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과 므비보셋
사무엘하 9장 1~13절
이재훈 목사
성공한 사람들의 두 가지 모습이 있습니다. 하나는 성공해서 얻은 축복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과 또 다른 하나는 성공을 통해 얻은 축복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려는 모습입니다.
한동대학교의 캐치프레이즈중의 하나가 ‘공부해서 남 주자’입니다. 어떻게 하면 자신이 성공해서 얻은 축복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성공으로 인해 얻은 축복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사람들도 두 종류로 구분 됩니다. 하나는 자신에게도 무엇인가 돌아올 것을 기대하면서 나누는 사람과 자신에게 아무것도 돌아올 것이 없는데도 나누는 사람입니다. 앞의 것도 분명 선한 나눔이지만 일종의 투자로 볼 수 있습니다. 후자는 아무것도 되돌아오지 않아도 나누는 것입니다. 이것을 은총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은총을 나눠주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에게 은총을 나눠주는 인생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 반드시 축복하실 것입니다.
살아남은 사울의 자손들이 있느냐
오늘 본문에서 다윗이 은총을 베풉니다. 다윗이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에게 은총을 베푸는 이 장면은 구약성경에 나타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사울의 집안에 살아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려고 한다”(3절).
다윗은 주변의 모든 국가들을 정복하고 하나님이 주신 평안과 안전, 번영의 축복을 기리기 위해 가장 먼저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왔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집을 짓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 마음을 바꾸셔서 그가 하나님의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윗의 집을 견고하게 지어주시겠다는 축복의 약속을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은총을 베풀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사울 집안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다윗을 찾아 온 것이 아니라 다윗이 먼저 사울의 자손들을 찾고 있습니다. 여러분, 은총을 베푸는 사람은 언제나 먼저 찾아갑니다. 사실 찾아오는 사람도 돕는 것이 벅찰 때가 많은데 다윗은 은총을 베풀기 위해 먼저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울의 집안’이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다윗은 요나단의 집안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다윗과 요나단이 맺었던 아름다운 우정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요나단의 자손이라면 다윗에게 무엇인가 받을 수 있습니다. 또 다윗이 요나단의 자손들을 지켜줘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이 우정을 맺을 때 요나단이 자신의 자손들을 부탁한다고 했고, 다윗이 지켜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베푸는 다윗
다윗은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몰랐습니다. 자신이 왕이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요나단과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요나단의 자손만을 찾지 않았습니다. 사울의 자손을 찾았습니다.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의 왕이 되었을 때 북쪽의 열한 지파의 왕이었던 이스보셋도 사울의 아들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사울의 자손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요나단과 직접 상관없는 자손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지금 찾고 있는 사람은 살아남은 사울의 모든 자손들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은총은 대상을 축소시키지 않습니다. 언제나 대상을 확장시킵니다. 다윗은 사울의 집안 전체에게 은총을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다윗은 ‘내가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사울의 자손들에게 베푸는 은총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지난주 사무엘하 7장에서 하나님은 다윗에게 주어를 바꾸지 말라고 경고 하셨습니다. ‘네가 나를 위해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통해서 집을 짓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받아들이고 9장에서 자신이 은총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총을 베푸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은총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헤세드’입니다. 헤세드는 다양한 의미로 번역되기 때문에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헤세드는 은혜, 자비, 인애, 사랑 등의 의미를 가진 단어로 번역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은총으로 해석됩니다.
영어에서는 사랑이라고 표현하기에 부족해서 ‘Loving kindness’라고 번역합니다. 자비와 사랑을 합친 단어입니다. 어떤 번역에서는 ‘실패하지 않는 사랑’,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사랑’이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 ‘헤세드’라는 단어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대상의 상태와 상관없이 주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대상이 감사하든 감사하지 않든지, 나에게 무엇인가를 돌려주든지 돌려주지 않든지, 의를 지키든지 지키지 않든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변함없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배반해도 포기하지 않고, 감사하지 않아도 변함없는 사랑을 부어주십니다. 결코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헤세드’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 ‘헤세드’를 베풀기를 원했습니다. 다윗이 자신에게 돌아올 것을 기대했다면 사울의 집안을 찾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윗에게 유익이 되지 않을 사람들이 사울의 자손들이기 때문입니다.
고대 왕조시대에는 이전 왕족들을 모두 멸했습니다. 귀향을 보내거나 발목을 완전히 잡아 놓았습니다. 반역의 소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사울의 자손들이 다윗에게 되돌려 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반역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것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은총을 사울의 자손들에게 베풀기를 원했습니다.
사울의 자손 므비보셋
다윗이 은총을 베푸는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다윗이 사울의 집안에 살아남은 자손들을 찾으라고 명령하자 신하들이 사울 집안을 섬겼던 시바라는 종을 시켜 사울의 자손을 찾았습니다. 그가 바로 ‘므비보셋’입니다.
므비보셋이 다섯 살 때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전쟁 중에 그의 할아버지인 사울과 그의 아버지 요나단이 함께 죽었습니다. 그리고 블레셋 군인들은 왕궁을 완전히 유린했습니다. 그때 도망가다가 넘어져 므비보셋은 두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므비보셋은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그것보다 더 비참한 것은 평생 숨어 살아야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사울의 후손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어떤 위험에 처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므비보셋이 살던 곳은 ‘로드발’입니다. ‘로’는 히브리어로 ‘아니다’라는 것을 뜻하고 ‘드발’은 목초지를 의미합니다. 목초지가 아니라는 것을 보니까 그는 황무지에서 살고 있습니다.
므비보셋의 인생이 얼마나 불행합니까. 사실 그가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역사의 희생자요, 운명의 희생자입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풍성한 은총
왕궁에서 태어나 축복가운데 있다가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고, 장애를 얻고 숨어사는 므비보셋에게 어느 날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다윗 왕이 자신을 찾고 있다고 하니 얼마나 놀랬겠습니까. 아마 몸이 얼어붙었을 것입니다. 드디어 운명의 날이 왔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울의 자손인 그를 살려 둘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므비보셋이 다윗 왕 앞에 섰습니다. 운명의 만남이 이뤄진 것입니다. 다윗 왕이 므비보셋을 바라보자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혀습니다. 마치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처럼 말입니다.
“다윗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네 아버지 요나단을 생각해 네게 은총을 베풀고 네 할아버지 사울에게 속했던 모든 땅을 네게 돌려줄 것이다. 그리고 너는 항상 내 식탁에서 먹게 될 것이다’”(7절).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베푼 하나님의 은총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사울의 모든 재산을 돌려주었습니다. 사실 정기적으로 므비보셋에게 생활비만 주어도 됩니다. 그렇게만 해도 선입니다. 큰 은혜를 베푼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사울의 모든 재산을 돌려줍니다. 이것은 엄청나게 큰 것입니다. 므비보셋이 주변의 친척들에게 모두 배분해도 남을 만큼의 엄청난 재산을 돌려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총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풍성하게 옵니다. 최소화해서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으로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삶입니다. “오리를 가고자 하면 십 리를 가줘라”, “오른빰을 치면 왼빰을 대라”, “겉옷을 달라하면 속옷을 줘라”
사실 그렇게 까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할 때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입니다. 지금 다윗의 행동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이 사울의 재산을 돌려주겠다고 했을 때 아마 주변의 신하들이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은총
둘째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항상 내 식탁에서 함께 먹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일입니다.
사울의 재산만 돌려주는 것도 엄청난데 그것뿐만 아니라 므비보셋은 다윗과 매일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경제적인 보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므비보셋을 가족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을 통해 베푸신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다윗의 식탁에서 누구와 함께 식사를 했을까요. 다윗의 여러 가족들 아닐까요. 생각해 보십시오 똑똑하고 영리했던 암논, 흠 잡을 데 없이 잘생기고 멋진 압살롬, 또 천재 솔로몬 등 다윗의 자녀들이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 사울의 손자이자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이 함께 했습니다.
당시에는 신체적 결함이 있는 사람들은 왕 앞에 오지 못하게 하는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므비보셋은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왕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하나님 나라의 사건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다윗과 같은 은총을 베푼 분이 계십니다. 바로 손양원 목사님입니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공산당원을 양자로 삼고 같이 집회를 다니셨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얼마나 놀랍고 아름다운 장면입니까.
므비보셋과 같은 우리들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베푼 하나님의 은총 이면에 우리들의 모습이 숨어있습니다. 우리의 모습이 므비보셋과 같습니다.
므비보셋이 태어날 때는 사울이 백성들로부터 사랑을 받던 때입니다. 그가 태어나자 온 나라가 기뻐했습니다. 므비보셋이 태어날 때처럼 우리가 이 세상에 창조될 때 하나님이 기뻐하셨습니다. 새벽 별이 노래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물의 상속자로 창조하셨습니다.
므비보셋의 잘못이 아니었지만 그는 다섯 살 때 고아가 되었고, 장애를 얻었고, 숨어사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태어날 때부터 우리의 선택과 상관없이 아담 안에서 죄인으로 태어났고, 영혼의 장애를 가니고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피해 숨어사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므비보셋이 왕을 피해 숨어살았던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피하고 싶은 본능을 가지고 살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므비보셋를 찾아 나섰습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찾아 나섰습니다.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고 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은총을 베풀 대상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 앞에 나오게 된 것입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이 베푼 은총을 받을 자격이 없었습니다. 돌려 줄 것도 없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자격도 없고, 하나님께 돌려드릴 것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헌신, 시간, 재물, 재능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이 필요없는 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한다고 하지만 방해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헌신을 받으시고 새로운 일을 행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받은 은총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사울의 재산을 돌려 줄 뿐만 아니라 왕의 식탁에서 함께 먹을 수 있도록 해 준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왕의 자녀로 받아들이실 뿐만 아니라 왕의 식탁에서 함께 식사 할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여러분, 성찬은 왕의 식탁입니다. 하나님의 식탁입니다. 이 식탁 앞에서 어느 누구도 서로를 비난할 수 없고, 제외될 수 없습니다. 모두 왕의 초대를 받아 식탁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찬에 참여하면 우리의 허물과 죄가 감추어지는 것입니다.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은혜를 베풀 때 ‘요나단과 맺은 언약 때문’이라는 말을 되풀이 합니다. 우리가 은총을 받은 것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신 언약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는 말과 ‘요나단으로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는 말의 의미가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그분이 행하신 십자가의 희생에 근거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토록 왕과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왕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영원토록 만왕의 왕이신 하늘의 식탁에서 식사 하게 될 것입니다. 거기에는 바울도 있고, 요한도 있고, 베드로도 있을 것입니다.
원수들은 우리가 왕의 식탁에서 식사할 때 참여할 자격이 없다면서 우리를 무너뜨리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원수도 하나님의 식탁에 초대된 사람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다윗이 므비보셋을 어떻게 보호했는지 아십니까. 다윗이 아들 압살롬에게 배반당해서 쫓겨 갈 때 므비보셋이 불편한 몸 때문에 도망가지 못했습니다. 그때 므비보셋이 왕이 되려고 다윗을 배반했다고 오해를 하지만 다윗은 므비보셋을 믿어주었습니다. 이후 기브아 사람들이 사울의 자손을 내놓으라고 할 때도 절대 내놓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보호하듯이 다윗도 므비보셋을 보호했습니다.
왕의 식탁에 초대된 사람들
시편 23편 5절에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신다’고 했습니다. 이 상은 밥상입니다. 식탁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원수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식탁으로 초대하십니다. 어떤 원수도 왕의 식탁에 침범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천군천사가 호위하고 있고 하나님의 군대가 지켜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왕의 식탁에 참여하는 은혜를 받았음을 감사하고 성찬의 축복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므비보셋처럼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왕의 식탁에 참여하는 놀라운 은총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을 날마다 누리며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다윗을 통해 므비보셋에게 임한 은총이
우리에게도 임한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떠났던 인생, 황무지 같은 인생을 사는
우리를 초청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왕의 식탁에 참여하는 은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통과 과거의 죄와 허물, 모든 연약함을
씻어주시는 은총을 베풀어주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주시는 은총 속에서 사는 인생 되게 하옵소서.
날마다 자유함과 풍성함을 누리도록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일러스트 yje
우리는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왕의 식탁에 참여하는 은총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