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믿음의 영웅들

우리는 은혜, 사랑, 긍휼 같은 단어들을 쉽게 사용합니다. 하지만 사실 이런 말들은 인간에게 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에게는 사랑이 없습니다. 조건 없는 사랑은 하나님에게만 있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인 ‘긍휼’도 인간의 것이 아닙니다. 정의, 거룩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  인간에게 속한 단어는 믿음, 의지, 용기, 결단 같은 단어들입니다. 이들중 특히 자랑스럽고 복된 단어는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히 11:6) 인간은 제아무리 잘나고 똑똑하다고 해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직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키가 크든 작든, 부자든 가난하든, 잘나든 못나든 상관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기뻐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믿음입니다. 교회에 오래 다녔다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내게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내게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외면하십니다. 믿음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믿음을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요? 해답은 간단명료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보면 됩니다. 모델을 보는 것만큼 벤치마킹에 좋은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인정하신 믿음의 사람들을 보면서 그 사람들의 삶의 태도를 배우면 우리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믿음의 정의와 더불어 믿음의 사람들, 영웅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믿음의 영웅들에 대한 말씀을 요약해서 나누기를 원합니다. 믿음의 영웅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 이전과 아브라함 이후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서 믿음의 기둥과 같은 존재입니다. 아브라함 이전의 믿음의 영웅들은 세 사람입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렸던 아벨입니다. 둘째는 죽음을 맞지 않고 승천한 에녹입니다. 셋째는 물의 심판에서 살아남은 노아입니다. 이 세 사람의 믿음을 조금 더 깊이 보겠습니다.  참된 예배를 드린 아벨  첫 번째 히브리서 11장 4절을 보면 아벨의 믿음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왜 아벨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셨을까요? 왜 아벨을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했을까요? 아벨을 통해서 배우는 것은 믿음이란 행위가 아니라 마음의 태도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얼마나 많이 했느냐, 얼마나 큰 업적을 이루었느냐가 믿음의 본질이 아니라 어떤 태도로 예배를 드렸느냐 제사를 드렸느냐가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태도입니다. 가인은 하나님께 화려한 제사를 드렸지만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습니다. 누가 봐도 가인의 예배는 화려하고 멋있고 그럴 듯 해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가인의 예배를 기뻐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 조심해야합니다. 프로그램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마음의 태도입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입니다’, ‘나는 헌금하기도 부끄러운 사람입니다’라는 태도로 드리는 예배와 ‘나는 일주일에 한번 금식기도도 하고, 헌금도 하고 봉사도 하고 새벽기도도 한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의 예배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참된 예배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참된 예배, 진실한 예배, 영적인 예배, 내적인 예배며 마음의 태도입니다. 겉으로 간음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생각을 품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살인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으로 형제를 무시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다 똑같은 말입니다. 아벨을 통해서 배우는 첫 번째 믿음의 교훈은 믿음은 어떤 행동이나 업적이 아니라 마음의 태도입니다. 예배드리는 자세입니다.  죽음을 보지 않은 에녹 두 번째 에녹을 통해서 배우는 믿음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11장 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으로 직통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간단합니다. 에녹은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을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삶입니다. 에녹의 삶 자체가 하나님께서 보실 때 좋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죽음을 통하지 않고 에녹을 데려가셨습니다. 그의 생각,  마음 등 모든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예뻤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는 말마다 밉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미운 짓을 해도 예쁘고 그냥 좋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에녹을 편애하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께서 예뻐하시는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해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에녹이 그랬습니다. 쉽게 말하면 에녹은 하나님의 마음의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5절과 6절은 연결됩니다. 6절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이 말씀은 에녹의 믿음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에녹이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에녹은 하나님의 존재를 공기처럼 늘 인정했습니다. 둘째 에녹은 하나님이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을 주시는 분임을 믿었습니다. 이것이 에녹의 믿음입니다. 에녹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찾는 자에게 반드시 상을 베풀어주시는 분임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에녹에게는 삶과 죽음은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삶의 연장이 천국이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삶도 천국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계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입니다.  방주를 예비한 노아  세 번째 노아의 믿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노아와 그 가족은 유일하게 물의 심판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11장 7절입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이 말씀에 노아의 믿음의 특징이 다섯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노아는 보지 않고도 하나님의 경고를 받아들였습니다. 참 귀한 믿음입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는데도 그 경고를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도 미래에 오지 않는 경고를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노아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늘 하나님을 의식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공통적인 특징은 하나님에 대한 의식입니다. 무의식의 세계까지도 하나님이 계셨다는 것입니다. 셋째 노아는 방주를 예비하여 심판을 대비했습니다. 그는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방주는 합리성과 이성으로는 지을 수 없었습니다. 배를 산 꼭대기에 만드는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그토록 큰 방주를 하루이틀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긴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아를 비난했을까요. 그렇지만 노아는 방주를 계속지었습니다. 넷째 노아는 자기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그의 가족까지 다 구원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가족도 여러분 때문에 구원받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만 천국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가족도 데리고 가십시오. 다섯째 노아는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습니다.  본향을 바라보는 사람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는 그의 아내 사라와 아들 이삭이 있었습니다. 그 후로 야곱, 요셉, 모세가 있었습니다. 모세 후에는 가나한 땅을 점령한 여호수아가 있었고, 그를 도왔던 기생 라합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의 믿음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히브리서 11장 13절에서 16절을 읽겠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아브라함 이후에 믿음의 조상들에 대한 믿음의 특징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첫째 믿음에 따라 살았고 믿음에 따라 죽었다는 것입니다. 둘째 약속을 받았지만 약속을 성취하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멀리서 약속을 보고 환영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모든 믿음의 사람의 특징입니다. 약속을 손에 쥐지는 않았지만 멀리서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셋째 구약의 믿음의 조상들은 외국인처럼 나그네처럼 살았다는 것입니다. 넷째 외국인과 나그네처럼 살면서 그들은 더 나은 본향을 꿈꾸었습니다. 그들은 과거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손에 잡히지는 않았지만 멀리서 그 약속을 보고 약속을 희망하고 더 나은 세계, 더 나은 하나님의 본향을 보면서 죽었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 이후의 믿음의 영웅들의 특징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한 성을 늘 보았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죽을 때 환상속에서 하나님의 보좌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클라이맥스 특별히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믿음의 사건은 독자 이삭을 바친 사건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의 클라이맥스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클라이맥스는 여러분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내놓을 때입니다. 그것이 자식일 수도, 재산일 수도, 명예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그것을 내놓을 때가 바로 여러분 믿음의 클라이맥스입니다.  여러분, 믿음은 평원을 달리는 것이 아닙니다.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리는 것입니다. 실상은 사느냐 죽느냐가 믿음의 세계입니다. 최고의 믿음은 여러분의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을 포기할 때 비로소 빛이 납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의 약속을 믿고 계승했습니다. 야곱은 아버지 이삭의 약속과 축복을 믿고 계승했습니다. 요셉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약속과 축복을 믿고 계승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자기의 시신을 애굽땅에 묻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성경은 우리를 위대한 믿음의 영웅 모세에게로 이끕니다. 모세의 믿음의 특징은 25절, 26절에 나와 있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애굽을 소유할 수 있었던 모세는 무언가를 보고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여러분, 천국을 본 사람들은 이 세상의 명예나 전통이나 재물을 쉽게 놓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혁명가입니다. 기득권을 다 포기할 용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전통을 다 부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득권을 포기하고 전통을 부숴야합니다. 그래야 항상 새로운 세계가 도래합니다.  이어지는 믿음의 계보  이 사람들 뿐만 아니라 신약에 들어오면 믿음의 영웅들이 또 나타납니다. 복음을 위해서 감옥에 들어가고 복음을 위해서 굶고 태형을 맞고 수모를 겪고 직업을 잃어버리고 가족이 흩어지면서도 복음을 위해서 살았던 믿음의 영웅들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 뿐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초대교회에 보면 순교한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초대교회뿐일까요? 아닙니다. 기독교 2000년을 역사를 보면 어마어마한 믿음의 영웅들이 교회를 지켰습니다. 한국에도 선교사들이 왔습니다. 양화진에 그들의 무덤이 있습니다. 다 믿음의 영웅들입니다. 이들은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다니엘, 구약의 모든 예언자들, 사도행전에 나오는 모든 사도들, 2천년 동안 순교했던 수많은 믿음의 영웅들과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여러분도 그 길을 가야 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교회요 크리스찬이요 믿음입니다. 이 사람들의 특징은 오늘 33절부터 40절에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이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첫째 고난을 겪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고난을 기쁘게 받았습니다. 고난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생각 가운데 수정할 것이 하나 있는데 ‘예수 믿으면 세상적으로 복받는다’는 생각입니다. 바꾸셔야합니다. 예수 믿으면 세상적으로 복도 받지만 고난도 겪습니다. 둘째 이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을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학교, 연구소, 직장등 어느 곳에 가서든 여러분의 믿음을 그 조직이 감당해 내지 못할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의 특징은 증거가 많다는 것입니다. 증거없이 믿음 없습니다. 39절을 보니 믿음의 사람들은 약속을 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죽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사람들을 절망시키고 불행하게 만들고 슬프게 하는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어떤 것도 이 사람이 가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위험을 안고, 폭탄을 안고 살면서도 새 하늘과 새 성,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여러분과 저도 믿음의 영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도 믿음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사람들이 되게하옵소서.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게 하시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게 하시고 더 나은 본향을 늘 바라보면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