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사역

교회와 선교 위해 살다!

 

삶으로 선교하는 김숙경 성도와 박일화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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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에 헌신한 이가 어디 한둘이겠냐만 삶으로 선교하는 성도들은 귀하다. 삶으로선교하는 성도들은 귀하다. 우리는 그들을 보석보다 빛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른다. 여기 그 귀한 성도가 둘이나 있다. 선교지에 교회를 헌당하고 있는 김숙경 성도와 자비량 선교사 박일화 집사가 그 주인공이다.

 

김숙경 성도는 선교지에 교회 100개를 헌당하는 것이 꿈이다. 2004년부터 인도, 스리랑카, 네팔에 교회 7개를 헌당했다. 박일화 집사는 방글라데시에서 자비량 선교를하고 있다. 박 집사는 “성도라면 선교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한다. 말 그대로 교회와 선교를 위해 살아가고 있다.

 

/ 정현주, 김영선 기자

 

 

김숙경 성도가 처음 헌당한 교회는 인도 북동부에 있는 ‘ 사이콧교회’ 다. 2004년 딸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면서부터 선교지에 교회 헌당을 시작했다. 그런데 왜 미국이 아니라 인도였을까. 딸이 유학을 간 것과 교회 헌당이 무슨 연관이 있었을까.그녀는 딸을 하나님의 기업으로 생각했다.세상 모든 부모가 그렇듯이 그녀도 최선을 다해 돌봤다. 다른 사람 손에 맡겨 본 적이 없을정도로 전심을 다했다. 그렇게 키운 딸을 유학보내면서 이렇게 기도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제 딸을 맡으시고, 저는 주님의 일을 할게요.”딸을 하나님께 맡긴 후에는 하나님의 일이김숙경 성도의 사업이 되었다. 어느 날 오후예배시간에 선교사들로부터 선교지에 있는교회가 너무 열악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교회를 헌당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때마침 시어머니가 적금을 넣어 모은 천만원을 줬다. 그 돈을 인도에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교회를 크게 지어서 돈이 모자라다는연락이 왔다. 그동안 딸 아이 뒷바라지를 하느라 모아놓은 돈이 없었다. 적금을 깨서 천만원을 보냈다. 그런데 또 다시 연락이 왔다. 인도 물가가 올라서 돈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교회를 크게 짓느라 돈이 부족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기도했어요. 만약 우리 딸 일이었다면 빌려서라도 돈을 마련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집을 담보로 천만 원을 대출받아 선교지에 보냈어요. 사이콧교회 헌당식에 참석해서 알게 되었는데 3년 전부터 교회신축을 위해 기도했다고 하더라고요. 중간에영국교회 성도들이 헌당을 하겠다고 약속하고 돌아갔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 헌당하게 하신 것을 알고 정말 감사했어요.”인도 델리 부근 교회를 증축하고 싶다는 연락이 와서 두 번째 교회를 헌당했다. 선교지에세 번째 교회를 헌당하기까지 제법 많은 시간이 걸렸다. 세 번째 교회는 2015년 네팔에 헌당한 ‘ 언언더교회’ 다. 네 번째 교회 헌당은 그녀에게 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투병 중인남편의 건강을 회복시켜달라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남편을 완벽하게 고쳐주셔서 천국으로 데려 가주셨어요. 20년 넘게 하나님께 남편이 바울처럼 쓰임 받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런데 남편을 데려가셨으니 하나님께 의문이 들었어요. 지금은 하나님께서 남편이 남긴 재산으로 교회를 짓고 그 교회가 바울처럼 쓰임 받게 해주신다는 믿음을 주셨어요.”

 

 

 

남편이 천국에 간 뒤에 네팔과 스리랑카에교회 두 개씩 더 헌당했다. 남편의 사망보험금과 부조금을 모아 인도네시아 신학교에 강의동도 헌당하기로 했다.“선교지에 교회 100개를 헌당하겠다는 비전은 2004년 새벽기도회에서 받았어요. 선교지에 교회 100개를 헌당하겠다고 서원했지만 실감은 나지 않더라고요. 하나님께서 제가 천국갈 때 저에게 남은 물질을 교회 헌당을 위해드리고, 제 딸이 대를 이어서 이 일을 계속하면 되겠다는 마음을 주셨어요. 비전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니 그 비전을 붙잡고 있으면 주님께서 이루신다고 믿어요.”

 

 

 

그녀는 선교지에 교회를 헌당하는 일이 특별하고 어려운 일이 아니라며 온누리교회 성도들도 동참해 줄 것을 권유했다.“순, 공동체, 사역팀 등 작은 모임에서 조금씩 헌금해서 선교지에 교회를 헌당하는 비전을 품으면 좋겠어요.”

 

 

표가 나지 않아도, 힘이 들더라도

 

 

 

박일화 집사는 자비량 선교사다. 성도라면선교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할 정도로 선교에 헌신했다. 그는 1988년 온누리교회에 처음왔다. 그보다 1년 먼저 교회에 다닌 아내가 전도했다. 당시 그는 잘 나가는 대기업을 박차고나와 사업을 시작했다.

 

 

 

“내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부풀어 있었어요. 당시 우리나라 경제가 좋았거든요. 많은사람들이 창업하던 시절이었어요.”동업자와 함께 무역회사를 설립했다. 큰 꿈과 포부로 시작한 사업이었는데 신통치 않았다. 일본 쪽으로 수출하려고 했는데 생각처럼되지 않았다. 설상가상 동업자와 의견이 달라창업한 지 3개월 만에 갈라서야 했다. 사업적으로 방황하고 있던 시절 하나님을 만났다.“사업이 어렵고 힘들다 보니 저절로 하나님을 찾게 되더라고요. 당시에는 제가 힘들어서교회에 나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신 것 같아요.”

 

 

 

박 집사는 교회를 참 열심히 다녔다. 수요예배, 아버지학교, 와이미션 등 다양한 예배와강의를 찾아 다녔다. 순장, 다락방장, 주일학교교사 등 할 수 있는 봉사도 다 했다. 그렇게 예수의 제자로 거듭났다. 2006년 4월, 일만사역자로 파송 받고 자비량 선교사가 되었다. 방글라데시에 공장을 세웠는데 그곳에서 교회와학교를 운영했다. 한국인 선교사와 현지 교회를 돕는 일도 병행했다.

 

 

 

그는 자비량 선교사로 파송 받으면서 4가지비전을 세웠다. 선교사들을 돕고, 현지 교회와협력하고, 초등학교를 짓고, 긍휼(구제) 사역을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이 4가지 비전을 철저하게 지키려고 지금도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기회가 될 때마다 한국인 선교사들을 만나 위로하고, 격려하고, 후원하고 있다.선교사들의 영적 갈급함을 채워주기 위하여CGNTV 안테나를 무상으로 달아주고 있다.그가 달아준 CGNTV 안테나가 50~60개나 된다. 한국에 왔다가 방글라데시로 들어갈 때면짐가방을 가득 채워간다. 모두 선교사들에게전해 줄 한국 식재료들이다.

 

 

 

“방글라데시에서는 한국 식재료를 구하기가 어렵거든요. 한 번씩 한국 식재료를 가져가면 선교사님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또 현지 한인 교회에서 <목적이 이끄는 삶>으로 나눔을 하는 걸 보고 <생명의 삶>을 소개했다. 아버지학교 세미나를 열어 주기도 했다.운영하고 있는 공장 주변에 학교를 세웠다. 방글라데시어, 영어, 수학, 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반이 세 개 밖에 없는 작은 학교지만 방글라데시 정부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았다. 주중에는 학교, 주일에는 교회로 활용하고 있다.“정식으로 인가를 받으면서 교과서를 무상으로 지원받고 있어요. 코란도 받는데 저희는미션스쿨이라 이슬람 교리는 가르치지 않아요. 대신 성경을 가르쳐요. 주민, 직원, 학생들이 모두 무슬림이지만 우리 학교를 무척 좋아합니다. 가난해서 학교에 못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우리 학교에서는 책, 간식, 옷, 쌀을 무료로 베푸니까 기독교 학교라고 박해하지 않아요.”

 

 

 

말은 그렇게 해도 힘들 때가 왜 없었을까.“제가 하는 일이 옳은 일인지 의심이 생길때도 있었어요. 그때마다 선교사님들께 연락이 오더라고요. 기도와 후원을 해주셔서 너무감사하다고요. 그때 알았어요. 표가 나지 않고힘이 들더라도 절대 선교사들을 후원하는 일을 멈추면 안 된다는 것을요.”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