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행전> 'the cry' 혼탁한 이 시대에
에베소서 4장 17~24절

이찬수 목사(분당우리교회 담임)
"사탄은 아이들의 가치관을 바꾸어 놓습니다. 죄라고 느끼지 못하게 말입니다. 사탄이 노리는 것은 아이들의 가치관을 빼앗음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자녀를 위해서 울어야 한다면 오늘 우리 시대는 통곡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래전 저희 교회의 청년부 자매가 제게 긴 장문의 편지를 보내준 적이 있었습니다. 이 편지가 오늘 우리가 왜 자녀를 위해서 울어야 하는지 설명하는 좋은 도구가 될 것 같습니다. 다음은 편지 앞부분의 내용입니다.
“목사님, 요즘 문화가 얼마나 타락했는지 아실 것입니다. 저는 여중, 여고에만 있다가 처음 대학에 와서 많이 혼란스러웠습니다. OT나 MT에서 폭탄주는 기본이고 러브샷, 음란한 게임, 음담패설 등 이 모든 것들이 제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안가고 피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문제들은 제가 세상을 살면서 계속해서 보고 듣게 되는 문제였습니다. 명문대 아이들도 남녀가 동거하는 경우가 꽤 있는데 지방대는 더 심각합니다. 부모님이 간섭할 수 없기 때문에 같이 자취하는 커플이 많습니다. 대부분의 여학생이 남자친구를 사귀면 금방 성관계를 맺고 아이가 생기면 낙태를 합니다. 또 관계를 맺고 나면 남자 쪽에서 금방 이별을 요구하고 여자는 충격을 받아 휴학 또는 자퇴까지 합니다. 몸도 마음도 오랜 기간 공황상태가 되는 것이죠. 특히 1학년 때는 남자들이 군대에 가기 전에 여자와 성관계를 맺는 것이 무슨 관습처럼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에 안 들어도 일단 사귀면서 관계를 맺고 군대 가기 전에 헤어집니다. 심지어 서울에 있는 키스방과 안마방에 있는 여자애들이 명문대의 여대생인거 아시죠? 저도 그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는데 그래도 배웠다는 여자애들이 그런 일을 하는 이유를 물어보니 명품백 쇼핑과 사치를 위한 것이 가장 크다고 합니다. 한번 일을 하게 되면 백만 원 이상 벌수 있으니 과외 알바와는 차원이 다르지요. 보통 그런 여자애들은 남자친구와 이미 성적인 경험이 있어서 관계를 했기에 더 쉽게 그런 쪽으로 빠진다고 합니다. 남녀커플은 해외든 국내든 단둘이 여행을 가고 호텔에서 자는 것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도 이런 문제들이 있음을 봅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형제자매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대체적으로 그러니까 너무나 혼란스럽습니다. 세상에 있는 친구들은 굉장히 심각합니다.
대학교가 밀집되어 있는 신촌에는 그 앞이 전부 모텔과 DVD방이고, 대학생들이 보는 잡지에는 밸런타인데이에 가기 좋은 모텔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성관계가 이벤트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학기에 교양수업으로 성, 사랑, 결혼이라는 수업을 들었는데 매 수업 후에 조별 토론을 합니다. 토론을 하는데 혼전 순결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저에게 학생들이 야유를 보내고 내숭을 떤다며 아직까지 남자와 성관계를 안했다는 것은 거짓말이거나 몸에 문제가 있다고 했습니다. 정말 충격을 받았습니다. 믿지 않는 여자 친구들은 대부분 성관계를 합니다. 낙태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한번 경험이 있는 친구들은 다음에 사귀는 남자친구와 정말 빨리 관계를 하더라구요.
문제는 교회내 친구, 선후배들도 같은 문제로 힘들어한다는 것입니다. 거의 다르지 않습니다. 주일에만 정상적으로 보이는 것이지 심지어 교회에서 모임을 하든가 교사로 섬기든가 늘 상대방에게만 관심이 있고 교회에서까지 스킨십을 합니다. 주일에 열심히 예배드리고 헌신하는 것 같아도 일상생활로 돌아가면 사랑이라는 명목 아래 아무렇지도 않게 성관계를 맺는 지체들이 많습니다. 한 언니는 제게 충고하기를 ‘너 어디 가서 남자와 제대로 사귀어 본적 없다고 말하지 마라. 남자들은 아예 경험이 없는 것을 싫어한다’고 했습니다. 목사님, 세대가 바뀐 것일까요? 이런 상황 속에서 저는 참 많이 혼란스럽습니다. 물론 아름답게 교제하는 형제자매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더욱 많아져서 교제의 본을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성경적 교제와 결혼에 대한 말씀을 배우고 올바른 교제를 통해 건강한 가정이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중략)”
저는 이 자매의 긴 편지를 받았던 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정말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과장이기를 바라면서 이것저것 자료를 뒤져보니 어떤 면에서는 이 자매가 제게 절제하고 조절해서 말했으면 말했지 절대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동거 생활에 관한 설문조사를 찾다가 놀라운 결과를 발견했습니다. 질문 중에 ‘남녀가 결혼하지 않더라도 함께 살수 있다고 생각한다(동거생활이 가능하다)’라는 질문이 있었는데 ‘그렇다’고 대답한 사람이 40.5%였습니다. 특히 20대는 59.3%였습니다.
또 어떤 글에 대학 신문사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동거 혹은 단기간이라도 이성친구의 집에서 함께 생활한 적이 있다’는 사람은 전체 재학생의 35%이상이었다고 합니다. 타지에서 온 학생이 많은 학교일수록 그 비율은 가파르게 증가한다고 합니다. 대학생의 이러한 동거문화가 방치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100명 중에 35명 이상이 ‘동거를 하고 있거나 해보았다’고 응답을 했고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이 많은 학교일수록 이 수치는 가파르게 올랐습니다. 우리가 호흡하고 있는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여러분,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저는 목사이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접하면서 굉장히 마음이 어려웠습니다. 오늘날은 영적으로 무기력한 시대입니다. 교회는 온 동네의 북이 되어 두들겨 맞고 있고 교회나 목사라고 하면 이제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교회는 마치 세상의 파렴치한 집단인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도덕적, 윤리적 아닌 영적 문제
오늘 이 시대 젊은이들의 성적 타락의 현장을 살펴보면서 제가 절망한 것은 저와 같은 목사와 기성세대의 교회가 젊은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고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사탄은 우리의 손과 발을 묶어놓고 젊은 청년들을 영적으로 유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슬펐습니다. 그리고 목사라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꼈습니다. 오늘 이런 문제는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정확하게 현주소를 파악하고 그것을 토대로 하나님 앞에 통곡의 시간을 올려드려야 합니다. 시편에 있는 말씀처럼 우리의 눈물이 병에 다 채워지면 하나님께서 일하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지금 우리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성적인 타락과 관련해서 두 가지 사실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는 성적 타락은 도덕적,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문제입니다.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엡 4:18~19).
여기 나오는 ‘방임하여’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보면 ‘권력과 권세를 넘겨주다’라는 뜻을 갖습니다. 이 단어가 쓰인 곳이 한군데 더 있습니다.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눅 4:6).
이 말은 사탄이 한 말입니다.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18절 말미에 나오는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을 때입니다. 하나님과 관계 맺기를 거부한 것이 영적인 타락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다윗도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고 사랑했습니까? 그러나 그가 타락해서 옥상에서 목욕하는 여자를 봅니다. 자기를 제어할 힘이 없으니까 목욕하는 여자의 뒷조사를 했습니다. 조사를 해보니 결혼한 여자였습니다. 게다가 결혼한 여자와 성적인 관계를 갖습니다. 그리고 온갖 음모를 꾸며서 충성스런 신하를 죽입니다. 이게 얼마나 파렴치하고 부도덕한 짓입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이 사건을 이렇게 평가하십니다.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삼하 12:9~10).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도덕적으로 부도덕한 짓을 한 것으로 보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겼다고 하십니다. 이것을 보면 성적 타락과 성적 변질은 영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는 요셉이 있습니다.
요셉은 어린 나이에 남의 나라에 끌려와 얼마나 외로웠겠습니까. 그런데 어느 날 상사의 아내가 노골적으로 덤벼듭니다. 요셉은 이겨냈습니다. 요셉이 도덕심이 뛰어나서가 아니었습니다.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창 39:9).
요셉은 음란하고 패역한 세상을 살아가는 시대에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대의 음란과 방종과 성적 타락은 바로 우리 기성세대 교회의 변질, 저와 같은 목사들의 무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성적인 문제를 영적인 문제로 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적 타락을 부추기는 악한 세력
두 번째는 성적 타락을 부추기는 세력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너희’라는 표현과 ‘그들’이라는 표현이 교차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도 그들로 통칭되는 세상의 악한 문화, 공중 권세를 잡은 악한 세력이 우리의 자녀들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7장 15절에는 예수님의 중보기도가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주님이 그들이라고 말씀하신 제자들을 부추기는 악한 세력이 있다는 것이 전제입니다. 오늘 우리가 자녀들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해야 하는 것은 영향력의 문제입니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1이라는 영향력을 미칠 때, 아이들의 영혼을 잠식하려는 악한 세력은 100이라는 영향력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보는 영화와 소설, 드라마, 아이들이 보는 잡지 등 이 모든 것들이 총체적으로 노리는 것은 딱 하나입니다. 아이들의 가치관을 바꾸어 놓는 것입니다. 영화 <타이타닉>을 보셨을 것입니다. 정말 감동적입니다. 그런데 그 영화는 아이들에게 엄청난 해악을 깨치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여주인공에게는 약혼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디카프리오라는 잘생긴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에게는 결혼할 남자가 있고 약혼한 상태라는 것이 상관없습니다. 몇 시간 뒤 배안에서는 선정적인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잘생긴 남자를 만나면 그날 바로 성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그녀의 약혼자를 파렴치하고 상종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표현합니다. 그래야만 이 사랑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을 끊임없이 볼 때마다 아이들의 의식 속에는 잘생기고 매력적이면 영혼이라도 바칠 수 있고,바로 성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주입됩니다.
우리 주변에는 아이들의 영혼을 장악하려는 무서운 세력이 너무나 많습니다. 부모는 그 아이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없는데 이 악한 세력은 아이들에게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합니다. 어떻게 기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이 시대에 사탄의 목표는 아이들을 성적으로 타락시켜서 한번 실수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청년이었을 때에는 유혹에 빠져 음란사이트에 들어갔다가도 말할 수 없는 고통과 가책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눈물을 쏟으며 회개했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오늘날 우리 아이들의 가치관을 바꾸어 놓습니다. 이것이 죄라고 느끼지 못하게 말입니다. 아이들의 생각을 바꾸어 놓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놓고 기도해야 될까요? 사탄이 노리는 것은 아이들의 가치관을 빼앗음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자녀들을 향한 사탄의 공격은 궁극적으로 ‘방탕’과 ‘허비’입니다.
이 시대의 두 가지 대안
이러한 현실에 있어서 우리에게는 대안이 무엇이 있을까요. 두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은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지난해 분당우리교회 중등부에서 낙태한 여학생이 6명이나 있었습니다. 오픈하지만 않았을 뿐입니다. 온누리교회라고 해서 우리 교회보다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낙태한 여학생이 지난해에만 6명이라는 사실을 듣고 정말 기운이 다 빠졌습니다. 어떻게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자녀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먼저 선행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어른들의 영적 변질과 타락을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맨 앞에서 언급했던 편지를 썼던 청년부 자매가 저에게 부탁하기를 ‘승리한 어른들의 간증을 들려달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제게는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어른들이 우리 보고 ‘순결하라’고 말하지만 말고 이런 혼탁한 세상 가운데서 먼저 승리하는 본보기를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앞서 무언가를 보여준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리 부모들과 교회와 목회자와 기성세대가 이 음란하고 악한 세상과 싸우고 노력하며 먼저 담을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실이 눈물을 펑펑 흘리는 것보다 어떤 면에서 더 중요합니다. 20~30년 전부터 영계, 룸살롱이니 하는 단어를 부끄럽지 않게 입에서 나오고 타락하고 변질되었던 것이 다음 세대에 그대로 전수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악을 회개해야 합니다.
교회는 힘을 잃어버리고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목회자는 손발이 묶여 있는 것 같은 무능한 상태에 빠져있습니다. 그 틈에 공중 권세 잡은 악한 것들은 우리 아이들을 조롱합니다. 우리가 아이들의 영혼을 위해 하나님 앞에서 눈물로 기도할 때,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부모 세대들이 말로는 바르게 살라고 훈계하면서 믿음의 본을 보여주지 못한 것을 회개할 때, 성령님께서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황급히 우리 아이들을 안아주시려 달려오시는 줄로 믿습니다.
/ 정리 정지은 기자 jji@onnuri.org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