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인도차이나 반도를 깨운다 / ‘블레싱 캄보디아’
‘망고나무 아래에서 드리는 예배’ … “우리 마을에 교회를 세워 주세요”
‘아시안 하이웨이’ 따라 이스라엘까지 ‘러브소나타’를 연주할 ‘블레싱 캄보디아’
캄보디아는 여전히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지금 열려 있었다. 하나님은 이런 캄보디아를 사용하길 원하고 계셨다. ‘블레싱 캄보디아’를 시작으로 아시안 하이웨이를 따라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태국, 중국, 인도를 거쳐 터키와 이스라엘까지 ‘러브소나타’가 울려퍼지도록 목숨을 걸고서라도 복음을 전할 하나님의 일꾼들을 찾고 계셨다.
중풍병자가 낫고 귀신이 떠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악한 영은 떠날지어다!”망고나무 밑으로 사람들이 모였다. 오랜 세월 귀신들린 정신병자로 따돌림 당하던 할머니가 고침을 받았다는 소문을 듣고 몰려온 마을 사람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모든 악한 영은 떠날지어다!”쩜므라은 할머니에게서 귀신이 떠났다. 흐릿한 눈동자에 맑은 정기가 흘렀다. 할머니가 예수를 영접했다.소문을 듣고 젊은 여인이 찾아왔다. “시아버님이 심한 중풍으로 전혀 거동을 할 수 없습니다. 기도해 주십시오. 고쳐 주십시오.”중국계 할아버지였다. 록따 할아버지 집을 찾아가 안수 기도를 시작했다. 3개월 정도 지나자 할아버지가 걷게 되었다. 며느리 한 사람으로 이 집에 구원이 임했다. 남편, 아이들,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예수를 영접했다. 집 안에 있는 우상을 부수고 몸에 지니고 있던 부적과 팔찌를 태웠다. 오직 예수 이름만을 의지하고, 믿음이라는 절대 진리의 보이지 않는 끈을 붙잡고 캄보디아로 달려 온 민성기 선교사 부부. 이들을 통해 식민지와 전쟁의 비극과 위대한 문명과 자연의 매혹이 공존하는 땅에 성령의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나타났다.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자매, ‘스봔 톨’
스리랑카에 하나님의 씨, 그리스도의 사랑을 심고 싹틔우고 가꾸어왔던 민성기 선교사 부부가 캄보디아로 파송된 것은 지난 2007년. 이남식 장로가 총장으로 섬기는 전주대학교로부터 NPIC(캄보디아국립기술대학) 한국어 객원교수를 온누리교회가 파송해달라는 요청 때문이었다. 객원교수로 젊은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던 민 선교사는 부인 최윤숙 선교사와 함께 캄보디아 농촌 목회자 자녀 장학 사업을 위해 ‘다니엘하우스’를 세웠다.‘변호사, 의사, 교수, 비서’를 꿈꾸는 탁월한 학생들을 선발했다. 앞으로 10년, 20년 뒤, 복음으로 캄보디아와 인도차이나 반도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갈 하나님의 일꾼들이다. 이들을 뒷바라지할 사람이 필요했다. 수소문 끝에 한 사람을 구했다. 스봔 톨은 성실한 자매였다. 하우스를 관리하고 학생들을 돌보며 주방 일까지 어느 것 하나 모자람이 없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어느 날, 아직 어스름 새벽이었다. 스봔 톨이 학생들을 모아놓고 새벽예배를 인도하고 있었다.스봔 톨은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하나님의 일꾼이었다. 오랜 시간 민 선교사 부부가 무릎 꿇은 기도의 응답이었다. “우리 마을에 교회를 세워 주세요.”스봔 톨이 자기 집안의 땅을 내놓으며 교회개척을 당부했다. ‘망고나무 아래에서 드리는 예배’, ‘쁘라엑 엄뻘 Mother Church'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가난과 질병이 씻기지 않은 ‘아픔의 땅’
‘쁘라엑 엄뻘 Mother Church’가 있는 ‘쁘라엑 도운하엠’으로 가는 길이다.메콩강을 건너야 했다. ‘배 삯이 없어 프놈펜 시내에 있는 교회를 가지 못하는 사람들…’스봔 톨 자매가 이들을 위해 교회를 세워달라고 부탁했다는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중국고원에서부터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으로 이어지며 위대한 앙코르 문명을 잉태했던 메콩강은 인도차이나 반도의 젖줄답게 여전히 도도하게 흘렀다.강을 건너자 길 양편으로 농지가 이어진다. 추수가 끝난 논에는 소만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대로변 안쪽의 마을에는 대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갈대로 지붕과 벽을 막은 집들이 위태롭게 서있다. 하늘과 바람만 가릴 수 있도록 만든 집들이 우기를 어떻게 견뎌낼까 걱정이 앞선다.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가 오락가락한다. 비포장이라고는 하지만 불도저가 오가며 닦아놓은 길인데 군데군데 흠뻑 파였다. 구름처럼 피어나는 붉은 흙먼지 사이로 밥을 짓고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다가 잠이 드는 캄보디아 농촌 사람들의 빈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누구도 쉽게 손 내밀지 않는 빈민촌 농촌의 작은 마을, 네이팜탐으로 모든 것들이 불타고 사라졌던 들판에 풀과 나무가 다시 자라나고 있었다. 하지만 80여 년의 식민지 시대와 40여 년의 전쟁이라는 고통의 역사를 헤쳐 나온 이 아픔의 땅에는 아직도 가난과 질병이라는 채 씻기지 않은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캄보디아의 유일한 희망인 ‘차세대 교육’
중풍에서 일어난 록따 할아버지 집을 찾았다. 할머니가 환한 미소로 우리를 맞았다. 할아버지는 샤워 중이었다. 아랫집에 사는 할머니가 바나나를 가져와 먹으라고 권한다. 건장한 사내가 할아버지를 모시고 나왔다. 샤워를 마친 닮은 꼴 부자의 얼굴이 더욱 해맑다. 차를 마시며 할아버지의 건강을 위해 기도했다. 그동안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의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치유의 역사를 베푸셨다. 오늘도 성령이 뜨겁게 임했다. 민 선교사의 기도에 모두들 눈시울이 붉어진다. 가난을 반찬삼아 겨우 연명하고 있지만 마음 씀씀이가 누구보다 넉넉한 사람들이 신앙공동체를 이루며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있었다. 민성기 선교사 곁으로 별보다 총총한 눈을 가진 아이들이 모여 들었다.“모두 우리 교회 믿음의 일꾼들입니다.”주일 아침, 120여 명의 아이들이 어른들과 함께 망고나무 아래에서 주린 몸이지만 온 힘을 다해 주님을 찬양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키운다. 절망의 땅 캄보디아를 희망의 땅으로 바꾸기 위해 뜨겁게 기도한다.“이 곳에 문화센터를 세울 것입니다.”스봔 톨 자매가 기증한 땅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두 배로 늘었다. 민 선교사는 이곳에다 문화센터를 지어 영어 교실, 컴퓨터 교실, 미술 교실, 음악 교실, 요리 교실을 열고, 유치원을 개원하고 땡볕 아래에서도 마음껏 예배드릴 채플을 마련할 계획이다. ‘킬링필드’, 학살과 고문으로 지식층 어른들이 다 죽고 사라진 캄보디아의 유일한 희망은 다음 세대를 복음으로 양성하는 ‘교육’뿐이기 때문이었다.
오순절 다락방 같은 ‘뜨거운 성령의 역사’ ‘블레싱 캄보디아’를 앞두고 캄보디아가 흔들렸다. 물을 숭상하는 캄보디아가 매년 우기가 끝나는 것을 축하하기 위해 3일 동안 프놈펜 메콩강 일대에서 여는 물 축제인 ‘본 옴 뚝(Bon Om Touk)’에서 대형사고가 터졌다. 최고 인기 행사인 톤레샤프강에서 열리는 보트 경주가 끝난 저녁 시간에 수천 명의 인파가 코픽섬과 육지를 잇는 좁은 다리로 한꺼번에 몰리면서 일부가 넘어지자 통제불능 상태에 빠진 군중들 가운데 450여 명이 압사했다. 국민들의 저항을 두려워 한 정부는 모든 집회를 금지했다. 라준석 목사가 정부 관계자를 만났다.‘캄보디아를 축복하러 왔다’는 말에 정부 관리의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이 열렸다. “그 어떤 집회도 불가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축제를 하지 말고 종교집회를 하십시오.”전적인 성령님의 도우심이었다. 1,700명이 모였다. 참석자의 반이 젊은 사람들이었다.예수님을 소개하며 라준석 목사가 메시지를 선포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캄보디아의 ‘복의 통로’로 만드셨습니다.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에 사는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데리고 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확실하게 믿는 것이 바로 ‘블레싱 캄보디아’의 첫 출발입니다.” 캄보디아에도 한류 바람이 거셌다. 대부분 젊은이들이 한국말로 찬양했다.“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작곡자 이민섭 목사가 기도를 인도했다. 모든 사람들이 일어났다. 오순절 다락방 같은 뜨거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 모든 사람이 한마음이 되어 울부짖었다. “주여, 캄보디아를 불쌍히 여기소서. 캄보디아에 하나님의 부흥을 주소서.” 하나님의 희망인 ‘아시안 하이웨이’
프놈펜 시내는 혼잡했다. 퇴락한 프랑스 식민지풍의 건물들 사이로 낡은 오토바이와 자동차, 그리고 씨클로가 폭주했다. 시내 중심가에 자리 잡은 아동병원 도로에는 진료를 받기 위해 아이를 안은 여인들이 오전 내내 긴 줄을 서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공원에는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아직도 구걸을 하거나 도둑질을 해가며 요령껏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다.‘뚤슬렝(Toul sleng) 제노사이드 박물관’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캄보디아가 결코 전쟁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라임을 웅변하고 있었다. 1만 4,000여 명이 수감되어 단 7명만 살아나온 이 흉측한 건물은 고문과 학살의 참상을 그대로 드러내 캄보디아에 ‘킬링필드’라는 오명을 붙였다. “아시안 하이웨이가 희망입니다. 인도차이나 반도 중 유일하게 열린 땅이 캄보디아입니다. 대형 집회가 어느 곳에서나 가능합니다. 아시아 15개국을 관통하는 아시안 하이웨이가 저희 쁘라엑 엄뻘 교회 지역을 통과해서 지나갑니다. 하나님께서 저희 교회가 운영할 문화센터를 사용하실 것입니다. 일본에서 시작된 러브소나타가 캄보디아를 거쳐 터키로 서진(西進)하여 이스라엘에까지 이르게 될 사역을 감당할 일꾼들이 저희 문화센터에서 길러질 것입니다.”그랬다. 여전히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캄보디아는 지금 열려 있었다. 하나님은 이런 캄보디아를 사용하길 원하고 계셨다. ‘블레싱 캄보디아’를 시작으로 아시안 하이웨이를 따라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태국, 중국, 인도를 거쳐 터키와 이스라엘까지 ‘러브소나타’가 울려퍼지도록 목숨을 걸고서라도 복음을 전할 하나님의 일꾼들을 찾고 계셨다.하나님께서 부어 주신 엄청난 복을 누리는 온누리 성도들의 몫이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8). 아멘.

장선철 장로(온누리신문 편집국장)
■ 민성기 선교사가 말하는
“캄보디아, 이래서 중요하다!”
캄보디아는 인도차이나 국가 중 유일하게 복음을 마음껏 전할 수 있는 나라이며, 복음이 열려있는 나라 중 가장 많은 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지리적으로 보면 인도차이나 국가 중 라오스가 가장 많은 국경을 접하고 있지만 복음에 대해 닫혀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캄보디아의 남서쪽에 바다길이 열려 있어서 마치 큰 바위를 깨뜨릴 때 폭발물을 설치한 것처럼 되어 있어서 캄보디아가 복음으로 폭발되면 주변국 모두가 복음으로 변화될 수 있는 중요한 위치에 있다.경제적으로 지금 캄보디아는 성장하기 위해 거의 모든 문을 열어놓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비자인데, 현재 인도차이나 주변국과는 달리 비자 받기가 매우 용이하다. 특히 아시안 하이웨이가 캄보디아를 통과하는데 일본에서 시작해서 터키를 지나 불가리아까지 연결되는 도로다. 이 도로를 타고 복음이 땅 끝까지 가게 될 것이다.러브소나타가 일본에서 시작되었고 아시안 하이웨이 중 지금은 유일하게 복음에 대해 열려있고 전할 수 있는 캄보디아를 통해 복음의 서진이 계속 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나라가 바로 캄보디아다. 종교적으로는 불교국가이긴 하지만 순수 불교로 보기는 어렵고, 힌두교와 조상을 섬기는 샤머니즘 등이 혼합된 불교에 가깝다. 현재 캄보디아는 기독교가 부흥하고 있고 급성장하고 있는 추세다.하나님께서 문을 열면 닫을 자가 없다고 했는데 열려있는 지금 더 집중해서 캄보디아를 더 빠른 시일내에 이 땅이 복음화 되고 그 영향이 인도차이나 모든 국가에게도 흘러가길 바란다./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민성기 선교사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