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마리아행전 '평강의 복'] 메시지
6월 11일 수요일
평강에서 평강으로
<이사야> 26장 3절
/ 이훈 목사
하나님이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서 평강으로 지키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심지가 견고하다는 것은 마음의 뿌리가 견고해서 흔들리지 않는 한결같은 마음을 뜻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상황과 감정에 따라 흔들리기 쉽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부탁받은 것은 다른 이들에게 평화를 전하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에게 평화가 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이미 주신 것을 우리를 통해서 흘러나오도록 하는 것이지, 우리에게 없는 것을 주라고 하시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도 먼저 복을 주시고, 그 복이 아브라함을 통해 전해지고 흘러가게 하셨습니다. 마음을 열고, 삶의 문을 열어 둔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것이고, 그것이 우리를 통해 흘러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라고 말합니다. 내가 한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하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네”라고 대답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성경에는 평강의 복을 누리며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 평강을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사람이 되려면 첫째, 불안을 양식 삼지 말아야 합니다. 불안과 염려가 계속되면 자꾸 애쓰게 됩니다. 그리고 그 불안을 주변 사람에게 넘겨주게 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염려하지 말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평화를 훼손하는 것에서 마음의 거리를 둬야 합니다. 우리의 평화를 뺏고, 불안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습니다. 상황과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환대를 받거나 학대받는 그 어떠한 상황에도 전혀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마음의 평화를 지닌 채 흔들리지 않고 걸으셨습니다. 상황보다 우리를 흔들어 놓은 게 있습니다. 바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배신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으셨습니다. 배신한 이들에게 기대가 없으셔서 그런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신실하게 변화시켜 가실 거라는 믿음을 갖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평화를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평화를 훼손하는 상황과 사람에게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반드시 신실하게 응답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우리가 마음 붙일 수 있는 평화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 붙일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쉼과 평화를 약속하시면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평강의 복을 누리고, 그 복을 예수님과 함께 세상에 나타내고자 한다면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마음 깊이 배우고, 그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과 함께 상황과 사람에게 흔들리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불안한 사람들이 와서 머물며 쉼을 얻고, 마음을 붙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성경에는 평강의 복을 누리며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 평강을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사람이 되려면 첫째, 불안을 양식 삼지 말아야 합니다. 불안과 염려가 계속되면 자꾸 애쓰게 됩니다. 그리고 그 불안을 주변 사람에게 넘겨주게 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염려하지 말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평화를 훼손하는 것에서 마음의 거리를 둬야 합니다. 우리의 평화를 뺏고, 불안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습니다. 상황과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환대를 받거나 학대받는 그 어떠한 상황에도 전혀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마음의 평화를 지닌 채 흔들리지 않고 걸으셨습니다. 상황보다 우리를 흔들어 놓은 게 있습니다. 바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배신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으셨습니다. 배신한 이들에게 기대가 없으셔서 그런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신실하게 변화시켜 가실 거라는 믿음을 갖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평화를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평화를 훼손하는 상황과 사람에게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반드시 신실하게 응답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우리가 마음 붙일 수 있는 평화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 붙일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쉼과 평화를 약속하시면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평강의 복을 누리고, 그 복을 예수님과 함께 세상에 나타내고자 한다면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마음 깊이 배우고, 그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과 함께 상황과 사람에게 흔들리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불안한 사람들이 와서 머물며 쉼을 얻고, 마음을 붙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6월 12일(목)
평강의 길, 짐과 쉼
<마태복음> 11장 28~30절
/ 정갑신 목사(예수향남교회)
왜 우리는 예수님이 약속하신 평강을 누리지 못할까요? 첫째, 예수님이 주신 평강의 약속 위에 살지 않고, 나의 기분, 상황, 감정에 휘둘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약속이 내 느낌보다 훨씬 정확하고, 예수님의 약속이 내 판단보다 훨씬 똑똑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평강의 약속 위에서 사는 법을 매우 의도적, 지속적, 반복적으로 연습해야 합니다.
둘째, 약속하신 평강의 의미를 잘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평강을 약속하실 때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이 약속하는 평강은 가짜 평안입니다. 내 필요와 욕구가 채워져야만 누릴 수 있습니다. 반면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내 욕망과 자아가 비워지고, 그 자리에 영원한 평안의 근원이신 예수님이 채워집니다. 예수님으로 채워지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면 참 평안을 얻습니다.
예수님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1:28). 이 말씀은 수고할수록 무거워지는 짐, 곧 욕망의 짐, 죄의 짐, 자책의 짐, 의심과 두려움의 짐, 원망의 짐을 지고 사는 사람들을 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짐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 앞에서 하나님의 약속보다 나의 판단과 감정, 상황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에 평안을 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죄의 짐이 해결되지 않는 한 아무리 상황이 바뀌어도 우리는 평안을 누릴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짐을 내려놓으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그분은 우주의 창조자이자 통치자인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받으셨습니다. 그분 곁에만 있으면 우리는 영원히 걱정할 문제가 없습니다. 삶에 대한 태도는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있느냐가 결정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완벽히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있으신 분입니다. 그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짐을 가지고 갔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자기 자신에게 가져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 앞에 엎드려 모든 문제를 풀어놓고 기도하지만, 기도가 끝나면 다시 그 문제를 짊어지고 삶으로 돌아갑니다. 그 짐을 내려놓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이 “나의 멍에를 메라”고 말씀하십니다. 짐을 내려놓으라고 부르셔놓고는 짐을 지라고 하십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더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것에 중독되어야 하는 것처럼, 더 가볍고 좋은 예수님의 멍에를 지면 자연스럽게 짐을 내려놓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참된 평강을 누리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이미 다 이루신 복음과 그분의 약속 위에서 살기 위한 몸부림이 필요합니다. 날마다 예수님이 약속하신 평강을 누리고, 그 평강의 힘을 주변 사람들에게 흘려보내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약속하신 평강의 의미를 잘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평강을 약속하실 때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이 약속하는 평강은 가짜 평안입니다. 내 필요와 욕구가 채워져야만 누릴 수 있습니다. 반면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내 욕망과 자아가 비워지고, 그 자리에 영원한 평안의 근원이신 예수님이 채워집니다. 예수님으로 채워지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면 참 평안을 얻습니다.
예수님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1:28). 이 말씀은 수고할수록 무거워지는 짐, 곧 욕망의 짐, 죄의 짐, 자책의 짐, 의심과 두려움의 짐, 원망의 짐을 지고 사는 사람들을 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짐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 앞에서 하나님의 약속보다 나의 판단과 감정, 상황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에 평안을 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죄의 짐이 해결되지 않는 한 아무리 상황이 바뀌어도 우리는 평안을 누릴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짐을 내려놓으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그분은 우주의 창조자이자 통치자인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받으셨습니다. 그분 곁에만 있으면 우리는 영원히 걱정할 문제가 없습니다. 삶에 대한 태도는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있느냐가 결정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완벽히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있으신 분입니다. 그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짐을 가지고 갔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자기 자신에게 가져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 앞에 엎드려 모든 문제를 풀어놓고 기도하지만, 기도가 끝나면 다시 그 문제를 짊어지고 삶으로 돌아갑니다. 그 짐을 내려놓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이 “나의 멍에를 메라”고 말씀하십니다. 짐을 내려놓으라고 부르셔놓고는 짐을 지라고 하십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더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것에 중독되어야 하는 것처럼, 더 가볍고 좋은 예수님의 멍에를 지면 자연스럽게 짐을 내려놓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참된 평강을 누리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이미 다 이루신 복음과 그분의 약속 위에서 살기 위한 몸부림이 필요합니다. 날마다 예수님이 약속하신 평강을 누리고, 그 평강의 힘을 주변 사람들에게 흘려보내기를 축복합니다.
6월 13일 금요일
고요하고 평온하게
<시편> 131편
/ 이재훈 위임목사
<시편> 131편에서 다윗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의 의미를 우리에게 나눠주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무너지지 않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힘이 바로 ‘평강’입니다. 평강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은 죄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교만’입니다. 자신 안에 있는 교만의 문제를 모르면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교만이 눈을 가려 하나님의 평강을 알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늘 교만을 ‘눈이 높은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시 101:5, 18:27). 교만이 가져오는 치명적인 문제는 자기 인식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교만을 제거하는 게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기 위한 가장 큰 과제입니다. 교만한 영혼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높게 평가받고 싶어서 마음이 불편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언제나 스스로 위대해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교만을 극복한 다윗은 “내가 너무 큰일과 벅찬 일을 행하려고 하지 않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1절). 다윗은 큰일을 하려고 나선 적이 없습니다. 다윗이 양을 치고, 아버지의 심부름을 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큰일을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작은 일을 큰 일로 여기고,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일부터 충성스럽게 감당할 때 벅찬 일들을 맡기십니다.
다윗의 삶을 보면, 그가 왕이 되기 전에 하나님이 고통의 세월을 통과하게 하셨습니다. 다윗 안에 있는 교만을 미리 제거하기 위해서 오랜 세월 고통을 겪게 하신 것입니다. 본문 2절에서 교만을 끊어 낸 영혼이 영원히 평강을 누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젖 뗀 아이’라고 표현합니다. 그것으로부터 끊어지는 것은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되지 않기 때문에 때로 하나님이 개입하십니다. 물질, 사랑하는 가족, 나의 명예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고통스럽지만 통과하면서 누리는 평강이 있습니다. 두 가지 차원에서 젖을 뗌으로 경험하는 평강이 있습니다. 첫째, 엄마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 평강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어떤 것으로 평강을 누리는 게 아니라 하나님 임재로 인해서 평강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평강이자 예배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교만을 못으로 박지 않으면 우리 영혼의 성숙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둘째, 젖을 떼는 관계를 통해서 이제는 다른 양식을 먹고 성숙하는 것입니다. 젖만 먹는 단계의 신앙은 흔들리기 쉽습니다(히 5:12~14). 단단한 음식은 성숙한 사람의 것입니다. 그들은 끊임없는 훈련으로 연단된 분별력을 지니고 있어서 선과 악을 분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젖 뗀 아이와 같이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 나의 행복이 되고, 의의 말씀으로 연단된 분별력을 가지고 선악을 분별할 줄 아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십시오.
다윗의 삶을 보면, 그가 왕이 되기 전에 하나님이 고통의 세월을 통과하게 하셨습니다. 다윗 안에 있는 교만을 미리 제거하기 위해서 오랜 세월 고통을 겪게 하신 것입니다. 본문 2절에서 교만을 끊어 낸 영혼이 영원히 평강을 누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젖 뗀 아이’라고 표현합니다. 그것으로부터 끊어지는 것은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되지 않기 때문에 때로 하나님이 개입하십니다. 물질, 사랑하는 가족, 나의 명예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고통스럽지만 통과하면서 누리는 평강이 있습니다. 두 가지 차원에서 젖을 뗌으로 경험하는 평강이 있습니다. 첫째, 엄마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 평강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어떤 것으로 평강을 누리는 게 아니라 하나님 임재로 인해서 평강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평강이자 예배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교만을 못으로 박지 않으면 우리 영혼의 성숙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둘째, 젖을 떼는 관계를 통해서 이제는 다른 양식을 먹고 성숙하는 것입니다. 젖만 먹는 단계의 신앙은 흔들리기 쉽습니다(히 5:12~14). 단단한 음식은 성숙한 사람의 것입니다. 그들은 끊임없는 훈련으로 연단된 분별력을 지니고 있어서 선과 악을 분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젖 뗀 아이와 같이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 나의 행복이 되고, 의의 말씀으로 연단된 분별력을 가지고 선악을 분별할 줄 아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십시오.
작성자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