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온누리축제

주제강의 3_ 은혜

■ 주제강의 3

은혜

>>> 필립 얀시 (Campus Life, Christianity의 저널리스트)

교회는 어떤 죄인이라도 올 수 있는 안전한 곳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죄를 용납하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죄라도 뛰어넘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사람들 대부분은 크리스천이란 정치가나 설교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에게 “크리스천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보았을 때 “은혜입니다”라는 대답을 들었으면 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 때 필요한 것은 그 무엇보다도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은혜와는 정반대인 공의와 정의, 법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작은 화면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님

오늘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소개하신 가치와 혁명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2004년 우크라이나에서 ‘오렌지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우크라이나는 구소련의 일부였는데 여러 개의 작은 나라들이 독립하면서 하나의 민주국가로 형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집권을 하고 있는 정당이 소련과 매우 깊은 유대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정당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빅터라는 사람이 이 여당을 비판합니다. 그는 선거운동을 하면서 상대편에 의해 음독을 당해서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는 투표전날에 자신의 지지율이 여당에 비해 10% 이상 높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미리 알게 된 여당이 부정선거를 하게 됩니다. 선거 당일 날 TV에서 투표결과를 발표하면서 아나운서가 “우리의 여당이 압도적인 우세로 빅터를 이겼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방송에는 큰 화면과 함께 작은 화면이 있습니다.

작은 화면에는 청각장애인을 위해 수화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TV에서 빅터가 졌다고 발표되었을 때 수화를 하는 여성은 이와는 전혀 다른 뉴스를 내보냈습니다. 그래서 청각장애인을 중심으로 오렌지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작은 화면의 수화를 통해서 청각장애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날 밤 10만 명이 모였습니다. 몇 주가 지나지 않아 그 광장에 100만 명이 넘는 시민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항의가 거세지자 투표를 다시 해야 했고, 그 결과로 빅터가 오늘날까지 대통령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교회에 대한 아름다운 그림을 제시합니다. 우리가 흔히 텔레비전을 통해 접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텔레비전이나 책에서는 외모와 몸매의 아름다움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그것으로 우리의 가치를 평가합니다. 멋진 몸과 얼굴을 가져야만 중요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대형 화면이 주는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예수님이 등장하셔서 큰 화면 안의 작은 화면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너희들에게 거짓말을 해왔다. 부한 자가 복 있는 사람이 아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 박해를 당하는 자가 복 있는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마 5:1). 하나님은 세상을 거꾸로 바라보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온 세상을 얻고도 목숨과 영혼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마 16:26). 이것이 은혜의 혁명입니다. 사람의 능력과 외모, 돈, 인종을 따라서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은 바 된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어떤 죄도 뛰어넘는 하나님의 은혜

누가복음 7장에는 예수님이 만찬에 참여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한 바리새파 사람이 예수님을 초청합니다. 저녁식사 도중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창녀가 집 안에 들어와서 머리를 풀어헤치고, 향유를 발에 붓고, 그 머리로 예수님의 발을 씻기기 시작합니다.

저는 <내가 알지 못하던 예수>라는 책을 쓸 때 복음서를 읽으면서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들을 다루었습니다. 그런데 착하고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우월성을 가진 사람들일수록 예수님으로 인해 마음이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부도덕하고 책임감이 없고,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일수록 예수님께 끌렸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좋은 시민, 도덕적인 시민, 옷도 잘 입고 교회에서 어떻게 행동해야할지를 잘 아는 사람들이 교회에 잘 적응합니다. 정작 교회가 필요하고 신앙이 필요한 사람들, 절대적인 빈곤에 있는 사람들은 교회에서 적응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항상 세상 사람들의 눈에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을 영웅으로 만듭니다. 예수님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일에서도 부자의 이름조차 관심이 없으십니다. 누가 영웅입니까? 바로 나사로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는 세 명의 좋은 랍비에 대해서 알게 되지만 여기서도 이야기의 주인공은 역시 사마리아인입니다. 탕자의 비유에서도 두 아들이 나오는데 큰아들은 착하고 순종적인 아들입니다. 작은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부모님이 주신 재산을 모두 탕진하지만 결국은 그가 영웅이 됩니다. 여기서의 초점은 방탕한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 채워진 아버지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위해 죽기도 하시고 어떤 수치도 감내하십니다. 사랑하고 용서하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자식이 조금이라도 돌이키려고 하는 순간 자신의 바지자락을 들어 올리고 달려오십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한국의 교회와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교회가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어떤 죄인도 올 수 있는 안전한 곳이 어야 합니다. 그것은 결코 우리가 죄를 용납하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죄라도 뛰어넘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만난 바디매오와 삭개오

예수님이 은혜에 대해 설명하시는 장면이 누가복음 18장과 19장에 또 한 번 등장합니다. 여기에서는 두 명의 상이한 인물이 나옵니다. 억압당하는 자와 억압하는 자입니다. 억압당하는 자는 눈을 볼 수 없고 구걸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의 이름은 바디매오인데 히브리 말로 ‘쓰레기의 아들’입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마을에 당도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다윗의 자손이여, 저를 긍휼히 여기소서”라고 외칩니다.

예수님의 측근들은 바디매오를 밀어제치면서 “예수님은 중요한 일을 해야 하니까 내버려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은 큰 화면 속의 작은 화면에서 움직이십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중요한 일은 버림받은 쓰레기의 아들, 시각장애인인 바디매오를 구원해 내는 것입니다. 교회들을 보면 교회가 나름대로 억압당하는 사람을 돕는 일을 잘해온 것 같습니다. 온누리교회도 노인과 고아들, 외국인 근로자를 위해서 열심히 섬기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위성방송을 통해 보고 계신 많은 사람들이 선교 현장에서 앞장서고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에 있어서 대견스럽게 여길 수 있는 역사의 장입니다.

바디매오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예수님은 삭개오를 만납니다. 삭개오는 억압을 가하는 사람입니다. 유대인들을 침략한 로마 정부에 공조하면서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착취하는 사람입니다. 복음서에는 그가 워낙 키가 작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뽕나무에 올라가야만 예수님을 볼 수 있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아마 그는 사람들이 모인 그 자리에서 벗어나서 뽕나무에 올라가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뽕나무 아래 머무르시면서 “삭개오야, 내려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예수님은 여리고에 머무실 생각이 전혀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삭개오야, 내가 오늘 저녁 너희 집에 가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거룩한 유대인이 부정한 자신의 집에 들어온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삭개오의 이야기를 통해서 복음이 이 땅에서 어떻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후 삭개오는 회심을 하자마자 자신의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복을 스스로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주어야 합니다. 교회가 먼저 가난하고 억압당하는 사람에게 선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억압받는 사람들이 아닌 남을 억압하는 사람들에게 선을 베푸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그러나 억압하는 사람들에게 교회가 영향력을 미칠 때 전 세계는 주목할 것입니다.

/ 정리 정지은 기자 jji@onnuri.org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