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족보

룻기 4장 13~17절
박종길 목사

 

우리를 거절하지 않고, 제한하지 않고, 회복시키기 원하시는
구속자요, 대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좌로 나아가십시오.

 

룻기는 한 가족이 고통과 슬픔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승리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처음은 미약하고 고통 가운데 있지만 나중은 창대하고 기쁨으로 끝나는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은혜로 룻과 보아스가 결혼하고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다윗의 할아버지이며, 이새의 아버지가 된다는 내용입니다. 이 본문을 가지고 세 가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를 거절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해서 보아스가 룻을 데리고 갔고 룻은 그 아내가 됐습니다. 그가 룻에게로 들어가자 여호와께서 룻으로 잉태하게 하셔서 그녀가 아들을 낳게 됐습니다”(13절).

룻기를 읽다 보면 이스라엘의 독특한 법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 고엘’ 이라는 제도입니다. 대속, 구속 기업을 무르다는 뜻을 가진 제도입니다. 보통은 잃어버린 것의 대가를 지불한 다음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 ‘ 고엘제도’ 입니다. 이 제도에 해당하는 것이 네 가지 정도입니다. 첫째는 땅입니다. 유산으로 받은 땅을 빚지거나 다른 이유로 잃어버렸을 때 가까운 형제나 친척이 그 땅을 다시 사서 찾아주는 제도입니다. 둘째는 자녀입니다. 상속할 자녀를 두지 못하고 죽었을 경우 형제나 친척 중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 미망인을 취하여 자녀를 낳아 대가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계대혼인법, 형사취수라고 표현합니다. 셋째는 생명입니다. 친족 중에 누군가가 살해당했을 경우 그 생명을 대신해서 복수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넷째는 권리입니다. 친족 중 하나가 종이 되거나 노예가 되었을 때 가까운 형제나 친척이 그 값을 치르고 노예나 종으로부터 속량해주는 제도입니다. 이러한 의무와 권리를 행사하는 고엘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단계가 필요합니다. 합법적인 가족회의나 장로들의 공개재판을 통해서 고엘로 인정되고 행해지도록 했습니다. 네 가지 권리를 잃어버린 사람을 대신해서 갚아주는 사람을 ‘ 구속자’ 혹은 ‘ 대속자’ 라고 합니다. 구속자나 대속자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먼저 가까운 친척이어야 하고, 그것을 감당할 만한 능력이 있어야 하며, 자원해야 합니다. 나오미는 땅을 잃어버렸고, 두 아들이 죽어서 대가 끊어졌고, 노예나 종으로 전락할 만한 어려움에 빠져 있었지만 고엘 제도를 통해서 나오미와 룻이 보아스라는 구속자를 만나 은혜를 받았습니다. 보아스는 나오미와 룻이 도움을 구했을 때 거절하지 않고 도와주는 구속자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거절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거절하지 않습니다. 보아스가 나오미와 룻이 잃어버린 땅을 다시 사서 돌려주고, 나오미의 아들 말론의 아내였던 룻을 아내로 사서 나오미와 엘리멜렉의 가문을 잇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거절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를 축복해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거절하지 않습니다. 룻을 거절하지 않았던 보아스처럼 하나님은 자신에게 나오는 한 영혼 한 영혼을 거절하지 않으시고 받아주십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님을 보내서 우리의 죄 값을 대속하신 구속의 사랑입니다. 신약성서에 고엘과 같은 예수님의 피로 값을 치르고 산 두 가지가 나옵니다. 하나는 교회이고, 또 다른 하나는 우리들입니다.

“여러분은 자신과 양 떼를 잘 살피고 조심하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을 감독자로 세우셔서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돌보게 하셨습니다”(행 20:28).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고전 6:20).

교회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사신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거룩한 곳이고, 귀한 곳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치르시고 사셨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거저 얻었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값을 치르셨습니다. 사람들은 거절하고, 배신하고, 등을 돌릴지 몰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거절하지 않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회복시킨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회복시킵니다.

“여자들이 나오미에게 말했습니다. ‘ 여호와께 찬양을 드립니다.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에게 대가 끊어지지 않도록 자손을 주셨습니다. 그가 이스라엘 가운데 이름을 떨치기를 바랍니다. 그가 당신 인생을 회복시키셨으니 노년에 당신을 보살펴 줄 것입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그 며느리이자 일곱 아들보다 나은 그 며느리가 그를 낳았으니 말입니다’ ”(14~15절).

하나님은 보아스를 통해서 나오미와 룻에게 자손을 주셨습니다. 나오미와 엘리멜렉의 가문이 보아스와 룻을 통해서 계속 이어가게 했습니다. 나오미가 모압 땅으로 이민을 갔다가 베들레헴으로 돌아올 때 사람들에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 나를 나오미라고 부르지 말고 이제 마라라고 부르시오. 전능하신 분께서 내 인생을 고달프게 만드셨으니 말입니다. 내가 나갈 때는 풍족했는데 이제 여호와께서 나를 빈털터리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나오미라 부르겠습니까? 여호와께서 나를 치셨고 전능하신 분께서 내게 고난을 주셨으니 말입니다’ ”(20~21절).

‘ 나오미’ 라는 이름은 ‘ 즐거움’ , ‘ 유쾌함’ , ‘ 상냥함’ , ‘ 아름다움’ 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나오미가 사람들에게 ‘ 마라’ 라고 해달라고 했습니다. 마라는 ‘ 고통’ , ‘ 괴롭다’ , ‘ 쓰다’ 는 뜻입니다. 마라와 같이 쓰디 쓴 고통의 인생을 살던 나오미가 보아스라는 구속자를 통해서 회복되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회복시켜주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상처와 고통을 기쁨으로 바꿔주십니다. 나오미와 룻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의 인생을 회복시키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모압을 떠나야 합니다. 우리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약속의 땅, 은혜의 땅, 소망의 땅을 찾아가야 합니다. 둘째, 은혜를 찾아야 합니다. 나오미와 룻의 회복은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찾는 자에게, 구하는 자에게, 두드리는 자에게 열고, 찾고, 얻게 해주십니다. 셋째, 미래를 기대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과거를 후회하고, 현재는 불평하고, 미래는 걱정하고 염려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죄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여 주심으로 과거는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현재는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고, 미래는 염려와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대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여러분, 나오미와 룻처럼 모압 땅을 떠나고, 은혜를 구하고, 하나님이 이루실 그 일을 기대해야 합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의 자리에 있는 것은 우리의 힘이나 능력이나 자격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과거로 미래를 제한하지 않는다”

 

셋째, 하나님은 과거로 우리의 미래를 제한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나오미는 그 아이를 데려와 가슴에 품고 보살폈습니다. 이웃 여자들이 ‘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 하며 그 이름을 오벳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다윗의 할아버지며 이새의 아버지가 됩니다”(16~17절).

하나님은 실패한 인생 같았던 나오미를 위로해 주시고, 기쁨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나오미의 과거로 미래를 제한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로 미래를 제한하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놓지 않으시고, 포기하지 않으시고, 외면하지 않습니다. 보아스와 룻이 낳은 아들을 ‘ 오벳’ 이라고 불렀다고 했습니다. 오벳은 ‘ 섬기는 자’ 라는 뜻입니다. 오벳이 다윗 왕의 할아버지가 되고, 다윗의 가문에서 예수님이 태어나게 됩니다. 예수님도 오벳과 같이 섬기는 자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친히 육신의 몸을 입으셨고, 십자가의 죽음으로 구원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나오미와 룻에게 보아스가 구원자였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의 구원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여러분, 과거에 얽매이지 마십시오. 과거가 가지고 있는 거짓에 속지마십시오. 과거의 화려했던 영광과 비참한 실패로 미래를 판단하거나 제한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소명을 따라 나아가십시오.

“형제들이여, 나는 그것을 붙잡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한 가지만은 말할 수 있는데, 곧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붙잡으려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에서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위해 푯대를 향해서 좇아갑니다”(빌 3:13~14).

바울은 과거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미래를 제한하지도 않았습니다. 여러분, 지난 시간의 영광에 취해 있거나 지난 실패에 마음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아무리 비천하고 부적절한 관계로 태어났고, 이방인이어도 그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과거나 우리의 신분으로 미래를 제한하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계신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며 또한 모든 면에서 우리와 동일하게 시험을 당하셨으나 죄가 없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비하심을 얻고 필요할 때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갑시다”(히 4:15~16).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의 고통과 아픔을 아시는 분입니다. 그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룻기의 마지막은 족보로 마칩니다. 그 족보를 통해 우리를 거절하지 않고, 제한하지 않고, 인생을 회복시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우리의 구속자요, 대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이소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