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박사들의 크리스마스

박사들의 크리스마스 마 2:1~12

이재훈 목사

 

 

 

 

헤롯과 유대 지도자들처럼 예수님이 오신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면 악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경배하던 그 마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경배와 찬양 그리고 예배를 통해 성탄의 기쁨을 만끽하십시오.

 

 

 

예수님의 출생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역사를 BC와 AD로까지 나누게 되었을까요. 또한 인간의 출생과는 다르게 예수님의 출생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러분, 위대한 종교지도자나 성인의 출생이 예고된 적이 있습니까. 한 번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만이 예언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예언을 통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역사적으로 자신의 말과 행동이 동일한 사람이 있었을까요. 또한 예언된 대로의 삶을 산 사람이 있을까요. 한 명도 없습니다.

대부분의 종교지도자들과 인류의 위대한 지도자라고 불린 사람들도 모두 출생한 이후에 어떤 깨달음을 통해 위대한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신 이후에 진리를 깨닫고 자신의 삶의 방향을 설정한 분이 아닙니다. 말씀으로 예언된 대로 하나님이 육신의 옷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이 세상의 구세주가 되신 유일한 분입니다.

 

육신의 옷 입고 오신 예수님

 

예수님은 출생 이전부터 하나님이요, 위대하신 구세주였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된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된 사건은 인류에서 일어난 그 어떤 사건보다 위대한 사건입니다. 표현할 수 없는 놀라운 기적이요, 신비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강아지를 사랑하는 분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강아지를 너무 사랑한다고 해서 강아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강아지가 되기로 결정하실 분이 있겠습니까. 나아가 자신이 사랑하는 강아지를 위해서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분이 계십니까. 아마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누군가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마저도 내어놓고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 분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인간의 육신을 입으신 사건은 잠시 동안 벌어진 사건이 아닙니다. 만약 하나님이 잠시 동안 인간의 육신을 입으셨다가 벗으신 것이라면 예수님의 부활이 이처럼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인간의 육신을 입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부활하신 몸으로 천상에 계십니다.

 

하나님으로 존재하신 ‘예수님’  우리가 예수님의 출생을 경배해야 하는 이유는 그분의 출생이 예언된 출생이었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지금도 살아계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위대한 지도자들은 살아있을 때만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죽은 이후에는 사람들이 그들을 신격화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그분은 여전히 하나님으로 존재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출생은 위대한 출생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나타나신 출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탄절을 기뻐하며 예수님을 경배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 하나님은 예수님을 침묵 속에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온갖 징조를 통해서 온 인류에 이 기쁜 소식을 전하셨습니다.역사는 예수님의 출생을 준비하기 위한 것입니다. 로마 역사의 한복판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습니다. 그런데 복음서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예수님을 경배하러 온 사람들은 세 부류의 사람들 밖에 없었습니다.

가장 먼저 예수님을 경배하러 온 사람들은 지난주에 살펴보았던 목자들이었습니다. 그 이후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동방의 박사들이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 찾아 온 시기는 예수님의 탄생 직후가 아니었습니다. 추측하기로는 헤롯이 연도를 계산해 두 살 아래로 아기들을 죽이라고 명령한 것으로 보아 예수님이 출생한 지 1~2년 정도가 지난 시기일 것입니다.

또한 ‘아기’를 뜻하는 헬라어 ‘파이디온’은 기어 다니는 아이를 의미합니다. 이것으로 보아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찾아 온 시기는 예수님이 돌 전후 때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정결예식을 할 때 시므온과 안나가 예수님을 찾아와 경배를 했습니다. 이렇듯 세 부류의 사람들만이 예수님을 경배했습니다.

 

낮은 자의 친구 되신 만왕의 왕

 

수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소식이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전해졌지만 구세주의 탄생을 기뻐하며 경배한 사람들은 소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경배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경배했다고 기록한 복음서는 마태복음이고, 목자들이 예수님을 경배했다고 기록한 복음서는 누가복음입니다. 대개 복음서에는 중복된 내용들이 많습니다.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된 내용들도 있고, 두 세군데만 기록된 이야기가 있는데, 예수님을 경배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딱 한 번씩만 나옵니다. 그 이유는 마태가 목자들이 예수님을 경배한 이야기를 몰랐기 때문이 아닙니다. 또한 누가가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경배한 것을 몰랐기 때문이 아닙니다. 각 복음서를 기록한 목적과 대상이 뚜렷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은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유대인을 대상으로 기록했고, 누가복음은 예수님이 인간으로 오셨다는 것을 증거하며 이방인을 대상으로 기록했습니다. 만약 마태복음에 목자들이 예수님을 경배한 내용을 기록되었다면 그것은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가 됩니다. 당시 목자들은 왕을 경배할 수도, 만날 수도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목자들은 양을 치면서 살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가까이 하기조차 꺼려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히려 왕을 경배하러 동방에서 박사들이 왔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걸맞습니다. 누가복음은 지극히 낮은 인간으로 오셔서 목자들의 경배를 받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기록을 종합해 보면, 예수님은 멀리 이방에서 온 박사들의 경배를 받을 만큼 만왕의 왕으로 오신 분이요, 가장 낮고 천한 사람들로부터 경배를 받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시기 위해 인간으로 오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페르시아의 박사들은 별의 움직임을 보고 메시야의 출생을 깨달았습니다. 당시 밤하늘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도구였습니다. 고대 근동의 사람들은 별을 보고 역사의 향방을 점쳤고, 자신의 운명도 별을 보고 판가름했습니다. 페르시아의 박사들은 고위관리들이면서 별을 연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어떻게 별을 보고 유대인의 왕이 태어난다는 것을 알았는지는 미스터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시 문화에 가장 익숙한 방법을 통해 그들이 깨달을 수 있고 해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예수님의 탄생을 보여주셨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았고,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 먼 거리를 여행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이 이야기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당시 유대인들이 갖고 있던 편견을 깨뜨리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엄청난 편견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야는 유대인을 위한 메시야라고 믿었기 때문에 메시야는 유대 민족으로부터 태어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러한 편견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경배하는 모습을 보면서 메시야가 유대인만의 메시야가 아니라 온 인류의 메시야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한 나라의 왕의 탄생을 축하하는데 그 나라 사람들뿐만 아니라 먼 곳에서 박사들이 찾아오는 것은 특별한 일입니다. 박사들의 방문에 헤롯과 예루살렘은 떠들썩했습니다.

흔히 동방박사가 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성경에는 세 사람이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이 떠들썩할 정도였다고 했습니다. 박사들이 왕을 경배하러 왔다면 더 많은 무리들이 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박사는 세 사람이었을지 몰라도 그들의 종들을 비롯해 수행원들이 함께 했을 것입니다. 어쨌든 이들 무리의 방문에 예루살렘의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또한 마태는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경배하는 것을 통해서 이사야 60장 1~3절의 예언이 이루어졌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일어나서 빛을 비추어라. 네 빛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이제 보아라. 어둠이 땅을 덮고 먹구름이 뭇 백성 위에 있지만 여호와께서 네 위에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고 있다. 나라들이 네 빛을 보고 나오고 왕들이 네 떠오르는 광채를 보고 나오고 있다”(사 60:1~3절).  이 말씀은 열방이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오는 장면을 의미합니다. 나방이 빛을 보고 모여드는 것처럼 인간은 어둠 가운데 있기 때문에 빛을 향해 모여들게 되어 있습니다. 열방이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오는 사건이 바로 예수님의 출생 사건입니다.  무너지지 않는 ‘하나님 나라’

 

“그때 헤롯은 몰래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정확한 시각을 알아냈습니다. 헤롯은 박사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말했습니다. ‘가서 샅샅이 뒤져 그 아기를 꼭 찾으라. 그리고 아기를 찾자마자 나에게도 알리라. 나도 가서 아기에게 경배할 것이다.’ 박사들은 왕의 말을 듣고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동방에서 보았던 그 별이 그들보다 앞서 가서 아기가 있는 곳 위에 멈춰 섰습니다(7~9절). 

메시야가 오신다는 것을 가장 먼저 전해들은 유대인들은 구약의 역사와 율법, 문화를 통해 메시야의 출생을 준비하고 예비해야 하는 사람들이었음에도 예수님을 경배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동방박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메시야가 온 것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성탄의 두 얼굴이 나타납니다. 수 천 마일을 여행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예수님을 경배하러 온 동방 박사들이 있는 반면, 예수님이 있었던 지역의 한복판에 있었으면서도 예수님을 경배하지 않은 헤롯과 유대 지도자들도 있었습니다. 헤롯과 유대 지도자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해치려 했었습니다. 동방박사들에게는 성탄은 말 그대로 기쁜 날이었지만 헤롯과 유대 지도자들에게는 메스껍고, 어그러지고, 질투와 경쟁, 음모가 가득한 날이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에게 경배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더니 헤롯도 예수님을 경배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거짓말이었습니다. 헤롯은 별이 나타난 때를 기점으로 태어난 두 살 아래의 사내아이를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헤롯은 예수님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세상의 악을 멸하러 오신 분임을 알았기 때문에 두려워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헤롯이 잘못 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은 헤롯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오신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정치 지도자가 되는 것을 꿈꾸지 않으셨습니다.

헤롯은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왕으로 살면서 불안해하고 의심을 많았습니다. 그 의심 때문에 자신의 아내와 장모, 두 아들까지 죽였습니다. 그런 그가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땠을까요. 헤롯처럼 성탄의 의미를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자신이 가진 좋은 것을 빼앗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시간과 물질을 빼앗긴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빼앗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주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분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생명마저도 우리를 위하여 주셨습니다. 모세와 예수님을 비교해 보면 흥미롭습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구원자인 모세는 바로의 살해 위협에서 살아난 사람이고, 예수님은 헤롯의 위협에서 살아나신 분입니다. 세계 역사를 살펴보면 헤롯처럼 예수님의 나라를 무너뜨리려는 수많은 통치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나라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독재자들이 왜 교회를 핍박하는 줄 아십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면 그렇게 핍박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출생과 더불어 생겨난 교회가 세상에 가득하면 독재자가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날에는 평화와 사랑, 진리와 평등, 그리고 번영이 가득한 나라가 되기 때문에 독재 권력이 설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교회를 핍박하고 기독교를 말살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모든 역사의 결론은 예수님의 나라에 대적하는 세력은 모두 무너졌습니다. 헤롯이 예수님을 죽일 수 없었듯이 그 어떤 정치세력도 예수님의 나라와 그의 나라를 없앨 수는 없었습니다.  

 

스스로 메시아가 되려는 사람들

 

“헤롯 왕 때에 유대의 베들레헴에서 예수께서 태어나시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찾아와 물었습니다. ‘유대 사람의 왕으로 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예수의 별을 보고 경배 드리려고 왔습니다.’ 헤롯 왕은 이 말을 듣고 심기가 불편했습니다. 예루살렘도 온통 떠들썩했습니다. 헤롯은 백성의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을 모두 불러 그리스도가 어디에서 태어날 것인지 캐물었습니다.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유대의 베들레헴입니다.’ 예언자가 성경에 이렇게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너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통치자들 가운데 가장 작지 않구나. 네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될 것이다’”(1~6절).

그들은 헤롯의 질문에 정확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들은 성경에서 가장 중요하게 예언하고 강조하고 있는 메시야의 출생에 대해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메시야를 맞을 준비는커녕 반응하지 않았을 뿐더러 헤롯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예수님을 몰랐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제거하려고 한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은 그들 스스로가 메시야가 되려고 했습니다. 예수님과 경쟁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참된 경배 드리는 성탄

 

“박사들은 별을 보고 뛸 듯이 기뻤습니다. 집으로 들어가 보니 아기가 그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들은 엎드려 아기에게 경배하고 보물함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꿈속에서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을 통해 자기 나라로 돌아갔습니다”(10~12절). 

이번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우리 모두가 동방박사들과 같이 예수님을 경배하러 왔던 그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헤롯과 유대 지도자들처럼 예수님이 오신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악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경배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악한 마음에 길들여져 있는 것과 같습니다. 참된 경배를 주님께 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이 예수님의 생일인데 여러분은 어떤 선물을 준비하셨습니까. 우리의 물질과 시간, 재능의 주인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경배입니다. 모든 것의 본래 주인은  예수님이지만 예수님도 우리가 드리지 않으면 받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경배와 찬양 그리고 예배입니다. 수 천 마일을 달려와 예수님을 경배한 동방박사들의 마음처럼 오늘 하루도 하나님을 온전하게 예배하고 경배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이번 성탄절이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들은 기쁨이 가득한 날이 되길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오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저 멀리 동방의 박사들로부터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예수 그리스도, 열방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올 것이라는 예언을 이루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참된 경배로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오늘 맞은 성탄절이 광야 같은 인생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큰 기쁨의 소식이 되게 하시고,  우리의 경배를 통해 영광 돌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