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가정

이재훈 목사
마가복음 10장 1~12절
하나의 열매가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진 성령의 열매처럼부부도 한 사람의 개성을 말살하는 것이 아니라 고유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하나를 이뤄야합니다.가정의 원형을 가슴에 새기십시오. 주님의 가정으로 세워지는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두 부류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첫 번째 부류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기적을 체험하길 원하는 사람들이고, 두 번째 부류는 예수님을 넘어뜨릴 구실을 찾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두 번째 부류인 바리새인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왜 세리와 죄인들과 같이 식사를 하십니까?”, “왜 요한의 제자들처럼 금식하지 않는 것입니까?”, “왜 씻지 않은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어서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지 않습니까?”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인생의 디딤돌 ‘예수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넘어뜨리기 위해 한 질문은 그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진리를 드러내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살아가면서 시험에 들 때가 많습니다. 어떤 시험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한 함정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예수님이 계시면 어떠한 시험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를 넘어뜨리려 한 시험이 오히려 우리를 예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게 하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면 인생의 걸림돌이 디딤돌로 바뀝니다.“바리새파 사람들 몇 명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려고 물었습니다. ‘남자가 자기 아내와 이혼해도 됩니까?’”(2절). 본문을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넘어뜨리기 위해 이혼을 주제로 질문을 합니다. 당시 사회에서 이혼은 민감한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이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헤롯의 잘못된 결혼을 비판했다가 죽임을 당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헤롯은 남동생의 아내를 강제적으로 취했습니다. 그는 이혼과 재혼을 쉽게 생각했습니다. 그의 잘못된 결혼관에 대해 비판해서 요한이 죽임을 당하자 누구도 이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이혼 증서’
바리새인들의 던진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세례 요한과 비슷한 대답을 한 것을 헤롯이 알게 되면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들은 바리새인들의 치밀한 계략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모세가 어떻게 하라고 명령했느냐?’그들이 말했습니다. ‘모세는 남자가 이혼증서를 써 주고 아내와 헤어져도 된다고 했습니다.’”(3~4절). 이혼해도 된다는 바리새인들의 대답은 잘못됐습니다. 바리새인들의 말에서 당시 사람들이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만약 한 남자가 어떤 여자와 결혼했는데 그가 여자에게서 부끄러움이 되는 일을 알게 돼 마음으로 싫어지게 되면 그는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여자에게 주고 자기 집에서 내보내야 한다. 만약 그 여자가 그 집을 떠나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고 나서 그 두 번째 남편도 그녀를 미워해 그녀에게 이혼 증서를 써 주고 집에서 내보냈거나 혹은 그녀를 데려간 그 남편이 죽었더라도 그녀가 더럽혀진 뒤에 그 여자와 이혼한 전 남편이 그녀를 다시 데려오지 말라. 이는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가증스러운 일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기업으로 주시는 그 땅 위에 죄를 부르지 말라(신 24:1~4).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하면 이혼을 권유하는 것 같습니다. 1절에 나오는 부끄러움이 되는 일에 대한 기준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당시 여자들이 남성들의 횡포에 시달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을 비하하고 하찮은 이유로 아내를 버릴 수 있는 사회였습니다. 이러한 문화 때문에 하나님이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바로 이혼 증서입니다. 당시에는 이혼 증서가 없는 여성들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혼 증서 없이 다른 남자를 만나면 간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혼 증서는 이혼한 여성들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근거였습니다. 이혼 증서는 사랑이 가득해야 할 가정이 불의한 공동체로 변하고 있는 사회에서 하나님이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제도이지 마음껏 이혼하라고 만든 제도가 아닙니다.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그런 계명을 쓴 것은 완악한 너희 마음 때문이다’”(5절).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근거로 이혼 증서를 써주면 마음대로 이혼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혼에 대한 왜곡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 바리새인들은 말씀을 인간적인 생각으로 해석해서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남자가 자기 부모를 떠나 아내와 더불어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6~9절). 이것이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명령은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순종해야합니다. 그것이 명령입니다. 이 외의 가정에 대한 나머지 말씀은 일시적인 허용이지 명령이 아닙니다.
가정의 원형을 가르쳐야
가정의 원형은 어떤 모습일까요.
첫째, 남자와 여자가 만나 가정을 이뤄야합니다. 이 이야기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오늘날은 남자와 여자가 만나 가정을 이루는 것을 의심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잘 키워놓은 아들이 어느날 결혼하겠다고 사람을 데려왔는데 그 사람이 남자라면 어떻겠습니까.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여러분, 자녀들에게 가정과 결혼의 원형을 가르쳐야 합니다. 현대 사회는 문화, 생물학적 반응,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원형을 허물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에는 진리가 반드시 전해져야합니다. 둘째,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내가 그에게 알맞은 돕는 사람을 만들어 주겠다”(창 2:18절).
하나님이 아담을 만드신 장소는 모든 것이 완벽한 에덴동산이었지만 무엇인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담에게 돕는 사람, 하와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돕는 사람은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결정적 존재입니다.
“오 여호와여, 내 말을 들으시고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오 여호와여, 나를 도와주소서”(시 30: 10).
여러분의 아내에게 “당신은 나의 결정적인 존재입니다”라고 고백하십시오. 여자는 남자들이 부족한 결정적인 부분을 도와주는 존재입니다. 하와를 만난 아담은 “드디어 내 뼈 가운데 뼈요 내 살 가운데 살이 나타났구나. 이가 남자에게서 취해졌으니 여자라고 불릴 것이다”(창 2:23)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하나입니다. 그 하나의 열매가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등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의 열매가 여러 모습을 가진 것처럼 부부도 한 사람의 개성을 말살하는 것이 아니라 고유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하나를 이뤄야합니다. 많은 것을 소유해도 친밀감이 없으면 불행한 사람입니다. 반대로 많은 것을 소유하지는 못했지만 누군가와 친밀감을 누리고 살고 있다면 그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주님 기뻐하실 ‘가정공동체’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 되기를 원하십니다. 부부는 함께 볼륨댄스를 추는 사람들입니다. 한 사람이 끌면 따라오고, 중심을 상대방에게 두고 리듬을 타지 않으면 절대 하나가 될 수 없는 볼륨댄스처럼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진정으로 하나가 된 가정입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의 원형이 무엇인지 공부해야 합니다. 어떻게 그림을 한 번 보고 그릴 수 있겠습니까.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을 돌보면서 하나님이 명령하신 가정의 원형을 가슴에 새기십시오. 여러분의 가정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