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강의 5_ 기도
■ 주제강의 5 기도 >>> 필립 얀시 (Campus Life, Christianity 저널리스트) 하나님께서 불평불만이 가득한 기도를 성경에 기록케 하신 사실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끝까지 붙잡고 씨름하기를 원하십니다. 기도 할 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내 삶에 초대하는가. 불평의 기도조차 성경에 기록하심 기도에 관한 주제로 첫 강의를 콜로라도대학에서 할 때였습니다. 강의가 끝난 후 질의응답 시간에 한 학생으로부터 ‘과연 기도를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저는 ‘당신이 현재 기도를 하고 있는 중이라면 옳게 하는 것이 맞을 것’이라는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를 할 때 어떤 정해진 방법에 의해 기도를 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관심을 표명하는 것 자체에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에 대해 가장 잘 가르칠 수 있는 분은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있는 것을 항상 표출하기를 원하시고 그렇게 우리를 기도로 초청하십니다. 제가 기도에 관한 묵상을 하고 글을 쓰기 위해서 성경을 보니 650여 가지의 기도가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중 상당수의 기도가 불평을 호소하거나 애통하는 내용으로 이뤄졌습니다. 150편으로 이뤄진 시편 중에 3분의 2에 해당하는 대부분의 기도는 애통하고 불평을 호소하는 내용입니다. 주로 계획하던 일이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에 대한 응답이 늦어지는 것에 대한 불평을 호소하는 내용입니다. 욥기서도 그렇고 예레미야애가서도 하나님께 드리는 호소문이 기도의 주된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불평불만이 가득한 기도를 성경에 기록되게 하셨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위해 중보하시는 예수님 우리는 흔히 ‘내가 이렇게 기도할 때 하나님께 예의 없고 버르장머리 없이 기도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고민을 하는데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느끼는 대로 표현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고 논쟁하시기를 좋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접촉하고 참여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겪고 하나님께 깊은 회의를 느끼는 시간도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야곱처럼 어떤 문제에 대해 하나님과 끝까지 붙잡고 씨름하기를 원하십니다. 제가 기도에 대해 연구하면 할수록 기도하는 사람과 대화를 하면 할수록 기도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생각들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저는 기도를 일종의 ‘고된 훈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도달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고난과 연단을 통과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깨닫게 된 것은 기도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특혜이자 특권’이라는 사실입니다. 성도들은 기도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기도가 실제로 어떤 변화를 일으킵니까? 제가 드릴 수 있는 답은 ‘예수님이 하신 일을 보십시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필요로 가득한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군중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는 군중들과 함께하는 시간만큼 하나님 아버지와 마주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지금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취하고 계신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예수님은 이 시간에도 쉬지 않고 기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셔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엡 1:20). 저는 신학자들과 많은 사람들이 ‘기도는 다른 것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들어왔습니다. 특히 1960년대 미국의 신학교는 ‘기도와 영성’에 관한 수업조차 없었습니다. 심지어 신학교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는 것을 우리가 해야하기 때문에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애석하게도 기도에 불이 붙은 상태에서 신학교에 입학한 학생 대부분이 불이 꺼진 상태로 졸업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나님을 초청하는 기도를 하는가 왜 예수님은 많은 시간을 기도에 할애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우주의 원리를 너무나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기도방식은 오늘날 기도의 방식과 다릅니다. 그 당시 기도하는 모습은 무릎을 꿇거나 머리를 숙이지도 않았고 눈을 감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들고 기도했습니다. 기도란 눈을 감는 행위가 아니라 주위의 상황에 대해 민감하게 깨어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통을 겪고 계실 때 제자들은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눈을 감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저는 늘 기도를 할 때 하나님의 시선을 끌어들이고자 합니다. 내가 사회 속에서 하고자 하는 관점을 하나님도 함께 보게 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최근에 하나님이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시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합니다. 산에 오를 때마다 산꼭대기에서 흐르는 물을 보면서 그 물이 산을 타고 밑으로 내려올 때마다 넓은 강이 되는 것을 생각합니다. 저는 계곡 물의 흐름을 보면서 하나님이 행하고자 하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정의와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는 이러한 사실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물을 흘려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은 모르지만 하나님은 실망하지 않고 계속 보여주시기 원하십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저처럼 평범한 사람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알리기를 원하십니다. 만약 제가 하나님과 같은 입장이었다면 이 땅에 자신의 명예와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인간을 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 혼자서도 하실 수 있는 일을 하나님은 우리와 같은 사람에게 자신의 명예와 명성을 나눠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마치 여러분이 자녀를 키우면서 내가 평생 이루지 못한 꿈을 자녀가 이루는 모습을 보며 기뻐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운동이나 공부에서도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자녀가 이뤄가는 것을 보고 행복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자녀가 공부나 운동을 잘하는 것을 보면서 질투하지 않고 자부심을 느낍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처럼 우리가 복음을 온 땅에 퍼트리는 것을 볼 때 뿌듯함을 느끼실 것입니다. 기도를 할 때 저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내 삶에 초대하는 일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기도하는데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초청하고 있는가’하는 점입니다. 새벽기도에서만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살면서 하나님을 초청하는 기도를 하고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삶에 초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살 5:17). 어떻게 쉬지 않고 기도를 할 수 있을까요. 우리 모두는 개인마다 다양한 삶의 영화를 펼쳐가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있지만 우리 내면에는 아무도 볼 수 없는 영화의 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한다는 것은 나의 내면이 바뀌어서, 내가 주인공인 자리에서 내려와서 하나님이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내 삶으로 초대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 조금 전에 하나님께서 온 땅 가운데 퍼뜨리는 사역의 모습을 ‘계곡물’에 비유해서 설명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실 때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고 고백하셨습니다(마 6:10). 어떻게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기도를 드릴 수 있을까요. 여러분이 북한의 주민을 살펴주시고 남편과 자녀들을 돌봐주실 것에 대해 기도 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그러한 것들에 관심을 갖고 돌보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이미 여기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미 이 땅에 충만하게 계시며 단지 우리를 통해 그분이 나타나시기를 원하십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기도로 항상 연결되어 있고 어디에 있든지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드러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정리 정성진 기자 jun@onnuri.org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