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사역

예수님 바로 보여주는 바보의사 ‘김병순 장로’

만나고 싶었습니다
12년째 선교사, 현지인 목회자와 가족 무료 수술

 

지난해 10월 14일, ‘이반젤’이라는 11살짜리 스리랑카 소년이 한국에 왔다. 그 소년은 무릎관절이 기형적으로 튀어나와 제대로 걷지 못하는 ‘선천성슬개골탈구’라는 병을 앓고 있었다. 그 소년이 김병순 장로(정형외과 전문의)가 운영하는 판교순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완치됐다. 한창 뛰어놀 나이에 제대로 걷지 못해 위축되어 있던 소년이 새장을 탈출한 한 마리 새처럼 훨훨 날았다. 11월 28일 한국에서의 마지막 물리치료를 받고 이튿날 스리랑카로 돌아갔다. 그 소년에게서 지난해 연말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제는 목발을 안 짚고 다녀도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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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 열악한 환경의 사람들에게 무료수술을 해주고 있는 김병순 장로.

 
이반젤이 김병순 장로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게 된 데에는 보이지 않는 돕는 손길들이 있었다. NGO 더멋진세상, 송파공동체가 힘을 보탰다. 김병순 장로의 선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열악한 의료 환경으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선교사와 현지인 목회자와 가족들을 위해 12년 째 무료로 수술 및 진료를 해주고 있다. 의료선교팀 CMN 대표장로로 섬기고 있다.
“드러내지 않고 열정으로 섬긴 선배들을 보고 배운 것뿐입니다.”
그 말 한마디에 묵직한 겸손이 느껴졌다. 별것 아니라고 말하는 자체가 놀라웠다. “이분이 바로 예수님을 바로 보여주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들었다.
김병순 장로는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다 2004년 개인병원을 개원했다. 이유는 하나다. 대학병원에서는 자신의 뜻대로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세상 사람들 보기에는 바보로 보였겠지만 불쌍한 사람들을 마음껏 도와주기 위해 개인병원을 고집했다. 자신이 운영하는 병원을 ‘선교병원’으로 세우겠다고 마음먹었다.
“2003년 당시 하 목사님이 설교에서 가장 많이 하신 말씀이 ‘떠나라’였어요. 7년 된 성도는  떠나라, 선교하러 떠나라, 계속 떠나라고 하시는데 안 떠나고 버틸 수가 있어야지요.”
그렇게 선교병원을 짓고, 대학병원에서는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의료봉사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선교사, 현지인 목회자와 가족들을 위해 무료 수술을 계획했다.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아웃리치를 가면 의료시설과 환경이 열악해 단순한 골절인데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 그 사람들 모두를 진료할 수 없는 것이 무척 안타깝더라고요.”
정해진 일정과 한정된 의료기기, 부족한 봉사자가 감당하기에는 환자들이 너무 많았다. 치료받겠다고 온 사람들을 전부를 진료할 수 없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웠던지 한국으로 데리고 와서 치료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선교병원과 첫 무료수술

 

김병순 장로가 처음 의료봉사를 시작한 것은 2005년 이스라엘 아웃리치였다. 당시 ‘예루살렘 평화행진 2005’ 집회가 이스라엘에서 열렸다. 지구촌교회, 할렐루야교회도 참석하는 대규모 집회였다. 온누리교회 성도만 2,500명 넘게 참석했다. 그 집회에 김병순 장로는 어머니와 당시 초등학생이던 둘째아들을 데리고 갔다. 의료봉사팀 일원으로 난생 처음 팔레스타인 땅을 밟았다. 장장 27시간 넘게 걸려 이스라엘에 도착했다.
“팔레스타인에 가본 적 있어요? 높이 7m가 넘는 분리장벽 안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고 있더라고요. 주위에는 이스라엘 군인들이 삼엄하게 경계하고 있고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외부로 나갈 수도 없는 고립된 상태에서 살고 있었어요.”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진료하다 당시 14세 소녀 ‘아마니’를 만났다. 그 소녀는 선천성 고관절 질병을 앓고 있었다.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장애를 안고 살고 있었다. 그 현장에서는 소녀를 치료할 수가 없어 한국에 데리고 와 수술을 해줬다. 그것이 첫 무료 수술이었다.
“비자 문제로 수술하고 열흘 만에 소녀를 팔레스타인으로 보내야 했어요. 그 후에 다시 한국에 나오는 번거로움이 있긴 했지만 치료가 잘 되었어요. 벌써 11년이 지났으니 이제는 어엿한 청년이 되었겠네요.”

 

김병순 장로가 만난 예수

 

그동안 김 장로가 무료 수술을 해준 대상과 지역이 정말 다양하다. 일본, 몽골, 중국, 인도네시아, 터키 등지에서 힘들게 사역하고 있는 한국인 선교사, 현지인 목회자와 그 가족들의 딱한 사연을 들으면 한국으로 데려와 무료수술을 해줬다. 개인병원이라 원장 마음대로 한다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금전적인 부담이 없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저 혼자 하는 게 아니에요. NGO 더멋진세상에서도 돕고, 선교사와 결연을 맺고 있는 공동체에서도 도와줍니다. 저는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것뿐이에요.”
그의 겸손이 존경스러웠다. 훌륭했다. 김 장로를 그렇게 만든 것은 분명 신앙이었다.
그는 1998년에 예수를 만났다. 39세 늦은 나이에 기독교에 입문했다. 1년 동안 미국에서 연수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 하나님을 만났다. 신앙심이 남달랐던 누님(현재 부천 차세대 담당 김정순 목사)의 영향으로 미국 가기 전에 온누리교회에 나오긴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교인도 아닌데, 하 목사님이랑 악수도 했어요.”
당시는 외환위기가 터진 직후였다. 외국생활을 하면서 어려움이 닥쳤다. 그 때 믿음의 사람들에게 위로 받고, 힘을 얻었다.
“1997년에 환율이 1달러에 900원 정도였는데 1998년에는 2천원이 넘었어요. 설상가상으로 아버지가 폐암에 걸리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죠. 생활고에, 정신적 충격이 더해져 미국 생활이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그때 제게 교회와 하나님이 크나큰 위안처가 되었죠.”
그때부터 달라졌다. 신실한 믿음의 자녀로 거듭났다. 귀국 후 온누리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순장도 하고, 봉사도 참 많이 했다. 정말 열심히 섬겼다. 힘든 줄 모르고 신앙생활하면서 선교병원을 꿈꾸기 시작했다.

 

올해는 의료 봉사하러 아프리카로!

 

그는 인터뷰 내내 크리스천 의사들의 사명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통해 더 많은 선교사들을 섬기고, 그들이 힘을 내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해요. 그것이 크리스천 의사들의 사명입니다.”
올해는 아프리카로 의료봉사를 갈 계획이라고 했다. 여태까지는 비교적 거리가 가까운 동남아시아로 많이 갔는데 올해는 아프리카로 간다. 거리가 멀어서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러 아프리카에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최근에는 초음파기계, 엑스레이 기계, 혈액검사기 등을 새로 구비했다. 약만 주는 것이 아니라 아웃리치 현장에서 다양한 진료를 하려는 것이다. 의료봉사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참 대단했다. 보면 볼수록 존경스러웠다. 바로 그가 예수님을 바로 보여주는 바보의사 김병순 장로다.
CMN 문의 : 02-3215-3786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작성자  이소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