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주일강단-큰 기쁨의 좋은 소식 

큰 기쁨의 좋은 소식 
누가복음 2장 8~20절
이재훈 목사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 세상은 무관심했습니다. 구약의 많은 예언들을 통해서 메시아가 오실 것을 미리 말씀하셨지만 사람들은 바빴고, 역사 지도자들은 욕심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오심을 분별할 수 있는 이는 지극히 적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아가 세상에 오실 것을 여러 징조들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 징조들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징조를 분별하고, 소식을 들었던 사람은 소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에게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큰 기쁨의 소식을 전해주었을 것입니다.
 
 
가장 먼저 소식을 들은 목자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가장 먼저 들었던 사람들은 들에서 양을 치는 목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귀한 소식을 전하실 때 누구에게 가장 먼저 그 소식을 전했는지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왕궁에 있는 왕이나 세상에서 가장 지식이 많은 사람들에게 그 소식을 전해주셨으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 탄생 소식이 전해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신 가장 먼저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들에서 양을 치는 목자들이었습니다. 
마태복음에 별을 보고 동방의 박사들이 예수님께 경배하러 옵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경배하러 온 시점은 예수님 출생 이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였습니다. 따라서 크리스마스 축제에서 동방의 박사들과 목자들이 함께 나오는 것은 사실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시차가 있었습니다. 목자들은 예수님께서 구유에 누워계실 때 경배하러 가장 먼저 왔고, 동방의 박사들은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뒤에 예수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예수님을 경배하러 온 목자들이 경험한 첫 번째 기쁨의 소식이 누가복음 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장 먼저 목자들에게 
소식이 전해진 이유
 
 
여러분, 왜 목자들에게 예수 탄생 소식이 가장 먼저 전해졌다는 것이 중요할까요? 그들은 보통 사람들의 삶에서 제외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목동들은 양을 지키며 양 떼와 더불어 살아가는 일반 사람들과 차별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사람취급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들에서 양을 치며 사는 사람들이 일반 사람들과 삶을 나눈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장소도 그렇고 그들의 몸에 배어있는 악취 때문에도 그렇습니다. 양 떼와 뒹굴며 살아가는 목동들이 일반 사람들과 삶을 나눈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 탄생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하실 때 택하신 사람들은 바로 목자들이었습니다. 
사회는 중요한 사람들에 의해서 움직입니다. 정보에 질서가 있어야 하고, 그 사회를 움직이는 정보를 중요하게 다뤄야하기 때입니다. 국가의 중요한 정보가 아무렇게 다뤄진다면 어떻게 그 사회가 유지될 수 있겠습니까? 정보를 다루는 사람들에게는 차별이 존재할 수밖에 없고, 그 정보를 다루는 사람들이 그 정보를 중요하게 취급해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 신분 사회에서는 어떤 정보가 어떻게 전해지고 다뤄지느냐가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가장 중요한 소식이자 가장 긴급한 소식이 가장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온 세상에 알려져야 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사람들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고, 중요한 정보를 가질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진 소식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 세상에 그 어떤 사람도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버림받은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심으로 하나님의 품에서 제외된 영혼은 한 영혼도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누군가를 배척하고, 누군가를 버릴지 모르지만 예수님은 이 땅에서 가장 연약하고, 버림받고, 소외된 사람까지도 하나님께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오심으로 우리에게 전해진 큰 구원의 기쁜 소식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죄인들 가운데 가장 큰 죄인이라고 할지라도, 세상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아 외롭게 살아가는 외로운 사람일지라도, 몸에서 냄새가 나서 일반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는 삶을 사는 이들에게까지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신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큰 소식이 무엇입니까? 어쩌면 나에게 가장 유익하고, 이익이 되는 소식이 가장 큰 기쁨의 소식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온 세상에 좋은 소식은 이 세상 그 누구도 버려질 영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께 제외된 영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지 않는 영혼이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그 입장에 처해있다면 어떻겠습니까? 내가 바로 목자와 같은 취급을 받고 있었다면 얼마나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겠습니까? 목자들에게 예수 탄생 소식이 전해졌을 때 목자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목자들은 서둘러 가서 예수님께 경배했습니다. 
 
 
예수님 오심을 알려주었을 때 
 
 
‘반응할 수 있는 사람들’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자 목자들이 서로 말했습니다.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이 일이 정말 일어났는지 보자.’ 그래서 그들은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아기를 찾아냈습니다. 과연 아기는 구유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기를 보고 나서 그 아이에 관해 들은 말을 알려 주었고”(15~17절). 
‘서둘러 가서’라는 단어가 눈에 띕니다. 목자들이 양을 버려두고 달려갔다는 것입니다. 목자들은 전해진 소식을 단순하게 믿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작가인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왜 목자들에게 가장 먼저 이 소식을 알리셨는지를 재미있게 설명하셨습니다.
“만일 바리새인들에게 가장 먼저 소식이 전해졌다면 그들은 먼저 주석을 펴놓고 세미나부터 했을 것이다. 만일 정치가들에게 가장 먼저 소식이 전해졌다면 그들은 주변에 누가 보는 사람이 없나 살펴보느라 시간을 허비했을지도 모른다. 만일 기업가들에게 가장 먼저 소식이 전해졌다면 자신의 달력을 쳐다보고 일정을 맞춰보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들을 비판한다기보다는 자기 나름대로 이것을 해석했을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이 소식을 받아들이고 반응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였을까요? 사회로부터는 소외되었지만 믿는 그대로 반응하고 서둘러 가서 예배드리고 경배할 수 있는 목자들이었습니다. 
노틀람 대학에서 가르쳤던 몰튼 케세이라는 교수님은 이 사건을 보면서 “아마 목자들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당시 소식을 많이 들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오심을 알려주셨을 때 반응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해주셨을 것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에게까지 별을 통해 징조를 보여주셨다는 것은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소식을 전해주셨을 거라는 의미입니다. 
그날 밤 베들레헴 집에서 편히 잠을 자던 사람들 꿈속에서도 나타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이 일어날 수 없었던 것은 잠자리가 너무 편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여관주인에게도, 헤롯궁에 있는 신하들에게도, 당시 유대 지도자들에게도 하나님께서는 어떤 모양으로든지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목자들만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들의 말을 진실 되게 받아들이고 “우리가 가서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해 보자”는 마음으로 서둘러 예수님께 다가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신비한 세계
 
 
천사도 존재하고, 악한 영도 존재
예수님께서 오실 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징조들은 사실 능력의 지극히 일부분입니다.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으로 하나님께서 능력을 제한해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어떤 분은 “우리가 이런 일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고 말할 수 있지만 역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받아들일 수 정도만 초자연적인 현상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초자연의 세계에 문을 닫지 마십시오. 보이는 자연 물질, 우리의 오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세상만이 전부라고 믿지 마십시오. 천사도 존재하고, 악한 영도 존재합니다. 
우리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채널은 너무나 다양합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신비한 세계입니다.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문을 열고, 귀를 열고, 눈을 열고,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가장 먼저 알릴 수 있는 특권과 축복을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큰 기쁜 소식을 먼저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과정을 통해서 기쁨의 소식이 전해집니다. 
우리는 큰 기쁨의 소식을 먼저 들은 사람들입니다. 그 소식이 우리를 통해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통로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는 영광, 땅에서는 평화 
 
 
“천사가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아라. 내가 모든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알려 준다. 오늘 구주이신 주 그리스도가 다윗의 동네에서 태어나셨다. 너희가 천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볼 것인데 그것이 너희에게 표적이 될 것이다’ 갑자기 그 천사와 함께 하늘의 군대가 큰 무리를 이루며 나타나 하나님을 찬양하며 말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10~14절). 
천사들의 소식은 온 백성들에게 큰 기쁨을 주는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천사들뿐만 아니라 하늘의 큰 군대가 무리를 이루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께 은총을 입는 자들에게 평화입니다.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땅에는 평화가 예수님 오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 왜 이 땅에는 평화가 없습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영광을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속에 평화가 없는 것은 내가 영광 올려드려야 할 하나님께서 받으실 영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정과 사회에 평화가 없는 것은 영광을 누군가 가로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돌려드릴 그 영광을 누군가 가로채고 있기 때문에 이 땅에 평화가 없는 것입니다. 
진정한 평화가 있는 곳을 찾아가 보십시오. 누군가가 영광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영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그분께만 온전히 영광이 올려드려질 때 그 땅에는 진정한 평화가 임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고, 이 땅에 평화를 주신 것은 어지러워진 질서와 타락한 질서를 바로 잡으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하나님께만 돌려져야 할 영광을 올려드린 것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평화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된 평화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온전한 영광을 올려드렸기 때문입니다. 성탄을 맞이하며 우리 모두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올려드린 하나님께 대한 영광을 우리도 올려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그 평화를 우리의 마음, 가정, 일터, 나라와 민족, 열방과  나누는 복된 성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자들에게 
평화를 주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을 기뻐하며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들려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오심이 기쁨의 소식임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이 우리에게 구원의 소식이요,
우리 삶에 가장 좋은 소식임을 믿습니다. 
예수님 이 땅에 오심을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환영하고, 기뻐합니다. 
우리의 구세주가 되어주심을 감사합니다.
성령 안에 충만하게 임재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권찬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