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하나님과 가이사

마가복음 12장 13절~17절

 

이 재 훈 목 사

 

지도자, 국가, 교회, 제도, 이데올로기는 신적인 권한이 없습니다. 신이 아닌 존재가 신처럼 군림하거나 하나님의 권세에 도전하면 반드시 무너집니다.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부터 진정한 삶이 시작됩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중에서 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웠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어떻게 하면 흠집을 낼까하는 청문회 분위기를 보면서 씁쓸했습니다. 의도적으로 트집 잡고 흠집을 내려고 하는데 버텨낼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러한 트집 잡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흠이 없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을 넘어뜨리려는 음모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자 산헤드린 공회는 예수님을 무너뜨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트집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교묘한 질문에 많은 공격을 받으셨지만 어떤 흠도 잡히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어떤 말실수도 없었고 허물도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면 할수록 그분이 어떤 분인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은 이 과정을 통해서 결코 자신의 죄와 허물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셨습니다. 

유월절의 어린양은 흠이 없어야합니다. 첫 달 열흘에 각 가정은 유월절 어린양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14일에 이르기까지 그 양에 흠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핍니다. 유대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에게서 흠을 찾아 그분을 무너뜨리려고 음모를 꾸몄습니다.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조사를 하고 수많은 질문을 던졌지만 예수님에게는 흠이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산헤드린 공회에서 파견한 사람들이 트집을 잡기 위해 예수님에게 세금문제에 대해 질문합니다. 세금은 시대를 불구하고 가장 민감한 주제입니다. 영어권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죽음과 세금뿐이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입니다. 당시 팔레스타인은 로마가 부과한 세금 때문에 폭동까지 일어날 정도로 세금문제가 아주 예민한 상황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로마인에게 세금을 내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상당부분의 세금이 로마의 이교신전이나 로마 상류층의 사치생활에 쓰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민감한 이슈를 통해 예수님을 넘어뜨리기 위해 산헤드린 공회에서 두 부류의 사람들을 보냈는데 그들은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이었습니다.

 

바리새인과 헤롯 당원  “그들은 예수의 말씀을 트집 잡아 보려고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들을 예수께로 보냈습니다”(13절).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들이 서로 팀을 이뤄 파견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 두 그룹은 물과 기름같이 전혀 다른 부류였기 때문입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겉으로 세금을 내는 것에 대해 반대하지만 속으로는 자신들의 위치를 보전하기 위해서 묵인하고 있었습니다. 헤롯 당원들은 당의 이름이 헤롯인 것처럼 로마가 지배하는 것에 호의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친 로마주의였기 때문에 세금내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이렇게 반로마주의자와 친 로마주의자가 한 팀을 이뤄 예수님께 보내졌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들은 예수님을 제거한다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하나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선한 일에 하나 되는 것보다 악한 일에 하나 되는 것이 더 쉽습니다. 지금 이들은 자신들이 친 로마세력이냐 반 로마세력이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공통의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느끼는 위기는 무엇입니까. 자신들의 위치가 무너지고 자신들의 더러움과 추함이 드러날 것같은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께 와서 인사를 합니다.  “그들은 예수께 다가와 말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을 참된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으로 인해 동요되지 않고 하나님의 진리를 참되게 가르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14절). 이들의 인사가 얼마나 멋있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굉장히 위선적입니다. 또한 거짓된 아첨으로 예수님께 인사를 했습니다. 사탄은 늘 독과 꿀을 함께 줍니다. 시편 55편 21절을 보면 악한 이들이 위선적으로 하는 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탄의 방법 ‘위선과 거짓’

 

“그가 하는 말은 버터보다 부드러웠지만 그 마음에는 전쟁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의 말은 기름보다 매끄러웠지만 실은 뽑힌 칼이었습니다(시 55:21).”여러분 버터보다 부드럽고 기름보다 매끄러운 말을 조심하십시오. 그 마음에는 전쟁이 있고 뽑힌 칼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랍비라고 불렀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참된 분이라고 말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친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것은 진심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드리는 것처럼 이야기 하고 있지만 실상은 위선이요 거짓된 아첨이었습니다. 이 모든 위선과 아첨은 예수님이 방심하게 하려는 수작이었습니다. 그런 뒤에 의도를 숨긴 질문을 해서 예수님의 판단력을 흐리게 할 목적이었습니다.

여러분, 누군가를 질투하고 까닭 없이 미워하는 마음을 품으면 도와주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바로 사탄입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트집 잡으려고 하면 사탄이 지혜를 주고 사탄이 협력자가 됩니다. 사람을 넘어뜨릴 때 사탄이 쓰는 전형적인 방법이 겉으로는 거짓으로 칭찬해서 상대방을 방심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마음이 약해서 진심으로 칭찬하는 것이 아니어도 칭찬을 좋아합니다. 저도 몇 번 그러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나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칭찬을 즐깁니다.

 

꿰뚫어 보시는 예수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이 있습니다. 고래가 춤을 춘다고 해서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이 칭찬에 춤을 추면 문제가 생깁니다. 교만해지고 방심하고  판단력이 흐려져 실수를 하기 때문입니다. 칭찬을 들을수록 칭찬에는 감사해야 하지만 춤을 춰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칭찬을 통해 춤추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들의 칭찬에 춤을 췄겠습니까.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예수님이 그들의 칭찬을 듣고 기뻐하실 리가 없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여러분 세금을 내는 것이 옳습니까. 아니면 내지 않는 것이 옳습니까. 혹은 가급적 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은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세금은 내야합니다. 불의하고 공의롭지 못한 세금까지 내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공정한 절차를 통해 걷는 세금은 내야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질문은 단순히 세금을 내는 것에 대한 정당성의 유무가 아닙니다. 

 

곤경에 빠뜨리기 위한 질문

 

유대는 AD 6세기경부터 로마제국에 세금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헤롯 아킬레오라는 왕이 폐위된 이후부터 직할체제가 되면서 그때부터 세금을 냈습니다. 유대인들은 세금 내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당시 세금은 세 종류였는데 그것은 토지세와 소득세 그리고 인구조사세였습니다. 남자는 12세부터 65세까지, 여자는 14세부터 65세까지 한 데나리온을 내야했습니다. 세금을 내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데나리온 동전에 가이사의 얼굴이 그려져 있고  가이사가 ‘신의 아들이며 대제사장이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유대인들이 혐오하는 우상숭배 그림이 새겨진 동전으로 세금을 내도록 강요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세금 내는 것을 혐오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세금이라는 단어를 원어로 보면  인구조사를 할 때 내는 인두세를 의미합니다. 정확히 번역하면 “인두세를 내는 것이 옳습니까. 내지 않는 것이 옳습니까”라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은 예수님을 딜레마에 빠뜨리기 위한 질문임이 분명합니다. 만약 예수님이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다고 말씀 하신다면  당시의 모든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싫어하고 증오했을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반역자라고 선동을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바리새인을 보낸 것입니다. 반대로 예수님이 옳지 않다고 말씀한다면 헤롯 당원들이 로마에 대한 반역자로 예수님을 로마에 고소할 것입니다. 산헤드린 공회에서 이 두 그룹을 함께 보낸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대답하든지 곤경에 빠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대답을 하셨을까요.

 

나의 것과 하나님의 것

 “‘우리가 세금을 내야 합니까, 내지 말아야 합니까?’ 예수께서는 위선적인 그들의 속셈을 다 아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너희가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동전 하나를 가져와 내게 보이라.’ 그들이 동전 하나를 가져오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동전에 있는 얼굴과 새겨진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그들은 ‘가이사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그들은 예수께 몹시 감탄했습니다”(15~17절).예수님 말씀의 핵심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대해 오해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말씀이 가이사의 영역과 하나님의 영역을 양분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가이사가 다스리는 세상의 영역과 하나님이 다스리는 교회나 영적인 영역이 따로 분이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의 권세를 가이사에게 맡기니 교회는 세상의 정치와 무관해야하며 관심을 가지지 말고 교회일이나 영적인 일에 신경을 써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러한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스리는 분입니다. 우리의 삶을 다스리고 가정을 다스리고 교회와 국가도 다스립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양분할 수 있다고 적용하면 내 것과 하나님의 것을 양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실제로 우리는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어느 농부가 젖소를 가지고 있는데 그 농부의 소가 쌍둥이 송아지를 낳았습니다. 한 마리는 검은색이고 한 마리는 흰색이었습니다. 이 농부는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의 아내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두 마리를 주셨으니 한 마리는 주님께 드리자고 제안하면서 어느 소를 주님께 바치겠느냐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농부가  어느 소를 바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둘 중 한 마리는 주님의 소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 한 마리 병들어 죽었습니다. 그 농부는 아내에게 아주 슬픈 표정을 지으며 “방금 주님의 소가 죽었소”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마음에 나의 것과 주님의 것을 양분하는 것 즉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양분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말씀에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우상숭배를 하는 가이사

 

예수님은 세금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만 하셨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세금을 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오히려 질문을 던졌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이 가이사의 것이고 무엇이 하나님의 것인지를 물으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니 가이사의 것은 무엇이고 하나님의 것이 무엇인지가 궁금해집니다. 역사적으로 어떤 시대에는 이 구절을 잘못 해석해서 잘못된 권력이라도 무조건적으로 복종하고 잘못된 법을 충실하게 따라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세금을 내야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원어로 살펴보면 ‘빚을 갚다’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예수님이 가이사에게 주라고 말씀하신 것은 가이사에게 빚진 것을 갚으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말씀에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이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는 예수님이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내린 지시입니다. 예수님은 데나리온 동전을 가져오라고 하시고 그 동전에 새겨진 얼굴과 글자가 무엇인지에 대해 물었습니다. 이 부분이 아주 중요합니다. 당시 데나리온 동전에는 티베리우스 황제의 얼굴이 있었습니다. 앞면에는 신적인 아우구스티스의 아들 티베리우스 가이사라는 글이 있었습니다. 뒷면에는 최고의 대제사장이라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제국은 사교화되고 있었습니다. 가이사는 국가가 종교화되면서 스스로를 대제사장으로 여겼습니다. 우상숭배를 한 것입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요 진정한 대제사장인 예수 그리스도가 가이사의 얼굴이 하나님의 아들인것처럼, 대제사장인것처럼 숭배하는 동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가이사가 우상숭배를 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그것을 지적하고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우상숭배 하는 것을 싫어하고 피했지만 누구도 그것을 우상숭배라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은 타협을 했습니다. 헤롯당원은 그것을 지지하는데 열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동전을 보여줌으로써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하는 가이사의 권력은 무너진다는 메시지를 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가이사는 동전을 소유할 수는 권한은 있지만 영혼을 소유할 수 있는 권한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을 바치라고만 하지 않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말성경을 보면 접속사가 없습니다. 최근 성경학자들은 이 구절에 ‘그러나’라는 접속사가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접속사 그러나를 넣어 다시 읽으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되돌려주라 그러나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려야한다”입니다. 접속사 그러나는 앞에 나오는 내용은 제한하고 뒤에 나오는 내용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강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단순히 세금을 잘 내는 로마시민이 되라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

 

예수님이 가이사에게 전한 이 말씀은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예수님은 동전을 가지고 자신을  시험하려는 사람에게 동전을 통해 교훈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교훈은 가이사가 스스로를 우상화하면 언젠가는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세와 권한을 넘어서면 언젠가는 멸망한다는 메시지가 핵심입니다. 예수님은 가이사가 하나님께 속한 것을 취하려고 한다면 결코 허용될 수도 없고 언젠가는 이 동전과 함께 멸망할 것이라는 경고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지도자나 국가, 교회, 제도, 이데올로기는 신적인 권한이 없습니다. 중세 로마에서 교황권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교회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국가에 권력을 행사하기를 원했습니다. 국가에 권력을 행사하기를 원하는 교회는 영적인 능력을 잃어버립니다. 나치치하를 보면 국가가 교회를 시녀로 만들었습니다. 그때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교회와 국가는 적절한 긴장관계에 놓여 있어야합니다. 가이사는 신이 아닙니다. 신이 아닌 존재가 신처럼 군림하거나 하나님의 권세에 도전하면 그 권력은 반드시 무너집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것이 무엇입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가이사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가이사가 만약 스스로를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고 여기는 순간 가이사는 멸망합니다. 바로 이 메시지가 예수님의 말씀에 숨어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화폐이자 하나님의 동전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합니다. 예수님이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신 이유도 바로 이것 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우리 가정도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기업도, 국가도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진정한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C.S.루이스가 쓴 <스크루테입의 편지들>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나오는 21번째 편지를 보면 인간을 무너뜨리려면 소유욕을 불어넣으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여러분 내가 소유한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소유하셨습니다. 사탄이 주는 어리석음에 속지 않기를 바랍니다. 시편24편 1절의 고백이 우리 신앙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 세상과 그 안에 사는 모든 것들이 여호와의 것입니다”(시24:1).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 세상과 그 안에 사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 위대한 신앙고백을 통해 늘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일러스트 박정일 meteorjip@nate.com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