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5일 일
사역

<마리아행전> 'the cry' 역사의 새벽을 깨운 기도

삼상 1장 1~18절

 

이재훈 목사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는 점점 넓어집니다. 나만의 기도, 우리 가정만의 기도가 아니라 시대를 변화시키는 기도가 되어야합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 가장 어두웠던 시대는 바로 사사 시대입니다. 영적 지도자들의 상태를 보면 그 시대의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사사 시대에 그 어둠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 영적 지도자는 ‘엘리’라는 제사장이었습니다. 성경은 엘리 제사장의 영적수준을 그 자녀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뜻이 있는 고통 속에서

 

“엘리의 아들들은 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를 의식하지 않았습니다.”(삼상 2:12)그의 아들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를 멸시하였던 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엘리는 어떠했을까요.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시고 난 뒤 한나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때 엘리 제사장이 여호와의 성전 문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삼상 1:9)

‘엘리 제사장이 의자에 앉아있었다’는 표현은 무기력하고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엘리는 항상 의자에 앉아 살다가 의자에서 죽습니다. 무엇을 의미할까요.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의자라는 것은 영향력 있는 위치, 권세, 권력, 리더십을 의미합니다. 한 시대에 어두운 모습을 엘리 제사장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 얼마나 많은 지도자들이 의자에만 앉아 있습니까? 의자에 집착합니다. 정작 의자에 앉아서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계속 의자에만 앉아있습니다. 

밤이 깊어 가면 새벽이 가까이 오는 법입니다. 하나님은 어두운 역사에 새벽을 가져오는 하나님의 사람을 언제나 준비하십니다. 그 사람은 사무엘이라는 사람입니다. 사무엘의 출생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 축복의 이면에는 ‘한나’라는 한 여인의 고통과 기도가 쓰임을 받았다는 것을 사무엘상 1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한나의 기도는 사사 시대의 어둠을 거둬내고 새로운 시대의 역사를 가져왔습니다.

사무엘상 1장을 보면 영적 분별력을 잃어버린 엘리의 가정과 경건한 엘가나의 가정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엘가나는 경건한 가문의 후예였습니다. 그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 아내였던 한나는 자녀를 낳지 못했고 두 번째 아내 브닌나는 아이를 많이 낳았습니다. 남편인 엘가나는 자녀를 많이 낳은 브닌나보다 한나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었습니다. 브닌나는 의도적이고 계획적으로 한나를 괴롭혔습니다. 한나에게는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한나에게는 두 배를 주었는데 그것은 그가 한나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한나에게 자녀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한나에게 자녀를 주시지 않았으므로 브닌나는 계속해서 한나를 괴롭히고 업신여겼습니다”(5~6절)

하나님께서 그의 태를 붙잡고 계셨습니다. 이 고통은 인간이 만들어낸 고통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뜻이 있는 고통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주시는 고통입니다. 한나는 이 고통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를 날마다 무릎 꿇게 하고 날마다 기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고통입니다.

 

절망 속에서 태어난 희망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수백 년간의 역사의 어둠을 거둬내기 위해서 한 여인의 고통을 사용하셨습니다. “한나는 마음이 너무나 괴로워 울고 또 울면서 여호와께 기도했습니다”(10절)

하나님은 한나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그녀로 하여금 고통을 주셔서 울고 또 울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먹지 말아야할 것을 먹으면 구토를 하게 됩니다. 그 물질이 우리 몸 안에 들어있으면 큰일 나기 때문입니다. 우리 눈에 들어가서는 안되는 것이 들어가면 눈물이 나듯이 말입니다. 오늘 이 한나가 울며 통곡하며 기도하는 것은 영적으로 구토를 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우리 영혼 속에 들어오지 말아야 할 미움, 상처, 아픔, 괴로움, 죄가 있으면 영혼은 그것을 토해내게 되어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통곡이요 부르짖음입니다.

“한나는 마음이 너무나 괴로워 울고 또 울면서 여호와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맹세하면서 말했습니다. “전능하신 여호와여, 만약 주께서 주의 종의 비참함을 굽어보시어 저를 기억하시고 주의 종을 잊지 않고 제게 아들을 주신다면 제가 그 평생을 여호와께 바치고 결코 그 머리에 칼을 대지 않겠습니다.”(10~11절)

한나는 서원 기도를 했습니다. 통곡의 기도에서 한나는 의식적이고 지성을 사용한 서원의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제게 만약 아들을 주시면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 서원의 기도를 기다리셨던 것 같습니다. 우리의 죄성이 깊기 때문에 한나는 울고 또 울며 기도했습니다. 성령의 임재가운데 들어갔을 때 하나님께서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기도하게 된 것입니다. 한나는 자기도 모르는 기도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제게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이 아들을 바치겠습니다.” 성령의 깊은 임재가운데 내려갔을 때만이 할 수 있는 기도가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하게 된 것입니다. 깊은 하나님의 임재가운데 내려갔을 때 그 많은 눈물을 퍼내고 퍼냈을 때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역사의 가장 중요한 전환기에, 가장 어두운 시대에 마지막 사사로서, 그리고 가장 영향력을 미쳤던 지도자로서 한나의 고통의 기도를 통해 태어났습니다. 한나가 더 가슴 아프고 더 간절하게 기도한 만큼 사무엘은 더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한나가 입술을 열어 기도한 만큼 사무엘이 말한 모든 말은 성경에 보면 하나도 그 말이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한나가 그만큼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한나가 여호와께 계속 기도드리는 동안 엘리는 한나의 입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한나가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있어서 입술은 움직였지만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엘리는 한나가 술에 취했다고 생각하고”(12~13절)

한나가 깊이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다가 육신이 너무 지쳐서 기도는 입술은 계속 움직이는데, 소리는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는 영의 기도 속에 들어갔던 것 같습니다. 엘리는 술에 취해 그런 것이 아니냐고 지적을 했습니다. 그러자 한나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한나가 대답했습니다. “내 주여, 그런 게 아닙니다. 저는 슬픔이 가득한 여자입니다. 저는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신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 제 심정을 쏟아낸 것입니다. 당신의 여종을 나쁜 여자로 여기지 마십시오. 저는 너무 괴롭고 슬퍼 여기서 기도하고 있었을 뿐입니다.”(15~16절)

 

기도로 깨운 역사의 새벽

 

한나의 마음속에 슬픔이 가득한 만큼 기도의 영이 충만했습니다. 그 슬픔은 하나님이 주신 슬픔입니다. 고통 속에서 울며 기도하는 여인에게 하나님은 역사의 새벽을 가져오는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한나의 고통은 한 여인의 지극히 개인적인 고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개인의 고통을 통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체험하게 하시고 그의 시각을 넓혀 주십니다. 영적인 눈을 뜨게 하시고 역사의 어둠과 그 시대의 슬픔을 보게 하십니다. 그리고 역사와 민족의 미래를 준비하는 여인의 기도로 하나님께서 넓혀주십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이 시대 이 나라와 민족을 품고 기도하기는 너무나 어렵습니다. 이 나라와 민족의 문제를 내 문제인 것처럼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가보지도 않은 나라의 문제를 내 문제인 것처럼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과정을 거치게 하십니다. 내 문제, 내 고통 속에 기도하는 여성을 하나님이 붙잡으셔서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게 하시고, 열방을 위해, 다음세대를 위해, 한국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여성이 되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기도를 배우게 하시는 하나님의 고통, 이 고통을 가슴에 품고 이 슬픔을 가슴에 안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는 점점 넓어질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나만의 기도, 우리 가정만의 기도가 아니라 역사를 깨우고 시대를 변화시키는 역사의 새벽을 가져오는 기도가 될 줄로 믿습니다. 이 집회가 역사의 새벽을 가져오는 기도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 정리 조은실 기자 ces@onnuri.org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