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사역

군마는 지금 러브소나타앓이 중

궐기대회

현지 성도들, “전도하지 않을 수 없어”

지난 10월 14일 일본 군마현 마에바시 그리스도교회에서 러브소나타 군마 궐기대회(蹶起大會)가 열렸다. ‘힘차게 일어난다’는 뜻을 가진 궐기대회인 만큼 대회에 참석한 21개 교회, 114명의 성도들의 각오가 결연하다. 군마 러브소나타를 위해 뜨겁게 부르짖는 참석자들의 표정에서 집회에 대한 기대, 군마 교회의 부흥을 바라는 갈망이 엿보인다.

 

메인1

군마 러브소나타를 한 달 여 앞둔 군마 현지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벌써부터 열기가 뜨겁다. 군마지역 교회 행사에 이례적으로 많은 인원이 참석하고 있고, 러브소나타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은 성도들은 집회에 대한 설렘에 가슴이 부풀어있다. 실행위원회를 비롯한 현지 스태프들은 날마다 눈물을 뿌리며 기도의 제단을 쌓고 있다.

이날 궐기대회에는 송솔나무 형제가 특별게스트로 참석했다. 송솔나무 형제의 연주와 간증을 들은 현지 성도들이 신선한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카나이 타츠오 목사(이세사키그리스도교회/부실행위원장)는 “하나님의 손길이 미치면 누구라도 귀한 존재가 되는 것 같다”고 했고, 이토 요코 성도(뉴와인스킨그리스도교회)는 연주와 간증에 마음을 빼앗겨 주변 사람들에게 러브소나타에 함께 가자고 전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정현주 통신원
궐기대회를 마치고

“멈추지 않는 감동의 눈물”

“하나님께서 군마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가슴 깊이 느껴졌습니다. 지금도 감동의 눈물이 멈추지 않습니다. 그동안 군마지역의 교회들은 교단과 교파의 벽이 높아 초교파적인 교제와 중보기도모임 등이 없었는데 러브소나타 군마를 준비하면서 이제는 하나 되었습니다. 군마를 넘어 일본 구원을 위해 러브소나타를 개최해준 한국의 온누리교회에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 오제키 키요코(안디옥가스펠처치 마에바시)

“가족에게 러브소나타를”

“아름답고 멋진 연주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러브소나타 군마 궐기대회에 참석하면서 행복한 경험을 했습니다. 또 평소 드리던 예배와 다른 분위기의 말씀도 좋았습니다. 집에 돌아가 가족들에게 러브소나타를 소개할 것입니다. 저도 함께 러브소나타를 준비하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토베 알레(마에바시그리스도교회)

기도제목
10월 21일(월): 일본땅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회복되게 하소서.
10월 22일(화): 2000명의 일본인이 러브소나타에 참여해 예수님을 만나게 하소서
10월 23일(수): 스태프들과 봉사자들이 예수님의 마음으로 섬기게 하소서
10월 24일(목): 교회부흥세미나를 통해 일본 교회에 부흥이 일어나게 하소서
10월 25일(금): 러브소나타 출연진들이 영육간에 강건하게 하소서
10월 26일(토): 일본땅의 모든 우상들이 무너지고 주님의 이름이 높이게 하소서
10월 27일(주일): 말씀을 전하시는 이재훈 목사님께 말씀의 지혜와 능력을 주소서

군마에서 만난 믿음의 선배

이수정 선교사와 유아사 지로 장로
이수정 선교사

이수정(李樹廷,1842~1886)은 개설최초의 한글성서 번역자의 한 사람이다.
1881년 신사유람단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갔다가 일본의 대표적인 농학자이자 기독교인이었던 쓰다(律田仙)와 친분을 쌓았다. 어느 날, 쓰다의 방에 걸려 있던 한문으로 쓰인 족자 가운데 성서에 나오는 산상수훈(山上垂訓)을 읽고 감명을 받아 크리스천이 되었다.
1883년 4월 29일 동경 노월정교회(露月町敎會)에서 야스가와 목사(安川亭)의 집례로 세례를 받고 일본에서 세례 받은 최초의 한국인이 되었다.
세례를 받은 뒤 요한복음 13장의 내용을 중심으로 ‘신앙고백서’를 발표, 윤치호의 ‘신앙고백서’와 함께 한국 기독교 초기 신자의 신앙 양태를 대표해 주고 있다.
한글성서 번역사업에 착수해 <현토한한신약전서>를 간행했고, 순한문성서인 <신약마가젼복음셔>를 번역했는데, 이 한글성서가 1885년 4월 한국에 입국한 언더우드(Underwood, H.G.)와 아펜젤러(Appenzeller, H.G.) 선교사에게 주어졌다.

단체
유아사 지로(湯淺治朗, 1850~1931) 장로는 이수정 선교사에게 큰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었다. 그는 일본 군마현(群馬縣)에서 식품가공업을 하는 가정의 장남이다.
1914년 일본 조합교회(組合敎會)는 총독부로부터 조선을 황민화(皇民化)하기 위해 전도를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때 일본 조합교회는 유아사 장로를 중심으로 이 일을 반대했다. 교회가 제국주의의 도구로 전락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는 공창제도를 폐지하는 일에도 앞장섰다. 이 일로 일본 최초로 군마현에는 공창이 완전히 폐지되었다. 또한 여성교육에도 발 벗고 나섰다. 당시 일본에서는 여성교육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