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5일 일
사역

손양원 목사 오페라로 다시 만난다

오는 8~11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사랑의 원자탄’으로 불린 손양원 목사의 일대기를 그린 오페라 ‘손양원’이 오는 8~11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막 오른다. 박재훈이 창작한 오페라 ‘손양원’의 실제 주인공 故손양원 목사는 예수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한 민족지도자다. 손 목사는 전남 여수 지역의 나병환자 수용소인 애양원(愛養園)교회에서 나환자들에 대한 구호사업과 전도활동을 했다.

1948년 10월, 여수ㆍ순천반란사건 당시 두 아들이 공산분자에 의해 살해당하는 아픔을 겪었지만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자로 삼아 세상을 감복시켰다.

오페라를 작곡한 박재훈 박사는 “사람의 도(道)는 사랑과 용서로 덮어주고 끌어안는 삶”이라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故손양원 목사의 삶을 본받아 예수님을 닮아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오은지 기자 oej@onnuri.org

 

 

 

 

손양원 그는 누구인가?

 

손양원 목사(1902~1950)- 1902년 경남 함안 출생- 1915년 칠원보통학교(초등학교)시절   궁성요배(일본천왕에게 절을 하는 것) 거절 이유로 퇴학- 1923년 동경 스가모 중학교 졸업- 1925년 경상남도 성경학원 졸업- 1938년 평양장로신학교 졸업 후 전남 여수 애양원(한센병 환자수용소)교회에서 시무- 1940~45년 신사참배거부 여수경찰서 구금- 1950년 9월 29일 한국전쟁 당시 행동이 부자유한 환자들을 위해 동료와 신도들의    피난권유를 거절, 북한군에 의해 순교

 

고(故) 손양원 목사의 호는 산돌이며, 경상남도 함안에서 출생했다. 손 목사는 아버지가 장로인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했다.

1915년 칠원보통학교 재학 중 궁성요배를 거절하여 퇴학을 당했으나, 선교사 맥레이(Macrae, L.)의 항의로 복교되었다. 그 후 3ㆍ1운동에 가담한 죄로 아버지가 마산형무소에 수감되자, 학업을 중단한 후, 1921년 일본으로 건너가 스가모 중학교(巢鴨中學校)를 졸업하고 귀국해 경남성경학교에서 공부했다.

부산 나병원교회, 울산 방어진교회ㆍ남창교회 및 양산의 원동교회 등에서 전도사로 활동했다. 1938년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한 후 전남 여수의 나병환자 요양원인 애양원(愛養院)의 교회에서 봉사했다. 신사참배의 강요에 굴복하지 않음으로써 1940년 체포되어, 광복이 된 후에 출옥했다. 그 후 애양원교회에서 다시 일하다가 1946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48년 10월 여수ㆍ순천반란사건 당시 두 아들이 공산분자에 의하여 살해되었다.

계엄군에 의하여 살해자가 체포되어 처형되려는 순간에 구명운동을 전개하여 안재선이라는 살해범을 살려내고 양아들로 삼았으나 곧 6ㆍ25사변이 일어나면서 공산군에 체포되어 미평에서 총살당하였다.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일대기가 출판되어 영어와 독어 등으로 번역되었고 영화화되기도 했다.

 

오페라 <손양원>의 배경 및 줄거리 요약

 

오페라 <손양원>은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여러 범죄로 인해 혼란스러운 이 시대에 손양원 목사의 일대기를 통해 용서와 사랑이 흘러 넘치는 사회 분위기로 전환되기 원하는 마음으로 준비한 공연이다.

1949년 백범 김구 선생님는 “공산당을 진정으로 이긴 사람은 손양원 목사이다. 이 땅의 정치가들에게도 손양원 같은 아량과 포용성과 수완이 있다면 공산주의도 이길 수 있고 남북통일도 이룰 수 있다”는 말씀을 하실 정도로 고(故) 손양원 목사님의 사랑을 극찬했다.

손양원 목사는 경남 하남에서 1902년에 출생해 전남 여수 애양원에서 주로 활동했다. 그러는 중 두 아들을 공산분자에게 총살당하게 했지만 죽인 살인자를 양아들로 삼은 사랑의 원자탄이다. 나병 환자촌에서 목회를 하고 북한군에 의해 순교 당했다. 

이번 창착오페라는 박재훈 박사의 작품이다. 박재훈 박사는 1922년 생으로 만 90세의 노년에 귀한 작품을 오페라로 만들었다. 이번 작품은 3월 8~11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오는 6월 1, 2, 3일에는 예월문화원에서 공연한다. 특히 이번 창작 오페라는 민족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8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민족주의자, 위대한 손양원 목사의 발자취를 기록했다. 박재훈 박사는 “이웃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자신의 아들을 죽인 원수까지 품은 헌신과 사랑,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나병 환자와 이웃을 위해 헌신했던 자세와 민족정신의 교훈을 본받고자 이 작품을 만들었다”면서 “손양원 목사의 사랑, 헌신, 믿음, 교훈, 각박한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교훈을 주고 사랑을 나누고자 기획하게 되었다”는 취지를 밝혔다.

애국, 신앙, 사라을 모토로 한 고려오페라단에서 주최한 이번 창작오페라는 합창으로 시작된다. 오페라는 총 2막이며, 1막 당 10장의 장면이 담겨있다. 1막은 손양원 목사의 주 무대 애양원을 배경으로 했으며, 2막은 순천 경찰서 앞이다.

 

출연진들의 말말말

 

장수동 감독

고려오페라단과 함께 최초 오페라 안중근을 1995년에 했습니다. 청와대에 계시는 분들부터 강원도 초등학생까지 아우르는 온 국민의 오페라 에스더를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에스더는 예술의전당에서 하는 최초 기독교 오페라였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소개되는 오페라 <손양원>은 1948년 10월, 한반도 제일 남쪽에 있는 여수에서 일어난 사건을 소재로 한 창작 오페라입니다. 특히 예술의전당에서 시작한 최초 오페라 <에스더> 후에 우리 한민족이야기를 담은 두 번째 오페라라는 것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용서와 화해의 이야기를 담은 오페라<손양원>에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테너 이동현

손양원 목사 역

순교자 역인 손양원 목사 역할을 맡는다는 것 자체가 죄스럽습니다. 그리고 과연 제가 이렇게 잘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2년 전 <내 잔이 넘치나이다>에서 순교자 맹이순 전도사님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때 무대 위에서 순교하고 흰 천이 제 몸에 덮여지는 순간 가슴이 울컥했습니다. 그때도 마찬가지로 과연 제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는데 공연을 마치고 귀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더불어 귀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능력주신 하나님에 대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이번 오페라<손양원>도 박재훈 박사님께서 손양원 역할을 맡겨주셔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도하지 않았다면 이 역할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매번 느끼지만 제가 단지 성악과로서 소리만 내서는 훌륭한 오페라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손양원 목사님 역할을 통해 이 시대 많은 교계의 목회자들과 믿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들려줘야할 메시지를 들려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성악가 이전에 신앙인입니다. 저는 보통 성악가처럼 보잘 것 없는 성악가로서의 고집과 자만감, 음악성을 내세우기가 쉬웠지만 이번 오페라를 하면서 처음 시작과 끝을 기도로 했다는 것에 큰 감사를 드립니다.

 

소프라노 이현정

딸 손동희 역

손양원 목사의 딸 손동희 역을 맡은 이현정입니다. 손양원 목사님과 두 오빠의 순교하는 모습을 보면서 딸로서 그것을 관중들에게 대신 전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번 역할을 하면서 성악가의 모습만으로는 해낼 수 없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메시지로 관중들을 감동시키고 순교의 역사를 접하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지가 의문이었는데 기도하면서 제 혼자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페라를 기도로 시작하고 마침으로 저의 부족함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작은 역할이지만 중요한 역을 맡겨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이 뜻하시는 메시지를 전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메조 소프라노 양송미정양순 사모 역

다른 오페라를 할 때처럼 섭외가 들어왔기 때문에 스케줄을 보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연습하는 과정 과정에서 제 마음이 많이 변화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제가 살아가는 삶의 기준도 확실하게 변화된 것이 이번 작품을 하면서 가장 크게 얻은 것입니다. 그동안 하나님께 바라는 것이 제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작품을 통해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분명한 기준이 생겼습니다. 지휘자 선생님이 주신 손양원 목사님 일대기 책을 선물 받고 밤새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손 목사님의 삶을 보며 ‘이렇게 살아갈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가 신앙을 지켜나가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손 목사님 사모님 또한 살아가는 목표가 이 세상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에 남편을 향한 내조와 기도가 있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 작품을 하면서 제가 가슴깊이 느낀 것은 박재훈 박사님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저도 이 작품의 배우로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이 공연에 임하겠습니다.

 

테너 윤병길아들 손동인 역

손동인 역에 대한 생각이 많이 없었는데 계속 배역을 하는 손동인 역에 대해 굉장히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순교를 당하기 바로 전에 안태성이라는 사람이 마지막 소원을 물을 때 제가 찬송가를 부르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과연 지금 이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면 찬송가를 부를 수 있다고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만약 제가 그 입장에 들어가서 대사를 그냥 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이 순간이 굉장히 중요한 순간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난 후 순교 직전에 ‘하늘나라 밝은 길’이라는 찬송가를 부르는데 처음에 연습하면서 슬퍼졌습니다. 그러나 손동인 역에 깊이 들어가서 보면 슬픈 모습이 아니라 순교당하는 그 순간까지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놓지 않고 찬양하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그때 손동인은 기쁜 모습으로 찬송가를 부릅니다. 저는 이번 오페라를 통해 나흘이라는 순간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귀한 시간이 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이렇게 좋은 시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베이스 함석현나덕환 목사(승주교회) 역

이번 오페라에서 베이스 역에 두 역할이 있습니다. 두 베이스 역 가운데 나덕환 목사님 역할을 하게 돼서 기쁩니다. 처음에는 역이 작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오페라 연습을 시작과 진행 과정에서 열심히 준비하시는 지휘자님, 진행자들의 뜨거운 사명감으로 진행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또한 더 작은 역할을 하는 합창단과 관계없이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오페라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모든 분들이 은혜 받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오페라를 할 수 있는 순간이 과연 몇 번이나 될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감사함으로 오페라를 준비하게 되어 기쁩니다.

 

오페라 <손양원>이 완성되기까지

 

2004년 전남 여수에 다녀왔습니다. 손양원 목사님 순교 기념관에 들어갔다가 나병환자의 발에 고름이 생긴 그림을 봤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 고름을 뺄 사람이 없었습니다. 지금부터 약 70여 년 전 이야기입니다. 나병 환자를 치료할 치료제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병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병입니다. 그런데 손양원 목사님이 입으로 그 고름을 빨아내는 것을 봤습니다.

 

그 작품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짜 사랑,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찬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는 불쌍을 사람을 보되 조건 없이 그 사람의 생명을 위해 자기가 빨아냈습니다. 저는 그 그림을 보고 울었습니다. 이 땅에 이런 분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을 준비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저는 다시 돌아가서 어느 작가에게 이 이야기를 쓰라고 주었습니다. 저도 원고를 가지고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음악이 안 나왔습니다. 억지로 짜서 1년 동안 1막을 썼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음악이 아니었습니다.

 

음악은 흘러 넘쳐 나와야 진정한 음악의 맛이 있는데 그렇지 않고는 예술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고민하다가 찢어버렸습니다. 그때 2년이 지났는데 지금부터 약 40여 년 전 에스더를 써 준 그 작가분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그분에게 팩스를 줬더니 들어왔습니다. 그때 이것이 음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 합창으로 시작되었는데 그 합창 가운데 나병환자들의 기도 소리를 들었습니다. 나병환자들은 “우리 육신과 영혼에 병이 들었습니다. 고쳐주십시오. 주님 우리 영혼이 병이 들었습니다”라는 소리로 합창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남북이 갈라진 후부터 병이 들었습니다. 남쪽은 경제가 부흥되어서 잘 먹고 잘 살지만 북쪽은 항상 가난했습니다. 남쪽은 자유지만 북쪽은 독재였습니다. 한반도가 두 쪽이 됐습니다. 남쪽은 교회가 많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민족과 슬픈 자, 가난한 자를 위해 돕는 곳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세상은 돈이면 살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고 자살을 하고 있습니다. 병이 들어도 보통 병이 든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손양원 목사님,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고 거룩하신 분에 대한 이야기를 오페라로 창작하게 되었습니다.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