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5일 일
사역

특집 | 온누리 1천번째 선교사 파송_ 4

천국으로 부치는 편지 순교자의 길... 당신의 길을 따르렵니다! 기독교 역사는 심한 박해 속에서는 오히려 힘차게 전진했다. 극심한 박해로 인해 수많은 순교가 진행될 때에는 진리가 솟구쳐 올라 온 누리를 밝히는 역사적 쾌거를 이룩한다. 반면 평화가 주어지고 안녕이 허락되면 오히려 퇴보되고 침체되고, 복음이 변질된다. 그것은 예루살렘교회 이후 기독교가 전 세계로 진군되어 가는 역사 속에 언제나 동일하게 발생했던 역사다.선교하는 교회인 온누리교회도 22년째 사도행전의 행보에 순교자 다섯 명의 피 흘림이 있었다. 그 피 흘림이 밑거름이 되고, 열방을 향한 진군의 깃발이 되어 오늘 1000번째 선교사를 파송한다. 온누리교회가 1000번째 선교사를 파송하면서 우리의 귀한 믿음의 선배이자 우리가 따를 순교자들의 길을 유족들의 편지를 통해 되새겨 본다. / 임재금 기자 ljg14@onnuri.or.kr  <온누리교회 순교자들>  - 2000년 1월  중국 박승철 선교사 순교  - 2004년 2월  김사무엘 선교사 순교  - 2005년 6월  중국 권소망 선교사 순교  - 2005월 6월  인도네시아 전광호 선교사 순교  - 2006년 10월 우즈베키스탄 최미옥 선교사 순교 박승철 선교사에게 아내 김혜정 선교사가 “우리처럼 복 받은 사람도 없을 거야” 사랑하는 당신에게.여보! 올해로 당신이 가신지 벌써 7년이 지났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듯한 갑작스런 헤어짐 때문에 그동안 많이 힘들었습니다.‘증인이 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충성을 다한 당신이 기억납니다. 최초로 선교지에 한인 교회를 세운 후, 한국 사람들을 만나고 한국어 예배를 드리고 싶어도 끊임없는 환경의 어려움으로 그 교회에 출석도 못했지요. 참! 당신이 사랑했던 청년들이 선교지에 하나님의 공동체를 세운 것 당신은 모르고 떠나셨지요? 어느 날 당신의 추모예배를 드리러 청년들과 묘지에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피터가 “박 원장 추도예배 드리면서 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헌신하겠다고 하나님 앞에 약속했다”고 말하더군요. 그 후 그는 아주 좋은 조건의 외국인 회사에 사표를 내고 지금은 공동체의 리더가 되어서 열심히 섬기고 있답니다. 나는 아직도 당신이 남기신 마지막 말씀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인생을 아무 의미 없이 육신만 편하게 살다가 갈 뻔 했는데 이 나이에 우리를 선교사로 불러주셨으니 이게 아무나 되는 게 아냐. 우리처럼 복 받은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하면서 지친 제 손을 잡으셨지요. 선교지에 따라오셔서 노인들 찬송가 가르치시고 꽃꽂이 가르치시면서 한몫을 단단히 하시던 어머니도 어느 날 “얘야 저 아이가 달라져도 너무나 달라졌구나” 하시면서 기뻐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당신이 떠나신 후 저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습니다. 저희의 동역자셨던 어머니도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당신의 뒤를 이어 그 땅에 남겨진 일들을 하기 원하는 당신의 아들이 이번 가을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올해 신학대학 졸업반이 되었답니다. 혼자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지나보니 모두 하나님이 하신 일들입니다. 저희의 뒤를 이어 천 번째 선교사가 부활절에 파송된다고 하니 당신도 기쁘시지요.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기쁨으로 남겨진 일들을 이루어 나가기를 기도합니다.당신은 떠났지만 주님 계신 그 곳에서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많이 그립습니다.  김사무엘 선교사에게 아들 김준수 목사가 “나는 선교사라고 불리고 싶다”는 아버지! 아버지께.아버지, 당신이  주님 곁으로 가신지 벌써 3년이 지났습니다. 여러 가지 일들이 저희들 삶 가운데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떠나신 후에도 우리 가족은 당신이 사랑하셨던 많은 분들로부터 여러 이야기를 듣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의 설교를 듣고, 또 아버지의 강의를 들었지요. 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사무엘 목사님은 참으로 나를 특별히 사랑해 주시고 아껴주셨다. 나는 목사님을 통해 아버지의 사랑을 느꼈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버지의 마음속에 자신이 특별한 존재로 남겨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온누리교회는 드디어 1000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모르고 방황하는 자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고자 하는 당신의 열정과 비전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1000명의 선교사님들은 주님 나라 확장을 위해 말씀에 따라 헌신했습니다. 그들 중 많은 분들이 아버지께서 격려해 주시고 훈련해 주셨던 분들입니다. “나는 선교사라고 불리고 싶다.”기회 있을 때마다 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아버지께서는 목사나 교수라고 불리는 것보다는 선교사라 불리기를 원하셨습니다. 아버지! 당신의 삶은 새로운 지역이나 어려운 곳에 교회를 개척하고자 하는 열정으로 항상 불타고 있었습니다. 동경의 시부야교회를 시작으로 비전을 계속 펼쳐가면서 오사카 온누리교회 등 일본의 여러 곳에 교회를 개척하고,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 가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가시기 직전에는 이라크에 가셨지요. 이것이 선교사로서 아버지의 삶이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일들이 태어난 것은 복음을 널리 펼치고자 하는 아버지의 열정 때문이셨습니다.지금도 아버지께서는 하늘나라에서 이곳을 보시며 아버지의 비전이 계속 이루어질 것을  기도하고 계시지요? 아버지의 그 비전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상황을 보면서 기뻐하고 계실 줄로 믿습니다.계속해서 이 비전이 완성될 때까지, 저희들이 주님나라에서 다시 만날 그때까지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어머니와 현수, 민수의 사랑도 함께 담아서….권미경 선교사에게 남편이  이 땅은 당신이 준 ‘마지막 선물’ 벌써 두 해나 지나갔네. 미경 씨, 이 맘 때가 이 땅이 가장 아름다운 것 기억하지. 삭막했던 회색의 겨울이 지나갔다는 걸 알려주는 노란 개나리와 초록의 새순이 변함없이 우리 곁에 찾아 왔거든. 나와 사랑이는 지금도 자주 당신을 생각해. 당신과 함께 이 땅의 봄을 기뻐했던 것처럼, 우리가 변함없이 기뻐하고 있어. 함께 이 봄을 기뻐하고 싶지만, 당신은 더 아름다운 곳에 있을 테니 시기하지는 않겠지.  봄이면 우리가 늘 생각했던 것들을 지금도 생각하고 있어. 이 땅에 봄이 오듯 이 땅 사람들의 마음에도 봄이 찾아오기를 바랐던 우리의 기대와 소망과 축복들. 난 오늘도 당신과 함께 자전거를 타며 다녔던 이곳의 대학가를 이 봄의 소식을 나누어 주기 위해 다니고 있어. 당신의 뒷모습이 떠오르지만, 언젠가 그 곳에서 만날 소망이 내게 있기에 힘을 낼 수가 있어. 사랑이는 당신을 닮았는지 참 씩씩하고 밝은 소녀로 커가고 있어. 가끔 엄마를 그리워하지만, 금방 눈물을 닦고는 씩씩하게 웃는 그런 딸이야. 당신을 기억할 때면 내 마음이 언제나 새로워져. 내가 당신의 마음까지 이 땅의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길게. 그게 당신이 내게 마지막으로 준 선물이야.난 당신과 함께 섬겨왔던 이 땅이 밉지 않아. 아니 이전보다 더 이 땅의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는 것 같아. 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 오기를 원해. 그들에게 더 이상 피 흘림은 없을 거라고 약속할 수는 없어. 하지만 약속할 수 있어. 이 땅의 사람들을 나처럼 사랑하게 되리라고. 그 분의 이 땅을 향한 마음과 또 피 흘리기까지 이 땅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마음이 전해지는 게 아닐까?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이번 주 부활절에 이 말씀을 전하려고 해. 당신과 함께 부활할 그 날의 소망이 누군가에게 위로와 도전이 될 수 있을까? 전광호 선교사에게 아내 김혜란 선교사가 두렵지만 저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여보!다시는 불러보지 못할 줄 알았는데 오늘 이렇게 먼저 간 당신을 불러봅니다. 지금은 그 아픔의 고통에서 해방되어 편안하시지요? 당신의 유언대로 저는 인도네시아에 돌아와서 당신의 빈 자리를 더욱 크게 느꼈습니다. 사용하시던 책상을 정리하다가 서랍 깊숙이 있던 누런 봉투를 보고 가슴이 찡 했답니다. 왠 줄 아세요? 낯익은 글씨체로 ‘남편 유고 시 참고할 것’ 이라 쓰여진 것으로 저희가 인도네시아에 도착한 그 해에 작성하여 놓으셨더군요. 여러 가지 서류들과 연락처 등을 기록해 놓았고 선교사는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르기에 당황해 할 가족을 생각해 준비해 놓으신 것을 알았습니다. 항상 빈틈없이 준비하시고 병상에서는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이야기하셨던 것을 생각하며 저 또한 후회 없는 삶을 살려고 하루하루를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오늘도 저는 당신이 사랑했던 이 인도네시아에서 남겨 놓으신 싹들에게 물을 주며 또 다른 씨앗을 뿌리고 있습니다. 당신이 싹을 나게 한 씨앗들이 쑥쑥 아름답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일전에는 그들이 중심이 되어 세 차례 큰 집회를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당신의 빈 자리를 이야기하지만 항상 함께 참석하여 흐뭇해 하는 당신을 저는 느낍니다. 당신이 자랑스러워 하던 우리 딸 에스더가 그 유명한 미국 듀크대학에 합격했습니다. 한 번도 남들처럼 과외지도를 받아보지도 않았고, 오직 당신이 항상 이야기한대로 ‘최선을 다하라’ 라는 말을 마음에 담고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그 결과 어릴 때부터 에스더의 마음에 담아 두었던 학교로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에스더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딸로 살기를 소원하니 저로서는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역시 하나님을 향한 그 마음이 당신을 꼭 닮은 것 같습니다. 넓은 세상에서 더욱 많은 것을 배워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이제 에스더마저 떠나가면 그야말로 홀로서기가 됩니다. 조금은 떨리고 두렵지만 당신을 만나 가정을 이루게 하시고 주님이 가르쳐 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선교사로 살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저와 함께 하시리라 믿습니다. 하늘나라를 바라보며 마음의 천국을 누리며 살겠습니다. 오늘도 당신을 그리워하며….최미옥 선교사에게 남편 박상호 선교사가 “당신의 숭고한 그 믿음을 따를게” 여보!당신도 알겠지만 온누리 동산의 비문에 “하나님이 사랑하는 최미옥 이곳에 잠들다”라고 써놓았어. 마음에 들지 모르겠네. 한참을 고민했는데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최미옥’이라는 말을 꼭 쓰고 싶었어. 아무리 생각해봐도 당신, 참 하나님을  대책 없이 사랑했지. 당신이나 나나 예수 모르는 가정에 태어나 예수를 알았고 또 선교를 알았어. 주님이 그렇게 사랑하셔서 이 땅에 오신 것처럼, 당신은 척박한 우즈벡 땅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었지,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그런데 말이야 당신이 떠날 때 사실 나에게 그 용기가 사라졌었어. 그건 기도에 대한 의심이었어. 진짜 나는 당신이 일어날 줄 알았거든.내 노트에는 아직도 ‘응답하지 않는 신은 신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있어. 솔직히 아직도 그 의문이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지만….한 가지 당신이 물려준 유산이 있어.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포기하지 않는 믿음이야. 당신이 마지막까지 주님에 대한 신뢰와 확신으로 끝까지 승리한 것을 내가 분명히 봤거든. 내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하나님 앞에 인간으로서의 가장 숭고한 믿음이라고 생각해. 결국 믿음이 승리하는 거지. 우리 병원에서 매일 불렀던 397장 기억나? 요즘 때로 당신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지만 어떡하겠어. 할 수 없지. 천국생활 잘 하고 있으리라고 믿어. 나도 열심히 하나님 사랑하며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끝까지 선교하다가 당신 곁에 갈게. 그 때 우리 병원에서 마지막 유언이라는 게 없었지.  당신은 그냥 “나 믿지?” 라고 했었지. 꼭 말을 해야 했던거야? 이심전심이지. 당신을 믿어.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