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감사의 제사를 드리십시오.

시편 50편 7절~15절

 

이 재 훈 목 사

 

감사는 영혼을 지켜주고 잠자고 있는 영혼을 깨웁니다.   감사함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지켜주십니다.매일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며 사십시오.불평은 사탄을 기쁘게 하고 감사는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 범사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시오.

 

인생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현미경의 관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망원경의 관점입니다. 현미경과 망원경은 사물을 크게 확대해서 보는 도구입니다. 그러나 두 도구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현미경은 너무 작아서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사물을 확대해서 보는 것이고 망원경은 거리가 멀어서 실제 크기보다 작아 보이는 사물을 확대해서 보는 도구입니다.

인생을 현미경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아주 작은 일을 지나치게 확대해서 바라봅니다. 그들은 인생을 불평합니다. 인생을 불평하기 시작하면 아주 작은 문제도 점점 크게 보입니다. 결국 작은 문제가 견디기 힘든 큰 문제로 확대됩니다.

감사는 망원경의 관점과 같습니다. 눈으로 보기에는 작지만 망원경의 관점으로 보면 큰 사물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현미경 관점과 망원경 관점

 

시편 69편에서는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높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망원경이나 현미경은 사물을 확대시키는 도구입니다. 그러나 현미경 관점은 지나쳐도 될 것을 지나치게 확대하는 것이고 망원경은 눈으로 보기에 작아 보이는 사물을 실제처럼 보게 해주는 도구입니다.

여러분, 감사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위대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보지 못하던 것들을 감사할 때 하나님의 광대하심이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이번 추수감사절을 통해 우리 모두가 망원경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시야를 갖게 되길 소망합니다.

여러분, 노래는 부를 때까지 노래가 아니며,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닙니다. 사랑은 표현할 때까지 사랑이 아니고, 축복은 감사할 때까지 축복이 아닙니다. 축복은 진정으로 감사할 때 우리에게 옵니다. 

‘주는 말이 감사하고 받는 사람이 불평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누군가에게 베풀면서 감사를 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베풀 수 있는 것 자체를 감사합니다. 누군가를 섬기고 베풀면서 마음속에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늘 받으면서도 불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누군가와 비교하면서 자신이 받은 것이 적다고 불평합니다. 자신이 받은 것이 적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거저 받았음에도 그들의 불평을 멈추지 않습니다.

감사의 진정한 의미 

감사할 수 있게 만드는 것과 감사를 통해 받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감사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두 가지 요인이 있는데 그 첫째가 은혜입니다. 감사는 은혜에 대한 반응이요 열매입니다. 은혜가 없다면 감사도 없습니다. 헬라어로 은혜는 카리스이고 은사는 카리스마입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카리스마라는 단어는 어떤 면에서 와전된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은사는 은혜가 준 선물입니다. 감사는 은혜가 무엇인지 깨달을 때 생깁니다. 감사는 자신이 받은 것을 은혜 덕분에 받았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 고백이 감사의 출발점입니다.

“오 내 백성들아, 들으라. 내가 말한다. 오 이스라엘아, 내가 너에 대해 할 말이 있다. 나는 하나님이다. 바로 네 하나님이다”(7절).

하나님이 할 말이 있다는 것은 불편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불편하게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을 은혜로 받았다고 고백하지 않고 영광을 올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인간이 하나님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감사입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재물을 드리지 않았다고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드리는 번제가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기대

“내가 네 희생제로 너를 책망하지 않을 것이니 너는 계속해서 내 앞에 번제를 드렸다. 나는 네 외양간의 황소도, 네 우리의 염소도 가져갈 생각이 없다. 숲 속의 동물이 다 내 것이며 수천의 산에 널려 있는 소들도 다 내 것이 아니냐! 내가 산에 있는 새들을 다 알고 있고 들에 있는 동물들도 다 내 것이다. 내가 혹 굶주려도 네게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이 내 것이고 그 안의 모든 것이 내 것이니 말이다. 내가 황소 고기를 먹겠느냐? 아니면 염소 피를 마시겠느냐?”(8~13절). 

우리가 드리는 어떤 예물도 그 자체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은 ‘내 것이다’라는 말씀을 4번씩이나 반복하십니다.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인데 예물자체로 영광 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재물 자체로만 영광 올리려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이 불편합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들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면서 마치 자신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늘 주시는 하나님

여러분, 세상의 종교와 기독교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세상의 모든 종교는 신에게 인간이 무엇인가를 받치라고 합니다. 인간은 주는 역할이고 신은 받는 역할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하나님이 주시고 사람은 받습니다.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그것을 기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통해 영광을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오직 감사를 통해 영광 올리는 것만이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합니다.

12절에 보면 하나님이 ‘굶주려도 네게 말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이 배가 고프겠습니까.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헌신과 봉사, 예물은 하나님의 것을 감사함으로 올려 드리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그것만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진정한 제사입니다. 

고난을 통해 깨닫는 감사

은혜와 더불어 우리가 감사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난입니다. 상식적으로 고난이 우리에게 감사를 가져다줄까요.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깨닫는 통로가 고난입니다. 은혜가 은혜인줄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 고난을 겪으면서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은혜를 깨닫습니다. 고난을 통해서 우리는 감사를 배우게 됩니다. 고난을 겪지 않는 사람보다 고난을 겪어본 사람이 더욱 감사를 많이 합니다.

이번 나가노 러브소나타에서 일본 목회자들에게 배운 것이 있습니다. 일본 목회자들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게 사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은 감사하는 마음이 차고 넘쳤습니다. 사실 한국에서는 수천 명이 모이는 러브소나타와 같은 행사는 익숙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행사 자체가 얼마나 큰 은혜인줄 모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목회자들은 러브소나타 행사를 하는 것에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감사는 고난이 깊을수록 커집니다.

고난이 준 선물 감사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경험한 사람들이 은혜를 깨닫고 감사함을 고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기한 일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고통 가운데에서 감사함을 발견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감동 있게 들은 예화를 소개하고자합니다.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어느 부부가 아픔을 잊고 예배에 출석해 하나님께 드린 헌금봉투에 이런 내용을 적었다고 합니다. 좋은 아들을 20년 동안 저희 곁에 머물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들의 영혼을 받아 준 것에 감사드립니다. 또 다른 예화는 한국의 대표적인 순교자 손양원 목사님은 두 아들이 순교 당한 뒤 기도문을 이렇게 적었다고 합니다.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을 낳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허다한 성도 중에서 이런 보배를 나에게 주시니 감사합니다.’ ‘3남 3녀 중에서 가장 귀한 장남과 차남을 바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이 순교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병들어 죽어도 복인데 전도하다가 총에 맞아 순교했으니 감사합니다.’ ‘아들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려고 했는데 그보다 좋은 천국에 갔으니 마음이 안심이 되어 감사합니다.’ ‘내 아들을 죽인 원수를 회개시켜 아들을 삼는 사랑의 마음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내 아들의 순교의 열매로써 무수한 천국의 열매가 생길 것으로 인해 감사합니다.’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람을 깨닫게 하시고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여러분, 진짜 감사는 고난을 통해 배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사를 선물하기 위해서 고난을 겪게 하십니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축복과 은혜 속에서 우리가 감사를 잃어버릴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을 통해 진정한 감사를 배우게 하십니다.

토마스 아킵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라는 유명한 고전이 있습니다. 그 고전에 감사에 대한 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벌을 주시거나 고난을 주신다고 해도 우리는 감사해야합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게 하시더라도 그것은 언제나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행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 갖기를 원한다면 주어진 은혜에 감사하십시오. 또한 은혜가 여러분을 떠나더라도 참고 기다리고 감사하십시오. 은혜가 다시 돌아오도록 기도하십시오. 그것을 잃지 않도록 조심하고 겸손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가 계속 우리 가운데 머물게 하는 방법은 감사하는 것입니다. 때론 은혜가 떠난 것 같은 고난 속에 있을 지라도 감사하십시오. 그것은 은혜가 다시 돌아오게 하는 길이라는 영적 지혜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고난에도 감사할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잠자는 영혼을 깨우는 감사

하나님이 감사를 통해 주시는 축복이 있습니다. 첫째, 감사는 우리 영혼을 지켜주고 잠자고 있던 영혼을 깨어나게 합니다. 

 “기도를 힘쓰고 기도 가운데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십시오”(골 4:2). 이 말씀은 영혼이 깨어 있는 것과 감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 영혼을 깨어있게 하는 것은 기도와 감사입니다. 우리가 감사하지 않을 때에는 영적으로 잠자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 때에는 은혜를 깨닫는 능력이 떨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의 먹잇감이 되는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우리 영혼을 지켜야합니다. 감사할 때 우리는 영적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여러분이 구할 것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아뢰십시오. 그리하면 모든 생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빌 4장 6~7절).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것과 지켜주시는 것은 서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기도할 때 염려하지 않고 감사함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켜준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우리의 영혼을 지켜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말씀의 원리를 이미 알고 실천한 사람이 구약시대의 선지자 다니엘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가 진행되고 그 계획이 발표되었다는 것을 알고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감사로 위기 모면한 다니엘

“다니엘은 명령문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날도 이전에 하던 대로 창문을 열어둔 다락방에서 예루살렘을 향해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감사를 올렸습니다”(단6:10).

다니엘은 자신이 기도하면 죽임 당한다는 명령문이 내려진 것을 알고 있었지만 기도하는 습관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예전처럼 동일하게 기도했는데 놀랍게도 그 기도의 내용이 하나님께 자신의 입장을 탄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살려달려는 호소도 아니고, 불평도 아니었습니다. 감사의 기도였습니다. 그는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자신이 승진하거나 인정받은 것처럼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는 감사함으로 위기의 순간에 영적으로 깨어 있을 수 있었습니다. 하늘의 비밀을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이 위기의 순간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영적으로 넘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사탄의 공격을 막아 낼 수 있었습니다. 기억해야 하는 것은 그는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위기의 순간에도 엎드려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는 영혼을 지켜주는 방패입니다. 다니엘은 위기 상황에 처한 것 자체를 감사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처한 위기를 통해서 하나님이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을 기대하며 감사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사탄의 공격에 무너지지 않고 굳게 설수 있도록 붙잡아 준 은혜에 감사했을 것입니다.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세상 앞에 설수 있는 믿음을 주신 것을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는 감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하면 샘솟는 ‘자원하는 마음’

위기가운데 계시는 분이 있습니까. 불안과 염려 가운데 계시는 분이 있습니까. 다니엘처럼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앞에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이 심령을 지켜주셔서 승리할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우리의 자세는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지켜줄 때 어떤 일이든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이 추수감사절을 맞이해서 감사하는 영혼마다 흘러넘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렇게 감사하게 될 때 우리가 얻게 되는 또 하나의 열매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원하는 마음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반드시 자원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일합니다. 그들은 누군가가 시켜서 어쩔 수 없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일을 합니다.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 자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추수감사절은 받은 축복의 일부를 자원하여 드리는 절기입니다. 추수감사절의 기원을 미대륙에 정착한 청교도들이라고 말하지만 구약시대에 이미 하나님이 오순절과 칠칠절이라는 절기를 통해 추수를 감사하는 절기를 이미 마련해 주셨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신 16:19).

감사하는 마음이 있으면 반드시 자원해서 받치는 예물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성막을 만들라고 하셨을 때 성막에 필요한 모든 재료는 자원하는 자에게 받으라고 했습니다. 제가 모세였다면 당황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막에 대한 청사진을 주셨을 때 황금의 집이라 불릴 만큼 값비싼 재료들이 많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광야로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래를 염려했을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백성들에게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자원해서 낸 재료가 만드는 사람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일은 다윗이 성전을 지을 준비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성전을 지을 마음을 주셨습니다. 다윗이 모든 준비를 마쳤을 때에는 자원하는 마음이 일어났고 모든 리더들이 자원해서 예물을 내놓았습니다. 그 마음들이 모여 헌신하자 차고 넘치는 은혜가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워지는 원리는 자원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자원하는 마음은 감사함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감사

신학 최고의 결정은 감사입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는 것이 신학박사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신학박사가 될 수 있습니다. 신학적인 지식은 가득하지만 감사가 없다면 그것은 신학 박사가 아닙니다. 불평은 사탄을 기쁘게 하고 감사는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

현미경의 관점으로 모든 인생을 불평하며 작은 일도 크게 볼 것입니까. 아니면 망원경의 관점으로 높고 큰 위대한 하나님을 날마다 찬양하며 사시겠습니까.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때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이 든든히 지켜주실 것입니다. 어떤 영적전쟁에도 쓰러지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번 추수감사절을 통하여 우리의 영혼에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 생겨나길 소망합니다. 범사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기자 one@onnuri.org

일러스트: 박정일 meteorjip@nate.com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