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감옥이 열리고 구원이 임하다

사도행전 16장 25~34절
이재훈 목사

 

어떤 상황에도 기도하고 찬송하십시오.
기적과 능력을 체험하는 비결입니다.

 

사도행전의 역사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감동적인 사건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저는 오늘 본문을 선택하고 싶습니다. 사도 바울의 선교여정에 잊을 수 없는 여러 사건들이 있었지만 가장 잊히지 않는 사건을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 이 사건을 뽑았을 것입니다. 누가가 이 사건을 아주 상세하게 기록한 것은 잊히지 않는 감동적인 사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사건은 겉으로 사도 바울과 실라가 2차 선교여행 중에 감옥에 갇혔다가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기적으로 구원을 받은 사건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사도 바울과 실라를 감옥에 넣었던 간수가 구원받은 사건입니다. 진정 갇힌 자는 감옥 안에 있었던 사도 바울과 실라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유인이었습니다. 여러분, 복음은 그 어떤 환경에도 얽매이지 않고, 그 어떤 상황도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진짜 갇혀있던 사람은 감옥을 관리하던 간수였습니다.

어떠한 방해와 핍박도

 

오늘 본문은 두 가지 대조 되는 모습을 통해서 어떠한 방해와 핍박도 복음의 능력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첫째, 복음이 전해질 때 어둠에 속한 악한 영들과 사람들이 얼마나 반항하고, 대적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귀신 들린 한 여종을 만났습니다. 그 귀신들린 여종은 점치는 일을 통해 주인에게 많은 돈을 벌어다 주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없는 영혼은 마치 비어있는 집과 같아서 악한 영이 반드시 들어옵니다. 하나님을 섬겨야 될 영혼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을 때 악한 영들에게 사로잡히게 됩니다. 진공상태의 영혼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나님도, 악한 영도 섬기지 않아”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착각입니다. 중립상태의 영혼은 없습니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섬기고, 의존하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하나님 없는 영혼은 우상을 섬기게 되고, 악한 영에 사로잡힐 위험이 큽니다. 그 여종이 사도 바울과 실라를 따라다니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들로 당신들에게 구원의 길을 전하고 있다.”
귀신도 알아보는 눈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는 것과 믿는 것, 순종하는 것은 다릅니다. 귀신도 예수님의 정체를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순종했습니까. 아닙니다. 회개했습니까. 아닙니다. 여러분, 많이 아는 것이 올바르게 믿는 것이 아닙니다. 아는 것과 믿고 순종하는 것이 별개일 수 있습니다. 많이 알고도 안 믿을 수 있고, 순종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여인은 사도 바울과 실라를 따라다니면서 교묘하게 방해하고 있습니다. 말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말하는 이가 귀신 들린 사람이기 때문에 진정성이 훼손 되고, 의심을 받는 것입니다. 귀신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복음을 듣고, 변화되면 당연히 아는 내용입니다. 귀신이 알려줘서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교묘한 방해전략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았습니다. 가련한 한 소녀의 인생을 사냥하고, 지배하던 악한 영이 예수님의 권세에 의해 추방되었습니다. 악한 영이 떠나자 또 다른 저항세력이 나타났습니다. 귀신들린 여종이 온전해지자 그 여종을 이용해서 돈을 벌던 주인들이 거짓으로 사도 바울과 실라를 고소했습니다. 마치 예수님을 고소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던 사람들과 너무나도 동일합니다. 그들은 겉으로 법을 이용했지만 마음에 악한 동기를 숨기고 있었습니다.

 

억울하게 감옥 간 사도 바울과 실라

 

“바울과 실라를 로마 관리들 앞에 데려다 놓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유대 사람으로서 우리 도시에 소란을 일으켰습니다. 우리 로마 사람들이 받아들이거나 실천할 수 없는 풍습을 전하고 있습니다.’ 모여 있던 사람들도 가세해 바울과 실라를 공격하자 로마 관리들은 그들의 옷을 벗기고 매질하라고 명령했습니다”(행 16:20~22).
가장 먼저 권력자들에게 호소했습니다. 몇 가지 교묘한 전략이 숨어있습니다. 유대사람들을 강조하면서 인종적 편견, 인종적 자만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지역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사람들의 자만심을 자극해서 흥분하게 만들었습니다. 악한 영들이 교묘하게 정치권력자들을 이용했습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가 로마 관리들에 의해서 매를 맞고 감옥에 던져진 이유는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주었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선한 일을 하고도 악한 취급을 받았습니다. 세 영역으로 분류된 사람들이 연합했기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첫째, 거짓으로 사회를 혼란하게 만드는 악한 영들입니다. 두 번째는 거짓된 정보에 쉽게 넘어가는 비겁하고, 비양심적인 지도자들입니다. 셋째, 편견에 사로잡혀서 군중심리에 쉽게 넘어가는 무지한 대중들과 비겁하고 거짓정보에 쉽게 넘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사도 바울과 실라를 매질하고 감옥에 넣었습니다. 마치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의 여정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악한 영에 사로잡힌 유대지도자들의 거짓 고소가 있었고, 본디오 빌라도와 헤롯의 비겁하고 비양심적인 결정이 있었고, 지극히 선하신 예수님을 못 박으라고 외쳤던 무지한 대중들이 하나 되어서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이 사건도 비슷합니다.

 

그날 밤 기도하고, 찬양하고

 

여러분,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 악한 영들은 복음이 전해지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 막으려고 합니다. 어둠에 기생해서 살아가는 이들의 이익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음의 역사를 거짓된 말로 왜곡합니다.
예수님이 비겁하고,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에 의해서 고난당하고, 십자가에서 죽은 것으로  끝났다면 세상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모든 거짓이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불의함이 무너졌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지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능력을 보여주셨듯이 사도 바울과 실라에게도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생명의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역사입니다. 대반전의 역사입니다. 그 역사는 육신은 매어있어도 복음은 매여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히려 육신이 매어있을 때 더욱 살아 역사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한밤중쯤 됐을 때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며 하나님께 찬송을 부르자 다른 죄수들이 귀 기울여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 감옥이 기반부터 흔들렸습니다. 곧바로 감옥 문이 모두 열리고 죄수들을 묶고 있던 쇠사슬도 다 풀렸습니다”(25~26절).
사도 바울과 실라가 그날 밤 기도하고 찬송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그들은 지금 편안하고 자유롭게 기도하고, 찬송한 것이 아닙니다. 심하게 매를 맞았습니다. 후에 고린도후서 12장에서 당시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고백했습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채찍으로 맞았을 것입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피 흘린 그 몸으로 어두운 지하 감옥에 던져진 그 밤,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신음소리가 아니었습니다. 원통함을 호소하는 소리도 아니었습니다. 불의한 자들에 대한 원망의 소리도 아니었습니다. 기도소리였습니다. 여러분, 고난당하면 저절로 기도가 터져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고난 속에서 기도가 흘러나오는 것은 살아있는 생명의 신앙이 나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의 입술에서 기도가 흘러나왔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였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는 자신들을 불의하게 감옥에 집어 넣은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했을 것입니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찬송도 했습니다. 찬송은 기도보다 더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는 것입니다. 그들의 기도는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요청이었을 것이고, 찬송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높여드린다는 내용이었을 것입니다. 다니엘과 하박국의 기도처럼 “하나님이 축복하시지 않아도 경배하고 찬양합니다”는 찬송이었습니다.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송

 

사도 바울과 실라는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찬송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죄수들이 들릴 정도로 큰 소리로 찬송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영적생명력의 최고봉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영적생활의 최고 영역입니다. 그들은 기도하고 찬송했습니다. 예수님이 찬송했다는 구절이 복음서에서 딱 한 구절 나옵니다. “제자들과 함께 찬송하시니”라는 구절이 예수님이 감람산으로 올라가시며 유다에게 배신을 당하고, 고난을 받는 여정에 들어가시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찬송을 불렀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을 때 찬송을 부른 것이 아닙니다. 고난의 한복판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고난의 터널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가운데 찬송한다는 것은 믿음의 행동입니다. 여러분, 찬송은 내 기분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내 문제가 해결되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해결해주지 않을지라도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분이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찬송입니다. 고난 중에 기도하고 찬송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역사를 이루실지 모르지만 찬송해야합니다. 그것이 올바른 태도입니다. 바로 그것이 사도행전적 영성이요, 사도행전의 역사를 보여줬던 믿음의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간수의 회심
“복되도다! 나 때문에 사람들의 모욕과 핍박과 터무니없는 온갖 비난을 받는 너희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들의 상이 크다. 너희들보다 먼저 살았던 예언자들도 그런 핍박을 당했다”(마 5:11~12).
고난이 없는 것은 복입니다. 그런데 더 큰 복은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도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큰 복이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끝나는 축복을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영혼을 구원하는 기회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장 큰 복입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송했을 때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감옥의 기반이 흔들리고, 문이 열리고, 죄수들을 묶고 있던 쇠고랑들이 풀렸습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순간 사도 바울과 실라는 도망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지 않고 전도의 기회로 생각했습니다. 그때 감옥을 지키던 간수가 자결을 하려고 했습니다. 당시 죄수들이 탈옥하면 간수는 죽음이었습니다. 간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하는 순간 사도 바울이 막았습니다.
“간수는 등불을 달라고 하더니 부리나케 달려 들어와 부들부들 떨면서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러고는 그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오면서 물었습니다. ‘선생님들, 제가 구원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9~30절).
간수가 갑자기 질문을 하는 것은 당황스러운 일이고, 놀라운 일입니다. 분명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까요. 신비입니다. 그러나 회심의 역사는 오랜 시간이 있어야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과 함께 못 박혔던 강도도 구원을 간청하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가 도망가지 않고, 자신의 죽음을 막아주는 모습 속에 성령님이 임하신 것입니다. 자기가 받을 처벌을 두려워하던 마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구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서 자신이 구원받아야하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은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의 역사는 자신의 영혼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욕망이 아닙니다. 성령이 임하면 내 영혼의 상태를 보게 됩니다. 내가 구원받아야할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복음에 대한 반응도 필요합니다. 단지 아는 것이 아니라 믿고, 순종해야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시오. 그러면 당신과 당신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바울과 실라는 그와 그 온 집안 사람들에게 주의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31~32절).
여기서 ‘내 집’이라는 말은 ‘오이코스’라는 헬라어입니다. 혈육적인 가족만이 아니라 그 집안에 사는 모든 이들을 가리킵니다. 관계 속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면 자신 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관계 속에 있는 사람까지 구원받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자동적인 것은 아니지만 반드시 영향력이 있습니다. 진실로 한 영혼이 예수님을 바로 믿게 되면 그 주변 모든 사람들이 영향을 받습니다. 감옥의 간수가 세례 받고, 집안사람들도 구원받게 하고, 세례 받게 했습니다.
“그날 밤 그 시간에 간수는 그들을 데려다가 상처 부위를 씻어 주었습니다. 그러고는 당장 그와 그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간수는 그들을 자기 집으로 데려가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그는 자신과 온 가족이 하나님을 믿게 된 것으로 인해 기쁨이 가득했습니다”(33~34절).
간수가 사도 바울과 실라의 상처를 씻겨줬습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를 씻겨주는 동시에 자신의 죄도 씻음을 받았습니다. 간수가 죄수들로부터 구원받고, 온전해졌습니다. 루디아, 귀신 들렸다 자유케 된 어린 소녀, 감옥의 간수가 빌립보 교회의 중요한 구성원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인종도 다르고, 사회적 배경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삶의 수준도 달랐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 되어 아름다운 교회를 탄생시켰습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인 새로운 사회가 탄생했습니다.
여러분, 복음은 차이와 장벽을 넘어서 하나 되게 합니다. 최악의 상황에 있었던 그들을 변화시켰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대반전입니다. 하나님이 기도하고, 찬송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놀라운 반전으로 사도행전의 역사를 이루고 계십니다. 복음의 능력을 세상이 막을 수 없습니다. 반드시 하늘의 기적과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고 찬송하십시오. 상황을 바꿀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비결입니다.

 

기도합시다

 

감옥에서 기도하고, 찬송하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했던
바울과 실라의 믿음과 영성을 우리도 본받기를 원합니다.
복음을 가로막으려했던 이 세상의 악한 영들이 무너질 줄로 믿습니다.
복음의 역사가 능력 있게 증거 될 줄로 믿습니다.
낙심치 아니하고, 포기하지 아니하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기도하고 찬송하며 나아가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이소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