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사역

다윗의 절망과 용기

사무엘상 30장 1~10절
이재훈 목사

 

20130512

절망이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라는 것을 확신하십시오.

내 생각을 끊어내는 하나님의 도구라는 것을 믿으십시오.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책을 쓴 쉐렌 키에르케고르라는 크리스천 철학자는 죽음에 이르는 병을 절망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는 인간에게는 복합적인 두 가지 절망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만드신 모습 그대로를 포기하고, 자기 자신이 아니기를 원할 때 절망에 빠진다고 했고, 또 다른 한 가지는 자기 자신이기를 고집할 때 절망에 빠진다고 했습니다. 비슷한 말인 것 같지만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습을 포기하고 자기 자신이 아니기를 원하면 질투와 원망, 불평이 생기고,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게 됩니다. 이것을 연약하기 때문에 빠지는 절망이라고 합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하나님을 의존해야만 하는 우리가 스스로 존재하기를 고집할 때 반항의 절망에 빠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불순종하면서 스스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인생이 되기 때문에 절망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절망에 빠진 이스라엘의 두 왕

사울의 모습에서 절망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이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윗을 질투하고 원망했습니다. 동시에 스스로를 의지하는 인생을 살았기에 교만했고 하나님 앞에 불순종 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했고 반항했습니다.
다윗의 모습에서도 절망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다윗에게도 절망있었습니다.
여러분, 모든 사람은 절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절망 속에서 진정한 신앙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게 됩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절망 속에서 죽어갑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절망이 오히려 믿음을 견고하게 만듭니다.
사무엘상 27장 이후부터 이스라엘의 절망적인 역사를 보게 됩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공격해 오고 있을 때 이스라엘의 왕인 사울은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 도움을 구합니다. 어처구니없는 모습입니다.
기름 부음을 받은 다윗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블레셋으로 도망가 블레셋 왕 아기스의 도움을 받고자합니다. 이것도 절망적인 모습입니다. 하나님께 기름 부음을 받은 이스라엘의 현재 왕이나 미래의 왕이 백성들을 구원하지 못하고 한 사람은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 점을 치고, 또 한 사람은 이스라엘의 적인 블레셋의 왕에게 도움을 받고자합니다. 백성들은 두 왕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역사의 절망은 언제나 지도자들 때문에 생깁니다. 블레셋의 공격이라는 외부의 위기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백성들 마음속에 있는 절망입니다. 백성들의 절망은 지도자들의 마음속에 있는 절망에서 비롯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이 절망을 희망으로 변화시키는 장면입니다.

생명을 위협받는 위기에 빠진 다윗

“다윗과 그 군사들은 3일 만에 시글락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아말렉 사람들이 남부와 시글락을 습격한 뒤였습니다. 그들은 시글락을 공격하고 불태웠으며 노소를 불문하고 여자들과 거기 있던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아무도 죽이지는 않았지만 모두 데리고 가 버린 것이었습니다. 다윗과 그의 군사들이 시글락에 도착해서 보니 그곳은 이미 모두 불타 버렸고 그 아내와 아들딸들은 포로로 잡혀 간 뒤였습니다. 다윗과 그의 군사들은 힘이 다 빠져 더 이상 울지도 못할 정도로 소리 높여 울었습니다”(1~4절).
다윗과 600명의 군사들이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군사 600명과 가족들이 살고 있었으니 실제로는 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은 시글락이라는 곳인데 그곳에 아말렉 사람들이 쳐들어왔습니다. 그들은 다윗과 600명의 군사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시글락을 습격해 가족들을 잡아가고 마을을 불태웠습니다.
삼일 만에 시글락에 돌아온 다윗과 600명의 군사들이 가족들을 얼마나 보고 싶어 했겠습니까. 가족들을 만날 생각에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기뻤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가족들이 모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문제는 그들 앞에 펼쳐진 절망적인 상황보다 더 무서운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다윗과 함께한 600명의 군사들이 다윗에게 책임을 추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윗이 판단을 잘못했다는 것입니다. 급기야 다윗을 돌로 쳐 죽이려는 위급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성공직후에 찾아오는 위기

“백성들은 모두 자기 자녀들로 인해 슬픈 나머지 다윗을 돌로 쳐 죽이자고 했습니다. 다윗은 너무나 괴로웠습니다”(6절 상).
600명의 군사들이 가족들이 잡혀간 것을 보고 다윗에게 책임을 물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입니다. 군사들은 다윗이 사울에게 위협을 받았을 때에는 하나가 되어 지켜주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었을 때도 음식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가족들이 모두 포로로 잡혀간 상황 속에서는 분노했습니다. 그 분노를 다윗에게 쏟아 낸 것입니다. 엄청난 절망 앞에 다윗은 무척 괴로웠습니다.
이 위기가 발생한 이유는 다윗의 공동체가 시글락이라는 곳에 살게 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다윗은 24장과 26장에서 두 번이나 사울을 제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권위를 존중했습니다. 하나님께 복수를 맡기며 사울을 살려주었습니다. 놀라운 영적 성숙입니다. 나발에게 복수할 수 있는 기회에서도 그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하나님의 뜻을 구별하는 자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에게도 불안과 염려가 있었습니다. 언제 사울의 공격을 받아 죽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이었습니다. 틀림없이 하나님이 자신을 지켜주고 있다는 것을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연약함이 찾아 온 것입니다.
여러분, 연약한 믿음으로 인해 의심과 두려움이 생기는 때가 언제입니까. 바로 성공한 직후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승리해서 도취되어 있을 때 가장 강력한 공격을 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성경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들과 대립 했을 때 기도를 통해 엄청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승리를 통해 엘리야가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성공한 직후에 이세벨이 두려워 도망을 갔습니다. 바알의 선지자 수백 명과 대결했을 때에는 담대했던 엘리야가 이세벨이 두려워 로뎀나무 아래로 들어갔습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정복했습니다. 여리고는 난공불락의 요새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들을 이끌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습니다. 그 다음에 아이성이 나옵니다. 아이성은 말 그대로 작은 성입니다. 여리고성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자만했습니다. 그 결과 아이성을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여리고 성에서 하나님이 금하신 전리품을 몰래 취하는 범죄로 인해 그들은 아이성을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다윗도 영적인 승리 이후에 마음속에 의심과 두려움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늘 가장 안전한 곳이 어디인지를 생각했습니다.

의심, 불안, 두려움에 사로잡힌 다윗

“다윗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러다가는 머지않아 나는 사울의 손에 죽게 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도망치는 것이다. 그러면 사울이 이스라엘 안에서 나를 찾기를 그만둘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는 그의 손에서 해방될 것이다’”(삼상 27:1).
다윗의 연약한 절망입니다. 그는 머지않아 사울의 손에 죽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보호해주셨던 손길을 생각하면 이러한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그는 블레셋에서 미친척하고 도망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가장 안전한 땅이 블레셋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적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블레셋으로 도망가면 사울이 따라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만약 사울이 다윗을 쫓아 블레셋에 온다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도 절망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할 것은 의심과 두려움을 따라 선택한 길은 반드시 더 큰 절망으로 향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마음속에 의심과 불안, 두려움이 생겼을 때 그는 블레셋으로 가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하나님께 질문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절망적인 상황이 찾아온 것입니다.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오직 승리만을 바라보면 반드시 실패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딜레마에 빠진 다윗을 구해주심

다윗이 600명의 군사들과 함께 집단 망명을 합니다. 모든 것은 다윗의 뜻대로 진행되었습니다. 다윗이 사울의 위협을 받고 도망 다닌다는 소문이 블레셋에도 퍼졌기 때문에 블레셋 사람들은 다윗이 자신들의 편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의 확신을 이용해서 연기를 했습니다. 다윗의 진심은 블레셋 사람이 되고자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진심을 숨기고 블레셋과 한편인 것처럼 사람들을 속이고 600명의 군사들과 공동체를 이주를 시킨 것입니다.
블레셋 왕에게 받은 마을이 시글락입니다. 그들은 시글락에서 1년 4개월을 살았는데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안전했습니다. 다윗이 생각했던 것처럼 사울은 더 이상 다윗을 추적해오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마치 블레셋과 한편인 것처럼 위장하고 살았습니다. 때로는 위기에 빠질 때도 있었습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쳐들어갈 때 다윗에게 같이 가자고 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같이 싸우러 가지 않으면 그동안의 모습이 모두 연기였다는 것이 들통 나게 생긴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스라엘의 대적이 되어서 싸우러 가면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될 자격을 잃게 되는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 밖에서 살아가는 인생은 모두 딜레마입니다. 어느 쪽도 선택하기 어려운 인생이 됩니다.
하나님이 간섭하셔서 다윗을 위기에서 건져주십니다. 아기스 왕은 다윗을 믿었습니다. 다윗은 아기스 왕의 명령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짐을 챙겨 600명의 군사들과 함께 전쟁에 나가기 위해 시글락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아기스 왕의 신하들이 반발을 합니다. 믿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무너뜨렸기 때문입니다. 블레셋 신하들의 마음에 불안함이 생긴 것입니다. 다윗은 결국 전쟁에 나가지 못합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전쟁을 할 수도, 안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이 건져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다윗

다윗과 군사들이 시글락을 떠나 있던 삼일 동안 아말렉이 쳐들어와서 마을을 쑥대밭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군사들이 다윗에게 책임을 묻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시글락에 살게 된 것도 다윗의 선택이고, 전쟁에 나가면서 군사를 배치해 놓지 않은 것도 다윗의 탓이라는 것입니다. 군사들은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다윗이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지금 다윗만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 것이 아닙니다. 지금 블레셋 왕 아기스가 엄청난 군사력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쳐들어가고 있습니다. 사울도 위기입니다. 사울은 위기 앞에서 어떻게 반응합니까.
사울은 신접한 여인을 찾아갑니다. 이것은 완전한 절망에 빠진 것입니다. 헤어나지 못하는 절망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해 용기를 냈습니다”(6절 하).
다윗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다윗에게 찾아온 절망은 오히려 그를 용기 있게 만들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들었습니다. 다윗에게 찾아온 절망은 자신의 뜻과 계획을 의지했던 모습을 끊어내는 하나님의 손길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절망이 왜 찾아옵니까. 스스로를 의지하려는 인생을 끊어내기 위해서 하나님이 절망을 주시는 것입니다. 절망적인 상황이 아니면 스스로를 내려놓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블레셋에 머무는 동안 안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평화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밖에서 누리는 안전과 평화는 거짓입니다. 결코 안전할 수 없습니다. 언젠가 하나님이 절망적인 상황을 통해서 다시 돌아오게 하시는 일을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이유에서 마을이 불에 탔고 가족들이 모두 잡혀간 것입니다.
동료들이 자신을 대적하는 절망 속에서 다윗의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았던 지난 1년 4개월 동안의 불신앙을 끊어냈습니다. 다윗에게서 있어 절망은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계획을 의지했던 다윗의 생각이 완전히 제거되었습니다. 이 절망은 그가 왕이 되기 전 마지막으로 찾아온 시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밖에서 추구하는 평화는 결코 안전할 수 없습니다. 1년 4개월 동안 시글락에서 다윗은 자신의 생각이 옳았고, 자신이 식솔들을 지켰고, 공동체를 지켰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광야에서 많은 무리들을 이끌고, 그들을 먹여 살리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살아가기 힘겨운 광야였지만 하나님이 그들의 돕는 자가 되어 주시고 방패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는 것이 힘들었지만 안전한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장 눈에 보이는 어려움을 피해서 블레셋으로 건너가 시글락에서 산 1년4개월 동안이 안전하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절대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뜻밖에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을 통해 하나님은 다윗과 일행들을 다시 건져 주셨습니다. 이제 다윗의 영혼이 깨어 용기를 찾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다윗이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하나님의 뜻을 에봇을 통해 묻습니다. 내가 아말렉을 뒤쫓아 가서 싸워야 됩니까, 말아야 합니까. 사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물어 볼 필요도 없이 달려가야 합니다. 가족들이 잡혀갔는데 달려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다시 묻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쫓아가지 않는 것이라면 포기할 마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뒤쫓아 가라 해서 아말렉을 뒤쫓아 갑니다.

역전을 시켜주시는 하나님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하나님이 다윗과 공동체를 보호해 주시는 은혜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아말렉 사람들이 마을을 공격했지만 한 사람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둘째, 다윗이 삼일이 아니라 일주일 후에 돌아왔더라면 쫓아갈 수 있는 시간이 지나버립니다. 그런데 아말렉이 어디로 도망갔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때 한 애굽 종이 광야에서 발견됩니다. 그 종은 아말렉 진영의 종이었는데 더 이상 쓸모가 없다고 생각해서 광야에 버린 것입니다. 다윗은 그 종을 살려줍니다. 그 종이 다윗의 은혜에 감사해서 아말렉 군이 있는 위치를 가르쳐줍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입니까.
여러분, 우리가 광야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때 해야 될 일은 더욱 선행에 힘쓰는 것입니다. 다윗과 군사들은 그 종 덕분에 아말렉 군사들이 있는 곳을 습격해서 모든 가족들을 되찾아 옵니다. 아말렉이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들도 가져옵니다. 그들은 더욱 부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놀라운 역전을 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 출발은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을 다시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절망은 축복의 통로

삼일동안 걸어왔는데 또 다시 전쟁을 하러 가니 다윗의 군사들이 매우 피곤해 했습니다. 급기야 200명의 군사들이 낙오를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낙오한 군사들을 정죄하지 않고 쉬도록 했습니다. 전쟁에 나갈 수 있는 400명만 데리고 갔습니다. 이 과정을 보면 다윗의 인격이 예수님을 닮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군사들을 온유와 인내로 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낙오한 200명의 군사들을 정죄하지 않고 쉴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버림받은 애굽의 종도 돌보았습니다. 클라이맥스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얻은 전리품을 전쟁에 나가지 않은 200명의 군사들에게도 동등하게 나눠준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인격입니까.
무엇이 다윗을 신앙의 사람으로 만들었습니까. 바로 절망입니다. 절망적인 상황이 아름다운 천국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절망적 상황에서 사울은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 완전히 죽음에 이르는 자가 되었지만 다윗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다시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용기를 얻기를 바랍니다.

절망에 빠져 있는 성도들 계십니까. 그 절망이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라는 것을 확신하십시오. 자신의 계획과 생각을 완전히 끊어내는 하나님의 도구라는 것을 받아들이십시오.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일러스트 yje

 

 

 

 

작성자  김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