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온누리축제

주제강의6 - Again 1907

 하용조 목사 | 온누리교회 담임 부흥은 위기와 동반합니다. 한국 근대 사회에서 가정 처절하고 복잡한 상황에서 성령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어렵다고 하지만 그 당시 상황과 비교해 보면 지금은 천국과 같은 시간입니다. 한국교회가 가장 어려웠을 때 하나님은 한국교회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번에 부흥이라는 주제로 집회를 하면서 경계하는 것이 있습니다. 부흥이라는 단어가 너무 유행하는 단어가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내면의 깊은 회개와 변화가 없는 형식적인 부흥을 추구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내면과 현실을 정직하게 보는 것이 참 필요한 때입니다.  부흥의 불씨 ‘기도’ 시대마다 하나님은 필요한 때에 부흥을 주셨습니다. 최근에 하나님께서는 가장 비참한 나라였던 아프리카 우간다를 축복된 나라로 바꿔주셨습니다. 우간다 하면 이디아민이라는 분을 기억할 것입니다. 정말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잠시 후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누가 적인지 누가 아군인지를 모르고 죽였습니다. 군사독재 정부가 들어와 정치적으로 어려움에 처하고, 에이즈가 창궐하고, 결과적으로 경제가 붕괴돼 나라가 완전히 반쪽이 됐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간다의 현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몇몇 사람들을 통해 우간다를 재건시켰습니다. 이제 요약된 다큐멘터리를 보고 계속해서 평양 대부흥에 관한 비전을 나누겠습니다. 다큐멘터리에서 보셨듯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던 놀라운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우간다를 축복해주셨습니다. 에이즈가 나은 사람이 공식적으로 372명이었습니다. 의사들이 설명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성령이 임하여 병이 사라지고, 가정이 회복되었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치유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불과 10년 전에 우간다라는 나라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우간다 대통령은 전 국민을 모아 놓고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 우상을 숭배하지 않는다”는 선언문을 낭독했습니다. 그리고 우간다는 아프리카 경제대국 3위인 나라로 바뀌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우리나라에도 있었습니다. 1907년 우리나라는 아무것도 없는 비참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절망은 희망을 부르고, 위기는 부흥을 부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항상 생각해야 할 것은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활의 믿음과 하나님의 승리를 믿는 그런 믿음이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가 그런 믿음을 가지고 이곳을 떠나 각각의 자리에서 기도의 불씨를 유지한다면 이 민족은 용광로처럼 타오를 것입니다. 이것이 이번 집회의 목적입니다. 오늘 당장 무엇을 다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불을 받고 믿음을 가지고 가자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교회가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과 야합하지 않고, 중심을 잡고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이 민족과 이 땅을 고쳐주실 것입니다.  영적 부흥의 대가 ‘순교’ 1907년 성령 사건에서 우리는 몇 가지 영적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평양 부흥 사건이 일어나기 40년 전에 평양에 있는 대동강 강변에서 토마스 선교사가 순교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때의 기록을 보면 토마스 선교사는 죽을 때 자기를 죽인 사람한테 성경책을 건네주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성경책을 읽고 예수를 믿게 되었고, 그 조카가 예수를 믿게 됩니다. 그러면서 교회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 사건이 계기가 되어 결국 1907년에 평양의 성령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발견하는 것이 있다면, 모든 부흥은 순교자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입니다. 한국교회가 부흥하게 된 것도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과 같은 순교의 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국 교회가 외로운 것은 마틴 루터 킹 이후에 우리가 기억할 만한 순교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비극은 초대교회 때 순교자가 있었지만 최근에 그런 경우가 없습니다. 온누리교회가 큰 부흥을 하게 된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선교를 지나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유가 있거나 능력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의 존재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온누리교회는 600명 이상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순교자를 받으셨습니다. 먼저 박모세 선교사님이 중국에서 돌아가셨고, 김사무엘 선교사님이 이라크에서 사역을 하시다가 혈액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터키에 있는 선교사님의 아이는 풍토병으로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선교입니다. 선교라는 것은 죽음의 대가를 치르면서 하는 것입니다. 이 죽음의 대가를 치를 때 부흥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그 부흥은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초대교회 때 시대적 상황을 놓고 보면 죽음의 땅, 절망의 땅이었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의 기도문를 다시 보십시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곳, 무지와 고집과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가득한 곳, 환영받지도 못하는 곳으로 가서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부흥을 원하지만 대가는 원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 1907년의 부흥이 재현되기를 원한다면 교회와 크리스천들은 대가를 치를 준비를 해야 합니다.  빛과 소금이 될 때  부흥의 역사를 조명해 보면 시대적 상황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평양 대부흥 사건만 독립해 있지 않습니다. 그전에 이미 원산 부흥, 웨일즈 부흥, 인도 부흥 사건이 있었습니다. 주변에서 그런 소문이 계속해서 들려왔던 것입니다. 부흥은 한 사람에 의해서, 한 곳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고 소문을 타고 여러 곳에서 바람이 부는 것입니다. 한두 개의 교회가 잘 되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모든 교회가 다 잘 되어야 합니다. 섬과 시골에서도 부흥이 일어나 곳곳에서 부흥의 소리가 파도처럼 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흥은 그렇게 일어납니다. 현재 한국교회에는 연합이 필요합니다. 평신도와 목회자가 협력해야 하고, 교회와 교회, 선교단체와 교회가 협력해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 부흥은 일어납니다. 시대에 따라 교회는 그 역사를 달리하고 성령운동도 그 형태가 달라집니다. 1960년대 코드는 가난과 ‘질병’이었습니다. 1970년대와 80년대의 코드는 ‘성공’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코드가 다릅니다. 교회가 세상에 빛을 발해야 합니다. 도덕적이어야 하고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운동도 그쪽으로 각도를 돌려야 합니다. 그랬을 때 세상은 우리를 향해 문을 열고 환영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부흥을 외쳐도 세상이 환영을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 세상은 교회의 영향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권위주의와 교권주의, 물량주의에 대해서 신물이 나있습니다. 교회가 겸손하게 섬기고 화해자가 되고, 민족의 양심이 되길 원합니다. 교회가 이름도, 빛도 없이 작은 곳을 찾아다니고, 순교하고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을 볼 때 세상은 감동합니다. 저는 이 땅에 놀라운 부흥이 교회를 통해서 다시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동안은 하나님께서 한국 땅을 불쌍하게 여겨주셔서 한국 땅에 부흥을 일으켜주셨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세상에 나가서 다른 나라를 부흥시켜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나누어주고, 나를 포기하고 희생해야 합니다. 이것이 부흥입니다. 이제 그럴 때가 되었습니다./ 정리 박영주 기자 pyjoo@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