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사역

내 인생 한 권의 책 – “밟아도 좋다 밟아도 좋다.” (김재승 전도사)

목회칼럼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읽고

“밟아도 좋다 밟아도 좋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고민과 만족스럽지 못한 현재의 삶으로 인해 하나님께 불만을 안고 살아가던 20대 중반 어느 날. 각별하게 지내던 선배와 커피 한 잔 마시며 내 마음을 털어놓았다. “당최 하나님은 날 사랑하시지 않는 것 같아. 아무리 둘러봐도 하나님의 일하심이 느껴지지 않아.”

나의 말을 가만히 듣던 선배는 그날 밤 자신의 책꽂이에 꽂혀있던 책 한 권을 뽑아 나의 자취방으로 찾아왔다. 그 책은 엔도 슈사쿠의 <침묵>이었다.

이 책의 시작은 어둡고 암울하다. 포르투갈 예수회에서 일본에 파견한 페레이라 신부가 배교(背敎)하였다는 내용이다. 그 사람은 일본에서 선교활동한지 33년이나 된 주교였다. 높은 지위를 가진 신부였다. 충격적인 소식이 로마 교황청과 포르투갈 전역을 휩쓸자 로드리게스 신부는 결심을 한다. 교회와 페레이라 신부의 치욕과 굴욕을 씻어내겠노라고. 로드리게스는 일본에서 잠복선교를 결정하고, 오랜 항해를 거쳐 극적으로 일본 땅을 밟게 된다. 그가 밟은 일본 땅은 녹록한 곳이 아니었다. 당장에 의식주를 해결하기도 어려웠다. 무엇보다 서양인 선교사들을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한 마을이 초토화되는 경험을 한 일본인들은 마음 문을 열지 않았다. 그들이 마음을 여는 것은 목숨을 내걸어야 할 만큼 치열한 싸움이었다. 위협과 위기 속에서도 로드리게스의 선교활동은 열매를 맺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느 일본인의 밀고로 로드리게스와 일본인 개종자들은 모진 고문을 받게 된다. 이때 일본 군인들이 로드리게스에게 제안을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 그려진 성화를 밟고 지나가는 배교 행위를 하면 저 멀리 바닷가 한 가운데에 묶여있는 일본인 개종자들의 목숨을 살려주겠다는 것이다. 자신 때문에 죽음의 문턱까지 간 개종자들을 생각하니 배교를 해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되지만 반대로 배교를 하는 것은 신부이자 선교사인 그에게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고통스럽고 힘든 상황에서 로드리게스의 귓가에 예수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밟아라, 성화를 밟아라.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존재하느니라. 너의 발이 아플 것이니 그 아픔만으로 충분하느니라.”

책을 덮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했다. 당신의 얼굴을 밟고 지나가라고 말하는 예수님의 음성은 세상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큰 사랑의 울림이었다. 자신을 믿기 때문에 목숨을 잃어야만 하는 신도들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거룩하고 신성한 존재이지만 스스로 그것을 포기하고 로드리게스의 발에 밟히기를 결정했다. 그 결정은 2000년 전 십자가를 지기를 결정했던 그 모습과 너무나도 똑같았다. 결국 가장 소중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나’다.

우리 인생을 돌아보면 답답하고 어려운 순간이 많다. 괴롭고 고통스러운 순간도 있다. 심지어 하나님의 존재마저도 의심하게 만드는 사건들도 있다. 로드리게스의 심정처럼 도무지 무엇이 옳은 것인지 결정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런 순간에 사람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한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하나님의 사랑은 나를 향해 있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에게만 집중되어 있다. 나를 향한 그 사랑이 오늘도 속삭인다.

“밟아도 좋다, 밟아도 좋다.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나는 존재한다.”

김재승 전도사(차세대)

 

/ 김재승 전도사(서빙고 차세대)

작성자  정지은