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김사무엘 선교사 10주기
하나님 사랑하는데 일생 바친 순교자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 1:20~21). 이 말씀은 김사무엘 선교사의 생전의 소망이었다.
말씀대로 그는 죽음의 유익을 증거하며 2004년 2월 하늘나라로 갔다.
김사무엘 선교사의 10주기를 추모하며 문막 온누리동산과 서빙고 두란노홀에서 추모예배를 드렸다.
아낌없이, 쏟은 선교열정
김사무엘 선교사는 35살에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 예수님을 만나 구원의 감격을 누리며 살던 어느 날, 하나님이 그를 일본 땅으로 부르셨다. 부르심에 순종해 신학공부를 마치고 1983년 C&MA 교단으로부터 일본선교사로 파송 받았다.
그는 도쿄 시부야 교회, 요시카와 복음교회, 이치카와 복음교회, 센겐다이 교회, 나리타 복음교회, 야치요 복음교회, 기후 얼라이언스 교회 등을 개척하며 선교에 열정을 쏟았다. 1993년부터 95년까지 중국 선교사로 언어 훈련과 교회 리더십 훈련을 담당했다. 1995년 7월부터는 온누리교회 선교총괄목사로 사역했다. 일본에 비전교회를 세우는데 큰 힘을 보탰다. 일본에서 멈추지 않고 북한과 중국을 다니며 지경을 넓혀 갔다. 2003년에도 전쟁의 상처로 아파하던 이라크에 들어가 ‘이라크 한인 연합교회’를 세웠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선교에 온 힘을 쏟던 그는 혈액암으로 투병하다 하늘나라로 떠난다.
김사무엘 선교사의 순교는 온누리교회 Acts29 비전을 꽃피우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의 선교의 헌신은 지금도 열매를 맺고 있다. 순전한 믿음으로 죽기까지 충성한 그의 영성이야말로 한국 교회 또 하나의 유산으로 남았다. 우리들의 가슴 속에도 깊이 뿌리내렸다.
/ 조은실 기자 ces@onnuri.org
<온누리교회 순교일지>
2000년 새해 첫날, 중국으로 파송된 박승철 선교사가 순교했다. 뜻밖의 교통사고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박승철 선교사는 온누리교회 첫 순교자다.
2004년 김사무엘 선교사가 박 선교사의 뒤를 따른다. 같은 해 국내에서도 순교자가 생겼다. 이태화 형제가 경남 하동에서 아웃리치 사역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로 순교했다. 2005년 6월 중국에서 사역하던 권소망 선교사가 교통사고로 하나님 곁으로 갔고, 같은 달 창조과학회 1호 선교사이자 온누리 파송선교사 전광호 선교사도 순교했다. 2006년에는 최보라 선교사가 순교했다.
작성자 조은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