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학교, 스리랑카의 소망을 노래하다
미소의 나라 스리랑카에 가다
교회와 학교, 스리랑카의 소망을 노래하다
올네이션스 국제학교 증축, 하용조홀 봉헌
NGO 더 멋진 세상, 교회 및 교육센터 설립
한국에서 온 친구들에게 거침없이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의 표정이 해맑다. 미소로 화답하자 수줍은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웃어댄다.
이곳은 인도 동남부 인도양 해상에 떠있는 섬나라 스리랑카. 정식 명칭은 스리랑카 민주사회주의공화국이다. 지리적으로 인도의 꽁무니에 눈물 모양으로 붙어 있다고 해서 ‘인도의 눈물’이라고 불린다. 인구는 2천여 만 명, 면적은 한반도의 1/3. 고온다습한 열대성 기후다. 사파이어와 홍차(CeylonTea), 천연고무, 코코넛 등이 유명하다.
유난히 맑고 큰 새소리가 새벽을 깨웠다. 국토의 대부분이 산림지대인 스리랑카는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시선을 돌리는 곳마다 열대과일이 탐스러움을 뽐냈고, 거대한 나무 아래 집을 짓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고온다습한 기후에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현지인들의 지혜를 배울 수 있었다. 거리에서 마주한 사람들의 표정이 무척이나 해맑았다.
생김새나 피부색이 달라 쳐다보는 시선이 아니었다. 만나서 반갑다는 환영의 인사였다. 이곳 사람들의 표정을 볼 때마다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을 엿볼 수 있었다. 열대지방에 속하지만 비교적 온화한 기후가 사람들의 정서에도 영향을 준 것일까. 스리랑카의 첫인상은 포근했다. 핏빛으로 물든 아픈 역사 스리랑카는 불교국가다. 그런데 살생(殺生)을 금기시하는 불교국가에서 상상할 수 없는 혈전을 벌인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스리랑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불교계 싱할라족(74%)과 힌두교계 타밀족(18%) 간의 내전이 27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두 종족간의 갈등은 스리랑카가 ‘실론(스리랑카의 옛 이름)’일 때부터 시작되었다. 1815년 영국의 직할 식민지로 편입되었던 실론이 1948년 독립한 이후 보낸 평화 기간은 1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싱할리족의 탄압 및 차별정책에 반발한 소수 타밀족의 분리운동이 시작되면서부터 45년 동안 비상사태와 27년 동안의 전쟁 속에서 주민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궁핍한 삶을 살아왔다.
내전으로 10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수십만 명의 부상자와 백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 내전지역을 둘러보던 중 전쟁 중에 부상당해 다리를 잃은 여자를 만났는데 내전의 참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비극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정부군(상할라족)에 맞서기 위해 반군(타밀족)이 자행한 자살폭탄테러, 암살, 납치, 인간 방패 등의 인권유린 사태가 보고되면서 세계에서 가장 잔혹하고 폭력적인 분쟁을 겪은 나라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반군이 사용한 무기들을 전시해 놓은 곳에 가보니 1인용 어뢰, 1인용 잠수함 등의 구식무기들이 있었다. 대부분이 자살테러를 시도하기 위한 무기들이었다. 사람들을 경악하게 한 것은 임산부를 인간방패로 세워 정부군에게 대항했다는 것이다. 핏빛으로 물든 아픈 역사 앞에 할 말을 잃었다. 내전에 지진해일 대참사까지 눈앞에 초원이 펼쳐졌다. 소들이 뛰놀고 탁 트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상쾌함을 만끽할 수 있었다. 행복도 잠시….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던 초원이 2004년 발생한 지진해일 사망자들의 무덤이란다. 당시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시신을 처리할 방법이 없어 초원에 매장했다는 것이다. 무려 천여구나 되는 시신을 한꺼번에. 스리랑카는 열대지방이지만 비교적 온화한 기후에 속한 나라다. 지진과 태풍이 없어 지상낙원이 따로 없었다고 했었다. 때 묻지 않는 해변, 빼어난 광경, 풍성한 자원, 순수하고 맑은 사람들…. 유럽인들은 최고의 여행지로 스리랑카를 손꼽았다. 그런데 지상낙원이라고 불리던 스리랑카에 엄청난 시련이 닥쳤다.
2004년 12월 26일. 90분 동안 발생한 지진해일이라는 엄청난 자연재해 앞에 3만5천여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10만 채의 가옥이 전파되었다. 6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은 한 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고 말았다. 말 그대로 대참사였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의 서쪽에서 발생한 해중지진이 강력한 지진해일로 변모해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해안을 초토화 시킨 것이었다. 지금까지도 사상 최악의 자연재해로 보고 되고 있다. 당시 스리랑카 전역이 지진해일 피해를 입었다. 내전의 고통에 지진해일까지. 무슨 말로 그들의 마음을 위로해야할지 답을 찾지 못했다.
치유와 회복 넘어 미래를 향해 그럼에도 스리랑카 사람들은 좌절하지 않았다. 2009년 내전이 종식되고, 지진해일 피해도 상당부분 복구가 되었다. 그들은 시련 앞에 좌절하거나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견디고 성장해준 것이 무척이나 고마웠다. 그들은 멈추지 않고 미래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 중심에 올네이션스 국제학교(All Nations International School)가 있다. 올네이션스 국제학교에는 유치원부터 중학교 과정까지 400여 명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webactual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