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죄의 심각성(마가복음 9장 38~50절) - 이재훈 목사

마가복음 9장 38~50절

이재훈 목사

 

 

잃어버린 한 영혼을 위해서 부르짖으십시오. 날마다 우리의 심령이 소금에 절인 사람이 되어서이 세상에 거룩한 영향력을 행사하십시오.  여러분이 우리 민족을 부패하지 않게 하는 소금입니다.

 

 

“요한이 말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어떤 사람을 보고 우리를 따르는 자가 아니어서 우리가 그에게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38절).

요한이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에게 사역을 하지 못하게 한 이유는 그 사람이 자신들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제자들이 쫓아내지 못한 귀신을 그 사람은 쫓아냈다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에게 선택을 받지도 않았고 예수님과 동행하지도 않았지만 귀신을 쫓는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여러분, 반드시 예수님에게 선택을 받거나 예수님과 동행해야만 성령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며 그의 이름으로 권세를 행하는 자에게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영적 질투심과 시기심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역을 하지 못하게 한 요한의 태도는 오랜 시간동안 교회를 분열시키고 교회 안에 다툼이 일어나게 하는 세력의 태도와 같습니다. 때때로 교회는 누군가가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도 자신들이 표방하는 삶과 다르면 배제시켰기 때문에 분열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배타적인 태도의 이면에는 권세와 영적 질투심이 숨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세상적인 시기심과 질투심보다 더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 영적 질투심과 시기심입니다. 이것은 거룩한 삶을 추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려 노력하는 신실한 사람들에게도 나타나는 최후의 유혹입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도 비슷한 일을 겪었습니다. 요한을 따르던 사람들이 예수님이 나타나자 예수님에게로 갑니다. 이때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사람들이 모두 예수라는 사람에게로 가버립니다. 대책이 있어야 합니다”라고 건의하지만 그는 어떠한 대책도 세우지 않습니다. 자신은 예수님 보다 앞서 와서 예수님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사람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에도 세례 요한과 같은 성도들이 많아야 합니다. 교회는 경쟁하는 곳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세워주는 아름다운 곳이어야 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자기 자신을 통해서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에는 관심이 많지만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거절하고 배척해야 할 ‘죄’

 

요한의 이야기를 들은 예수님은 요한을 책망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못하게 하지 마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고 나서 바로 나를 욕할 사람은 없다. 누구든지 우리를 반대하지 않으면 우리 편이다’”(39~40절).요한은 ‘우리와 함께 하지 않으면 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반대하지 않으면 같은 편’이라는 관점을 갖고 계셨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적은 다른 교회가 아니라 사탄입니다. 사탄을 적으로 생각하는 모든 교회는 한 가족이요 한 팀입니다. 우리는 온누리교회 뿐만 아니라 모든 교회의 부흥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포용력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포용하는 것과 반대로 단호하게 거절하고 배척해야 할 것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입니다.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어린아이들 중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사람은 차라리 큰 맷돌을 목에 달고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을 것이다.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잘라 버려라. 두 손을 가지고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떨어지느니 성하지 않은 몸이 되더라도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낫다. 또 네 발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잘라 버려라.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느니 저는 다리로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낫다. 또 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뽑아 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느니 한 눈만 가지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낫다”(42, 43, 45, 47절).여러분, 왜 죄를 끊어야 합니까. 죄와 더불어 있으면 지옥에 던져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 이유도 자신들에게 죄가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또한 구원의 감격이 무뎌지는 이유는 죄와 더불어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죽음의 장소 ‘지옥’

 

여러분, 우리는 성령 안에서 날마다 자신의 죄를 위해 통곡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지옥의 무서운 형벌을 피하기 위해 죄를 끊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옥이라는 단어를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옥은 실제입니다.

“지옥은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곳이다”(48절).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기 때문에 악을 제대로 징벌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공의 안에서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지옥은 무고한 사람을 괴롭히고 겁을 주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완전한 공의가 실현되는 곳입니다. 지옥은 실제이며 영원한 형벌의 장소요 죽음의 장소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천국에서는 영원히 살지만 지옥에서는 영원히 죽습니다. 

 

죄를 끊고 소금이 되십시오 죄를 끊는 일은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성령님이 우리와 죄를 분리시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죄와 작별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임으로써 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신 도구일 뿐 아니라 내가 예수님과 함께 못 박혀 죽는 도구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통해 역사하실 때 우리가 죄를 끊겠다는 결단과 육신의 몸이 끊어지는 고통을 감수해야 죄가 끊어집니다. 십자가 밖에 있으면 죄를 끊으려고 해도 끊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죄에 지배받지 않으며 살 수 있는 방법을 소금을 비유로 알려주셨습니다.“모든 사람이 소금에 절여지듯 불에 절여질 것이다.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그 짠맛을 잃으면 어떻게 다시 짜게 되겠느냐? 그러므로 너희 가운데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화목하게 지내라”(49~50절). 

예수님의 말씀은 엄숙하면서도 위트가 있습니다. 소금으로 절이는 것이 불에 타는 것보다 고통이 덜하듯이 육체를 억제하는 고통이 육체를 억제하지 못해서 영혼이 고통을 받는 것보다 훨씬 가볍습니다. 이 땅에서 소금에 절여지는 것이 겠습니까 아니면 지옥에서 불에 절여지는 것이 낫겠습니까. 이 땅에서 소금에 절인 사람이 되지 않으면 지옥에서 불에 절인 사람이 됩니다. 고대에 소금은 매우 귀했습니다. 소금은 변치 않는 약속의 증거이기도 화폐의 단위가 되기도 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사해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당시에 부자가 되었습니다. 소금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날마다 소금에 절이지 않으면 부패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올바로 사는 것이 바로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 기쁨으로 절여진 사람이 부패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한 영혼 위해 기도해야

 

“여러분은 언제나 소금으로 맛을 내는 것같이 은혜롭게 말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각 사람에게 어떻게 말할 것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골 4:6). 우리가 소금 맛을 잃어버리면 버려질 뿐만 아니라 죄악에 이끌리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소금에 절여진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만약 소금에 절여지지 않으면 불에 절인 인생이 됩니다.우리 안에 죄가 있음을 깨닫고, 죄가 아닌 성령에 이끌리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변에 지옥으로 향하고 있는 인생이 있는지 살펴보고 그들이 지옥에 가지 않도록 전도하십시오. 잃어버린 한 영혼을 위해서 부르짖으십시오. 날마다 우리의 심령이 소금에 절인 사람이 되어서 이 세상에 거룩한 영향력을 행사하십시오. 바로 여러분이 우리 민족을 부패하지 않게 하는 소금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소금이 되어 부패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을 주님의 백성으로 만드는 역할을 하시길 바랍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