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메시아
미가서 5장 1~4절
이재훈 목사
“버림받은, 슬픔 가득한, 다윗의 동네 베들레헴에
예수님이 메시아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오셨습니다.”
복음서에 나타난 메시아의 탄생 이야기는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으로 여행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만삭된 마리아가 왜 베들레헴으로 여행을 해야만 했을까요. 표면적으로 보면 로마법 때문입니다. 당시 로마의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는 유대지역을 더 이상 자치국으로 두지 않고 직할로 통치하고자했습니다. 당시 유대를 다스리던 헤롯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착수한 일이 세금을 징수하기 위한 인구조사였습니다. 당시 로마법은 만삭된 마리아가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여행하도록 만들 정도로 강력했습니다. 만약 로마법이 그렇게 철저하지 않거나 강력하지 않았더라면 만삭된 여인까지 여행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베들레헴으로 간 이유는 요셉의 고향이 그곳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법적 재산이 베들레헴에 있었습니다. 유대 율법에 의하면 50년마다 한 번씩 희년이 돌아오는데, 희년이 되면 모든 재산이 원소유주에게 돌아갑니다. 그 안에는 재산을 사고팔 수 있지만 50년이 되면 원소유자로 돌아갑니다. 인구조사는 원래 재산이 있는 곳에 가서 신고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요셉이 베들레헴에 가야만 인구조사를 완수할 수 있기 때문에 여행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아기가 언제 태어날지 모르는 만삭된 몸을 이끌고 베들레헴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이것이 표면적인 이유입니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메시아가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고, 자라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야 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볼 때는 아우구스투스의 정치적 야심과 권력에 대한 집착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으로 가야했지만 그 너머에 이 세상 모든 것을 통치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우구스투스를 통해서 요셉과 마리아를 베들레헴으로 보낸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느 때에 오셨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디로 오셨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메시아가 오실 때와 장소를 준비하셨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별을 통해서 특별한 징조를 볼 수 있게 하셨고, 들판의 목자들이 가장 먼저 메시아가 오신 것을 경배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이 태어나셨습니다.
오늘은 왜 베들레헴인가를 질문하고자합니다. 베들레헴은 히브리어로 ‘베이트’와 ‘레헴’이 합쳐진 말입니다. 베이트는 집이고, 레헴은 빵, 떡입니다. 빵집 혹은 떡집을 의미합니다. 베들레헴이라는 단어에는 항상 ‘에브라다’라는 말이 붙어 다닙니다. 에브라다는 베들레헴의 옛 이름입니다. 풍성한 열매라는 뜻입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라고 하면 풍성한 열매가 있는 빵집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비춰볼 때 베들레헴은 그 이름부터가 예언된 지역입니다. 생명의 떡이신 분이 떡집에 태어난 것이 얼마나 잘 어울립니까. 생명의 빵이신 분이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시는 빵집에 태어나셨습니다. 그 명칭조차 장차 오실 예수님을 예언했습니다.
왜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야 했는지를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베들레헴이 작고 지저분한 성읍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너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비록 네가 유다 족속들 중 아주 작지만 이스라엘을 다스릴 사람이 너로부터 나올 것이다. 그의 근본은 먼 옛날, 아주 오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2절).
여기서 “네가 비록 아주 작지만”이라는 문장은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 사람들이 베들레헴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근거가 구약에도 나옵니다. 여호수아 15장에 성읍들이 40여 개 나옵니다. 거의 모든 성읍들이 망라되었는데 아무리 봐도 베들레헴은 없습니다. 지도에도 나올 필요가 없는 성읍이라는 것입니다. 느헤미야 11장에도 성읍들의 이름들이 나오는데 거기에도 없습니다. 구약의 중요한 성읍들을 열거하는 목록에 베들레헴 에브라다가 빠졌다는 것은 당시 사람들이 생각할 때 무시해도 좋은 마을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의 위성성읍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수많은 재물이 드려지기 때문에 가축을 기르는 곳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는 힘 있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냄새 나고 지저분한 동물을 예루살렘 성읍에서 키우지 않았을 것입니다. 냄새 나고 지저분한 동물들을 사육하는 성읍이 베들레헴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지역에 사는 것을 좋아했겠습니까. 동물들의 냄새가 가득한 그 작은 마을에 누가 살고 싶겠습니까. 요셉과 마리아가 왜 고향인 베들레헴을 떠나 나사렛에서 살고 있겠습니까. 당시에는 헤블론이나 나사렛이 신흥 도시였습니다. 중심지는 예루살렘이었습니다. 나사렛에 가면 일자리가 있고, 자부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베들레헴에 산다고 하면 명함 내밀기도 힘들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런 지역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인간의 어떠한 자랑도 허락하지 않으려고
하나님은 메시아를 보낼 장소로 베들레헴을 택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작고, 지저분한 동네를 좋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능력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인간이 어떤 좋은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미국 베들레헴 침례교회를 담임하시는 존 파이프 목사님은 이것에 대해 묵상을 많이 하신 것 같습니다. 그분이 쓴 책에 하나님이 메시아가 태어나신 곳을 베들레헴으로 선택하신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구간을 선택하신 이유는 여관주인으로 하여금 그분이 나의 여관을 선택하셨다고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유를 선택하신 이유는 목수로 하여금 이 침대 만드는 기술을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하나님께서 베들레헴을 선택하신 이유는 그 누구도 우리 마을의 위대함 때문에 이 마을에서 태어나셨다는 것을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어떠한 인간의 자랑도 허락하지 않으려고 예수님을 작고, 지저분한 동네에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역사적으로 가장 소외 받았던 베들레헴이 메시아가 출생한 축복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작고, 소외 받는 지역일지라도 하나님이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합니다.
슬픔의 성읍이기 때문에
메시아의 출생 장소로 베들레헴을 선택하신 두 번째 이유는 ‘슬픔의 성읍’이기 때문입니다. 베들레헴은 역사적으로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창세기 35장에 야곱이 사랑했던 아내 라헬이 벧엘에서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는 길에 베냐민을 낳고 그곳에 묻힙니다. 베냐민이라는 이름은 ‘슬픔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2장에 동방의 박사들이 와서 당시 지도자들에게 메시아를 경배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헤롯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불러다가 유대인의 왕이 어디서 낳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미가서 5장 2절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베들레헴에서 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들은 베들레헴에서 메시야가 태어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헤롯이 “두 살 아래의 아기는 다 죽이라”고 지시했습니다. 유아 대학살이 일어난 것입니다. 베들레헴에 엄청난 비극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슬픔의 성읍입니다. 얼마나 많은 어머니들이 아기가 학살당할 때 통곡했겠습니까. 베들레헴은 작고 지저분한 성읍일 뿐만 아니라 거기서 태어난 유아들이 대학살 당하는 슬픔의 성읍입니다.
“헤롯은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분이 치밀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박사들에게서 알아냈던 시간을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부근에 살고 있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이로써 예언자 예레미야를 통해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녀를 잃고 울고 있구나. 자녀들이 없어졌으므로 위로받기도 거절하는구나’”(마 2:16~18).
메시아의 출생으로 왜 이렇게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나야 할까요. 베들레헴처럼 지금 이 시대에도 슬픔이 가득한 곳이 많습니다. 학살당하는 수많은 영혼들, IS라는 엄청난 악의집단에 의해 살해되는 수많은 사람들, 무참하게 처형당하고, 자유를 잃어버린 북한도 베들레헴과 같은 곳입니다.
메시아가 이 땅에서 가장 큰 슬픔의 성읍으로 오셨습니다. 슬픔 당하는 이들과 함께 슬퍼하시고, 고통당하는 이들과 함께 고통당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모든 슬픔을 대신 지고 가시려고 베들레헴으로 오셨습니다. 슬픔대신 기쁨을, 절망대신 희망을 선물하려고 오셨습니다.
다윗의 동네이기 때문에
메시아의 출생 장소로 베들레헴을 선택하신 이유 세 번째는 베들레헴이 다윗의 동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이 아니라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는 것은 다윗 왕조가 몰락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가서 5장 1절은 다윗 왕국이 얼마나 비참하게 무너졌는지를 보여줍니다.
“오 딸 군대여, 군사를 모아라. 우리가 포위를 당했으며, 그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사람의 뺨을 막대기로 칠 것이다”(미 5:1).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 막대기로 뺨을 맞는 수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 왕국은 멸망했지만 하나님이 다윗의 후손으로 인해 태어나시게 하는 메시아의 왕국은 무너지지 않고 영원토록 보존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후손으로 메시아가 태어난다는 것을 여러 곳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이다. 보라. 그날이 오리니 그때에 내가 다윗에게 의로운 나뭇가지를 일으킬 것이다. 그가 왕으로서 지혜롭게 통치하고 이 땅에서 정의와 의를 실천할 것이다”(예 23:5).
“”그날에 이새의 뿌리가 나타나 민족들의 깃발이 될 것이다. 나라들이 그에게 찾아오고 그가 있는 곳은 영화롭게 될 것이다”(사 11:10).
이새의 뿌리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모든 민족의 깃발이 되고, 나라들이 그에게 찾아오는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그가 여호와의 능력으로 자기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고귀함으로 일어나서 자기 양떼를 먹일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안락하게 살게 될 것이니 이는 그의 위대함이 땅 끝까지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미 5:4).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메시아는 땅 끝까지, 모든 민족을 영원토록 통치할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동네인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이 모든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작고, 지저분하고, 버림받은 성읍에서, 슬픔이 가득한 성읍에서, 구약에 예언된 다윗의 동네에서, 메시아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메시아가 세상에 오신 땅이 바로 베들레헴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얼마나 섬세하고, 얼마나 위대합니까. 그것을 우리가 찬양하며 베들레헴으로 오신 예수님을 경배해야합니다. 그분의 통치하심이 땅 끝까지 이루어지도록 그분의 오심을 알리고, 그분의 은혜를 증거해야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세상에 오시되
가장 작고 연약하고 지저분하고 사람들이 기피하고
슬픔으로 가득한 그 동네에 오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슬픔의 성읍에 희망을 주시고 버림받은 성읍에
새로운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은혜를 허락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심령 속에 있는 슬픔과 좌절과 절망과 고통과 버림받고
가슴 아픈 상처들을 임마누엘 주님이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우리를 새롭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역사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이소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