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노년이 아름답다”
성령에 이끌린 사람들
책 <은퇴 후 쿼바디스> 펴낸 원우현 장로
영원한 피터팬 같은 사람을 만났다. 백발과 소년의 개구 진 웃음을 동시에 지닌 원우현 장로(서빙고공동체)가 그 주인공이다. 원 장로는 74세에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그것도 현지어 한마디 할 줄 모르는 몽골국제대학(MIU)에서 말이다. 한평생 쌓아온 명예와 혜택, 사랑하는 가족들을 뒤로 한 어쩌면 무모해 보이는 선택이었다. 몽골에서 적응 과정이 무척 힘들고 어려웠지만 몽골행을 선택한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 꿈꾸는 노년이 아름답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시간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뜻하나니…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 예순 살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네
누구나 세월만으로 늙어가지 않고 이상을 잃어버릴 때 늙어가나니…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그대는 여든 살이어도 늘 푸른 청춘으로 살 수 있네”
(사무엘 울만의 시 ‘청춘’ 中)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 예순 살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네
누구나 세월만으로 늙어가지 않고 이상을 잃어버릴 때 늙어가나니…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그대는 여든 살이어도 늘 푸른 청춘으로 살 수 있네”
(사무엘 울만의 시 ‘청춘’ 中)
늘 청춘처럼 사는 원우현 장로가 새해 첫날 <은퇴 후 쿼바디스>(도서출판 다비다)라는 책을 펴냈다. ‘쿼바디스’는 ‘(주여, 당신은)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말이니 풀어쓰면 ‘은퇴 후 어디로 가나?’가 될 것이다.
이 질문은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반대자들을 피해 도망치다 (환상으로 나타난) 십자가를 진 예수에게 물었던 질문이다. 반대자들을 향해 가는 예수를 본 베드로가 어떤 길을 택했을지는 안 봐도 자명하다.
원우현 장로 또한 베드로처럼 일반인들과 반대되는 선택을 했다. 그 선택과 결단이 책 <은퇴 후 쿼바디스>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이 책을 회고록으로 생각하고 읽어보려는 독자들이 계시다면 기대에 빗나간 것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 책은 내 인생의 노년에 한순간 무엇인가에 떠밀리듯이 선교지 울란바토르로 파송되어 시작한 작은 영적 걸음의 발자취들을 모은 것이다.”
이 질문은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반대자들을 피해 도망치다 (환상으로 나타난) 십자가를 진 예수에게 물었던 질문이다. 반대자들을 향해 가는 예수를 본 베드로가 어떤 길을 택했을지는 안 봐도 자명하다.
원우현 장로 또한 베드로처럼 일반인들과 반대되는 선택을 했다. 그 선택과 결단이 책 <은퇴 후 쿼바디스>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이 책을 회고록으로 생각하고 읽어보려는 독자들이 계시다면 기대에 빗나간 것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 책은 내 인생의 노년에 한순간 무엇인가에 떠밀리듯이 선교지 울란바토르로 파송되어 시작한 작은 영적 걸음의 발자취들을 모은 것이다.”
몽골에서 시작한 제2의 인생
원우현 장로는 올해 77세다. 언론학자로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2007년 정년퇴임했다. 그리고 2016년 돌연 몽골 울란바토르로 향했다. 당시 그의 나이 74세였다. 몽골이란 나라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몽골말을 하지도 못했다. 그저 하나님이 주신 소명에 이끌린 결단이었다.
“노년의 목표를 찾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싶어 기도하고 있었어요. 그때 ‘너는 내 것이다. 내가 사자를 보내서 청하는 것을 너는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신실하게 최선을 다해라’는 음성이 들렸어요. 그리고 얼마 후 몽골국제대학(MIU) 권오문 총장님이 저를 만나고 싶다고 연락을 해왔어요. 몽골국제대학에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학부를 신설하려고 하는데 제가 적임자라고 생각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몽골국제대학으로 가는 게 하나님이 인도하신 계획이라는 걸 깨닫고 ‘아멘’으로 화답했어요.”
원 장로는 권 총장이 요구한 최적의 사람이었다. 영어 강의가 가능하고, 언론학 분야에서 지식과 행정능력이 있으며, 선교사역자로서 영적인 사명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권 총장의 권유를 흔쾌히 수락을 했는데 걸리는 게 있었다. 당시 97세였던 홀어머니 황숙희 권사(올해 100세)와 아내 이방숙 권사(연세대 명예교수)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은 것이었다.
“다행히 어머니와 아내가 제 선택을 존중해 주었어요. 특히 어머니는 낯선 몽골 땅으로 떠나는 늙은 아들 손에 종이쪽지를 쥐여 주시며 격려해 주셨어요. ‘걱정하지 말아라. 주님 주신 사명에만 최선을 다해라. 주님이 그 사명을 이뤄주시기 위해 너와 동행하시고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실 것이다’라고 적혀있더라고요.”
그렇게 하나님이 주신 확신과 가족들의 격려를 받고 몽골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그런데 적응 과정이 녹록지 않았다.
“번지점프 하듯이 그냥 뛰어내린 곳이 몽골이었어요. 몽골말 한마디도 할 줄 몰랐고, 차도 없어서 이동하는데 무척 불편했어요. 울란바토르가 고산지대이다 보니까 고산병 증세가 걱정이 되기도 했고요. 어떤 교수님은 고산병 때문에 6개월도 못 버티고 귀국하기도 했어요. 제 나이가 나이인지라 건강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그 힘든 순간 원 장로가 버틸 수 있었던 비결은 말씀이었다. 빌립보서 2장 13절 말씀이 큰 힘이 되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는 말씀이 큰 위로가 됐어요. 하나님이 몽골에서의 학원선교를 기뻐하시고, 그 일을 행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되새기며 근심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사명을 따라 몽골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지만 칠십 중반의 노인에게 무엇 하나 쉬운 결정이 없었다. 한국에 있으면 편한 삶, 사랑하는 가족, 명예와 이력, 사회적 혜택이 보장되는데 그것을 모두 내려놓고 낯선 땅으로 가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75세에 자신의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하나님 명령에 따라 고향을 떠난 것처럼 원 장로도 성령의 인도하심과 믿음으로 낯선 땅 몽골로 갔다. 그리고 겸손하게 고백했다.
“처음에는 어둠 속에 있는 몽골 사람들을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오히려 제가 그들에게 도움을 받고 있어요. 왜냐하면 그곳에서 저는 몽골말 하나도 못하는 노인에 불과하거든요. 몽골교회에서는 제가 한국 대형교회 장로인줄도 몰라요. 그곳 아이들에게 저는 아이스크림이나 초코과자 나눠주는 할아버지일 뿐이에요.”
하나님의 일에 은퇴란 없다
“노년의 목표를 찾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싶어 기도하고 있었어요. 그때 ‘너는 내 것이다. 내가 사자를 보내서 청하는 것을 너는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신실하게 최선을 다해라’는 음성이 들렸어요. 그리고 얼마 후 몽골국제대학(MIU) 권오문 총장님이 저를 만나고 싶다고 연락을 해왔어요. 몽골국제대학에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학부를 신설하려고 하는데 제가 적임자라고 생각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몽골국제대학으로 가는 게 하나님이 인도하신 계획이라는 걸 깨닫고 ‘아멘’으로 화답했어요.”
원 장로는 권 총장이 요구한 최적의 사람이었다. 영어 강의가 가능하고, 언론학 분야에서 지식과 행정능력이 있으며, 선교사역자로서 영적인 사명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권 총장의 권유를 흔쾌히 수락을 했는데 걸리는 게 있었다. 당시 97세였던 홀어머니 황숙희 권사(올해 100세)와 아내 이방숙 권사(연세대 명예교수)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은 것이었다.
“다행히 어머니와 아내가 제 선택을 존중해 주었어요. 특히 어머니는 낯선 몽골 땅으로 떠나는 늙은 아들 손에 종이쪽지를 쥐여 주시며 격려해 주셨어요. ‘걱정하지 말아라. 주님 주신 사명에만 최선을 다해라. 주님이 그 사명을 이뤄주시기 위해 너와 동행하시고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실 것이다’라고 적혀있더라고요.”
그렇게 하나님이 주신 확신과 가족들의 격려를 받고 몽골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그런데 적응 과정이 녹록지 않았다.
“번지점프 하듯이 그냥 뛰어내린 곳이 몽골이었어요. 몽골말 한마디도 할 줄 몰랐고, 차도 없어서 이동하는데 무척 불편했어요. 울란바토르가 고산지대이다 보니까 고산병 증세가 걱정이 되기도 했고요. 어떤 교수님은 고산병 때문에 6개월도 못 버티고 귀국하기도 했어요. 제 나이가 나이인지라 건강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그 힘든 순간 원 장로가 버틸 수 있었던 비결은 말씀이었다. 빌립보서 2장 13절 말씀이 큰 힘이 되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는 말씀이 큰 위로가 됐어요. 하나님이 몽골에서의 학원선교를 기뻐하시고, 그 일을 행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되새기며 근심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사명을 따라 몽골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지만 칠십 중반의 노인에게 무엇 하나 쉬운 결정이 없었다. 한국에 있으면 편한 삶, 사랑하는 가족, 명예와 이력, 사회적 혜택이 보장되는데 그것을 모두 내려놓고 낯선 땅으로 가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75세에 자신의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하나님 명령에 따라 고향을 떠난 것처럼 원 장로도 성령의 인도하심과 믿음으로 낯선 땅 몽골로 갔다. 그리고 겸손하게 고백했다.
“처음에는 어둠 속에 있는 몽골 사람들을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오히려 제가 그들에게 도움을 받고 있어요. 왜냐하면 그곳에서 저는 몽골말 하나도 못하는 노인에 불과하거든요. 몽골교회에서는 제가 한국 대형교회 장로인줄도 몰라요. 그곳 아이들에게 저는 아이스크림이나 초코과자 나눠주는 할아버지일 뿐이에요.”
하나님의 일에 은퇴란 없다
원 장로는 1989년 온누리교회에 왔다. 그가 온누리교회에서 30년을 보내면서 배운 것은 열정과 도전이었다.
“온누리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면서 복음의 문을 열기 위해 물불 안 가리는 열정과 불타는 도전정신을 배웠습니다. 제가 몽골과 학원선교라는 사명을 발견하고, 신앙적으로 성숙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온누리교회에요.”
가족을 향한 감사와 사랑도 그를 지탱해주는 강력한 힘이었다.
“평생을 같이 해준 아내에게 너무 감사해요. 아내는 결혼해서 지금까지 시부모님을 모셨어요.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아내가 아주 충실하게 수행해줬습니다. 무엇보다 어머니 황숙희 권사님께 감사드려요. 어머니의 신앙이 지금의 저를 있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머니의 회심, 신앙, 기도, 사랑이 있었기에 오늘의 제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원우현 장로는 “은퇴는 인생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은퇴는 인생의 후반전이자 노년의 시작이라고 정의했다.
“하나님의 일에는 은퇴란 없어요. 삶의 끝자락에서, 보이지 않는 작은 일에도 하나님의 기쁜 뜻이 있어요. 하나님만 일방적으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가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꿈꾸면 청춘입니다. 저는 아직도 꿈을 꿉니다.”
겉보기에는 백발의 할아버지만 꿈꾸는 그의 모습은 20대 청년보다 더 청춘이었다.
“온누리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면서 복음의 문을 열기 위해 물불 안 가리는 열정과 불타는 도전정신을 배웠습니다. 제가 몽골과 학원선교라는 사명을 발견하고, 신앙적으로 성숙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온누리교회에요.”
가족을 향한 감사와 사랑도 그를 지탱해주는 강력한 힘이었다.
“평생을 같이 해준 아내에게 너무 감사해요. 아내는 결혼해서 지금까지 시부모님을 모셨어요.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아내가 아주 충실하게 수행해줬습니다. 무엇보다 어머니 황숙희 권사님께 감사드려요. 어머니의 신앙이 지금의 저를 있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머니의 회심, 신앙, 기도, 사랑이 있었기에 오늘의 제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원우현 장로는 “은퇴는 인생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은퇴는 인생의 후반전이자 노년의 시작이라고 정의했다.
“하나님의 일에는 은퇴란 없어요. 삶의 끝자락에서, 보이지 않는 작은 일에도 하나님의 기쁜 뜻이 있어요. 하나님만 일방적으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가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꿈꾸면 청춘입니다. 저는 아직도 꿈을 꿉니다.”
겉보기에는 백발의 할아버지만 꿈꾸는 그의 모습은 20대 청년보다 더 청춘이었다.
작성자 정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