요구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을 버리고 성육신하신 것도 대가지만, 인간을 대신하여 희생하는 피를 흘리는 값이 지불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성육신하셔서 여자의 후손으로 오셔야만 했습니까? 우리의 죄 값을 담당하시고 우리를 다시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다윗 왕실에 표적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처녀가 잉태해 아들을 낳고 그를 임마누엘이라고 부를 것입니다!”(사 7:14). 
‘친히’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은 친히 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은 원하지도 않고, 무엇인지도 모르고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친히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임마누엘 하셨습니다. 스스로는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마음조차 없는 인간들을 향해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임마누엘은 ‘네가 나를 기대하고 원치 않을지라도 나는 너와 함께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예언대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여자의 후손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구원자를 여자의 후손으로 보내신 것은 무엇을 이루시려는 표적일까요?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사탄이 여인의 육체를 타락하게 하여 사망의 권세아래 놓이게 하셨으나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육체에서 사탄의 권세를 무너뜨리고 굴복시킬 한 사람을 태어나게 하실 것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사탄이 한 여인을 무너뜨림으로 인류의 타락을 가져왔지만 하나님은 여인을 통해 사탄의 권세를 무너뜨릴 한 사람을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역전입니다. 하나님의 온전하신 능력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루터의 해석을 토대로 살펴보면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인류는 구원자를 낳을 수도 없고, 교육을 통해 만들 수도 없습니다. 문명의 발전을 통해서도 구원자가 태어나지 않습니다. 구원자는 인간 밖으로부터 와야 합니다. 인간의 본성과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만 주어질 수 있습니다. 
둘째, 성령의 능력으로 죄가 없는 완전한 인간, 죄가 없는 완전한 인성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첫 번째 아담으로부터 죄 가운데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죄를 짓습니다. 아담 안에 주어진 타락의 원죄를 이어받았기 때문에 원죄로부터 구원이 일어나야 합니다. 두 번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원죄로부터 정결케 하십니다. 우리의 원죄까지도 씻음 받는 역사가 구원입니다. 살아오면서 지은 죄를 용서받는 차원이 아닙니다. 우리는 타락가운데 태어났기 때문에 원죄로부터 자유케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거룩함의 뿌리가 되기 위하여 죄가 없는 완전한 인성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신성과 인성이 연합된 메시야
 
 
셋째, 예수님께서는 신성과 인성이 연합된 분으로 오셔서 메시야의 자격과 능력을 갖추셨습니다.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회개가 필요합니다. 자유의지로 죄를 지었기 때문에 자유의지로 회개해야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회개할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죄를 고백하고 회개할 수 있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진정한 회개가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회개란 자신에 대한 죽음입니다.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인간 스스로는 회개할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회개할 수 있도록 어떻게 도와주시는지를 CS 루이스는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도우시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일부를 우리에게 넣어주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넣어주신 것이고,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사랑의 일부를 넣어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회개할 수 있으려면 하나님의 죽음을 우리에게 넣어주셔야 한다. 회개는 곧 죽음이다.”
하나님께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해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죽으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 죽음이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되셔야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다면 죽을 수 있고, 회개할 수 있고, 우리를 도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가능하시기에 사람이 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죽지 않으시면 우리는 그의 죽음을 나눠가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인간이 되지 않는 한 죽으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하나님으로써는 우리를 회개하게하기 위해서 절대로 겪을 필요가 없는 고통과 죽음을 감당하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모두 사하고, 우리가 진정 그분의 죽으심과 함께 죽도록 하기위해서, 진정한 회개를 하기위해서 사람이 되시고, 죽으시고, 동정녀 여인의 후손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죄가 없는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를 원죄로부터 자유케 하셨습니다. 놀라운 구원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사람이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할 수 있도록 도우심과 동시에 사탄을 멸하시고 우리에게 승리를 선물해주셨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예수님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는 정도밖에 상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예수님이 자신의 발꿈치를 잡고 있는 사탄의 머리를 부숴버렸습니다. 사탄이 예수님을 십자가로 끌고 갔기 때문에 철저하게 패배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구약에 전쟁 예화가 많은 이유는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을 통해 이루시는 십자가의 승리와 부활의 영광 때문입니다. 민족과 민족 간의 땅을 가지고 싸우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후손으로 오시는 여자의 후손을 찾아내어 제거하려는 사탄의 끊임없는 추적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을 때 사탄은 헤롯왕을 부추겨서 베들레헴에 있는 모든 두 살 아래 아기를 죽였습니다.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입니다. 사탄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이후에도 인간의 모든 유혹과 시험을 통해 예수님을 넘어뜨리려고 했지만 예수님은 승리하셨습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우리에게 놀라운 승리를 가져다줍니다. 능력이 주어집니다. 우리에게 약속하신 승리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탄을 이기시고 승리하신 예수님의 승리가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 것입니다. 성탄을 맞이할 때 이 놀라우신 구원의 은혜가 우리 마음 깊숙한 곳에 임하기를 바랍니다.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권찬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